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배달(김선영, 자음과모음)


‘완득이’ 또는 ‘재석이’스러운 ‘태봉이’와 ‘정아’ 또는 ‘보담’스러운 ‘슬아’의 이야기다.

비슷한 듯 하면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시간을 파는 상점> 이후로 이 책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도입하며 더욱 극적으로 과거의 자신과 만나게 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특별한 경험을 만나기는 절대로 힘들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나마 자신의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근수'라고 볼 수 있겠다. 촌스럽고 어눌한 고집이 있지만 주위에 퍼뜨리는 건강성은 유독 빛이 난다. 하지만 그래서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이런 캐릭터가 도대체 현실 어디에 있는 거냐고요? 
또한 태봉이 아버지 캐릭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해 준비한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쓰레기 속에서 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자신의 인생이 잉여인간이나 쓰레기가 아닌 삶의 희망을 찾아 아들에게 증명하는, 그래서 아들에게도 다시 희망을 전해주는. 

잉여인간, 입양, 선택에 대한 책임, 삶을 바꾸는 용기 등 아이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좋은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11 “잉여인간이 무슨 뜻인지는 아냐? 알고 쓴 거냐?”
대놓고 무시하는 저 말투. 무시도 완전 개무시다. 태봉은 애당초 긁어 부스럼 낼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짧게는 30초, 길게는 1분 정도 어금니 꾹 깨물고 참으면 그게 신상에 이롭다. 요즘엔 시답지 않은 일로 지적질하고 화내는 선생은 거의 없다. 중학교 때, 무단으로 며칠씩 결석해도 이유를 묻는 선생은 없었다. 장래 희망까지 일일이 체크하며 열 올리는 지금의 담임이 희귀종에 완전 오버형이 거다.

 장래희망이 ‘잉여인간’인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에 좀 놀랐다. 완득이 스타일인데, 철학적인 면까지 겸비했어? 이런 캐릭터 설정이 가능한가? 그리고 이렇게 교사에 대해 냉소적인 구절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외부에 비친 교사들의 모습은 무기력에 의욕없음인가?


16 ‘쓸모없는 인간, 그게 왜 굳이 장래 희망이냐고 묻는다면? 그게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솔직, 담백, 현실적인 대답인가.’
잉여인간이라는 말에 담탱이가 저토록 열 올리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학교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서열 분리 아닌가? 학교는 오로지 그 일을 위한 검증단체라는 생각마저 든다. 소수의 엘리트 그룹과 대다수의 잉여와 초잉여, 쓰레기로 자동 분리되는 게 학교라는 것을 초딩 때부터 몸소 체험하고 살았기 때문에 제 분수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다. 부모들은 대개 아이가 초딩 때까지 환상 속에 살다가 중딩 때 박살이 나고 고딩 때 개박살이 나야 포기라는 단어를 접수한다. 
태봉은 이미 트랙 밖으로 밀려났다는 것을 안다. 출발선부터 다르기 때문에, 트랙 차지는 고사하고 운동장에서조차 퇴출될 가능성이 짙다는 것도 안다.

 트랙 밖으로 밀려날 잉여 인간들. 냉정하지만 이토록 객관적인 분석은 처음인 것 같다. 수업 중에 언뜻 보이는 태봉이 같은 잉여학생들. 안타깝기만 하다. 


51~52 “설악산에 매우 큰 산불이 났어요. 여덟 명의 사람들이 고립되어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형이 위험하여 도저히 구조대원의 손길이 닿지 않습니다. 헬기로 접근하려는데 단 세 명만 태울 수 있습니다. 다음 중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먼저 헬기에 태우겠습니까?
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와 어린 동생을 돌보는 소년 가장 10대
② 30년 교도소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막 출소한 할아버지 70대
③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국가 대표 축구 선수 20대
④ 쌍둥이를 임신한 지 7개월째인 20대 임산부
⑤ 어린 3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 40대
⑥ 평생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목사님 50대
⑦ 밤낮없이 일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국회의원 30대
⑧ 국내 대기업 회장의 5대 독자 외아들 5세
태봉은 헷갈렸다. 살아야 할 그들만의 이유가 있노라고 아우성 치는 것 같았다.

 수업자료로 쓰면 좋을 듯. 아이들 나름의 기준으로 모둠별 토의나 학급별 토의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고 사회정의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57 “힙합을 들으면 갑갑한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어. 랩을 하며 내뱉는 말들이 시원했어. 신랄하거든. 욕도 써주는 게 랩이잖아. 음악을 듣는 동안 좀 자유인이 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이유 같아. 불만을 속에 쟁여놓는 것이 아니라 중얼중얼해 버리면 그래도 속이 좀 풀리잖아. 울 할머니는 밥할 때마다 행주로 솥뚜껑 닦으며 중얼중얼하셨어. 주로 엄마, 아빠 욕이지만. 그래서 할머니 설득하기도 쉬웠어. 할머니가 매일 그러는 것처럼 나도 그래야 살 수 있다고 했어. 그게 직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더니, 누가 중얼중얼하는 거 가지고 돈 주나며 결사반대하시는겨. 그러더니 어느 날 할머니가 평생 모은 돈을 내 손에 쥐여주며,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며 훨훨 날아댕기며 살라고…….”

 근수의 구수한 사투리가 나올 때마다 막막했던 소설이 좀 뚫리는 것 같다. 태봉이에게 퀵클리쌩 사무실에 살아있음을 불어넣는 역할로 딱이다. 그런데 좀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 할까? 이렇게 건강성을 지닌 아이들이 과연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힙합과 할머니의 넋두리를 연결시키는 것이 공감이 되었다.


81~82
슬아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무들의 형체는 더욱 까매졌고 대기는 검회색빛으로 변해갓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리는 어중간한 순간이다. 빛의 잔영을 미약하게 붙들고 있을 때 구름은 까맣고 하늘은 형광빛으로 하얗게 발색된다. 그 경계의 순간에 사물은 오히려 제 모습을 가장 도드라지게 사른다. 슬아는 이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아늑하면서도 편안하며 조금은 만만한 시간. 그런데 그것은 삽시간에 사라진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경계, 그때쯤 가로등에는 낮은 조도의 불빛이 들어온다.
바로 이 시간이 하늘과 땅이 얘기하는 시간이 아닐까. 이 우주와 또 다른 우주가 통할 수 있는 시간. 어스름 녘, 그 시간에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을 가장 그리워지게 만드는 시간, 새들도 둥지를 찾아 날개를 돋치는 시간, 어린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집을 향해 우는 시간, 떠도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시간. 치매 걸린 노인이 반짝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시간, 어떤 것으로도 숨길 수 없는 본능적인 시간인지도 모른다. 살아온 날 중 가장 회환이 남는 수간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을 가장 그리워지게 만드는 시간, 치매 걸린 노인이 반짝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시간’ 이 부분이 굉장히 놀랍다. 어스름 녘의 경계의 시간,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도 같다.


136 나에게 처음으로 절도를 제의하고 뒤집어씌운 그 형을 찾아가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꼴에 켕기기는 한 건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더라. 간신히 통화만 했다.
씨발, 뭐냐고. 형이 내 신세 조진 거라고 따졌다. 그러자 그 형은 아주 태연하게 한 마디 하더라.
-나는 그냥 패를 던진 거고 패를 잡은 건 너지 내가 아니야.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모든 순간 패를 잡은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138 “선택 우주라는 것이 있어. 선택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이론이야. 한순간의 선택이 자신을 어떤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 일구 아저씨는 웜홀에서 보게 된 거야. 그러니까 일구 아저씨의 우주는 얼마 전의 우주와는 완전 달라진 거야. 웜홀 통과 후 오토바이와 일구 아저씨는 새롭게 원자 조합이 되었을지도 몰라. 보기에 달라진 게 없어 보이지만 분명 그렇지 않을 거야. 그래서 일구 아저씨는 그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커.”

 새롭게 원자 조합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간다면 분명 그 전과는 다른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을까?


145 12월 24일 몇 년만에 크리스마스 이브
쓰레기라는 말에 끌렸다. 쓰레기 속에서 보물찾기 하듯 금을 찾는 일이다. 나도 엄밀히 따지면 산업폐기물이다. 그렇다면 내 속에도 금이 있지 않겠나. 아직 캐내지 못한 금광이 내 안에도 아직 빛을 내고 있지 않겠나, 생각했다.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어찌 폐휴대폰보다, 폐전자밥통보다 못하겠는가.

 이 소설에는 잉여인간, 쓰레기 등의 부정적인 언어들이 등장한다. 결국 이 구절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153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는 47퍼센트, 그러니까 절반도 넘는 아이들이 불만족 상태로 사는 거야. OECD 국가 중 최하위지. 너와 나도 거기에 속해. 그렇다면 한 번쯤 모험할 필요가 있는 거 아니겠니? 뭔가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봐야지. 이렇게 무기력하게 눌려 살 수는 없잖아. 한 번쯤 용기를 내보는 것도 그닥 나쁘지 않다고 봐. 준비하는 건 딱 한 가지, 용기뿐이야. 또 다른 나의 모습과 맞닥뜨릴 용기.”

 뭔가 돌파구를 마련할 용기!! 그게 뭘까?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은?


154 개망초
피어라 피어라 온 들판
하얗게 새하얗게 덮어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아도
8월 짱짱한 여름볕 속에
나도 꽃이다, 나도 꽃이다
고개 당당히 들고 외쳐라
하얗게 새하얗게 덮어라

 노래가 어떨지 모르겠으나, 가사가 참 좋다. 잉여인가, 쓰레기에 이은 3탄 개망초인가?


211 웜홀에서 보았던 선택의 순간은 되돌리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잘 들여다보는 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삼촌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감당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특히 ‘나’의 책임이 가장 큰 거라고 했다. 누가 되었든 간에.

 ‘나’의 책임! 무척이나 무거운 말이다. 옳은 말이다. 아이들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꼭 마음에 새기기를.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