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괜찮아(이남석, 사계절)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내면의 문제로 고민할 때
- 2013. 2. 4.
공부가 알파요 오메가인 대한민국에서 한국현실에 맞는 제대로 된 진로 관련 청소년 소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 내 바람을 알기라도 하듯 이 책이 나왔다. 의도적으로 기획된 생소한 ‘지식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전개된 성장소설의 흐름은 작가의 의도한 목적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소설 곳곳에는 평범한 고등학생 태섭의 눈으로 본 대한민국의 왜곡된 진로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어떤 의미도 없는 수능을 위한 공부, 과목별 성적이 주가 된 문이과의 구별, 가슴이 뛸 정도의 즐거움을 깨닫지 못한 청소년 시기,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선택한 직업 등. 이제는 진정한 진로를 고민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리 'SKY', '인 서울'이 아닌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를 생각한 진로선택을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입시교육에 찌든 대한민국을 바꿔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희망해 본다.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와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어 익숙한 구조로 쉽게 읽히는 장점이 있는 좋은 진로 안내서를 읽게 되어 참 좋았다. 중간에 삽입된 진로 관련 Tip은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따로 모아두면 좋은 진로 교육 지침서가 될듯 하다.
-인상 깊은 구절-
(34) 어른들은 모든 것을 공부와 연결시킨다. 고민도 공부에 집중하면 해결되고, 성공도 행복도 공부로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어른들은 공부가 만능열쇠나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럴수록 공부를 못하는 태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예약된 승리자라면, 자기는 벌써 패배자가 된 것 같아 힘이 쏙 빠졌다.
✎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들의 진로는 결국 공부가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왜곡된 신화가 만들어졌다. 아이의 안부를 묻기보다, '공부 잘해?'를 묻는 이상한 나라가 돼 버렸다.
(35) 태섭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문과와 이과의 적성을 구분하는 기준은 수학 성적이었다. 수학 성적이 괜찮으면 일단 이과를 고려하고, 딱히 문과 체질이 아닌 듯해도 수학에 자신이 없으면 문과를 선택했다. 국어와 영어를 못하면 이과라는 구분법도 있었다. 뭐를 잘하거나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못할 것 같아서 선택하는 것은 씁쓸했다.
✎ 이과와 문과에 대한 구분법을 이토록 명징하게 나타낸 표현은 없었던 것 같다. 왠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것 같다.
(64~66) "어느 한순간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고 하면 부담이 많이 되지 않니?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혹시 실패를 하더라도 또는 늦더라도 다음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면 되잖아. 언제든 다시 따라잡을 수 있는 거지. 아, 맞다. 너희들이 잘 듣는 음악을 봐도 그래. 소년원을 들락거리다가 고등학교 이후 음악에 빠져,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훈련받은 사람보다 더 성공한 작곡가도 있잖아."
"포기하지 않는 한 기회는 항상 있는 거야. 아까 보여 준 책들은 저마다 다른 시기를 결정적 시기라고 말해. 좋아. 만약에 결정적 시기가 여러 번 있다면 그만큼 성공으로 이어지는 전환점도 여러 번 있다는 거 아니겠니? 그러니까 너희들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인생의 전환점이라고요? 번번이 실패를 안겨 주는 저주가 끊임없이 널려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선생님 말처럼 쉽게 힘내서 도전을 해요?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가 자동으로 충전되는 게임 캐릭터도 아니고, 계속 스트레스 받으며 버텨 내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모두가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던 대공황 때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는 이렇게 말했어."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람개비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실제로 책마다 인생의 결정적 시기를 이야기한다. 누구는 유아기 때, 누구는 초등, 누구는 10대, 누구는 20대, 30대……. 결국은 매 순간이 결정적 시기라는 이야기인데, 태섭의 고민처럼 해본 적은 없었다. 결정적 시기라는 희망에 가려 좌절과 실패의 연속이 가져오는 피로감을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서 선생님의 강철왕 카네기 이야기는 귀에 쏙 들어왔다. 유치할 수 있지만, 힘없고 가난한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은 직후 수업 시간에 애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들도 귀를 쫑긋했다.
(138~139) "이 사람 생각에는 성공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성공이에요.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고 행복한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제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는데요?"
"똑똑한 사람이나 해 보지도 않고 재미없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지요. 그러다 마침내 세상은 뻔하게 재미없는 것들 투성이라며 정말 재미있는 것을 찾지 못하고 맙니다. 그냥 앉아서 재미를 주지 않는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면서 점점 더 재미없는 삶을 살게 되지요."
✎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행복하다'는 이전부터 공감하고 있던 말이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다. 진정 좋아하는 일을, 가슴 뛰는 일을 해 본 경험이 있을까? 그런 경험을 가질 여유가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다. 대신 컴퓨터 게임이나 TV시청 같은 것을 좋아하는 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무식하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보는 제도가 필요한 것 같다. 학원과 과외 같은 사교육을 금지하고, 특기적성을 찾을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대폭 확대하는 강제성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147)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행동으로 얻은)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자기가 선택한 행동으로 얻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 이 두 문장만으로도 진로 지도에 대한 핵심을 얻은 듯 하다.
(177~178) "미키 마우스는 월트 디즈니가 만든 게 아니야. 디즈니가 캐릭터 디자이너에게 쥐를 귀엽게 만들어 달라며 여러 번 수정 작업을 요청해서 만든 거야. 그리고 미키 마우스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도 월트 디즈니가 아니라 디즈니의 부인이었어. 놀이공원을 요모조모 어떻게 꾸밀지 아이디어를 낸 사람들도 건축, 공학, 디자이너, 영화관계자 등 전문가들이었지."
"그럼 월트 디즈니는 도대체 뭘 한 거야?"
"뭐긴 뭐야? 그 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잘 조합해서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역할을 했지. 그게 가장 중요한 거잖아. 월트 디즈니는 여러 사람의 능력과 꿈을 적극 활용해서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강사분이 말하더라."
✎ 특정한 분야에 두각을 드러내지 않아도 이렇게 타인들의 능력과 재능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쓸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쓰일 곳을 찾지 못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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