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1: 큐슈(유홍준)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13. 10. 14.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 하면 나는 대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후 정말 신세계를 경험한 듯 했다. 이토록 즐겁고, 새롭고, 위대한 세상이 있었다니.
사람과 모임과 술과 학생회와 모든 것이 내 세상인 것 같았다. 나를 인정해주는 선배, 동기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소쇄원이며, 식영정, 강진, 장흥 등으로 답사 다니며, 국어과만의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어쩌면 그렇게 남도를 돌아다닐 수 있게 디딤돌을 놓아준 사람이 바로 유홍준이 아닌가 싶다.
나뿐만이 아니리라. 전 국민에게 온 국토가 박물관임을,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임을 일깨워준 고마운 책이다.
국내편 전권을 다 읽지 못했지만, 이번에 일본편을 읽게 되었다.
올해 초 일본 북규슈 여행을 다녀온 남편의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홍준이 썼기 때문에 더더욱 끌렸으리라 생각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역시나 유홍준이구나라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여행기보다 지적이고 흥미로웠다. 우리 고대사와와 연결되니 알기 쉽고, 또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각까지 제시하고 있다. 일본의 고대사 콤플렉스나, 우리의 고대사 우월주의를 넘어선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와 역사를 평가하고,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아마 일본 사람이 읽었더라도 절대 편파적이지 않다고 할만 했다.
책의 초반에는 유홍준선생님 뿐만 아니라 혜산 윤동이 선생님이 답사대를 이끌며 실제 답사에 나선듯 실감나게 진행해 주었다. 이때문에도 나도 답사대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답사에 대한 디테일적인 면도 좋았다. 답사하면서 듣는 음악, 차를 타는 것보다 걷기가 많은 이유, 지역에 따른 먹거리 소개, 왜 이동하는 차에서는 잠을 자지 않는지 등, 기행문의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의 고대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특히 일본의 도자기의 시작과 발전에 조선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알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책이었다. 도조 이삼평, 여자 도공 백파선, 박평의 등 도공들의 타향만리에서의 성공(?)도 알 수 있었다.
소설집보다 더욱 매력적인 독서였다.
-인상 깊은 구절-
(79) 첫째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임진왜란의 전승국은 조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침략을 물리쳤죠. 다만 일본에 전쟁 피해 보상을 물릴 수 있는 완승이 아니라 방어에 성공한 승리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승은 전승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전승국이었음을 말하지 않고 연신 피해만 역설하는 패배주의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중략) 둘째는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가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같은 인재는 말할 것도 없고 율곡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10만 양병론을 펼쳤죠.
-임진왜란, 즉 조선 침략의 근거지였던 히젠 나고야성에서 임진왜란이 주는 교훈을 설명한 부분에서.
✎ 패배의식이 좋은 것은 없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린 왜군의 침입에 더해 병자호란까지 계속된 전쟁으로 나라가 뿌리째 흔들린 상황에서 승전국이라는 자부심이 쉽게 들지 않는다. 게다가 임진왜란의 경우 징비록이나 난중일기를 통해 그 참혹함을 간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좋은 기억이 백성들에게 있을 수 있을까. 여하튼 진 것은 아니었다는 패배주의에 빠지지는 말자는 정도로 본다.
(175) 우리는 막연히 생각하기를 일본에 온 도공들은 왜놈들에게 포로로 끌려가 이국땅에서 도자기를 굽는 고된 일을 노예처럼 사역되었고 고향이 그리워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불쌍한 인생이라고 깊은 동정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그 실상엔 다른 면이 있었다. 조선에 살 때 이들은 지방가마의 도공으로 천민이었다. 이들은 도자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지어야 했고, 각종 역에 나가 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에 와서 이들은 도자기 기술자, 즉 장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이 상대한 것은 번주라는 지방 최고통치자들이었다. 가라쓰야키에서는 어용 도자기 선생이라고 '선생' 소리를 들었다.
✎ 임진왜란 전까지 일본은 생활용 그릇 대부분을 나무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의 도자기 기술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약탈이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야 어쨌든 좋은 도자기를 만들도록 충분한 지원 및 소비를 통해 도자기 기술을 개발했고, 영국을 통해 현재 도자기 강국이 되었다고 한다. 노동이건 예술이건 좋은 조건, 그것을 인정하고 사용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220) 그러면 왜는 무슨 사연으로 백제를 끝까지 그렇게 지원했고 우리 국사 교과서는 왜 이에 침묵하는가. 박노자는 '숙적' 왜국이 이렇게 백제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한국인의 통상적 일본관과 배치되기 때문에 언급을 아예 회피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점을 우리는 깊이 반성하고 우리의 고대사와 한일 관계사를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족주의의 세례를 깊이 받은 우리로서는 으레 고구려, 백제, 신라는 동족국가이고 왜는 외적이라는 전제하에 고대사를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은 훗날의 이야기다.
✎ 저자는 삼국시대를 오국 시대로 봐야한다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때 빼놓고 일본은 쭉 우리와 좋지 않은 사이였다. 우리나라를 약탈했거나 침략해 왔다. 적어도 과거의 축적이 현재라면, 일정 부분 어찌할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298)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라.
'유어예(遊於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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