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선집, 정길수 편역, 돌베개)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12. 9. 24.
막힘이 없었다. 자유분방했다. 그리고 나르시즘이 좀 과한 것 같다. 특히 이 점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겸손한 지성인 이덕무,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최치원과는 많이 다르다. 또 많이 외로운 것 같았다.
<광해군일기>에는 ‘천지간의 괴물’, ‘몸뚱이를 찢여죽여도 시원치 않고, 그 고기를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롤러코스터 같은 삶과 비극적인 죽음. 무엇이 그를 문제적 인간으로 만들었을까?
허균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면서(<홍길동>을 제외하고) 코끼리 뒷다리 만지듯 허균을 만났다. 시는 굉장히 화려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을, 산문은 직설적인 자유분방함과 시대를 앞서간 시대정신을 그리고 허균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과 안목, 시대의 불운 앞에 재능을 꺾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통찰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상 깊은 구절>
39-원통사-
사자봉 지나
원통사 가는 길.
가시넝쿨에 옷이 걸리고
칡덩굴에 발이 미끌리네.
가마 타고 서둘러 여울 건너니
단풍잎이 산길에 가득하네.
숲에는 햇빛 비치고
아지랑이 아른아른 피어오르네.
문에 들어서니 노승이 나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네.
스님 하는 말이, 중형가 노닐며
좋은 경치 찾아 그윽한 곳을 다 다녔다네.
그때 지은 시를 내보이니
읽다가 눈물 흐르네.
서글퍼라 형님 잃은 내 마음
아득히 구름 바라보며 그리워하네.
---> 정신적 지주였던 둘째 형 허봉의 죽음을 슬퍼하는 허균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원통사 가는 길이 무척 험난하게 묘사되는데, 형의 죽음을 듣고 넋을 잃고 찾아가는 모습같아 더욱 슬픈 느낌이다. 형님의 시를 받아든 허균의 마음은 어땠을까? 통곡하는 허균의 모습이 그려지는듯 하다. 이후로 가슴에 큰 한을 안고 살았을 듯.
44-삼차하 건너며-
강가 흔들리는 부교(浮橋)에서 간신히 가마 타니
사내 넷이 들고 건너는데 밭에서 회오리바람 이네.
다리 앞에서 말 내릴 때 생각난 어머니 말씀
“아무리 위험해도 겁먹지 말거라.”
고생고생 다섯 번 요하(遼河) 건너며
지나온 스무 해 머리 벌써 희었네.
평지도 걸어 보고 험한 길도 넘어 봤으니
내 마음 어찌 풍파를 두려워하랴.
---> 중국에 다섯 번이나 다녀오면서 대륙의 문화와 기운을 모두 흡수한 듯한 느낌이다. ‘겁먹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허균의 대담함은 평지와 험한 길을 걸어온 인생의 굴곡에서 다져진 것이리라.
-50 책 욕심 비웃지 마라-
여러 해 연이어 중국 가는 길 비록 힘들지만
옛사람 책 많이 얻어 오는 즐거움 있네.
가진 것 죄다 털어 책 산다고 비웃지 마오
나는 장차 책벌레가 되려고 하니.
고향집 왜란 겪고 고서를 다 잃어
세상에서 보지 못한 책 얻고 싶을 뿐.
여기 와 산 책이 몇 만 권이니
등불 아래서 글 읽을 만하네.
--> 1616년 중국에 다녀오면서 1만 5천 냥을 들여 책 4천 권을 구입했다고 한다. 책 4천 권을 한 번에. 산문이나 시 속에 나오는 수많은 고사와 인물들이 그냥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술을 잘 못하고 책을 엄청 읽었다고 하니, 허균의 책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어서 인상깊다.
-69 고단한 나그네 이재영-
내가 사랑하는 자그마한 이 사내
아이 적부터 글에 빛이 났지.
제자백가 모든 책을 꿰뚫어
맛있는 음식처럼 좋아했네.
서릉처럼 고사에 밝고
육기처럼 재주 많은 게 오히려 근심일세.
구리 방울에 시 짓기도 그 민첩함 비유하기엔 부족하고
눈에 비친 달빛으로 공부한 일도 게으르다 비웃네.
비단 짜서 봉황 무늬 수놓고
옥을 쪼아 꽃을 아로새겼네.
보배로운 옥의 값은 높은 법이거늘
세속에선 천히 여겨 너도나도 조롱하네.
시의 싸움터에서 칼날을 겨룬다면
나는 그대 편에 서겠네.
비웃는 자가 나라에 가득해도
그 실상을 속일 순 없지.
작은 고을에서 생계 걱정 고달팠고
위태로운 벼슬길 근심과 한탄으로 배불렀네.
나와 같은 병을 앓는 고단한 나그네
하늘 끝에서 우리 인생 저물어 가네.
---> 박복한 인생을 살아간 이재영의 삶이 슬프고, 그런 친구를 애달파 하는 허균의 마음도 애처롭다. 문과에 장원급제하고도 서얼 신분이 문제되어 합격이 취소된 개인사를 알고 보니 ‘보배로운 옥의 값은 높은 법이거늘 세속에선 천히 여겨 너도나도 조롱하네.’ 구절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러면서 ‘시의 싸움터에서 칼날을 겨룬다면 나는 그대 편에 서겠네.’라고 한 허균의 우정어린 마음도 눈물겹다.
71-계랑을 애도하며-
신묘한 시는 비단을 펼친 듯하고
청아한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했지.
반도를 훔친 죄로 인간세계에 유배 왔다가
선약을 훔쳐 인간세계를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장막에 등불은 어둡고
비취색 치마에는 향기가 사라져 가네.
내년 복사꽃 필 때
설도의 무덤을 누가 찾아 줄까.
처랑해라 반첩여의 부채
서글퍼라 탁문군의 거문고
나부끼는 꽃잎에 부질없이 한이 쌓이고
시든 난초에 공연히 마음 상하네.
봉래도에 구름은 자취없고
큰 바다에 달은 이미 잠겼네.
내년 소소의 집엔
버드나무 시들어 그늘 이루지 못할 테지.
---> 화려한듯 쓸쓸하고, 슬프다. ‘비단’ ,‘ 청아한 노래’, ‘반도’, ‘복사꽃’은 화려하지만, ‘떠났네’, ‘어둡고’, ‘사라져 가고’, ‘무덤’, ‘부질없이’, ‘마음 상하네’라는 구절들은 슬프고 허망하다. 계랑의 짧은 인생을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담아낸 듯. 그리고 서얼, 기생, 스님 등 시대의 아웃사이더들과 코드가 맞았던 허균의 인간관계도 느낄 수 있었다.
82-이탁오의 <분서>를 읽고-
맑은 조정에서 독옹의 책 불살랐지만
그 도는 불타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네.
불교든 유교든 깨달음 한가지거늘
세상에선 이 말 저 말 분분키도 하군.
구후가 나를 맞아 손님으로 예우하여
기린 봉황처럼 빼어난 인물들 직접 보았네
저물어 이탁오 대한 인물론 읽고
비로소 먼저 책 속의 사람이 된 걸 알았네.
내가 이탁오의 이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참선으로 평생을 마치고자 했을 텐데.
내 책 아직 분서당하지 않았으니
세 번 탄핵받은 것쯤이야 유쾌한 일일세.
---> 이탁오와 허균은 시간과 지역을 초월해 코드가 맞는 인물인 것 같다. 언젠가 꼭 이탁오의 <분서>를 읽으리라.
96-호민이 두렵다-
이미 이루어진 일이나 함께 즐길 줄 알고, 항상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얽매이며, 순순히 법에 따라 윗사람의 부림을 받는 자들은 ‘항민(恒民:늘 그대로인 백성)’이다. 항민은 두려워할 바가 못 된다.
모질게 빼앗겨 살이 깎이고 골수가 부서지며, 집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가져다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서 시름하고 한숨 쉬며 윗사람들을 탓하는 자들은 ‘원민(怨民:원망을 품은 백성)’이다. 원민도 반드시 두려워할 존재는 아니다.
푸줏간 속에 자취를 감추고 몰래 딴마음을 품은 채 세상을 흘겨보고 있다가 행여 무슨 변고라도 일어나면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들은 ‘호민(豪民:호걸스러운 백성)’이다. 이 호민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존재다.
호민이 나라의 빈틈을 엿보며 유리한 형세를 노리다가 밭두렁 위에 올라서 팔을 들어 휘두르며 한차례 외치면, 저 ‘원민’이란 자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들어, 함께 일을 꾸민 것도 아니거늘 한목소리로 외친다. 이렇게 되면 저 ‘항민’이란 자들 역시 살길을 찾아 호미며 곰방메며 창 자루를 들고 이들을 따라가 ‘무도한 자’를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하늘이 임금을 세운 것은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윗자리에서 오만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끝없는 욕심을 채우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 이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전율이 느껴진다. 작가의 해설처럼 허균 스스로 호민이 나타나기를 갈망했거나, 아니면 직접 호민을 조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칠서의 난’과 연관지어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신분의 귀천만 따지는 세상, 백성의 고통은 나 몰라라 하고 자기 뱃속만 채우는 수령과 지배계층에 대한 불신을 혁명을 통해 전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결코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이이첨과 결탁한 것도 혹시 나름의 작전 속에 나온 것은 아니었는지.
100-버려진 인재들-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넓디넓은 천하에서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로 현명한 인재를 버리고 어머니가 개가했다는 이유로 인재를 등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신분이 천하거나 개가했을 경우 그 자손은 모두 벼슬길에 나설 수 없다.
~~~ 평범한 남녀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이 감응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원한을 품은 남녀가 나라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면 나라에 조화로운 기운이 가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옛날의 빼어난 인재는 미천한 신분의 인물 중에서 많이 나왔다. 그 시대에 만일 우리나의 법을 썼다면 범중엄은 재상으로서의 공적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진관과 반양귀는 직언을 잘한 신하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사마양저와 위청 같은 장군도, 왕부같은 문인도 끝내 세상에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 적서차별의 문제점을 이토록 직설적이고 통쾌하게 거론한 양반이 조선시대에 누가 있었을까? 서얼 친구들을 많이 두었다 하더라도 허균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 특히 ‘원한을 품은 남녀가 나라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면’이라는 대목이 살벌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서얼이어서, 반쪽짜리 피여서, 양반도 천민도 아닌 그러기에 관리에 등용되지도 못하고 장사도 할 수 없는 기막힌 모순을 이야기한 이덕무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또 요즘 드라마 ‘아랑사또전’의 얼자 출신 사또 이준기도.
104 – 참된 학문, 참된 선비 -
일전에 이른 바 ‘다섯 현인(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을 문묘에 배향할 때 “다섯 사람 외에는 배향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 이가 있었는데,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현인에 어찌 정해진 수가 있어서 반드시 다섯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훗날 공자나 안회같은 학자가 나오더라도 문묘에 배향할 수 없다는 말인가? 공자나 안회 같은 분이 또 태어날지는 미리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 만약 한훤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 불행히도 백 년 뒤에 태어났다면 헐뜯음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 어찌 보장할 수 있겠는가? 또 율곡이 다행히도 백 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존숭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리라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는 공명정대하지 못한 마음에서 연유한 일이요, 자기와 먼 옜날은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시대는 천하게 여기는 풍조에서 비롯된 일이다.
임금이 공과 사의 분별을 분명히 한다면 참과 거짓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 이 글을 읽으면서 ‘진중권’이 떠올랐다. 가차 없이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며 핵심을 짚어내는 통쾌한 그의 쾌도난마같은 입담이. 공과 사를 구별하고, 옛것에 얽매이지 않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가지라는 그의 글이 참 시원하다.
108 –관서와 관리를 줄이자-
나라의 일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기강은 날로 땅에 떨어져 간다. 그리하여 권한은 분산되어 통일되지 못하고, 녹봉이 많이 필요해 제대로 지급하지 어렵다. 날로 병들어 쇠락을 향해 치닫게 된 원인은 바로 관직을 지나치게 늘린 데 있다.
---> 이 글을 읽으면서 비슷한 주장을 했던 홍대용(?)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선시대 관직이 그렇게 많은지(청소, 천막설치, 나라별로 음식을 관장하는 곳이 다르고, 술을 관리하는 곳또 따로고..) 처음 알았다. 예로 든 것만 보아도 굉장히 비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117 – 군대에 대하여-
군대 없이도 수십 년 동안이나 나라를 유지한 예는 고금에 없건만, 바로 우리나라가 그 유일한 예다.
~~ 군대가 없다는 것은 정말 우리나라에 군대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군사가 적고 쓸 수 없다는 말이다. 군사가 적다는 것은 군정이 다스려지지 않았다는 말이고, 쓸 수 없다는 말은 군사를 거느릴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 지금의 군대에는 조정의 신하 및 재상의 아들, 국립학교의 유생들을 소속시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관청의 하인과 천민들은 모두 군적에서 이름을 배기 위해 꾀를 부리고, 군대의 관리들은 군사들을 쥐어짜 제 욕심을 채우니 병사들의 골수까지 벌써 다 사라졌다. 평상시에 후한 대우를 해 주어도 변란이 닥쳤을 때 목숨을 걸라고 하면 혹 살기 위해 물러서고 달아나는 자가 있는 법인데, 하물며 모질게 부리며 사지로 몰아 간다면 그들이 흩어질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는가!
~~~ 나라가 나라 꼴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정말 우연일 뿐이다.
---> 명나라 사신으로 다섯 차례 이상 국경을 다녀온 허균의 혜안이 돋보이는 글이다. 조선 시대 후기 ‘삼정의 문란’(전정, 군정, 환정)은 이미 이때부터 싹이 트기 시작했나 보다. 그리고 ‘나라가 나라 꼴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정말 우연일 뿐이다’라는 대목에서 허균의 대담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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