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벽에 쓴 낙서(줄리아 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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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양철북에서 책을 보내주셨다. 매번 새 책을 출간할 때마다 잊지 않고 보내주신다, 고맙게도.

얼른 읽고 소감을 나눠야 했는데, 담임으로서, 자유학년제 부장으로서 학년말 업무가 많아 책장에 꽂아 두기만 했다가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들었다.

 

조현병을 문제 상황으로 다룬 청소년 소설이라니 양철북다웠다.

"화장실 벽에 쓴 낙서"와 조현병이 잘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표지를 볼 때마다 거듭 표지가 많은 것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화장실 김이 서린 거울, 또렷하게 보기 위해 닦아내지만, 또렷한 곳이나 흐린 곳 어디든 나타나는 캐릭터들, 제목과 글쓴이, 옮긴이의 이름을 거울에 쓴 손글씨로 표현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조현병을 다룬 청소년 소설을 처음 읽었다.

읽으면서 조현병에 대한 배경지식이 매우 얕았고 그나마도 강력 범죄 등과 관련된 편견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원래의 명칭이었던 정신분열증에 대한 편견 때문에 조현증으로 새롭게 명명했다는 것, 뜻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뇌의 신경구조 이상으로 마치 현악기가 조율되지 않은 것처럼 혼란을 겪는 상태를 말하며, 대략 인구의 1%가 겪고 있는 질환으로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질환임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는 다니던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발병한 조현병으로 더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애덤이, 조현병 신약 임상실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정신과 의사에게 글로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매주 1회씩 총 42번의 일기 속에서 자신을 통제하며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애덤의 의지와 그러면서도 갑자기 찾아오는 조현병의 증상, 낙담,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랑하는 마음이 잘 느껴졌다. 

 

이야기 전반부는 약물 투여량을 조금씩 늘리면서 일상적인 삶을 찾아가는 애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여전히 환각이 나타나지만 실제와 구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조현병을 가졌지만 동등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런 과정에서 조현병에 대한 일반의 불합리한 태도에 대한 지적도 대비의 방식으로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는 종교들, 특히 종교적 위인들의 경우 남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위인으로 기록된 것에 비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여 환자가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대비는 설득력이 있었다. 병으로 인해 사회적 생명이 위험한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일반의 냉담한 태도와 말기 암 환자를 대하며 돕고자 하는 사회의 태도를 대비하는 장면도 공감이 된다.  

그러나 약물에 대한 내성으로 애덤은 갑작스럽게 임상실험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약물을 점차 줄이면서 환각과 실제를 구별하기 어렵게 되고 예견된 결과에 대한 낙담 및 일상의 삶을 붙잡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애덤의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애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아니 살아가야할까.

 

애덤은 조현병에 상담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거부한다. 그러나 의사 샘의 질문에 대답하며 자신의 상황을 담담이 이야기하고 글이 거듭되면서 궁금한 점도 물으며 이야기의 끝부분에서는 의사 샘과의 대면 상담을 시작한다.

국어 교사로서 글쓰기의 힘, 그리고 사람과 사랑의 힘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이 책이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문제(조현병에 비할 바는 안되겠으나)로 고군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비슷한 문제를 다룬 문학동네의 "콤플렉스의 밀도"가 생각났다. 마지막 단편이 뇌전증을 소재로하고 있다.

 

그런데 책 제목이 "화장실 벽에 쓴 낙서"일까.

일단 '쓰인'이 아닌 ''이란 능동적인 행동에, 낙서의 내용이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과 동의어로 읽힌다.

"호모가 되지 마세요"란 댓글은, 남자 화장실이어서 나온 재치 있는 댓글로 읽히고.

긍정하라는 의미일까. 제목에 대해서는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인상적인 구절> 

(46) 적어도 솔직하긴 했죠. 자기가 겁쟁이라는 걸, 엄마가 자기한테 과분한 사람이란 걸 인정했으니까. 하지만 더 솔직해지자면 아빠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사랑했다면 더 노력했겠죠. 그래서 저는 아빠가 그립지 않아요.

자신과 엄마를 두고 떠난 아빠가 3년이 넘어서야 자신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애덤의 평가다 '사랑'은 흔들리는 감정보다 관계를 더욱 공고히하는 책임있는 행동으로 읽힌다. 사랑만이 희망이며, 애덤은 사랑의 힘을 알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66) 하지만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미소만 지어요. 말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물론 소름이 끼치고 어서 꺼져 줬으면 좋겠지만, 저는 그가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가 진짜라고 믿게 될 때 벌어질 상황이 두려워요.
언젠가 환각을 연달아 겪다가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될까 봐 두려워요. 더는 약이 듣지 않을까 봐. 그때는 모두가 타당한 이유로 저를 두려워하겠죠.

애덤은 낯선 것들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진짜인지 차분히 기다리며 들여다 보려고함. 그러다 환각에 빠지게 될때가 걱정이 된다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할까봐. 이미 전학 가기 전 학교에서 경험하고 온 상태이고. 어렸을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들이 작별인사도 하지 않았으며, 작별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억지로 한 듯한 느낌. 즉 기피대상이 돼서.

 

(72) 저는 가톨릭 성인들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좋아해요. 세인트 애거사에는 금지하는 책이 많지만(이를테면 아이들을 오컬트에 빠지게 한다는 '해리 포터' 시리즈), 성인의 전기만큼은 무궁무진해요. 사실 이쪽이 더 난장판인데 말이죠. 온갖 미친 짓을 하고도 추앙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끔 읽을 만해요.
진짜 미쳤으면서도 끝내주는 성인이 누군지 아세요?
잔 다르크, 일명 오를레앙의 소녀.
잔 다르크는 대천사 미카엘, 성 카타리나, 성 마르가리타의 환영을 보고 샤를 7세를 도우라는 계시를 받아 영국과의 백 년 전쟁에서 프랑스를 구했어요. 환청을 듣고 오를레앙 포위전에서 직접 군대를 지휘했죠. 주변에서 종교적 불가사의를 기꺼이 받아들이다 못해 신의 선택을 받았다면서 십대 소녀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긴 거예요. 그 당시 사람들 눈에 잔 다르크는 신력과 저항의 화신이었어요.
그러나 당연히 불태웠죠.

이야기 앞부분에서 애덤은, 눈에 안 보이는 대상을 믿는 게 종교라면, 믿지 말아야할 대상이 눈에 보이는 게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상당히 설득력 있게 읽힌다. 그것이 플러스이든 마이너스이듯 '절대값'으로 볼 때 비슷한 무게인데 어느 것은 선이고 어느 것은 악일까.

 

(139) 살기 싫으면 그냥 혼자 뒤질 것이지.
그 순간 갑자기 울컥했어요. 그 말을 한 사람은 통제력을 잃는다는 게, 자기 정신에 속는다는 게 어떤 건지 절대 모를 테니까요. 환청을 멈추고 싶어서 차라리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해 버리고 싶은 미칠 듯한 욕망도요. 하지만 저는 곧바로 그 생각을 떨쳐 버렸어요. 저도 모르게 살인자를 동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 공교롭게도 애덤 또래의 조현병을 가진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총을 난사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벌어진다. 살해범은 사건 후 바로 자살하는데 이를 추도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원망하며 나온 말이다. 애덤은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자신의 처지에서 욱한다.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그런데 이런 생각이 살인자를 동정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러한 아픙믈 개인적인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로 들여다 봐야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199) 암에 걸린 아이들에게는 메이크어위시재단이라도 있죠.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얼마나 가여워요. 물론 조현병 환자도 언젠가 죽어요. 다만 그 전에 약에 절어 피폐해지고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지죠. 길거리에서 객사할 확률이 높고, 같이 살던 고양이의 밥이 될지도 몰라요. 그것도 나름대로 가엾지만,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죽음으로 직행하지는 않으니까요. 세상이 죽을 날을 받아 놓은 비련의 환자들에게만 신경 쓴다는 점은 분명해요.
토자프렉스 투여를 중단할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초조해졌어요. 엄마는 의료진이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을 거고 조만간 저한테 더 잘 맞는 약을 찾아낼 거라고 말했찌만, 그냥 달래려고 한 말 같기도 해요.

조현병 치료제 신약의 임상실험에 참여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약물에 대한 저항이 생겨 실험대상에서 제외된 애덤의 절망적인 심정이 느껴진다.

 

(285) "네가 메일로 그랬잖아. 사랑한다고. 그건 진심이야?"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아니라고 해야 했죠. 하지만 더는 마야에게 거짓말 할 수는 없었어요.
"."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나도 널 사랑하니까."
그 순간 저는 제 평생 가장 엉터리 같은 말을 내뱉었어요.
"네가 진짜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사랑의 감정에 충실한 순순한 사랑이다. 게다가 "네가 진짜가 아니라도 상관없이." 애덤의 상황을 잘 비튼 유쾌한 표현이다. 작가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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