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의 밀도(고재현 외 6, 문학동네)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여러 상황이 담긴 단편집
- 2015. 1. 18.
"콤플렉스의 밀도"라.
콤플렉스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에게 '콤플렉스'라는 점에서 느끼는 아픔은 같다는 걸 의도한 제목인 듯 싶다.
(183) 콤플렉스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아무리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하더라도 극복되지 않는 나머지들은 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 콤플렉스를 억지로 무시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콤플렉스는 칼 융이 "새로운 일을 해낼 가능성의 실마리"라고 말한 것처럼 창조력의 원천이자, 개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과도 같은 내연기관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와 직면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과거와는 달리 훌쩍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송미경, 젤잘자르 헤어
'젤잘자르 헤어'에는 '털'로 상징되는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털을 다듬고 가는 곳이다. 털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지금에 있어 털은 동물처럼 보온의 효과보다는 미용의 효과가 크다. 그런데 그 털이 혀 안에서 자라기도 하고 귀에서 자라기도 한다. '젤잘자르 헤어'의 '피터폴루벤스'는 그런 털을 잘 다듬어주는 미용사이다. 아무 곳이나 불쑥 자라나는 털은 콤플렉스의 상징이며, 이를 다듬어 주는 미용사는 아픔을 공감해 주는 상담자일 것이다. 무엇보다 피터폴루벤스는 '털'보다 더 크고 단단한 '꼬리'가 있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일까. 모두에게 콤플렉스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는 형성된 것 같다. 그런데 '피터 폴 루벤스'는 바로크의 작가 루벤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의 명명 의도가 궁금하다.
(24) "나는 저런 사람들을 많이 봐 왔어.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을 때 자신의 몸에서 자라난 털을 발견한 사람들 말이야. 네가 붕어빵 사러 간 사이에 왔던 애만 좀 다른 경우지. 걔는 어느 날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거든. 건강엔 이상이 없다는데 말이야."
2. 김혜정, 학교에 안 갔어
튀기 좋아하는 이 시대는 모범생이라는 것도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살아가면서 콤플렉스가 아닌 것도 없을 것 같다.모범생 서은수는 날라리 '소은수'의 비웃음이 싫어 하루 일탈을 실행했다. 그런데 담임은 질병으로 결석한 '소은수' 엄마의 전화를 '서은수' 엄마의 전화로 듣고 소은수 말을 믿지 않는다. 모범생 서은수의 일탈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서은수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소은수의 표정을 잘못 파악했다는 걸. 어쩌면 콤플렉스는 자존감의 부족이 원인인 것도 같다. 이 단편에서 보여지는 학교가 무엇보다 답답하다. 바빠서 듣고 싶은 대로 듣는 담임, 식당으로 역할 바꿈한 학교.
(52) 소은수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말을 할 때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건, 소은수 특유의 버릇이었다.
3. 방미진, 연꽃 소녀
학교 생활도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복잡한 다양한 흐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어떻게 감추거나,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느냐. 마음 놓을 곳 없이 위태로운 관계가 정치라는 생각이 든다.
(57) "완전 연꽃 소녀라니까." 그 말에 보민이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나는 기분이 상해 버렸다. / 갖다 댈 걸 대야지. 징그러운 구멍만 있으면 연꽃 소녀야? 얼굴도 예뻐야 연꽃 소년지. 못행긴 주제에. / 보임니의 코웃음에 담긴 의미들이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보민이는 눈치 없이 말했다. / "야, 쟤 정도는 돼야 연꽃 소녀지."(64) 고작 점 몇 개 때문에 유난 떠는 게, 아주 대단한 장애라도 가진 듯 구는 게, 한없이 거슬렸다. / 아무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습관처럼 손끝이 얼굴에 가 닿는다. 바늘구멍 같은 모공이 만져진다. 추해.
4. 고재현, 곰이 춤춘다
이 단편에서 '곰'은 곰인형 탈이다. 비만한 주인공 이찬란은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여러 가면을 써 왔다. 그러나 가면은 콤플렉스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결국 나를 인정하고 나의 욕구를 풀어낼 때 나는 시작될 수 있다.
(101) 나는 웃으며 회원권을 내보였다. 그건 스포츠센터 회원권이 아닌 댄스클럽 회원권이었다. 겨울 언니 말이 맞다. 본성을 따르기로 했다. 살을 빼기 위해서도 아니고, 춤을 잘 춰 댄서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육 개월 후에 고등학생 시절을 찬란하게 시작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하루에 한 번,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5. 이진, 백조의 냄새
(126) 그동안 나 혼자 멋대로 질투해서 미안했다고, 그 애에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런 남사스러운 소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애가 또다시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오늘 일도 금방 잊어버릴 거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못난 얼굴에 한숨지을 때, 가끔은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텅 빈 화장실에 감돌던 그 애의 냄새가. 코를 찌르게 독하고, 슬픈, 백조의 냄새가.
6. 홍명진, 오늘 같은 날
콤플렉스의 대명사 '작은' 키 문제이다. 대체로 유전적인 영향이 크고, 키 작은 가족에 대한 불만이 많다. 따라서 주인공 '김규환'은 다음 말은 진실이 아니다. 할머니가 부끄럽고 내가 부끄러운 것이다. 외모도 스펙인 세상에서 키 컴플렉스를 벗어나는 데에는 초인적인 긍정이 필요하다. 현실을 체념하듯 받아들이자는 얘기가 아니라 '긍정적으로 체념'하고 다른 장점을 계발하자는 것이다.
(150)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알았다. 걸음을 빨리할수록 손에서 식은 땀이 났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할머니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할머니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런 내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을 김시연 때문에 몸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7. 이경혜, 저주의 책
콤플렉스의 밀도로는 가장 강도가 세다. 뇌전증, 액취증. 어느 한 순간도 자신을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없다. 항상 긴장하고 의식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받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주인공 '규리'에게 다가오는 '다빈'이가 있다. 다빈이는 '축농증'이라는 콤플렉스가 있다. 그러나 그 덕에 규리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모든 것을 비유와 상징이라 받아들일 때, 'Amor Fati'라는 라틴어가 떠오른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174) 처음 '저주의 책'을 만들 무렵, 그때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것은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엄마 아빠도 걱정되고, 나 역시 그럴 용기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내게는 그렇게 지기는 실하다는 오기가 있었다. 저 하늘의 어떤 존재가 나를 몰아가는 대로 몰리기 싫었다. 그가 몰아가는 대로 몰리다가 내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역할은 맡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는 꼴을 보기 싫었다. 최악의 경우 그가 등을 떠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 > 여러 상황이 담긴 단편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샹들리에(김려령) (0) | 2016.12.24 |
---|---|
안녕, 베타(최영희 외) (0) | 2016.12.24 |
관계의 온도(김리리 외 6, 문학동네) (4) | 2015.01.06 |
내일의 무게(김학찬 외 6, 문학동네) (0) | 2014.12.04 |
스키니진 길들이기(김정미 외, 푸른책들) (0) | 2014.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