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로켓파크(이시다 이라, 양철북)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3. 2. 27.
한 편의 버디무비 같았다. 발달장애를 지닌 간타와 요지를 보며, 영화 <레인맨>의 자폐증을 앓던 형 더스틴 호프만과 동생 톰 크루즈를 떠올렸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진한 우정으로 뭉친 두 친구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는 경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오랜만에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해서,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 그리고 사업의 성공과 실패까지, 성장소설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호흡이 긴 편이었다. 마지막엔 왠지 산으로 가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책을 다 덮고 나서 다시 한 번 인상 깊은 구절을 정리하고 나니 성장소설의 새로운 세계를 엿본 듯 신선했다. 유년기, 청소년기를 지나면 성장은 멈출 것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깨졌다고나 할까?
지난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도달한 곳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라는 책에 담긴 것처럼 비정규직과 아르바이트로 점철된 더욱 고통스러운 사회였던 것이다. 이런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요지와 간타는 매우 호전적으로 사회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렇게 요지와 간타의 도전과 실패는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이었고 저항이었던 셈이다. 소설 곳곳에 일본 기성 세대에 대한 비판의식이 엿보이는 구절들이 유독 돋보인다.
‘로켓파크’의 도전과 실패는 필연적인 귀결이었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씁쓸한 실패가 아쉬웠지만, 아직도 요지와 간타, 히메나는 열심히 삶을 개척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흐뭇하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일본 이야기지만 한국과 너무도 닮아 있는 교육문제, 경제문제, 세대간의 갈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하는 두 친구의 우정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다만 인물들의 미래를 미리미리 알려주는 작가의 과도한 친절이 좀 거슬리기는 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인상 깊은 구절-
23 “장애는 병과 달라서 낫는 게 아니래. 그래서 장애래.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거.” 봄날의 놀이터엔 나무의 어린잎들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이들 목소리는 기분 좋은 불꽃놀이 같았다. 히메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지는 울상이 되었다.
“하지만 걱정 안 해도 돼. 아빠가 그랬어. 신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강하게 만드셨대. 곤란하거나 괴로운 일을 견딜 수 있는,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래.”
그렇구나. 간타는 강하구나. 분명히 내가 지켜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미즈키한테 한 것처럼 간타가 나를 지켜 주는 일도 많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장애가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발달장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전에 간타는 그냥 간타일 뿐이다.
✎ 어린아이들 대화치고 너무 조숙하다. 어디선가 많이 들은 말이지만, 장애에 대해 우리가 한 번씩 되새겨볼만한 구절이라 옮겨봤다.
44 “어쩌면 모두 억지로 똑같은 척해야 하니까 아주 괴로운지도 몰라. 아키히로와 유타로, 겐은 다른 애들과 똑같은 걸 잘 못해. 그래서 자기네보다 더 눈에 띄는 간타를 괴롭히는 걸 거야. 그러면 자기들이 눈에 띄지 않을 테니까. 그래. 역시 히메 말이 맞아. 눈에 띄는 건 나쁜 거야.”
✎ 집단따돌림과 학교폭력의 원인은 굉장히 다층적이지만 히메 말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건 어른이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눈에 띄는 것은 나쁜 거다.
71 “사람한테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른이라도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아이라도 놀랄 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있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똑바른 사람이라서 부탁한 거란다. 내 눈은 틀리지 않을 거야. 곧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은 잘못 보지 않는다고 하잖아.”
✎ 요지와 히메는 너무 조숙해서, 간타는 너무 어려서 문제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홀로 남을 간타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 참 드라마틱한 설정이다. 뒷이야기도 그렇게 흘러가지만.
101 “흠, 좋겠네. 누가 제일 센지 뭐가 중요하다고. 남자들은 별나.” 요지도 동감이었다.
누가 더 센지 싸우고, 교실에서는 누구 머리가 좋은지 시험 점수로 경쟁한다. 그것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해도 반드시 더 센 사람이 나타나고,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더 똑똑한 사람이 늘 있기 마련이다. 강함과 현명함이 싸우면 어느 것이 이길까?
요지가 책의 세계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현실 세계와 달리 책 속에서는 서로 비교할 수 없었다.
✎ 히메나는 언제나 의미심장한 말을 던져 놓는다. 작가의 대변인 같기도 하다.
107 “유치원 때 선생님은 간타에게 여기에서 저기까지 이 걸레로 깨끗이 닦아라, 하고 청소할 곳을 구체적으로 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간타는 곧잘 했어요.” 간타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지만 아직도 다리는 떨고 있었다. ‘이만큼 이야기하기까지 간타는 얼마나 많은 용기를 쥐어짜고 있을까?’ 요지는 겁쟁이 간타가 죽을 힘을 다해 발표하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 드라마같은 장면이다. 갈등이 극적으로 풀리는 순간. 심지어 노조미까지도 청소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학급회의 분위기. 리더십 있는 요지와 어리숙하지만 용기있는 간타 덕분이다. 내가 마주친 현실에서도 이런 상황들이 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111 요지와 간타는 10년도 더 지난 뒤에 노조미에게 약속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이건 뭐 고전소설도 아니고. 작가가 정말 친절하시다. ^^; 이런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반면 뒷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근데, 이 작가 상탄 작가 맞아?
(그 외 149 모든 사람에게 촉망 받던 요지는 칼처럼 날카롭고 어두운 눈을 가진 청년이 되고, 간타는 그런 요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행동에 옮기는 충실한 호위대가 된다.)
119~120 “실은 아까 그 문제 나도 잘 모르는 데가 있어. 원작을 다 읽어 봤지만 뭘 물어보는지 잘 모르겠어서 참고서 해설을 봤는데도 모르겠더라고. 작가의 의도를 묻는 문제에 그처럼 하나의 단순한 대답으로 맞춰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어. 이렇게 망설여질 때 ‘좋은 아이’ 다운 대답을 찾는 거야. 장문 독해에서는 그렇게 하면 절반 이상은 맞힐 수 있을 거야.”
간타는 왠지 멀게 느껴지는 똑똑한 요지의 옆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의기양양하기보다는 괴로워 보였다.
“국어 시험은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게 아니라 어른들 생각을 강요하기 위한 거야?”
요지는 고개를 끄떡였다.
“선생님들도 깨닫지 못하고 계셔. 겉으로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는 게 목적이라지만 뒤로는 어른들이 다루기 쉬운 고분고분한 아이들로 키우려는 거 같아. 내가 보기에는.”
✎ 교육과정, 교과서 내용, 시험 문제에 대해 이보다 적확한 지적이 있을까? 소설이 가지는 미학은 분명히 부족하지만 세상을 보는 작가의 안목에 탄복할 때가 많다. 물론 본인의 경험에 기반한 것이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 진짜 문제인 것 같다.
176 “그 티켓이 있어야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어. 아파트 단지나 학교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성가신 관습이나 법률, 이 모든 것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갈 수 있어. 누가 뭐라 하지도 않고, 구속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거야.”
✎ 불량소년 습격 사건에 휘말리면서 돈에 대한 요지의 집념으로 인생의 큰 전환을 이루게 된다.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는 요지의 모습에서 아이들도 많은 것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런데 솔직히 돈과 자유, 또는 구속의 관계를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돈이 많으면 자유로울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구속되고 피폐해지는 것을 여러 작품을 통해 간접 경험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그럴까 하는 생각과 의문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197 “간타는 우리 오빠처럼 발달장애가 있어서 고생이 많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내 얼굴도 장애 같은 거니까.”
~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데 항상 남자들이 쫓아다니고 치근덕거려. 여자들은 그걸 보고 내가 나쁘다면서 이상한 질투를 해. 난 내 얼굴이 전혀 맘에 안 들어. 이런 얼굴 정말 싫어.”
‘아하, 평범함과 다른 건 모두 장애가 되는구나.’ 간타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결한 기분이었다. 그러면 요지처럼 머리가 지나치게 좋은 것도 장애일 것이고, 그것 때문에 요지 역시 괴로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인공은 요지가 아니라 간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졌다. 이 부분도 그렇다. 항상 도움만 받던 간타가 친구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신선했다.
225 (중략) “부는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는 법입니다. 위에서 먼저 풍요로워져야 전체가 풍요로워집니다.”
정말일까? 간타는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물을 떠올렸다. 간타는 어릴 때 실제로 빗물을 마신 적도 있었다. 갈증이 나는데 여름비가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입으로 받아먹어 본 빗물은 먼지 냄새가 나서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떨어진다는 돈이 그처럼 냄새가 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 성장 위주의 경제에 대한 간타의 생각, 혹은 작가의 생각이리라. 간타의 눈으로 바라보니 문제점이 더욱 쉽게 이해된다. 이 부분도 역시 간타가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다. 그나저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가장 앞세웠던 경제민주화를 뒷전으로 미루고 이름도 생소한 ‘창조 경제’를 가장 우선 순위로 둔다고 한다. 답답하고 막막하다.
253 요지와 같은 젊은 세대는 거품 경제가 붕괴된 두에 청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좋은 자리는 기성세대가 모두 독점해 버리고, 정규직으로 일하기도 어려웠다. 극도의 취업 빙하기가 계속되었다. 연봉 2백만 엔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로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 가는 젊은이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기성세대는 걸핏하면 노동 윤리를 내세어 이 모든 게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아름답게 포장하면서 궁지에 몰린 젊은 세대들을 냉정하게 배제시키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빈곤과 기회의 불평등은 다 개인의 책임이라며 외면해 버렸다. 젊은이들은 교활하게 신자유주의로 방향을 튼 사회에 불만을 터트리며, 요지가 그레이존에서 한 시간 외 거래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 평범한 성장소설인 줄 알았더니 세대간의 갈등과 일본 경제의 어두운 부분을 짚어낸 사회소설이었다. 어찌 보면 한국의 아이들도 요지와 같은 상황에 내몰리면서 힘들게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연금 문제로 세대간 갈등에 불이 붙은듯 하다.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267~268 “당신 기성세대들은 그렇게 당신들 마음대로 정한 의욕을 젊은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매일 죽을 힘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젊은 세대의 절반 가량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머무르거나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죠. 연봉 2백만 엔도 잘 안 주면서 노동 의욕만 내세우고, 옛날처럼 개인 욕심보다는 공공을 위해 일하라고 강요합니다. 저와 같은 젊은 세대는 모두들 당신 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사와가 소리쳤다.
“당신 같은 사람이라니, 무슨 뜻이오? 어떻게 그런 말을.”
카메라는 요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요지의 억누른 목소리가 슬프게 울렸다.
“당신 같은, 경제가 호황이었던 좋은 시대에 일본에서 자라나 일을 하다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때맞춰 잘 도망친 사람을 말합니다.”
✎ 앞의 구절과 같은 맥락이다. 상당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271 “어쩔 수 없어. 사람들은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 없어도 얼마든지 미워할 수 있거든. 내가 이상한 건, 모두 노동이 신성하다고 외치면서 실제로 회사에서는 사람을 기계 부품처럼 취급한다는 거야. 말과 행동이 전혀 달라. 노동은 신성하지만 노동자는 한 번 쓰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일회용이라니 모순이야.”
✎ 간타가 순진한 듯 항상 옳은 말만 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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