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반 소년들(우오즈미 나오코)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12. 4. 12.
표지처럼 싱그럽고 산뜻한 소설이었다.
어찌보면 판타지같기도 하고. 편견일지 모르지만 고등학생, 그것도 남학생들이 원예반을 하며 식물과 교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깝기도 했다. 우연히 버린 물에 살아난 식물을 보며 정기적으로 물을 주기 시작하고, 화초에 대해 공부하며 꽃을 기다리고, 일상처럼 꽃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요즘 매일 새로운 경이로움에 빠져 있기에 다쓰야와 오와이, 쇼지의 경험에 절대 공감한다. 작년 가을 꽃기린을 선물로 받았었다. 그걸 학년실에 그냥 방치해 두었다. 사시사철 꽃이 핀다던 화분은 겨울이 되더니 시들해지고,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못했던 화분은 1, 2월을 지나며 거의 고사 직전이 되었다. 그런 꽃기린에 1주일에 한 번 씩 물을 주고, 매일 창밖으로 보내 해바라기 시켰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새잎이 돋고, 작고 빨간 꽃들이 줄기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다쓰야와 오와이의 ‘∨’모양 감동을 실제 경험한 것이다.
올해 우리 반에는 쇼지처럼 스스로를 감추고 낮춰보는 아이들이 많다. 식물과 교감하며 성장한 다쓰야와 오와이, 특히 쇼지처럼 벽처럼 둘러싼 박스를 벗어버리고 다른 아이들과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 화분을 마련해서 작고 아름다운 생명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생명 에너지를 나누며, 아름다움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기다림의 애틋함을 느끼게 하고 싶다. 물론, 아직은 마음뿐이지만.
작년과 다르게 학년실에 직접 화분 두 개들 더 가져다 놓았다. 일단, 나부터 경험해 볼 거다.
‘∨’모양의 감동을.
<인상 깊은 구절>
(32) 닷새째, 우린 거의 포기 상태였다. 날마다 물을 준 덕에 잎은 갈수록 싱싱해졌다. 그래도 꽃은 쉽게 피지 않았다. 씨에서 싹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잎이 ‘∧’모양에서 ‘∨’모양이 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는데 그 다음 단계로는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어쩌면 푸른 잎과 꽃으로 가득 찬 화원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면 푸른 잎과 꽃으로 가득한 화원이 되기도 전에 동아리 활동을 포기해 버릴 것만 같았다.
✎ 다쓰야와 오와다는 지금 ‘기다림’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물 한 방울에 생명을 부여한 감동을 경험한 이 아이들은 다시 새로운 감동을 배우고 있는 중인 것이다.
(73) “이해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오히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학생을 집에 틀어박혀 지내게 하고,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중학교보다 이 학교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학교가 희망하는 대학에 합격하면 이런 등교 방식도 인정하겠다고 했으니까요. 게다가 다행히 저는 공부를 싫어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는 편입니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부분은 선생님이 가르쳐주러 와 주시니, 학교가 원하는 대학에도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목이다. 혼자 공부하더라도 학교에 나와 학교가 요구한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에 쇼지는 긍정적이다. 물론 이런 혜택으로 다쓰야들을 만났으니. 하지만, 이런 편법은 결코 아닌 듯하다. 다쓰야와 오와다를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과연 쇼지가 박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88)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 한 학년 선배가 야쿠자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얻어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끔찍했어. 그 선배는 고등학교도 가지 않고 빈둥거리고 있었거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똑같은 꼴이 될 것 같아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난 싸우는 일에도 별로 자신이 없어서 까딱 잘못 맞았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데 참 용감하게도 덤볐구나 싶었고, 내 눈에는 야쿠자 조직에 들어간 녀석이 대단한 건지도 솔직히 모르겠고. 그래서 그 무리들한테서 빠져나와 고등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었어. 그것도 기왕이면 들어가기 어렵다는 학교로 가고 싶었어. 아까 본 세 명 가운데 하나는 졸업하고 통신사에 들어갔는데 벌써 그만뒀대. 둘은 고등학교도 가지 않았고 취직도 하지 않았어. 뭐, 하지만 녀석들 나름의 사정이 여러 가지 있지.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녀석들은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 오와다의 과거 사정이다. 오와다처럼 예비 야쿠자의 길을 걷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대목이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을까? 어쨌든 친구의 얼굴보다 식물들을 어루만지게 된 오와다가 더 멋지긴 하다.
(92) 아는 꽃 이름이 늘자 집 근처나 학교를 오가는 길에 갑자기 꽃이 많아졌다.
물론 눈에 띄니까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일 뿐이지 전부터 늘 있던 꽃이다. 하지만 화단이 완성되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반 친구와 마찬가지로 그때까지 나는 이렇게 풀이나 꽃이 많았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지금은 길가나 남의 집 마당에 핀 꽃을 볼 때마다 “이건 베고니아.”라고 하거나 “저건 노란 백일홍이야.”하고 중얼거린다. 지나간 다음에 “방금 그 꽃은 뭐지?”하고 다시 되돌아갈 때도 있다.
~ 반대로 시든 꽃을 볼 때는 걱정이 되었다.
✎ 다쓰야처럼 나도 그렇다. 비록 늦게 찾아왔지만. 아는 꽃 이름이 많아질수록 애틋함도 커지고, 매 계절 보이는 색깔들도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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