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끝까지 읽었지만, 어려운 발음의 나라들과 언어, 어려운 한자, 그리고 불교의 역사적인 사건들의 2/3 이상은 그냥 흘려버리듯 읽었다. 그것까지 꼼꼼히 읽다가는 1년이 가도 모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열심히 파고 읽는다 해도 과연 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글자만이라도 끝까지 읽었다는 것을 나름 위안으로 삼아 본다. 부끄럽지만.


어쨌든 글자 하나라도 다른 책과 비교하며 뜻을 분석하며 주석을 달아 놓은 작가의 집념과 공부 내공(역사적, 불교적, 한자 및 다른 언어, 역사 풍습에 대한 지식 등등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지만, 그 앞에 꼭 정수일이라는 이름을 새겨놓아야 할 것 같았다. 또한 정수일 님의 다른 책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또한 혜초를 앞서간 법현, 오공, 송운, 현장, 이븐 바투타 등의 위대한 발걸음이 함께 새겨진 독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김탁환 작가님의 <혜초 1, 2>(민음사)를 읽으며, <왕오천축국전>의 큰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 이야기들을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신라의 화랑이 어떻게 구도를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인도에서 안서까지 돌아오는 길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스케일이 큰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했다. 무엇보다 <왕오천축국전>의 지명들이 살아 숨 쉬며 다가왔고, 혜초스님의 고단한 여행길을 함께 걷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또한 이 소설은 고선지(?~755) 장군을 정말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내서 마음을 설레게 했다. 8세기 중반, 당나라에서 크나큰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이 분명 만난 적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구자국에서 보낸 고선지 장군이 중국 귀로(727)에서 혜초를 만나지 않았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효형출판) 1, 아나톨리아 횡단을 읽으면서 터키와 도보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혜초스님의 마음이 돼 보기도 하고.

+
사족
혜초스님의 실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생각이 너무 불교중심적이어서 일까? ^^
고선지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법현, 오공, 현장 등 스님들에 대한 이야기와 특히 이븐 바투타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요약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정수일)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자료 --> 김탁환 <혜초2> 요약본을 요약


[1] 폐사리국 (인도의 바이샬리)

-일명, 비사리, 폐사리

-부처가 여러 번 설교한 곳, 부처 열반 후 칠백인 집회가 거행,

-자이나교를 일으킨 마하비라의 출생지, 이 교의 성지이기도 함

-혜초가 인도 동북 해안을 통해 상륙한 후 기록한 첫 지역, 혜초 이전에 법현, 현장 등이 순례함

 

[2] 구시나국 (인도의 카시아)

-당시의 쿠시나가라

-부처의 열반처로 유명, 당시 최초의 스투파가 만들어짐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아소카 왕이 다시 만든 열반상과 스투파에 대한 기록이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도 나옴

 

[3] 피라날사국 (인도의 바라나시)

-인도 최대의 종교도시, 고대 인도 16대 강국인 카시국의 수도였음

-힌두교 최고의 성지이자 불교, 시크교, 자이나교의 성지로도 유명

-7세기 전반 현장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수천 명의 힌두교도와 사원이 있는 번성한 도시였음. 혜초 방문 시 도시가 피폐해진 후였음

 

[4] 마게타국 (인도의 파트나)

-당시 마가다로 불렸으며, 일명 마가타, 의역어로 무해, 선승이라고 알려짐

-기원전 6세기 빔비사라 왕이 왕사성을 수도로 건국한 국가로, 갠지스 일대의 패권을 잡은 강국

-기원전 4세기 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입을 물리치고 인도의 첫 통일 제국인 마우리아 왕조가 건립된 곳, 굽타 왕조때까지 번영을 누리 인도의 중심지

 

[5] 중천축국

-마하데사로 불림. 현재 인도의 히말라야 산 남쪽부터 빈다야 산 북쪽, 비나사나 동쪽부터 프라가야 서쪽의 광대한 지역.

-혜초가 말한 수도 갈나급자는 현재 개지스 강 부근의 카나우지에 해당함.

-혜초는 중천축국에서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진다고 기록하였으며, 중천축국 경내에 있는 네 개의 큰 탑에 대해 언급함.

 

[6] 남천축국(인도의 나시크)

-오늘날 인도 남부 데칸 고원 일대.

-당시 왕은 코끼리를 800마리나 소유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함.

-상류층은 대부분 산스크리트 어와 프라크리트 어(방언)를 알고 있었음.

-혜초가 말한 촌초백성(시골백성)은 드라비다 계통의 말을 하는데, 기타 지역의 말과 크게 다름.

-혜초는 용수의 오언시를 읊음

 

[7] 서천축국(인도의 알로르)

-상업이 발달하고 먹을 것이 풍요로운 곳으로 그림

-서천축국중 신도국은 비록 대식(아랍)의 내침을 받아 나라의 태반이 파괴되었지만, 사원과 승려가 여전히 많았으며, 왕과 수령, 백성 모두가 삼보를 숭상하고 있었음.

-수백 소의 사원에 승도 1만 여 명이 있었고, 의정 때까지도 소승 정량부가 성행했으나, 혜초가 방문했을 때 소승이 구행하는 곳으로 바뀜

 

[8] 사란달라국(인도의 줄룬드르)

-당시의 잘란다라

-북천축의 수도였던 사란달라국은 곡물의 적재지로 메벼가 많이 나고 숲이 우거졌으며, 과실이 생산됨

-북천축 중에서도 불교의 중심으로 대소승이 구행하였으며, 왕과 백성들 모두 삼보를 경신함

 

[9] 소발나구달라국(인도의 스리나가르)

-수바르나고트라로 불림

-여러 사적에 언급된 동녀국, 왕이 여자이기 때문에 여국이라 칭함. 부군도 왕이기는 하지만 정사에는 관여하지 않음. 의복과 언어에 대해서만 짧게 기술

 

[10] 탁사국 (인도의 탁사르)

-소발나구달라국과 비슷하다고 간략하게 언급함. 오래 머무르지 않은 것으로 보임.

 

[11] 신두고라국 (인도의 라지푸타나)

-당시 신드구르자라로 불림. 북천축의 수도

-낙타가 많은 사막 지역으로 표현

-석가가 와서 설법한 적이 있는 다마삼마나사를 순례함

 

[12] 가섭미라국 (인도의 카슈미르)

-산스크리트어로 카슈미르라 불림

-순정리론의 주창자 중현 대사의 고국으로 전해짐

-8세기 이전에는 소승 설일체유부의 대본영이라고 일컬어졌지만, 혜초가 머무르던 때에는 대소승이 구행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13] 대발률국(인도의 발티스탄), 양동국(티베트의 장빠), 사파자국(네팔)

-당시에는 각각 브루자, 장중, 파파자로 불림

-지금의 파키스탄, 티베트, 인도, 네팔 일대로, 실크로드에 위치한 소국을 일컬음

-안서 4진과 인도를 오가려면 반드시 이 지역을 거쳐야 했음. 강대국들의 각축장

 

[14] 토번국 (현재 티베트)

-7세기 초에서 9세기 중엽까지 존재했던 티베트 왕국

-군사 국가 조직과 기마 부대에 의한 기동력을 활용하여 8세기 후반 이후에는 당나라로부터 서역의 지배권을 빼앗을 정도로 강성함

-그 무렵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불교사상의 영향으로 당나라와는 822년 평화조약을 맺음, 그 후 불교에 의한 이상적 국가의 실현을 꿈꾸었으나 운영상의 모순으로 846년 붕괴, 토번시대는 막을 내림

 

[15] 소발률국 (파키스탄의 길기트)

-당시에는 브루자라고 불림

-실크로드에 위치하여 불교 전파에 기여하였으며, 군사, 전략적 요충지로 외세의 침입이 빈번함.

-737년 토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747년 고선지에 의해 당에 복속됨

 

[16] 건타라국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일명 간다라라고도 일컬어지는 지역

-인더스강 중류 평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고대 중앙아시아와 서부아시아의 문화교류의 거점지였음.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입 이후에는 동서 간의 교류가 활발해져 헬레니즘 미술과 불교 미술이 융합된 독특한 간다라 양식을 이루어낸 곳.

 

[17] 오장국 (파키스탄의 스와트)

-인더스 강 상류의 펀자브 이북 지방으로, 산스크리트 어로는 우디아나라고도 함.

-간다라에서 정북쪽으로 사흘에 가서 이르렀다고 적었으며, 8세기 당시 대승불교가 크게 흥성함

 

[18] 구위국 (파키스탄의 치트랄)

-산스크리트 어로는 사마라자’, ‘사마갈라사국이라고도 함

-이곳의 의상과 언어가 오장국과 비슷하다고 함.

 

[19] 람파국 (아프카니스탄의 라그만)

-다시의 람파카’, 건타라국의 관할 아래 있었으며 의상과 언어가 비슷함.

 

[20] 계빈국 (아프카니스탄의 카불)

-당시에는 카피시라고도 불림

-일찍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있었으며, 당과는 사신이 오고 가는 등 상당한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임.

-혜초 방문 시 건타라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건타라 왕이 더위를 피해 여름에 머무르기도 했다고 함.

-토착인은 호족, 왕과 군사는 돌궐인이며, 소승불교가 성함.

 

[21] 사율국 (아프카니스탄의 가즈니)

-당시에는 자불리스탄이라고 부름.

-토착인은 호족이었고, 왕과 군사들은 돌궐인임. 대승불교가 성행함.

 

[22] 범인국 (아프카니스탄의 바미얀)

-사율국에서 북쪽으로 이레를 간 후 다다른 곳

-7세기 이슬람군에게 정복될 때까지 불교 중심지 중의 하나

-5세기에 건축된 거대한 바미얀 석굴 대불상이 유명하였으나,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됨

 

[23] 토화라국 (현재 토카리스탄)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했던 소국으로, 산스크리트 어로는 토카리스탄이라고 함.

-기원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인들이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독립해 세운 박트리아이며, 당시 서역의 요충지였음.

-혜초가 실제로 대불림(동로마)까지 갔다 왔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곳 토화라에서 페르시아와 대식, 대불림 등 인근 나라에 대해 들은 것으로 기술했을 뿐, 현지에는 가지 않았다는 설도 있음.

 

[24] 파사국 (이란)

-당시의 페르시아. 혜초가 이곳을 여행했는지 학자들 사이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정수일 교수는 혜초가 이슬람 총독부의 소재지인 페르시아의 니샤푸르를 방문했다고 봄.

-당시 니샤푸르현인과 학자들의 고향이라고까지 일컬어진 유명한 도시로서 실크로드 동방통로구실을 하고 있음.

-혜초가 지날 당시는 페르시아와 도시 나샤푸르는 대식에 의해 이미 정복된 상태.

 

[25] 대식국 (아랍)

-사라센 제국이라고도 불림, 당시 우마이야조 말기의 아랍제국을 지칭

-우마이야조는 아랍-이슬람 제국의 2번째 칼리프조로서 아라비아 반도는 물론 북아프리카, 스페인 일대를 정복해 강력한 세계 제국을 이룩함.

 

[26] 대불림국 (터키)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여 오늘의 터키 일원에 자리했던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을 지칭함.

-혜초가 과연 동로마 제국을 여행했는가의 문제? 학계에서는 혜초가 당시 동서 교통의 요충지엿던 토화라에 머물며 페르시아와 대식, 대불림 등 인근 여러 나라들에 관해 전해 들은 것을 기술했을 뿐, 현지에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임. 그 근거로 구법 목적으로 인도에 간 그가 이교인 이슬람교나 기독교가 지배하는 지역에 갈 리 만무하다는 것.

 

[27] 호국:안국(부하라), 조국(카부단), 사국(킷쉬), 미국(펜지켄트), 강국(사마르칸트)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소국들.

-비록 나라마다 왕이 있으나 모두 대식의 관할하에 있음. 나라가 협소하고 군사도 많지 않아 자위가 불가능함.

 

[28] 발하나국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당나라와 발하나국은 소러 돕는 밀접한 관계임.

-당라나 현종 때 왕 아르슬란 타르간(아실단간)은 토화선의 난을 평정하는 데 일조하여 봉화황에 책봉됨. 또한 왕 충절은 아들 설유를 파련해, 숙위로 있으면서 중국예법을 배우도록 함. 당조는 그에게 좌무위장군직을 줌.

 

[29] 골탈국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강 사이의 계곡과 구릉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좋은 목초지와 경지를 갖고 있음.

-인구도 많고, 금을 비롯한 물산도 풍부함.

-‘쿠탈리혹은 투카리란 이름의 양마 산지로 유명함.

 

[30] 돌궐 (러시아의 외튀켄)

-중앙아시아 유목 제국 중에서 최초로 문자를 사용함.

-최초로 지배권을 동으로는 중국 변방까지, 서로는 비잔틴 제국까지 확장한 강대한 국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장악하여 멀리 서역과도 교역을 하고 사신을 호환하는 등 동서 문명 교류에도 불멸의 업적을 남김.

 

[31] 호밀국 (파미르 고원)

-5~6세기 구법승들이 이 지역을 지나는 길을 따라 오감. 747년 고선지가 바로 이 호밀을 지나 소발률을 공격함.

-13세기 후반 마르코 폴로도 토화라로부터 이곳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 동진을 계속함.

-1913년 스타인의 제3차 중앙아시아 탐험도 예외 없이 이곳을 지나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신강에 이르는 등 문명의 교차로임.

 

[32] 식닉국 (파미르 고원의 쉬그난)

-호밀국 북쪽 산속에는 아홉 개의 식닉국이 있음. 아홉 왕은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사는데, 한 왕만이 호밀 왕에게 예속되어 있음. 두 굴왕이 자진 신복하여 안서에 사신을 보냈으며 왕래가 끊이지 않음.

 

[33] 총령진 (타슈쿠르간)

-총령은 파미르 고원의 옛 명칭으로, 험준한 산맥과 연결돼 세계의 지붕이라고 일컬어짐.

-727년 이곳을 넘어 혜초는 돌아옴. 여기서 시를 읊기도.

-20년 후인 7473, 고선지는 구자, 소륵 등을 거친 후 이곳 파미르 고원을 넘어 소발률에 이르는 대원정을 감행함.

 

[34] 소륵국 (중국의 카슈가르)

-소륵이라는 명칭은 한 대부터 당말 송초까지 중국인들이 부르던 이름.

-파미르 고원에서 한달 동안 걸어 동서교류의 거점이었던 이곳에 이름.

-외국에서 이곳을 가사기리국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함.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한 펠리오는 중앙아시아 제국의 통상적인 중국식 명칭과 함께 현지명으로 기록한 점을 두고, ‘이 분야에선 최초이며 마르코 폴로나 몽고 시대의 기록보다 5세기나 앞서는 것이라고 평가함.

 

[35] 구자국 (중국의 쿠쳐)

-실크로드 톈산 남로 주요 도시 중 하나.

-72711월 혜초가 귀국길에 거쳐 간 곳이자 당나라 때 서역 정벌 임무를 맡은 안서도호부가 설치된 곳이기도 함.

-고선지도 이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냄. 그의 다섯 차례에 걸친 서역 원정 중 탈라스 전쟁을 빼고는 그 출발지와 개선지가 모두 쿠처였음.

-혜초가 유일하게 행적의 시간을 밝힌 곳임.

 

[36] 우기국 (중국의 호탄)

-안서 남쪽에서 우기국까지 2천 리. 중국 군사가 많이 주둔함.

-절이 많고 승려도 많으며 대승법이 행해짐. 고기는 먹지 않고 동쪽은 모두 당나라의 영역.

 

[37] 안서 (중국의 쿠처)

-안서는 안서도호부의 소재지를 지칭, 당라나 여섯 도호부 중 타림 분지에 설치한 도호부.

-실크로드를 관장했던 당나라는 오아시스 육로 북도 연변의 타림 분지 제국을 관리하고 그를 통한 서방과의 교역을 확보하며, 톈산 산맥 이북으로부터 유목 세력의 압력을 차단하기 위하여 이 안서도호부를 설치함.

-여행 후 중국으로 귀로를 잡은 혜초는 당나라의 관문인 안서도호부에 이름.

 

[38] 언기국 (중국의 카라샤르)

-예부터 교통의 요지. 기원전 1세기에는 흉노의 서역 경영의 중심지.

-<왕오천축국전>이 여기에서 끝맺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국내도서
저자 : 혜초 / 정수일역
출판 : 학고재 200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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