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김리리 외 6, 문학동네)

 

'문학동네' 청소년 테마소설 시리즈 중 가장 문제작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내용을 되새겨 보는 단편들이 많다.'인간'이란 단어가 함축하고 있듯 '관계'가 인간의 핵심 문제이기 때문이다. 엮은이도 책 마무리에서 관계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공감이 가는 말이다.

(203) 관계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적절한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 것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관계의 문제를 생각할 때는 항상 타자와 나 사이의 균형 잡힌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책에는 7편의 이야기가 실펴있다.

 


1. 이금이의 '1705호'

아파트는 철저하게 익명적이며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사람의 죽음 앞에 아파트 값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또다른 아이에게 삶을 지속할 관계로 나아가지 못한다. 아파트라는 공간과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할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31)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도 들어가 보았으나 공개된 페이지에서는 투신자살에 관한 글을 찾을 수 없었다. 미숙 씨는 회원 가입을 한 다음 입주민 게시판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페이지에서 글을  찾아냈다. 명복을 빌거나 안타까워하는 댓글 속에는 아파트값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자꾸 거론할수록 아파트 이미지만 나빠지니 조용힌 덮어 두자는 글에 가장 호응이 높았다. 많은 댓글들 중에서 확대경을 들이댄 듯 204동 1705호라는 글자가 도드라졌다.

(32) 친정어머니는 귀신은 관심 주는 사람한테 들러붙는 법이라고 했었다. 귀신이 제풀에 사라지도록 지금처럼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다.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까지처럼 집 주변을 배회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마저도 때가 되면 그칠 것이다. 미숙 씨는 더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도 다녔다.

 


2. 김민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사회화 기관으로서의 학교는 사람들과 관계하며 더 큰 공동체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곳이어야 하지만, 입시를 위해, 또 제도적으로 다녀야만하는 학교 속에서 아이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 외톨이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관계 맺음과 입시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의 깊이를 유지하려는 아이들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모습이다. 친구의 입원으로 친구의 복귀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보다 깊이 친구가 자신 속에 들어와 있음을 확인하는 이야기인데, 결말이 너무 많이 열려 있다. 

(61) "우리 아빠 말이, 인생에 유턴은 없대. 뭐, 공부 열심히 하라는 시시한 얘기였지만, 그런데 정말 그런 게 있지. 한 번 시작되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일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암가 같은 일진이라거나."
"... 꽁꽁 숨어 버린 친구라거나."
"새로 생긴 친구라거나."

 


3. 은이정의 '철용'

누군가를 생각하며 한땀 한땀 뜨개질했던 철용이의 영향으로 교실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혼자 놀거나, 작은 일에도 쉽게 흥분하던 아이들이 누군가를 생각하며 뜨개질하는 평안한 교실이 되었다. 대가 없는 관심과 사랑 때문일까. 분위기가 중요하다.

(89) 심심해하던 몇몇 남자아이들이 뜨개질을 하는 경민에게 호기심을 보이다 재깍 따라 하기 시작했다.
별일 아닌 일에 큰 소리로 윽박을 지르거나 여럿이 모여 앉아 휴대전화를 하나씩 들고 게임을 하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손엔 뜨개바늘을 잡고 한 손에 알록달록한 실을 매단 채 누군가를 생각하며 실을 걸고 뺄 뿐이었다.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무렵에 철용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교실 안에는 몸피가 작은, 머리카락이 긴, 키가 큰, 살빛이 흰 철용들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4. 김리리의 '수'

얼굴에 흉터가 있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놀림받던 수는 쎈척하는 강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존재감을 인정받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알아주는 채연이 덕분에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장애 동생 때문에 자신의 꿈을 잊고 어머니 뜻을 좇아 살았던 채연 역시 오랜만에 만나 '수'를 통해 자신을 좀더 여유 있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들이 함께 걷고 싶어하던 '자작나무 숲'은 곧게 자라지 못하지만 단단한 나무. 아마 그런 삶을 살게 될 거다.

(124) 예전에 수는 무서운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가면 뒤에 숨어서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나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쓰고 살아온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만들어 준 가면,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5. 이제미의 '미래의 남편'

미래의 남편을 볼 수 있는 기계라는 설정을 통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실제로 사람과 관계를 맺어보라는 내용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무수한 선택의 결과이니까.

(144) 현재의 자신의 사고방식이 나중에 어떤 미래를 가져오는지...

 


6. 김재성의 '반송'

(167) 함부로 손댔던 남의 편지 한 통에 대한 벌로 나는 아주 사소한 관계에서도 겁내며 물러서는 소심한 삶을 선고받았다.

 


7. 김이윤의 '축지법은 있다'

인간 관계를 축지법에 빗댄 아이디어가 좋다. 관계는 물리적이라기 보다는, 특별한 계기로 인해 한순간에 가까워지니까. 역으로 한 순간에 멀어질 수도 있기도 하다.'님'과 '남' 한 끝차이가 과계의 양 극단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 계기는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니, 축지법처럼 접근하는 것 같아도 실은, 물이 100도가 돼야 끓듯 관계도 그런 것 아닐까. 

관계의 온도
국내도서
저자 : 김리리(Kim Ri-ri),김민령,김이윤,김재성,은이정
출판 : 문학동네 2014.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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