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매미처럼 향기로운 귤처럼.

깨끗한매미처럼향기로운귤처럼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이덕무 (돌베개,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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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잠자기 몇 분 전, 일부러 조금씩 읽었다. 겸손하고, 따뜻하며, 치밀하고, 성실하고, 검소한 한 인간을 떠올리며 한 구절 씩 되새기려 노력했다. 박지원, 정약용에 이어 18세기 조선시대가 정말 매력적인 시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책읽기를 갈무리했다.

21 나를 조롱하다
예스런 생김새에 마음 맑은 이형암
포부는 몹시 어리석다네.
담박하게 고요히 앉아 있느라
콩과 팥도 구분 못하네.
---> 이덕무의 글을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글이 매우 많다. 스스로를 낮춰보며 희화화시키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더욱 그를 인간답게 보이게 하고, 존경스럽게 한다.

26 여름날 병중에
병이 든 게 가난 때문인 듯하니
내 한 몸 돌보는 일 어찌 그리 소흘했나
개미 둑에는 흰 쌀알 풍족하고
달팽이 다니는 벽에는 은 글씨가 빛나네.
약은 벗들에게 구걸을 하고
죽은 아내가 끓여 주누나.
이러고도 책 읽기만 좋아하나니
습관을 버리기 쉽지 않아라.

권모와 술수를 내 어찌 익히리
선비의 예의도 부족하거늘.
곱고 멋진 이야기를 듣느니보다
거칠고 굵은 글을 읽고 싶어라
기상이 높으니 연잎으로 옷을 짓고
뱃속이 깨끗하니 국화꽃도 먹음직해.
뜨락의 풀에서 생명을 느끼고
아이에게 뽑지 말라 당부하누나.
---> 가난을 이야기하는데 ‘개미 둑에는 흰 쌀알 풍족하고’라고 한 구절은 무슨 의미일까?
‘곱고 멋진 이야기를 듣느니보다, 거칠고 굵은 글을 읽고 싶어라’라는 대목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거칠고 굵은 글’이라. 어떤 의미일까?

100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무언가를 좋아하는 자는 대개 그것을 잘하게 마련이네. 자네 역시 문장을 좋아한다고 하니 글을 잘 짓는다고 생각해도 될테지. 그렇다면 자네가 겸손해 하는 것은 괜히 그렇게 해 보는 것 아닌가?”
그런 사람에겐 이렇게 대답하겠다.
“음식을 들어 비유해 보겠소. 훌륭한 요리사가 맛난 음식을 마련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구려. 곰 발다닥, 잉어의 꼬리, 원숭이의 입술, 싱싱한 회 등 산해진미의 밑재료를 가져다 온갖 양념으로 간을 하고 맛을 내 요리한 음식을 고관대작에게 바쳤다고 합시다. 고관대작 가운데 그것을 맛나게 먹으며 좋아하지 않는 이는 없겠지요. 하지만 고관대작이 맛난 음식을 좋아할 줄을 알지만 요리사와 같이 아름답고 진귀한 음식을 만들지는 못할 거외다. 내가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고관대작이 맛난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오. 식초에 담그면 시고 간장이 절이면 짜다는 건 고관대작도 짐작할 것이니, 내가 글을 지을 줄 안다는 것도 이와 같은 거지요. 그러니 어찌 일부러 겸손한 체하겠습니까? 다만 스스로를 찬미해 즐길 뿐이지요.”
또 혹여 이렇게 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이가 장부가 되고 처녀가 부인이 될 날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사람에게는 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할 터이다.
“비록 아이가 장부가 되고 처녀가 된다 하여도, 순수한 마음이 발현돼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진실한 감정이 표출된 ‘참된 마음’만큼은 백발이 된다 한들 변함이 없을 거외다.”
--> 그의 겸손함, 한결같음이 가슴 찌르르 다가온다. 그리고 음식에 비유한 책읽기와 창작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참신했다. 그리고 그의 ‘있는 그대로의 마음’과 ‘참된 마음’은 이덕무 그 자체인 듯 생각이 들었다.

105 박제가 시집에 써 준 글
재선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면 늘 말이 어눌했지만 나를 대해서는 말을 참 잘하였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았지만 재선의 말을 들을 때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와 같으니 재선이 나에게 말을 하지 않으려 한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바람이 스며들고 비가 새는 퇴락한 집일지라도, 조용히 만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등잔불을 켜 둔 채 갖가지 다양한 책을 펼쳐 놓은 뒤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하늘과 땅이 왕복하는 이치라든지 삶과 죽음의 문제라든지 고금의 역사의 흥망성쇠라든지 선비가 벼슬하고 물러나는 도리는 물론이거니와, 산수와 벗 사귐의 즐거움이라든지 서화와 시문의 운치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논하였다. 간혹 서로 마음에 격동되는 곳을 만나면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아무 말도 않고서 서로 마주 본 채 마냥 웃을 뿐, 우리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비록 이와 같이 마음이 잘 통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재선의 재주라면 모를까 내가 그의 욕심없는 마음까지 재선과 같다고는 말할 수 없을 터이다. 재선은 참으로 욕심이 적은 사람이다. 그의 시가 담박하고 소쇄(瀟灑)한 것은 바로 그의 성품과 같았다.
--> ‘서로 마주 본 채 마냥 웃을 뿐’이라는 대목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 벗이란, 이런 것이었다.

108 나만이 아는 시
“그래 어떤 것 같나? 내가 지은 시라고 하지만 난 그게 어느 정도 품격이 되는지 알 수 있다네. 오직 자네만이 내 시를 판정해 줄 수 있네. 나는 자네 말을 듣고서야 내 시가 어떻다는 걸 알게 되니 말일세.”
내가 짐짓 “내가 뭘 알겠나? 자네 시에 대해선 별 할 말이 없는 걸?”이라며 슬그머니 농을 치면, 이옥은 대번 “내 시가 좋지 않은 거로군!”이라고 말하며 금세 시무룩해졌다.
내가 “아니야. 아냐. 자네가 지은 시는 참으로 좋아.”라고 웃으며 말하면, 무릎걸음으로 바짝 다가와 “정말 그런가?”라고 다시 반문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붓을 잡고선 그의 시에 대해 추어주고 칭찬하면, 그제야 자신이 지은 시가 좋다고 믿고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이렇게 밤을 지새우며 웃고 이야기하다 돌아가곤 했는데, 이런 만남도 벌써 네댓 해 전의 일이다.
--> 이덕무의 속이 다 보이는 능청스러움과 이옥의 순진한 태도가 어우러져, 정말 재미있으면서 부러운 친구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옥과 같은 친구가 있음도 행복이지만, 이런 일들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이덕무의 자세 또한 너무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117 책밖에 모르는 바보
남산 아래 퍽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말도 느릿느릿 어눌하게 하고, 천성이 게으르며 성격마저 고루하니 꽉 막혔을 뿐만 아니라, 바둑이나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계에 대한 일이라면 도통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해도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았다. 오직 책 읽는 일만을 즐겨, 책을 읽기만 하면 추위나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배가 고픈지도 모른 채 책만 읽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이 된 지금까지 하루도 옛 책을 놓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도 무척 작았다. 하지만 동쪽과 서쪽과 남쪽에 각각 창이 있어 해가 드는 방향에 따라 자리를 옮겨 가며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아직 보지 못했던 책을 구해 읽게 되면, 그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띠곤 했다. 집 사람들은 그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기뻐하면 필시 기이한 책을 구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특히 두보의 오언 율시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 시를 읊느라 앓는 사람처럼 웅엉거리기를 예사로 하였고, 시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혹 심오한 뜻을 깨치게 되면 그만 기뻐서 벌떡 일어나 방 안팎을 서성이기도 했는데, 그럴 땐 마치 까마귀가 우짖는 소리를 내곤 했다. 어떨 땐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 해도 그냥 씩 웃고는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아무도 그의 전기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내 붓을 들어 그의 일을 써서 ‘책밖에 모르는 바보 이야기’를 짓는다. 그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는다.
---> 너무도 유명한 이덕무의 ‘자전’이다. 그의 진실함, 순진함, 한결같음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끼고 새기기 위해 이 글 전체를 옮겨 타이핑해 보았다.

122 한가함에 대하여
진실로 그 마음이 한가할진댄 사방으로 통하는 대로변이나 떠들썩한 시장통 속에서도 한가함을 누릴 수 있는 법이니, 어찌 반드시 인적 없는 깊은 산중이나 고즈넉한 맑은 물가에서만 한가함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집은 시장 옆에 있는지라, 해가 뜨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해가 지면 온 동네 개들이 어지럽게 짖어 댄다. 그 속에서도 나는 편안히 글을 읽는다. 때로 집밖에 나서 보면 땀 흘리며 뛰어가는 사람도 있고, 말을 몰아 내달리는 사람도 있다. 또 수레와 말이 섞여 복잡하게 오가기도 한다. 그 속에서도 나는 홀로 천천히 걸어갈 뿐이다. 이는 모두 내 마음이 한가하여 그 소란함에 나의 한가함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 책 속에 온통 겸손함이 흐르지만,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속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이런 글들이 아닐까 싶다.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끄러운 시장통 속에서도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이덕무의 한가함이 바로 이덕무 본연의 모습이리라.

134 백동수라는 사람
나의 벗 영숙은 예스럽고 소박하며 질박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질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졌기에 세상의 화려함을 바라지 않고, 예스럽고 소박한 마음을 품었기에 세상의 간사한 무리를 따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비방하고 헐뜯는다 하더라도, 영숙은 끝내 자신의 ‘촌스러움’을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굶주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영숙이야말로 참으로 ‘야뇌(野餒)’라는 이름에 값하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 백동수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드라마가 아닌 팩트로 만나다!

147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글
내 가끔 너희 집에 가게 되면
어느 때고 너는 나를 반겨 주었지.
남에게서 바느질품을 팔아서
상자에 모아 둔 품삯 꺼내선
여종에게 술을 사 오게 하여
웃으면서 내 앞에 놓아 주었지.
술잔에다 내가 그 술 조금 따라서
너에게 권하면 너는 마셨고
안주와 과일을 떼어다가는
어린 아들 아증에게 먹이곤 했지.
이제는 백만 번을 찾아가 본들
눈에 가득 차 오는 건 슬픔뿐이리!
---> 누이를 애도하는 글 중의 일부이다. 특히 이 부분이 감동적인 것은 누이의 마음 씀씀이와 오빠를 위하는 마음과 가족을 생각하는 누이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의 누이에 대한 글만큼 슬프고 감동적이었다.

161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아
눈 오는 아침이나 비 오는 저녁에 다정한 친구가 오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시험 삼아 내 입으로 직접 글을 읽어 보니 나의 귀가 들어주었고, 내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써 보니 나의 눈이 보아 주었다. 내 이처럼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다시 무슨 원망이 있을 것인가.
---> 문득 ‘교사 김봉두’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이덕무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벗과 함께 하지만 항상 내면에 천착한 이덕무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162 가장 큰 즐거움
마음에 맞는 계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 일, 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지극히 드문 법, 평생토록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는지.
--> 아.. 나도 꿈꾼다.

168 어리석은 덕무야!
가난해서 반 꿰미의 돈도 저축하지 못한 주제에 가난에 시달리는 온 천하 사람들을 위해 은택을 베풀 것을 생각하고, 노둔해서 온 천하 사람들을 위해 은택을 베풀 것을 생각하고, 노둔해서 한 권의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주제에 천고의 온갖 경전과 사서를 읽으려 하니, 이는 오활한 자가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아, 덕무야! 아, 덕무야!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로다!
--> 스스로를 칭찬하는 글이면서, 스스로를 경계하는 글인 것 같다. 이덕무의 글은 유난히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 많다. 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73~174 책만은 버릴 수 없어
늠름한 외양의 한 장부가 나의 귀에다 대고 이르기를,
“세상을 한탄하는 마음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성내는 버릇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남들을 시기하는 마음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자만심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네 조급한 성질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고, “게으름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어찌 감히 말씀대로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이윽고 그가, “서책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
라고 하기에, 속으로 어이없어 하며 뚫어지게 그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도대체 글을 즐겨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좋아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를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만들 작정이십니까?”
이 말에 그 장부는 껄껄 웃으며 내 등을 어루만지며,
“너를 한번 시험해 본 것일 뿐이다.”
라고 하였다.
--> 이덕무의 책사랑은 익히 알려진 바여서 새롭지 않으나, 이런 농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키가 훤칠한 장부가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다.

175 슬픔과 독서
지극한 슬픔이 닥치게 되면 온 사방을 둘러 보아도 막막하기만 해서 그저 한 뼘 땅이라도 있으면 뚫고 들어가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진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두 눈이 있어 글자를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극한 슬픔을 겪더라도 한 권의 책을 들고 내 슬픈 마음을 위로하며 조용히 책을 읽는다. 그러다 보면 절망스러운 마음이 조금씩 안정된다. 만일 내가 온갖 색깔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해도 서책을 읽지 못하는 까막눈이라면 장차 무슨 수로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 기가 막힌 독서에 대한 권유의 글이다. 희노애락을 함께 하는 책읽기야 말로 세상의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덕무의 섬세함과 책에 대한 애정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다.

178 책을 읽어 좋은 점 네 가지
약간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 훨씬 낭랑해져 글에 담긴 이치를 맛보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게 되니 이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기운이 그 소리를 따라 몸속에 스며들면서 온몸이 활짝 펴져 추위를 잊게 되니 이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요, 근심과 번뇌가 있을 때 책을 읽으면 내 눈은 글자에 빠져 들고 내 마음은 이치에 잠기게 되어 천만 가지 온갖 상념이 일시에 사라지니 이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기침앓이를 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창해져 막히는 바가 없게 되어 기침 소리가 돌연 멎게 되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함이다.
--> 독서 전도사가 따로 없다. 배가 고파도, 추워도, 스트레스가 많아도, 병이 깊어도 만병통치약은 독서라 한다. 이덕무는 중독수준일까? ^^

186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
아름답게 솟은 푸른 봉우리와 선명하고 짙은 흰 구름을 한참동안 부러워하다가 한 손에 움켜다 모두 먹어 봤으면 하고 생각했더니 어금니에서 벌써 군침 도는 소리가 들렸다.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 중에 이만 한 게 또 있을까?
--> 산과 구름을 보며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선비된 마음에 그런 마음을 글로 옮긴 사람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이덕무밖에 없을 듯하다. 그래서 어린 아이 마음을 내세우지 않았을까? 요즘 동시에서 흔히 보이는듯한 표현이 18세기 이덕무 글에 보이다니 너무 신기하고, 더욱 이덕무가 새로워 보인다.

194 싸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너’와 ‘나’를 차별하는 마음을 잊기만 한다면야 싸움이나 전쟁이 어떻게 일어날까?
--> 나와 너을 달리 보는 마음, 차별의 본질을 일찍 깨달았고, 분쟁의 원인을 적확히 짚어낸 이덕무는 진정 선지자, 선각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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