용재총화(성현)

모유수유와 육아로 바쁘긴 했지만, 방학 중이라 나름 여유(?)있는 독서를 했다. 깊이 몰입해서 읽지 않아도 좋으니 아이를 보며 읽기에 참 좋았다. 무엇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점잔 빼는 양반들의 글이 아니라 더욱 좋았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이 나왔을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회, 문화, 종교, 문학, 글씨, 그림, 음악 이야기에 왕족과 양반의 뒷담화에 승려, 과부, 맹인, 귀신이야기까지 종합해 놓았으니 글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흥미로운 텍스트였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초간본이 희귀해 필사본이 많았다고 하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굳어진다.

 

읽으면 읽을수록 옛사람들(조선전기)의 유머와 자유분방함이 새롭게 느껴졌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인물이야기가 많은데 이토록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많았을 거란 생각에 조선 전기 사회가 굉장히 역동적인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리고 고려시대 숭불 문화가 점차적으로 깨지는 분위기였는지 상좌가 사승을 놀리거나 중들의 일탈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안생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 금오신화의 이생규장전이 떠오르기도 했고, 성균관 풍습과 신래를 골려주는 이야기를 보면서 성균관 스캔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글과 글씨, 음악에 조예가 깊은 성현의 박학다식함이 묻어났고, 또한 중간중간 잊지 않고 두 형과 집안 자랑도 깨알처럼 넣어 둔 것도 인상 깊었다.

 

<인상 깊은 구절>

 

33 옛날에 신래를 제어했던 것은 호걸의 기운을 꺾고 상하의 구분을 엄하게 하여 법도에 따르도록 함이었다. 요구한 물건이 생선이면 ‘용’이라 하고, 닭이면 ‘봉황’이라 하고, 청주면 ‘성인’이라 하고, 탁주면 ‘현인’이라 했다.

✎ 지금이야 시대와 제도가 달라져서 신래들을 골려주던 풍습은 사라졌지만, <매천야록>에서도 보이듯이 옛날에 집안이 풍족하지 않으면 벼슬을 받아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다.

 

41 성종께서 유학을 숭상하여 이단을 물리치시고, 온갖 불사에 대해 대간에서 그 폐단을 극언으로 간하였다. 이로써 사대부 집안에서는 법과 물의를 두려워하여 장례와 제사 때가 되어도 법대로만 행할 뿐 불공을 드리지는 않는다. ~ 사물이 성하면 쇠퇴하니, 이치가 그러하다.

✎ 성종때까지만 해도 불교가 조선 사회를 지배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사물이 성하면 쇠퇴하니, 이치가 그러하다’는 대목이 다음에도 자주 나오는데, 성현의 넓고 길게 보는 안목을 대하는 것 같다.

 

46 동궁 시절에 문종은 금귤 한 쟁반을 집현전에 보내셨다. 금귤을 먹고 나니 쟁반에 글이 있었는데, 즉 손수 지으신 귤에 관한 시가 흘린 글씨로 쓰여 있었다. ~ 이 시와 글씨가 모두 세상에 드문 보배여서 학사들이 베껴 적고자 했다.

✎ 세자로서만 거의 30년을 보낸 문종의 효성과 특출한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반가웠다. 그가 일찍 죽지 않고 세종의 뒤를 이어 최소 10년 동안이라도 집권했다면 역사는 정말 많이 달라졌겠지? 만화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의 가장 큰 실패가 후임을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 여기서도 다시 한 번 떠오른다.

 

54~55 음식과 남녀

✎ 제안, 생원 한경기, 자고는 참 여러 사람 입에 올랐겠다. 이런 이야기는 도대체 어떻게 퍼지는 거지?

 

70 귀신과 대면한 경험

✎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인데, 옛날에만 귀신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재미삼아 적은 글인지 옛 사람들의 글소재는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현의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사실처럼 보이기도 했다.

 

78 우리와 중국의 차이

✎ 이런 글을 사대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엄격한 비판이라고 해야 할까? 내 생각엔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쓸데 없는 허례허식이 많고 노비가 많아 세금이나 군인이 적다는 것도 좋은 지적인 것 같다.

 

109 북방야인

✎ ‘열하기행’에서 들었던 형사취수 문화가 떠올랐다. 당시에도 북방의 오랑캐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23 성현의 즐거움과 슬픔

✎ 예조판서를 맡으며 장학원 제조를 하면서 느낀 여유로움과 예관으로서의 힘든 것을 묶어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게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라고 기록한 태도가 참 좋아 보였다.

 

177 김수온의 학문

젊은 시절, 공은 책을 빌리면 성균관에 왕래할 때마다 하루에 한 장씩 빼어서 소매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외웠다. 잊어버린 곳이 있으면 꺼내보곤 했다. 외우고 나면 버렸다. 그래서 한 권을 외우면 그 한 권이 사라졌다.

✎ 학문하는 자세가 무척이나 놀랍다. 그만큰 사라진 책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토록 열심히 학문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186 신재추의 급한 성격

✎ ‘파리가 당신 남편이오? 왜 편을 드시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린 용재총화의 넓은 소재 포용력에 감탄할 뿐이다.

 

191 최항의 재간

✎ ‘네 부친의 낭은 쇠로 만들었더냐?’ 이 부분도 대 폭소!! 너무 재미있다.

 

용재총화
국내도서
저자 : 성현 / 이대형역
출판 : 서해문집 201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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