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노마 히데키)

 

일본인이 쓴 '한글' 이야기라는 책광고가 눈에 띄어 사두었으나 읽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한글날을 앞두고 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의 시선을 참고할 겸 이 책을 들었는데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한글에 대한 기존 인식을 새롭게 살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즉 내 머리속 어떤 부분에서는 위교를 할 뻔하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은 작가의 시각을 통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걸 깨달았다.

책은 '한글'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일단 '입말'과 '문자'를 분리하여 사고하도록 하고, '입말'을 '문자'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나 일본이 한자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잘 소개해 주고 있다. 
또 일본인을 대상으로한 한글 관련 서적이기에, 같은 양상에 대해 일본과 우리가 같으면서도 각 나라들의 언어체계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여하튼 한글 창제 이전의 이야기는 한글 창제가 필요한 배경으로 충분히 설명이 채워지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뿌리 속에서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이 추구한 문자의 창제 과정을 그들의 처지에서, 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문자를 만들었을까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즉 입말을 음절에서 음소로 분석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자음과 모음, 이를 합하여 음절, 즉 문자를 만들고 문장과 텍스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현재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또 이 과정에 필요한 언어학적 지식들도 충분히 소개가 된다. 이 책의 부제 “문자라는 기적”이라는 말이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상적인 부분은 한글 창제 이후의 이야기들이었다.
먼저 최만리가 훈민정음을 반대한 이유와 관련된 내용들이다. 중1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 최만리 반대 상소의 반론으로 제기되는 것은 지나친 사대주의와 언어를 통한 사대부의 기득권 지키기였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이 꼭 정치적인 투쟁으로만 바라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당시 식자층들은 한자로 사고해 왔다. 한자는 글자마다 뜻이 있어 이들을 합쳐 의미가 학장되는 형태이다. 그래서 그들은 글자 자체로 의미를 해석하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도를 닦는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은 음을 합쳐 문자를 만든다. 그러니까 글, 문자에는 뜻이 없다. 문자로서 축적된 ‘지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고,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그들에게 한글을 쓰라는 것은 한자로 표기를 하던 사람들에게 어느 날, 한자 아닌 영어로 표기하라는 것과 같은 충격적인 명령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 오히려 이 부분이 더 중요한 것은 세종이 최만리 파 대부분을 바로 용서했고, 4개월 뒤에는 복직시켰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투쟁이라기 보다는 ‘지의 세계’를 둘러싼 투쟁임을 방증한다.

지금도 국어교육 강화를 외치는 사람들 중에 한자교육을 강화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기득권이나 경제적인 측면의 이득도 고려했겠지만, 그들 역시 비슷한 논리로 한자교육을 강화하자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들과 논쟁할 때 문제 삼을 것 역시, 말해진 언어를 기록하는 것이 문자이며, 우리는 한글로 지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할 필요가 있겠다. 즉 쓰지 않는 한자말들도 이미 죽은 글자들을 불러 들일 것이 아니라 지금의 말로 지금의 언어를 기록해 지금의 지를 구축하자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철학적 원리를 강조한 이유도, 새로운 지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이론적 문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자는 사람들에게 사용되었을 때 진정한 문자가 된다. 
세종대왕은 언해의 형태로 한문을 훈민정음으로 풀어쓰고, “용비어천가”에서는 훈민정음을 먼저, 한문을 나중에 써 문자에 있어 주종의 관계를 흔든다. “동국정운”을 발간해 정확한 소리를 지적하려고 했으며, 불교서적 간행, 불교서적 언해, 성리학 언해본들도 간행한다. 이황과 이이는 훈민정음만으로도 성리학을 풀이하는 기록도 남긴다. “두시언해”나 ‘시조’는 훈민정음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오노마토페(의성의태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드디어 말해진 언어와 쓰여진 언어가 일치하는 세로운 지의 세계를 열었다.  

또 저자의 지적 중, 글꼴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다.
훈민정음의 글꼴은 붓글씨로는 쓸 수 없는 글자다. “어리석은 백성이 한자한문을 모른다는 것은 붓도 필법도 모른다는 뜻이다. 역학의 효를 떠올리게 하는 그 자획이라면, 어리석은 백성일지라도 흉내 내고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창제기의 정음은 쓴 문자가 아닌 ‘그린’ 문자였다.(329)” 백성들이 이른바 각필로 쉽게 어디든 기록하여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붓글씨가 아닌 고딕체에 가까운 형태로 글자를 퍼뜨렸다는 해석도 지금껏 듣지 못했던 내용이다. 즉 훈민정음의 글꼴에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벗어나려고 했다는 해석이다. 물론 훈민정음은 궁에서 사용(궁체)되면서 서예까지 이어서 다양한 글꼴을 만들어 미적인 아름다움을 갖게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주시경 등이 한글을 풀어쓰기하려고 했다는 것도 몰랐던 내용이다. 인쇄의 편리성 및 당시 풀어쓰기가 주를 이루었던 서양의 방식을 따르려고 했다는 것인데,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가 나오면서 소프트웨어적으로 이 문제가 풀리게 되었고, 음절문자로서 컴퓨터와의 더 큰 호응의 지금 세대의 역할이라는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세계문자사로 보니 ‘한글’ 창제는 정말 ‘기적’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한글이 지금까지 사용되어 온 과정도 구세대와의 치열한 지적 투쟁 및 식민지 투쟁까지 거쳤기에 ‘기적’이라는 말로는 표현한 방법이 없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이런 의의를 깨닫게 된 만남도 한글에 대한 기적 같은 강렬함이다.

 

한글의 탄생
국내도서
저자 : 노마 히데키 / 김진아,김기연,박수진역
출판 : 돌베개 2011.09.30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