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김려령)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여러 상황이 담긴 단편집
- 2016. 12. 24.
“샹들리에”라는 제목을 보면서 대표 소설의 이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샹들리에'라는 소설은 없다. '샹들리에'처럼 7편의 이야기가 모여 더 밝은, 또는 혼합의 빛을 낸다는, 그러는 게 삶이라는 의미일까.
이 책에는 성장이 필요한 어른들이 많이 등장한다. 바야흐로 성장소설은 특정 시기의 청소년 문학과 교집합을 뛰어넘어, 문학의 본질이 될 것 같다.
■ 고드름
(18) 니들은 누가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쁘다고 때리지 않니? 우리가요? 니들 또래. 이상한 애들만 보셨어요? 이상하게 사고 친 애들이 주로 여길 오지. 어릴 때나 그러죠. 고등학생도 많이 와. 말이 안 되잖아요. 그 아저씨가 우리보다 먼저 나갔다니까요.
(22) 돈 받고 애들 보는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되죠! 돈요? 월급 나누기 삼십 해 볼까요? 그러면 한 명당 얼마인지 아십니까? 그 돈으로 스물네 시간 봐 주길 바라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월급 나누기 삼십. 우리 때는요, 한 반에 육십 명이 넘었어도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 살인 등 사고·사건 위주로 보도하지 않으면 뉴스가 아닌 것일까. 그렇게 관심을 끌어 놓고는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다.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님의 사인을 병사로 보도하는 것처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 ‘진실’을 찾기는 갈수록 쉽지 않아 보인다.
여러 단편 중 이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다. 자동기술법 같은 방식으로 뭔가에 꽂히면 한없이 날개를 치는 아이들의 속성도 잘 나타냈고, 누가 대화를 했는지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겠냐는 익명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렇다.
■ 그녀
(44) 아주 오래전부터였다고 했다. 마을 어른들은 덕담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겠지만, 아빠는 그 덕담을 들을 때마다 늘 빚을 짊어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45) 아빠는 부모님 땅에 관심도 없다고 했다. 설사 관심이 있다 해도 왜 마을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왜 남의 재산 걱정을 농담으로 하나.
(51) 객지에 나가 사는 애들이 집에 오면 좀 그냥 둡시다. 내 집이다 쉬러 오는데, 뭔 말 짐을 그렇게 올립니까. 걔들은 객지서 놀다 옵니까. 우리 집만이 아니라, 저 동주네, 상회네, 두현네, 그 아들 왜 안 오겠습니까. 좀 그냥 둡시다 마!
✎ 주거공간으로 유럽이나 선진국에서는 이미 등돌린 아파트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도 간섭이 싫어서일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존중과 배려로 이어지는 ‘인권’ 의식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아파트 문화는 지속될 것이며, 우리 사는 세상은 더 파편화 될 것이다. 혼술, 혼밥 등 사람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 시기가 올까 걱정이다.
■ 미진이
(62) "내가 당당하지 못할 게 뭐가 있는데?"
"너는 너를 무엇으로 증명해 봤니?"
"뭐라고?"
"니가 뭔데 네 결정을 부모한테 함부로 통보해. 명령이야?"
"그래, 명령이야? 엄마가 마음대로 낳았으니까 당연히 책임도 져야지!"
"어떤 생명도 지가 승인하고 태어나지 않아. 니 말대로라면, 내 마음대로 낳았으니 니 생명권도 내가 쥔 거니? 죽여도 돼?" (중략)
"나도 열심히 했어. 결과로만 얘기하지 마."
"결과적으로 완성된 사람들 겉으로 흉내만 냈지. 그들이 병신같이 몰두하는 과정은 병신처럼 무시하고. 그런데 넌, 병신처럼 몰두해도 안 돼. 그냥 평범한 애거든. 너 전혀 특별한 사람 아니야. 명심해."
(79) 뭔가를 잘하려면 병신처럼 그것만 파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인지 잘 알아서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적당한 쇼 몇 번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나. 처음부터 지적했으면 내가 그런 생쇼는 안했을 것 아닌가.
✎ 조금 더 독한 마음 먹고 자율성 있는 아이로 키워야겠다.
■ 아는 사람
(98) 나도 내가 별것 아닌 것 안다. 그러나 내 몸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도 안다. 별것인 극소수의 매우 특별한 사람들만 가진 권리가 아니다. 눈에 띄지 않아도 생생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권리다. 인간을 함부로 짓밟은 저 악마들을 봉인해야 한다.
■ 만두
(115) 그 손님이 말 속에 숨긴 말을 내가 읽어 낸 것이 화근이었다. 장터 만둣국집 여자와 장애인 남자. 그래, 당신 눈에는 이래야 어울려 보이지? 끼리끼리. 씨발, 그걸 덕담이라고... 도대체 뭘 힘내라는 건데? 그렇게 불쌍해 보이면 쌓인 만두나 다 사 가든가. 겉만 뻔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공갈 만두 같은 인간아.
✎ 역시 사람들은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걸 다시 한 번 이야기로 만든 것인가.
■ 파란 아이
(126) 어른들의 상상력은 이상한 쪽으로만 발달했는지, 하나를 말하면 열을 떠올리고, 자기 상상에 확신을 더한다. 만일 소년이 도넛을 판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키운 아인데……로 시작해 어쩐지 애를 그렇게 찾더라,며 시끄러워질 게 뻔했다. 소년은 한때 ‘요즘 아이들’이었을 요즘 어른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자신들은 꽤나 정숙한 성장기를 보내고 꽤 근사한 어른이 된 것처럼 요즘 아이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소년이 보기에는 요즘 어른들이 문제다.
(138) 디지털 시대의 아이가 아날로그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다. 스마트 폰으로 이웃집 무선 인터넷 신호를 몰래 잡아 쓸 수도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눈뜨면 일단 컴퓨터를 켜고, 켰는데 딱히 할게 없으니 인터넷 브라우저를 연다. 자신과 상관없고 관심도 없지만 베스트 순위에 뜬 검색어를 클릭하고, 그러다 슬슬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생활을 이곳에서는 하지 않아도 됐다. 전화로 쓸데없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도 줄었다. 세상에는 해야 할 것도 많지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또한 많았다. 그리고 문든 깨닫는다. 늘 컴퓨터로 무언가 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한 것은 별로 없었다는 것을. 자신이 선택해서 마우스를 움직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누군가 의도한 곳으로 끌려다는 거였다. 그거 봤냐? 안 봤어. 그 게임 알아? 몰라. 그렇게 대답해도 되는 거였다. 아냐? 알아. 있냐? 있어. 이런 대화에 왜 그렇게 온 자존심을 걸었을까.
✎ 베껴 쓰기로 좋은 대목이다. 읽으면서 선우 즉, 은결이가 혹시나 죽지 않을까 싶어 걱정하며 읽었다. 작가가 선우 즉, 은결이를 ‘소년’이라고 칭하는 부분이 눈에 걸릴 정도가 되니 죽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은우의 탄생은 운명을 극복한, 어른보다 더 현명한 아이의 새로운 탄생이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방임에 가까운 할머니의 연륜과 자연이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절대로 될 수 없고, 화투나 바둑판은 조금 더 낫다.
■ 이어폰
(165) 다리를 4자로 꼬고 앉아 발을 까닥까닥하는데 뭐랄까, 이 집 구성원과 자신은 전혀 상관없다는, 가족으로서 어떤 유대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그런 태도로 보였다. 하숙생처럼 한 지붕 아래서 밥 먹고 잠은 자도 가족은 아닌. 괜히 그러는 거니,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 중일 아빠도 같이 무시하고 나가 버리고 싶었다. 아빠가 집에 왔고, 안방에서는 옆집까지 들릴 만큼 엄마가 큰 소리로 우는데,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
✎ 재빠른 시대 변화를 한탄말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손에서 휴대폰을 떼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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