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배달 민족(양호문)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12. 1. 9.
“달려라 배달 민족”은 학교에서는 잉여인간 취급 받던 실업계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진정한 성장을 겪게 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그려진 작가의 전작 “꼴찌들이 떴다”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
차이라면 두 작품의 쓰여진 시간만큼 서민들의 삶이 더 피폐해 졌으며, 학교에서 배움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실업계에서, 인문계와 중학교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63)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건너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서서 학교를 살폈다. 직사각형 형태로 옆으로 길게 지어진 3층짜리 학교 건물, 문득 커다란 교도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들어가면 하루 종일 빡빡하게 짜인 시간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여야 하는 곳. 한 줌의 자유도 없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좋아하지도 않고 이해되지도 않는 지식을 벌을 받아 가며 주입받아야 하는 곳. 결국은 몇몇 우등생들의 들러리 역할이나 하며 꼬박 3년을 다녀야하는 곳.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정말 이상했다.
이야기는 재래시장에 대형할인마트가 문을 열면서 서민들의 연대가 깨지고, 경제적으로 몰락하며, 가정 역시 파탄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 역시 절망에 빠지는 과정이 연관성 있게 그려진다.
(114) 그 와중에 아버지가 척수암이라는 최종 진단을 받고 신촌에 있는 대학 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앞으로 길게는 네다섯 달이나 더 입원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엄마는 장사 때문에 바빠 세은이가 전담하다시피 아버지 병간호를 했다. 낮에는 병원에 있고 밤에는 엄마와 교대를 해 주었다.
“너는 집하고 가게나 잘 봐. 왔다 갔다 하면서 쓰레기도 좀 치우고. 여름이라 금방 썩어서 냄새가 나.”
행상을 나가면서 늘 던지는 엄마의 명령이었다. 방학이라고 용돈 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기말고사 성적이 조금 올랐는데도 그랬다. 기가 막혀 눈앞이 캄캄했다.
삶에 찌들어 가족 사이의 정을 나눌 시간도 없다. 아버지가 암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나 슬픔보다는 용돈을 받을 수 없게 돼 기가막힌다. 그렇게 부모님 대신 채소 장소를 하며 사회적 성장을 하나하나 경험한다.
아이들의 성장에서 학교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담임은 학생의 성적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나마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벌칙으로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반 아이들에게 가게를 홍보할 수 있는 것 정도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요령은 고아원에서 일찍이 가출해 배달 생활을 하며 사회 경험이 많은 ‘배길’이 형에게서 배운다. 장사하는 요령뿐만 아니라, 각자의 욕심으로 깨어진 서민들의 연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 주는 사람도 ‘배길’이 형이다. 주인공 세철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나름의 원칙을 지키며 장사 수완을 발휘한다.
그러다 가게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주인공을 비롯한 4명의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이나 경찰에게 담배나 피우는 탈선한 청소년 취급을 받기만 한다.
(192) “어른들이 다 없어져야 깨끗해질 거야.”
“맞아. 어른들이 있는 한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더러워질 게 뻔해.”
갑자기 한강변은 어른 성토장으로 변해 버렸다. 침을 튀겨 가면서 어른들 험담을 늘어놓았다.
“돈만 밝히고.”
“페어플레이도 모르고.”
“이기심은 또 얼마나 강해?”
어른들의 흠이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줄줄이 사탕이었다.
“술 취하면 개가 되고.”
“사기, 살인, 폭력, 거의 다 어른들이 저지르는 거잖아?”
“어디 그뿐이야? 전쟁도 어른들이 일으키는 거잖아?”
“자꾸 딴말하지 말고 빨리 죽자!”
(225)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중화반점이 없어지면 이 골목시장과 주변 동네에 중국 음식점이 하나도 없게 되는 거야.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려면 저 밑에 LB마트까지 내려가서 사 먹어야 하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그런 점까지 생각하고 있었다니? 세철은 또 한 번 배길이 형에게 감탄을 했다. 요 몇 개월 동안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길이 형한테서 다 배운 느낌이었다.
세상의 온갖 지저분한 일들은 어른들에게서 시작됐기에 아이들의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아이들의 절망도 크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보다 더 어렵게 살아온 배길이 형의 성장과정을 들으며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다.
(249) 세철이도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을 차가웠고 손아귀에는 힘이 없었다. 그렇지만 국화의 손을 잡았을 때와는 또 다른 전기적 충격이 팔을 타고 올라와 심장에 전해졌다. 아버지와 이렇게 손을 맞잡아 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해, 해 봐.”
“예?”
“네가 하고 싶은 거, 다시 해 봐.”
“아니, 여보! 지금 무슨 소리예요?”
엄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해 보게 둬. 애들 다치지 않고 살아난 것만도 다행 아냐? 세철이도 많이 놀라 엄두가 안 날 텐데, 다시 해 보겠다지 않아? 우리도 예전에 실패를 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어?”
실패는 누구에게나 두렵다. 공든 탑이 무너진 듯, 몸과 마음, 주위 환경 모든 것을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패가 삶의 한 과정이며,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진리에 가까운 사실이다. 실패해도 이겨낼 수 있는 의지와 자존감을 길러주는 게 학교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하지만 부모는 사랑하는 만큼 거리두기가 어렵고, 사회는 부조리하며 학교는 둘 사이에 길을 찾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이야기마다 결말을 열어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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