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블루(이희영)

담양공공도서관 신간 코너를 살펴보다 익숙한 작가의 특이한 제목에 끌려 책을 들었다.
“챌린지 블루”. 청소년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알기에 이 책도 청소년들의 도전을 다룬 책인가 싶었다. 흐릿한 바다를 배경으로 폭죽이 터지는 것도 관련 있는 것 같고.

차례부터 신선하다. 소제목이 색상명으로 돼 있다. 색상코드가 나와 있어 이를 입력해 색을 느끼고 색상의 이름을 검색했다. 여러 사이트나 블로그에서 비슷한 계열의 색감의 차이나 선호 색에 대해 설명하는 글들이 많았다. '챌린지 블루'도 검색해 봤는데 이 책 소개만 나온 걸 보니, 작가의 새롭게 명명한 색인가 보다.

주인공 바림을 잘 알고 있는 ‘파란 티셔츠’가 누구일까 추측해 보는 것을 빼고는 큰 사건이 있지는 않다. 당연하게 여겨 왔던 미대 입시를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은’ 주인공 바림이, 고2가 돼서야 너무 ‘늦게’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 바림의 절친 ‘해미’. 둘 다 선택이 늦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림 그리는 행복을 알게 된 해미와 그리는 이유를 도통 찾지 못하는 바림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쉬러 간 외가 동네에서 뛰어난 재능으로 등단에 성공한 ‘이레’를 보니 세상은 불공평한 것 같다. 
그러나 모두에게 삶은 쉽지 않다. 유아 학습지 연구원으로 성공한 엄마도, 번역가로 이름이 꽤 알려진 이모도 선택하고 또 후회하면서 세상을 살고 있다.

고2 청소년의 이야기이지만 오십을 앞둔 나에게도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특히 내 성격이 ‘바림’과 비슷해, ‘해미’가 선택해 가는 삶이 쉬워 보여 걱정되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해미’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부모로서 생각할 내용이었다.

진로에 대한 불안감, 주위 사람들의 시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는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쉴 새 없이 올라온다. 그런 때는 누구의 조언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동안 선택하고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며, 일기장과 블로그는 이런 때 참 유용하다.
삶의 시작은 일출과 같은 강렬한 붉은빛이 아닌, 여명의 새벽 진한 블루빛부터라는 의미의 ‘챌린지 블루’라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

인상적인 구절, 밑줄 긋고 싶은 구절이 참 많았다. 그런데 지나치게 작가의 개입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3을 앞둔 고2의 고민과 갈등을 그들의 대화로 묘사해도 작가의 마음이 잘 전달됐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야기 마무리까지 존재를 추측하게 하는 ‘파란 티셔츠’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게 느껴졌다.

*인상적인 부분

(121) 고작 열아홉일 뿐인데, 10년이 지나도 스물아홉일 뿐인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늦었다 말했다. 열여덟에 처음 그림을 시작한 해미에게도, 그림을 그만두려는 바림에게도 모두 다 같은 말을 했다.

(131) “그 노래를 듣는데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더라. 와, 나도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생각했지. 그럼 나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 신기한 것들 볼 때, 재미난 디자인 소품을 살 때. 그럼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귀엽고 특이하고 재미난 디자인을 보면, 나처럼 행복하고 기분이 말랑말랑해지지 않을까?

(133) 미대 입시를 시작하는 건 늦었을지 몰라도,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찾은 건 전혀 늦다고 생각하지 않아. 걱정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재미있어. 그래서 좋아. 뭐! 하고 싶은 일 찾으려면 거룩한 신의 계시라도 받아야 하냐? 그냥 갑자기 필이 팍 꽂혀서 시작할 수도 있지?”
“너는 그림을 왜 그리는데?”
“......”

(176) 저녁에서 밤으로 향하는 하늘과 밤에서 새벽으로 바뀌는 하늘이 같은 색이다? 바림은 어렴풋이 그 말을 이해할 것 같았다. 늦은 밤 학원에서 바라본 하늘이 그랬다. 밤샘 공부를 하다 새벽에 마주한 하늘도 그 빛과 비슷했다.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아주 진한 쪽빛.
“그런데 새벽을 여는 하늘은 훨씬 밝게 보여.”
“왜? 과학적인 증거라도 있어?”
바림이 물었다. 아이가 도리질 쳤다.
“다들 시작의 눈으로 보니까. 하늘이 열리고 모든 것이 깨어난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니 당연히 저녁 빛보다 훨씬 밝게 느껴지겠지.”

(236) 후회? 후회는 회전목마와 같은 거야. 끊임없이 되돌아오거든. 어떤 날은 ‘그래, 내 선택이 옳았어.’라고 자신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 바림아. 어른이 된다는 건 말이야. 완벽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후회 자체를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그것 역시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그 순간을 결정한 스스로를 존중하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결정한 일에 후회가 남을까 두려워하지 마. 그것마저 받아들여. 그리고 잊지 마.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286) “그래 좀 돌아가면 어떠냐? 마냥 도로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낫지.”
엄마가 천천히 핸들을 돌려 차선을 변경했다. 창밖의 헤드라이트들이 황금빛 띠가 되어 너울너울 춤췄다. 하늘에서 보면 이 넓고 큰 도로도 빛의 강처럼 보일 것이다. 결국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꼭 잘못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더 크고 넓은 곳으로 달려 나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테니까.
당장 붓을 놓는다고 해서,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이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머그잔에 담아도, 깊은 계곡에 머물러도 물이 물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수백 수천 번 붓질했던 시간은, 또 다른 형태로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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