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스미레의 눈물나는 고군분투 중2 생활의 시작점은 ‘외로움’이었다.
그렇기에 스미레의 짧은 치마도, 진한 화장도, 반항적인 말투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한여름의 태풍같은 기복 많은 스미레의 중2 생활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지금도 힘들게 중학교 시절을 견디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책은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와 사회에 문제점을 ‘툭’ 하고 던져 놓는다. 어른스럽다는 것이 뭘까, 친구는 어떤 존재일까, 학교는 어떤 곳이며 어떤 곳이어야 할까?
스미레의 눈으로 바라 본 중학교는 사뭇 부정적이다. 리스트 컷(자살)의 충동까지 이겨낸 스미레는 ‘좋아하는 간식이나 따뜻한 차라도 들면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라고 충고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개인적인 인내심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입시를 최종 목표로 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부와 친구의 문제, 성장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하지만 직시하자. 스마트 폰을 손에서 놓지 않거나, 밤새 게임을 하고 야동을 보며,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을 일상으로 하고,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욕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아이들은 스미레처럼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상 깊은 구절>
(6)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완전히 다르다. 당연한 소린가? 초등학교 5학년에서 6학년이 될 때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된 순간 마치 다른 차원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양쪽 다 딱 한 살 더 먹은 것뿐인데.
교복, 묘하게 높아진 철봉, 과목별로 바뀌는 선생님. 초등학교 땐 없었던 것들에 익숙해지느라 시간을 잡아먹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제일 큰 차이는 반 아이들이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극히 평온했다. 왕따 따위는 구경도 못해 봤다. 우리 6학년 1반 아이들은 모두 평화주의자였다. 졸업할 때는 반 친구들 전부 목 놓아 울었다. 이토록 완벽한 친구들을 강제로 갈라놓은 교육제도의 잔인함을 원망하면서 펑펑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중학교에 와 보니, 역시나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녀석들은 그야말로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과 비교하면 우리들은(내 입으로 말하자니 좀 부끄럽지만) 레벨이 달랐다.
✎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게 되니 새롭다.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도 놀랍다.
(7) 초등학교 때는 꽤 개구쟁이였던 남자아이도 다른 학교에서 온 녀석들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책상에 침을 뱉지 않나, 교실 창문을 박살 내지 않나, 수업 시간에 야한 만화를 읽지 않나.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대로 굉장하다. 수업 중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 찍고, 학교에서 정해 준 책가방은 브랜드 백으로 바꿔 들고, 교복 치마는 팬티가 보일 만큼 짧다. 화장에, 염색한 아이까지 교실이 완전히 나이트클럽(가 본 적은 없지만)이다. 정말로 중학교 1학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나이 속인 거지? 대체 몇 년을 꿇은 건지 당장 말해!’
~ 선생님들이 의욕이 없다. 교실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야단 한 번 안 치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 종이 치면 살았다는 얼굴을 하고선 교무실로 도망가 버린다. ‘일단 법적 노동시간은 채웠으니 됐어. 애들이 수업 내용을 이해하건 말건 나랑은 상관없잖아.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알게 뭐야.’ 딱 이런 느낌이다.
✎ 역시 놀랍다. 이 글에 묘사된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특히 교사들의 태도는 참담하다. 종이 치면 교무실로 도망가는 교사들의 모습이 뜨끔하다. 이 책에서 보여지는 교사들의 모습은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스미레가 처한 고독과 외로움을 책 속 교사들은 절대 알지 못한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교사가 친구 관계에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나도 풀기 힘든 힘겨운 과제다.
(25) 집에서는 안 그러는 애들이 왜 학교에만 오면 돌변할까? 집단적 열광? 아니, 그보다는 장소가 문제인 것 같다. 수컷 그 자체인 남자애들도 지하철이나 도서관이나 백화점에서는 점잔 빼고 있으니까. 그럼 역시 학교라는 장소가 문제인가?
역시 내가 말한 대로다. 또래 아이들을 한 장소에 몰아넣으니가 음담패설 병에 집단 감염되는 거다. 그러니까 중학교 따윈 폐지해 버려야 한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한 장소로 몰아넣든지 말든지 하자. 그때까지 전원 집에서 대기! 이상 끝.
✎ 우리 애들은 공공장소에서도 똑같다. 학교주변 도서관이나 공원에서 학생 흡연 민원을 넣지 않은 때가 없다. 학교가 문제인가? 집단 생활이 문제인가? 도대체 아이들이 병들어 가는 이유가 뭘까?
(41) ‘난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
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되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아냐, 역시 되기 싫은 것 같다. 내가 위화감을 느끼는 우리 반 아이들은 전부 까치발을 해 가며 어떻게든 어른 흉내를 내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야한 얘길 하고, 숨어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연애도 하고……. 점잔 빼면서 지구 멸망을 논하는 것도 전부 동물원 원숭이가 인간 어른 흉내를 내는 꼴이다.
그런 건 스무 살 넘어서 해도 된다. 열네 살 때는 열네 살로서 해야 할 일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 잘 몰라 짜증이 나는 중이지만.
✎ 일찌감치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유아기부터 입고, 먹고, 들은 것들이 ‘작은 어른’을 위한 것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스미레가 지적한 ‘열네 살’로서 ‘해야 할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른들 말에 순종하는 것일까? 아님 다른 무엇일까? 이 책에서 스미레는 지독한 열네 살을 보낸다. 성장통을 겪으면서. 이게 작가가 말하는 해답일까?
(56) 오히려 초등학생 시절이 훨씬 더 어른스러웠다. 다들 사이좋게 지내려고 서로 배려했다. 가벼운 다툼이 있어도 금방 화해했다. 반의 리더같은 아이가 중재하기도 했다. 나쁜 짓을 하면 함께 반성했다. 몸가짐도 발랐고 언제나 힘을 모았다. 공부도 다같이 열심히 했다. 이편이 더 어른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다들 제멋대로다. 수업 중에 퍼져 자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떠들고, 웃고, 음악 듣고, 게임하고, 만화 보고, 과자를 씹어 드신다. 더 심할 때는 갑자기 주먹을 휘두르며 싸울 때도 있다. 이건 완전 애들이나 하는 짓이다. 어째서 어른스럽던 아이들이 천둥벌거숭이로 퇴화해 버린 걸까?
잠깐만, 지난 번에는 분명히 어른 흉내 내는 중학생이 싫다고,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었는데……. 그럼 중학생은 다른 의미로는 어른스럽다는 뜻인가? 아, 잘 모르겠다.
불현 듯 나는 깨달았다. 이런 게 바로 사춘기라는 사실을.
✎ 어느 쪽이 더 어른스러운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중학생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배어 있는 초등학생의 모습 중에서. 나도 혼란스럽다. 현재 보여지는 어른들의 모습이 중학생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68~69) 짧은 치마를 입는 이 세상의 소녀들은 모두 이런 편견과 싸우면서 권리를 쟁취해 낸 것이다. 짧은 치마가 훨씬 더 예쁜데 어른들은 인정해 주질 않는다. 딸이 여자처럼 꾸미려는 게 싫은 거다. 부모 편에선 아이가 언제까지나 품 안의 아기로 있어야 안심이겠지만, 웃기지 말라고. 자식들은 모두 진화하는 거란 말이다.
✎ 짧은 치마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스캔한 것 같다. 이런 아이들의 생각과 거리가 느껴지는 내가 한없이 초라한 꼰대로 비쳐진다.
(81) 작년쯤부터 가족여행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처리 못한 학교 문제가 잔뜩 있는데 가족과 사이좋게 여행이라니, 전혀 기분이 안 났다. 아빠랑 같이 테니스를 치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던 나이는 진즉에 지났다. 가족과 여행하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놀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절친이 없다.
✎ 가족 여행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때. 바로 이때부터가 시작이다. 근데 글쎄 뭐가 시작일까?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96) 뭘 하건 간에 ‘안 돼. 하지 마, 그만둬.’ 그런 말을 들으면 또 하고 싶어진다. ~ 그건 그렇고 최근 엄마의 잔소리가 엄청 늘어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예전에는 야단맞으면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는 훌쩍거렸을 텐데, 지금은 슬쩍 도망친다. 혹은 “네네, 알았습니다.”하고 입으로 대답하면서 속으론 무시한다. ‘이제 알았어, 알았으니까 더 말할 필요 없어.’라는 의사 표시인데, 엄마는 둔감한 건지 눈치름 못 챈다.
✎ 스미레의 변화가 갈수록 볼만하다. 자연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104) 나는 예뻐지겠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우선 기본부터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시도했다.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서 밤에 팩을 하기 시작했다. ~ 중학생 주제에 너무 심하다고? 하지만 다를 이런다. ~ 예쁜 아이는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나도 노력해야 한다!
✎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이렇겠지? 그런데 이런 건 화장품 업계의 상술일까?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일까? 이런 것들에 초연하도록 만드는 것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토론 주제감이다.
(114) 전에는 돈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았지만, 꾸미고 다니는 지금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옷, 화장품, 액세서리, 사고 싶은 물건은 산만큼 많다.
✎ 요즘 우리 아이들의 고민도 사고 싶은 옷과 용돈에 대한 것들이다. 아이들이 돈에 집착하는 이유를 더 알 것 같다.
(160) 딸이 왜 이런 꼴이 됐는지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도둑질이나 화장처럼 표층적인 것 외에는 보지 않는 두 사람한테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바꾸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결국 좌절해 버린 답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 성격으로는 도저히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은 중학생 사회를 만들어 놓은 세상도 저주스러웠다. 그래서 눈물이 나온 거다.
물론 반성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 말고도 반성해야 할 사람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한다.
✎ 아이들을 다그칠 때 도둑질이나 화장처럼 겉만 보고 화를 내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되는 대목이다. 아이들의 외로움을 더 깊이 직시해야 했었다. 스미레처럼. 그리고 반성해야 할 사람 중에서 교사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177) 책상이 없어진 날, 준이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폭발했을 것이다. 커터칼을 들고 아오이한테 덤벼들던가, 비틀거리며 옥상에 올라가 몸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가 내 분노를 대변했고, 쿠션 역할을 해 주었다. 그 덕분에 소년원이나 시체 안치소에 수용되지 않았다. 준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앉아 느긋하게 감자칩 부스러기를 볼에 묻히면서 음악씩이나 듣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결국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 교사나 부모가 아닌 친구 한 명이면 족하다는 것! 의미심장하다.
(185) 노력은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2 때의 나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력해도 잘 안 될 때는 지나치게 고민하면 안 된다. 좋아하는 간식이나 따뜻한 차라도 들면서 폭풍이 지나가기를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폭풍우는 금방 지나갈 테니까. 절대로 리스트 커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 다소 급작스럽게 교훈적인 모드로 돌아서서 당황스럽지만. 어쨌든 중2을 무사히 넘긴 스미레에게, 그리고 그 시기를 힘들게 겪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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