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목민심서

정선목민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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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정약용 (창비(창작과비평사)펴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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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자상하고, 섬세하고, 뼛속깊이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목민관의 임무를 시작해서 고을로 이동할 때부터 정무를 보다 죽는 순간에 어디에서 죽어야 하는지 까지 생각하고 집필한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동어린 존경심을 바치고 싶다. 단어 하나, 구절 하나에 백성에 대한 사랑과 지혜로움이 넘치고, 단순히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의 실례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또한 과거의 목민관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목민관, 공무원, 교사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옮겨 적으며,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 마음을 담은 감동을 바치고 싶다.

<자서>에서
17 <주역>에 이르기를 “앞사람의 말씀이나 지나간 행적들을 많이 익혀서 자기의 덕을 쌓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진실로 내 덕을 쌓기 위한 것이지, 어찌 꼭 목민에만 한정한 것이겠는가? ‘심서(心書)’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 이 얼마나 겸손한 말인가? ‘심서’의 의미를 알아서 감탄했고, 이 책을 지은 목적을 덕을 쌓기 위해서라고 한 부분도 감동적이었다.

<부임6조>
24 노회한 아전들은 신임 수령의 인품이 어떠한가를 그의 의복과, 안장을 얹은 말의 차림새로 알아본다. 만약 사치스럽고 화려하면 씽긋 웃으며 ‘알 만하다’하고, 만약 검소하고 질박하면 놀라며 ‘두렵다’고 한다.
->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 아전들의 성향을 꿰뚫고 있으며, 의복 하나에도 뜻이 담겨있음을 알아내는 섬세한 디테일!

41 다음날 노련한 아전을 불러서 화공을 구하여 본 현의 지도를 그려 관아의 벽에 걸어두도록 한다.
-> 아래 설명에는 그림 그리는 방법까지 설명하고 있다. 사또가 부임해서 기생 점고만 하는 장면만 봤는데, 이런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친절한 안내에 또 한 번 감탄이 나온다.

<율기 6조>
52 수령이 된 자는 술을 끊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자제나 친척, 손님들이 기생과 가까이 하는 것은 엄히 막아야 할 일이니, 금계를 아주 엄하게 하면 설사 어기는 자가 있더라도 정도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노래와 음악은 백성의 원망을 재촉하는 풀무이다. 내 마음은 즐겁지만 좌우의 마음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으며, 성안의 마음이 다 즐거울지라도 온 고을 만민이 반드시 다 즐거울 수는 없다.
-> 자신의 생각이 명백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생각의 유연함과, 백성과 다른 이를 배려하는 저 따뜻한 마음!! 소외된 자들을 위한 마음씀씀이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59 어떤 함경도 사람이 처음 서울에 와서 성균관 앞길에 이르자 동행에게 ‘이곳은 어떤 관청인가?’라고 물었더니, 그 동행이 ‘이곳은 조정에서 낮도둑들을 모아서 기르는 못자리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비록 지나친 말이지만, 이 말을 들은 자는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 이기의 <송와잡설>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작은 예문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다산의 각별함이 돋보인다.

68 김상헌은 벼슬살이를 청렴하게 하였다. 어느 관리가 자기 부인이 뇌물을 받아 비방을 듣는 것을 걱정하자, 그는 “부인의 소청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 비방이 그칠 것이다.”라고 일러주었다. 그 관리가 크게 깨닫고 그 말대로 하자, 그 부인이 항상 김상헌을 욕하기를, “저 늙은이가 저만 청백리가 되었으면 그만이지 왜 남까지 본받게 해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는가”라고 하였다.
-> 다산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많이 웃겼다...하하

71 친척이나 친구가 관내에 많이 살면 거듭 단단히 단속하여, 남이 의심하고 비방하는 일이 없게 함으로써 서로 좋은 정을 보존하도록 해야 한다. ~ 편지 왕래도 역시 의심과 비방을 살 터이니, 만일 질병이나 우환이 있어서 서로 알려야 하는 경우에만 몇 자의 편지를 써서 풀로 봉하지 말고 직접 예리에게 주어 공개리에 보내도록 하라
-> 엄격하고 확실한 분이다. 정말 청렴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작은 것 하나에도 낱낱이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76 진서산은 나물을 논하면서 “백성에게는 하루라도 굶주린 기색이 있어서는 안 되고, 사대부는 하루라도 나물맛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 지금 나물맛을 아는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봉공6조>
98 이웃 고을과는 서로 화목하고 예의있게 대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
양나라 정장이 보복으로 초나라 오이를 긁어버리려고 하자, 송취는 “이는 재앙을 같이 하는 것”이라며 말리고는 사람을 시켜 밤중에 몰래 초나라 오이밭에 물을 주라고 하였다.
-> 이건 정말 대단한 고사인 것 같다. ‘이에는 이’같은 피를 부르는 복수가 아닌 진정한 화해의 길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도 한 번 들려주고 싶다.

99 전임자와는 동료로서의 우의가 있기 때문에 교대할 때에 옛사람들은 후덕함을 좇아, 전임자가 비록 탐욕스럽고 불법을 저질러서 그 해독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화평하고 조용히 고쳐서 전임자의 행적이 폭로되지 않게 하는 데 힘썼다.
-> 전임자와의 일처리까지 이렇게 꼼꼼하게 챙기다니.. 그것도 이렇게 부드러운 방법으로!

101 방종한 것을 관대한 것으로 알고, 생략하는 것을 간단하고 편한 것으로 알고 있으면 해이하고 중단되어 백성이 폐해를 받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관대하다는 것은 가혹하게 급히 서둔다는 것이 아니며, 간단하고 편하다는 것은 번잡스럽지 않다는 것뿐이다.
->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해볼만한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너무 자유스럽거나 귀찮아서 생략하는 것들을 고쳐 생각해봄직하다.

112 사람의 목숨에 관계되는 옥사의 검시관이 되기를 피하려 하면, 나라에는 그것을 다스리는 일정한 법률이 있으니 이를 어겨서는 안 된다.
-> 힘들고 모진 일이라도 목민관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다산의 마음이 전해진다.

113 표류선 조사는 급하지만 어려운 일이니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 다산이 유배된 곳이 강진이어서 그럴까?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수령의 임무에 넣으니 정말 대단하게 생각이 될 따름이다.

<애민 6조>
122 80세 이상 된 노인에게는 각각 쌀 한 말과 고기 두 근을 보내드리고, 90세 이상 된 노인에게는 고치떡, 약과, 마른 꿩 같은 진귀한 반찬 두 접시를 보태 보내드린다. 생각해 보라, 큰 고을이라 하더라도 80세 이상 된 노인은 불과 수십 명일 것이고, 90세 이상 된 노인은 몇 명에 불과할 것이며, 소용되는 쌀은 두어 섬에, 고기도 60근에 불과할 것이니, 이것이 어찌 쓰기 어려운 비용이겠는가? 기생을 끼고 광대를 불러서 하룻밤을 즐기는 데 거액을 가볍게 내던지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 진정한 복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마음 씀씀이도 놀랍고, 내 한 몸 향락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노인공경(복지)을 위해 돈을 아끼는 사람들을 문책하는 것 같기도 하다.

123 <주례> 대사도에 “보식육정으로써 만민을 기른다”고 하였으니, 첫째가 ‘어린이를 양육함’이요, 둘째는 ‘노인을 공경함’이요, 셋째는 ‘빈궁한 자를 구제함’이다.

125 백성들이 가난하면 자식을 낳아도 잘 거두지 못하니, 백성들을 타이르고 아이들을 길러서 우리 자녀들을 보전케 해야 한다. (가표의 일화 - 자식을 기르지 않는 자를 엄중히 벌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기르게 함, 그래서 1천 명의 백성들이 ‘가’라고 이름을 지음.)
-> 진정한 사회보육! 아이들을 사회가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을 벌써 몇백 년 전에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131 가경 무오년 겨울에 독감이 갑자기 기승을 부렸다. 그때 나는 황해도 곡산에 있었는데 먼저 거두어 매장하는 일을 했다. 아전이 “조정의 명령이 없으니 실행해도 공적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나는 “곧 명령이 내려올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 감사의 독촉이 성화같았다. 다른 읍에서는 모두 갑자기 장부를 꾸미느라 여러 차례 문채을 받았지만, 나는 이미 정리해놓은 것을 바쳐 차분하게 아무 일도 없게 되자 아전들도 크게 기뻐하였다.
-> 선견지명, 그리고 죽은 자까지도 거둘 줄 아는 다산의 애민 정신이 돋보인다.

133 요즈음 수령들을 혹독하고 인자하지 못하다. 어떤 시골 아낙이 젖먹이를 안고 관가에 와서 “이 애가 부엌에서 불에 데어 지금 손발을 못 쓰게 되었으니 새로 배정된 군역에서 관대히 면제해 주시길 빕니다.”라고 호소하면 수령은 “밭 가운데 허수아비보다야 낫지 않느냐”며 들어주지 않는다.
-> 다산은 좋은 예도 많이 들지만 반면교사로서 나쁜 예들도 많이 든다. 당시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참담하다.

<이전 6조>
143 아전은 자벌레처럼 움츠리고 개미처럼 기어 다니지만, 응대에는 물 흐르듯 기민하다. 수령은 아전을 마치 벌레처럼 내려다보고 작은 재주와 얕은꾀로 이리저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전의 무리는 마치 여관주인처럼 나그네를 겪는데 이력이 나서 성위와 허실을 환히 꿰뚫고, 관아의 뜰에 엎드려서는 몰래 웃다가 관문을 나서기만 하면 만 가지로 비웃는 줄을 수령은 알지 못한다. 그러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지성으로 대하여 알거든 안다고 하고 모르거든 모르다고 하며, 죄가 있으면 벌주고 죄가 없으면 용서하여 한결 같이 떳떳한 이치를 좇고 술수를 부리지 말아야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가 있다. 
-> 여기서도 다산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아전들의 술수를 손안에 꿰고 있으면서,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반면 당시 대다수의 아전들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아 슬프기도 하다.

149 소인의 농간은 진실로 막기 어려운 것이다. 살피건대 이러한 짓이 이른바 병법의 반간(反間)이라는 것이다. 빼앗고 싶을 때에는 주기를 청하고 가두고자 할 적에는 풀어놓기를 청하며, 서쪽을 원할 적에는 동쪽을 건드리고 왼쪽을 차지하고 싶으면 오른쪽을 끌어서 편벽된 성질을 충동질하니, 명석한 판단력을 가진 포염라라도 그 술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고 통찰한 다산은 정말...

164 항통(항통?향통?)이란 자기병이나 죽통의 아가리를 굳게 봉하고 비벼 꼰 종이 토막을 겨우 집어넣을 수는 있으나 도로 꺼내지는 못하게 작은 구멍 하나만을 낸 것이다. 향통을 작은 면에는 한두 개, 큰 면에는 서너 개 정도를 내보이어 모든 마을에 돌리게 하되, 한 마을마다 2, 3일 정도 두었다가 거두어들인다. 수령의 정사에서 잘못한 바를 지적하면 주저없이 고칠 것이요, 민폐를 고해오면 단연코 개혁할 것이요, 사사로운 원한으로 무고하는 것도 모름지기 살펴야 할 것이다.
-> 일종의 소리함 제도?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

169 비록 그가 한 말이 혹 모함이라 하더라도 처벌하지 않고 언로를 틔워놓아야 할 것이다. 늘 보면 지혜롭지 못한 수령들은 이방을 사인으로 삼아 호오를 같이 하면서 그의 말만 치우쳐 듣고 절대로 의심하지 않아, 이방과 적대되는 자들은 마음 놓고 지낼 수 없게 된다.
-> 언로를 막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171 생각건대 옆에서 시중드는 아이나 기생, 노비들이 저희들끼리 사사로이 주고받는 말을 아전들이 꾸짖으며 못하게 하는 척하지만, 실은 아전들이 흘려들여보낸 말이 많다. 간악함이 천태만상이니 어찌 유의하지 않겠는가?
-> 간악함이 천태만상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마는, 이렇게 세세하게 사례들을 적은 다산이 대단하게 생각될 뿐이다.

<호전 6조>
185 장차 조창을 열려고 할 때는 마을에 방문을 붙여 잡류를 엄금해야 한다. 마을에서 금해야 할 것은 창기, 앉아서 술을 파는 자, 광대, 악공, 소와 돼지를 잡는 일, 투전 등이다. 이런 잡류는 노래와 여색과 술과 고기로써 유혹하는 것이니 창리와 뱃사람이 빠진다. 그 소비가 넘치고 탐욕이 깊어지면 횡포하게 거두어들여 축난 것을 채우게 되니, 이는 반드시 엄금해야 한다.
아산, 충주의 가흥, 함열의 성당포, 군산포, 영산포, 마산창, 진주의 가산창, 밀양의 삼랑창 등과 같이 조창이 있는 도회지에서는 금하기를 더욱 추상같이 해야 한다.
-> 세금이 모이는 곳에 부패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구절이다. 엄금하라는 말 속에서 얼마나 잡류가 심했는지 엿보인다. 나주 영산포가 조창이 있는 곳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199 부촌에서 감해진 호수가 모래처럼 쌓이고 쑥대처럼 굴러다니며 구름과 안개처럼 변해서 요역을지지 않는 곳에 붙게 되니, 첫째는 읍성이요, 둘째는 향교가 있는 마을이며, 셋째는 군진이 있는 마을이요, 넷째는 역이 있는 마을이며, 다섯째는 참이 있는 마을이요, 여섯째는 절 입구의 마을이다. 나라 안의 모든 고을이 이방을 제일 좋은 자리로 여기지만, 식년이 되면 호적을 처리하는 아전은 큰 고을에는 넉넉히 1만 냥을 먹고, 작은 고을이라도 3천 냥을 넘게 먹는다.
-> 호적을 정리하는 사업이 얼마나 큰 사업인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렇게 호수를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하는 호방의 행태에서 조선의 근간이 뿌리부터 부패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4 백성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빈곤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채에 쪼들러거나 공곡을 갚지 못해 도피한 것입니다. 도망치고 나면 향리에서 재산을 조사하는데, 가옥, 집기, 뽕나무, 대추나무, 재목 등에 이르기까지 모드 그 값을 계산해 관리가 세금으로 가져가거나, 혹은 채권자가 떼인 돈을 받는다고 가져가버리니 생계가 막연하여 돌아가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떠돌아다니면서 귀농할 뜻이 전혀 없습니다.
-> 예전 국사시간에 배운 ‘조선 후기 유민들이 대거 증가했다’는 구절이 생각이 났다. 어떻게 유민이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209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나 염소고기’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탈이 날까 염려스럽다고 말하지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음식은 습성에 따라 맞추어지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어디 모두 탈이 났던가? 율곡은 평생 쇠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소의 힘으로 지은 곡식을 먹으면서, 쇠고기를 먹는 것이 옳겠는가?’라고 했으니, 참으로 당연한 이치이다.
-> 당시 육식문화를 알 수 있었다. 소설 <다산>에 보면 개고기로 육포를 떠서 여행을 가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소가 귀해서인지, 소를 아끼는 마음에서였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예전 6조>
217 허엽이 “어찌하여 향약을 멈추게 권했습니까?”라고 묻자, 이이는 “먹고 입는 것이 넉넉한 연후에 예의를 안다고 하였으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에게 억지로 예를 시행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허엽이 “세상의 도덕이 융성하느냐 타락하느냐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으니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탄식하자, 이이는 “그대는 백성들이 아주 어렵고 고달프더라도 향약만 시행한다면 능히 백성을 교화하여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로부터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는데 예의범절 있는 풍속을 이룬 일이 있습니까? 굶주리고 추운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때리면서 학문을 권장한다면 아무리 가까운 아버지와 아들이라도 사이가 벌어질 텐데, 하물며 백성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라고 말하였다.
-> 다산과 율곡의 백성관이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한 연후에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통한다. 율곡과 논쟁하는 허엽이 허균의 아버지여서 논쟁이 더욱 흥미진진했다. 네이버에서 허엽을 찾으니 향약 시행을 건의한 내용이 가장 먼저 올라와 있었다.

220 효는 인륜의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유순한 모습과 부드러운 낯빛으로 우선 부모의 뜻을 받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 처참하게 굳은 뜻을 행하는 자가 많다. 비록 그 뛰어난 행동은 사람마다 따를 수 없는 것이지만 손가락을 자르고 허벅지 살을 벤 것은 순임금과 증자가 행한 바가 아니요, 주공과 공자가 말한 것도 아니며 고증할 수도 없다.
-> 지나치게 과장된 효행에 대해 다산은 여러 차례 경고한다. 여기서도 수령으로서 거짓된 효행에 대해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평소에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이 참된 효임을 여기서도 밝히고 있다.

220~221 옛날의 학교는 예와 음악을 익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도 무너지고 음악도 무너져서 학교의 교육이 독서에 그칠 뿐이다.
공자의 문하에서도 사람을 가르치는 데 노래부르기와 악기연주를 위주로 하였다. ~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타는 것이 끊어졌으니 학교가 마땅히 폐지되어야 하지만, 중용의 덕을 강론하고 효도와 우애에 힘쓰며, 시를 낭송하고 글을 읽으며, 때때로 활쏘기를 익히기도 하고 유생들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기도 하면, 역시 학문과 교육을 진작시키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하게 결론 내리고 있다. 단순한 독서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전인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생각된다.

227 오직 12세 이하의 총기가 뛰어난 아이는 아직 고칠 여지가 있으니 거두어 가르치고, 나이 든 사람은 마땅히 습속에 따라 이끌어야 한다. 어린이는 참된 마음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니, 조금이나마 성취할 가망은 어릴 때에 있고, 수염이 짙고 뼈가 굳어진 자는 비록 손을 녹이고 머리가 탈 정도로 가르치더라도 미치지 못한다.
-> ‘머리가 탈 정도로 가르치더라도’에 웃음이... 하하. 나도 이젠 뼈가 굳어져서^^;;

<병전 6조>
241 쇠촉이라는 것도 사람을 상할까 염려하여 만든 것처럼 끝이 날카롭지 않으니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없다. 나라 안에 있는 화살은 모두 이런 것들이며, 관청이 창고에는 혹 날카로운 화살이 있기도 하지만 만에 하나도 못된다. 그리고 100여 년 이래로 무과의 폐단이 점점 심해져서 마침내 나라 안에서 활을 잡고 나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으며, 지금은 막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 다산의 유머가 여기서도 발휘된다. ‘사람이 상할까 염려하여 만든 것처럼’. 이 부분 말이다. 여기 <병전>에 이르니 수령이 군수품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너무 놀라웠다. 정말 수령은 작은 임금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렇게 중요한데, 이렇게 허술할 수가..

<형전 6조>
253 <대학>에서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송사를 심리하면 나도 다른 이와 같겠지만, 나는 반드시 아예 쟁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고 하였다 송사를 심리하는 것과 쟁송이 없게 하는 것은 그 차이가 실로 크다.
-> 지당하신 말씀이다.

254 송사의 심리를 물 흐르듯 거침없이 하는 것은 반드시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되는 일이니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송사의 심리는 반드시 마음을 다해서 하나하나 따지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사송을 줄이고자 하면 심리가 세밀해 반드시 더뎌지게 마련이다. 이는 한번 심리한 후에는 그 소송이 다시 제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 명쾌하고 신속한 심리가 훌륭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위험성을 잘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심리가 치밀하고 조급하지 않게 따져 가는 것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258 소송을 판결하는 시기는 마땅히 조금 늦춰야 한다. 어떤 자가 한때 분이 북받쳐 소장을 제출하려 하다가도 날짜가 조금 지나서 노여움이 풀리고 사건도 가라앉아 서로 화해하여 관아에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송사를 심리하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다.
-> 쟁송이 없게 하는 방법 중 한 가지! 사람의 마음까지 살피며 쟁송을 줄이려는, 역시 다산!

258~259 황패가 영천태수로 있을 때 어떤 부잣집 형제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손아랫동서와 맏동서가 임신을 하였다. 맏동서는 유산을 했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손아랫동서가 사내아이를 낳자 그 아이를 가져다 자기 자식이라고 우겨, 쟁송이 3년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황패는 사람을 시켜 그 아이를 안아 오게 하고, 두 동서로 하여금 다투어 가져가게 하니, 맏동서는 움켜잡기를 심히 사납게 하는데 손아랫동서는 아이가 혹시라도 다칠까봐 하는 모양이 심히 애처러웠다.
-> 어, 이거 솔로몬의 재판이 떠오르지 않는가? 한국의 솔로몬, 황패!!

262 살피건대 이 두 가지 일은 신기하고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다. 제비가 들보에 집을 짓는 것은 사람에게 의지함으로써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요, 참새가 기와지붕에서 지저귀는 것은 사람에게 호소하여 환난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새나 짐승이 하소연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인데, 우둔한 자는 알아내지 못하고 밝은 자만 홀로 깨달아내는 것일 뿐이다.
-> 자식이 허벅지 살을 베고,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은 효행은 믿지 않으면서 동물들이 인간에게 호소하는 것은 믿는 다산의 마음. 얼핏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다산의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정부도 참새와 제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263 또 묏자리를 다투느라 송사를 벌여 어버이 시신이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집안이 쑥밭이 되는 일도 있고, 형제간에 각기 화복이 다르다는 풍수쟁이의 말에 빠져 심지어 골육이 서로 원수가 되는 일도 있다.
-> 지금도 풍수에 따른 묫자리로 다툼이 심한데, 몇 백 년 전에도 이러했다니.. 한 숨도 나오고.. 지금 ‘나꼼수’듣고 있는데, 독실한 기독교 권사님이신 김윤옥 여사님이 풍수를 보고 매곡동 사저를 사고, 물의 기운을 타고나신 가카께서 불의 기운이 강한 관악구는 가지 못하더라고 했다고 하니.. 혹시 가카 조상 이야기인가?

265 절도사가 사람을 목베려 하자, 범여규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니, 절도사는 이미 결재했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가 정색을 하고 “절도사께서는 어찌 ‘바꿀 역(易)’한 자는 중히 여기고, 몇 사람의 생명은 가볍게 여깁니까?”라고 말하자 절도사가 움찔 놀라며 그의 말에 따랐다.
-> 생명도 살리는 바꿀 역(易), 그리고 <다산의 마음>의 고칠 개(改)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268 다른 집안의 어른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엄숙하고 단정하게 앉아 아침문안을 받고, 할 일을 나누어 맡겨 각기 그 일을 처리하도록 한다.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순순히 타일러 깨닫도록 하고, 일에 수취될 만한 것이 있으면 숨겨두고 드러내지 않다가 한가한 때에 따로 불러 차근차근 훈계하고 꾸짖는다. 어른이 부지런함으로 통솔하니 집안사람들이 부지런하지 않을 수 없고, 어른이 검소하고 꾸밈없이 통솔하니 집안사람들이 검소하고 꾸밈없지 않을 수 없으며, 어른이 공손함으로 통솔하고 청렴함으로 통솔하여 표준이 이미 바르게 되니 모든 것이 순조롭지 않을 수 없다. 자제들이 모두 깔끔하게 행동하며 노복들이 모두 순박하고 선량해서 속이는 것이 무엇인지, 도둑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일년 내내 뜰에서는 매질하는 소리가 없어, 그 집에 들어서면 화목한 분위기가 가득해 봄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다. 거문고와 비파, 서책은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으며 초목은 윤택하고 가축은 살쪘으니 물어보지 않더라도 법도 있는 군자의 집임을 알 수 있다.
-> 군자를 교사로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

269 부녀자는 비록 사람을 죽인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임신 여부를 살핀 후에 매를 치는 법이니, 다른 죄는 말할 필요가 없다. 부녀자의 볼기를 칠 때 고쟁이를 벗기고 물을 부어 옷이 살에 착 달라붙게 하는데, 이는 오히려 보기에 좋지 않다. 그런데 요즘 수령들이 볼기를 들러내게 하기도 하는 등 종종 해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차마 들을 수가 없다.
-> 조선 봉건사회에서도 여성인권을 생각하는 다산! 그것도 형집행에 있어서 여성인권을 생각하는 다산!! 선지적이면서도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270 옥중에서 겪는 온갖 고통들을 다 말할 수는 없다. 그중 큰 고통을 들면 모두 다섯 가지인데, 첫째는 형틀의 고통이요, 둘째는 토색질당하는 고통이요, 셋째는 질병의 고통이요, 넷째는 춥고 배고픈 고통이요, 다섯째는 오래 갇혀 있는 고통이다. 이 다섯 가지 고통이 줄기가 되어 천만 가지 고통이 생겨난다. 사형수는 장차 죽을 것인데도 먼저 이 고통을 당해야 하니 그 정상이 불쌍하고, 가벼운 죄수는 그 죄가 무겁지 않은데도 똑같이 이 고통을 당해야 하고, 억울한 죄수는 엉뚱하게 모함에 걸려 잘못 이 고통을 당하니, 이 세 가지 모두 슬픈 일이다. 백성의 수령된 사람으로 어찌 살피지 않는가.
-> 감옥에 있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통찰력. 다산이 쓴 <흠흠신서>가 궁금하다.

272 <속대전>에 규정하였다. “옥이라는 것은 죄있는 자를 징계하는 곳이지 사람을 죽이는 곳은 아닌데도 간혹 혹독한 추위와 심한 더위, 동상과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는 경우가 있다. 안과 밖의 관리들에게 명하여 옥을 청소하게 하고 질병을 치료하게 하며, 가족의 보호와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에게는 관에서 옷과 양식을 지급하게 하라. 만약 태만하여 이를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엄하게 다스리도록 하라.”
-> <경국대전>의 후속편인 <속대전>에 이르는 말. 죄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점이 오늘날과 많이 닮아 있어 놀랐다.

277 푸른 도포에 붉은 실띠의 치장도 선명하게 하여 종신토록 향락하여도 누가 감히 뭐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이 굶다 굶다 좀도둑질 좀 한 사람이 이런 큰 욕을 당하게 되니 슬프지 아니한가? 내가 이래서 통곡을 하는 것이지, 다른 연고가 있는 것이 아니다.
-> 허.. 조선시대의 장발장. 그리고 그런 장발장과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산의 따뜻한 연민!

<공전 6조>
285 단지 심는 일만 독려하고 절대 간섭하지 말며, 과일이 익으면 값을 후하게 쳐주고 빼앗아가는 것을 금하면 반성할 것이다. 금제하는 법조항이 세밀할수록 백성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니, 누가 심고 키우기를 즐겨하겠는가?
-> 당시 백성들의 삶도 상상이 되지만, 학급운영에 있어 ‘하지 않기’와 같은 조항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 부끄러워!

288 무릇 저수지가 있는 곳에 정사 5, 6칸을 지어 서재로 삼고 청렴하고 유능한 선비를 찾아 훈장으로 모시고, 근방의 수재 10여명을 뽑아 함께 글공부를 하며 저수지를 지키게 하고 연을 심고 물고기를 기르게 한다. 거기서 나는 연밥과 물고기는 모두 팔아 서재의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저축하여 저수지를 준설하고 수축하는 데 쓴다. 혹 물고기를 잡아 사사로이 제 한 몸만 살찌게 하는 자를 엄히 다스리면,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이 매몰의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수령이 때때로 그곳을 노닐며 시를 짓고 글을 쓰면 그 또한 명사의 풍류일 것이다.
-> 이것이 진정 녹색개발, 문화개발이 아닐까? 당시에도 자연과 생산, 교육과 문화가 어우러진 개발을 꿈꾸는 안목을 가진 이가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

295 도로를 잘 닦아 여행자가 그 도로로 다니기를 원하는 것도 훌륭한 수령의 정사이다. ~ 높은 고개와 가파른 벼랑을 하늘이 만든 그대로 두고, 언제나 ‘우리나라는 지세가 높고도 가팔라서 수레가 다닐 수 없다’고 말하니 어찌 슬프지 않는가? 혹자는 국경의 요새지는 깎아서 평탄하게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 또한 틀린 말이다. 국경의 견고한 방비란 요새나 성, 혹은 보를 쌓아 요충지를 지키는 것이지, 높고 가파른 도로로 국경을 방비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임진왜란 때 왜적은 모두 조령을 넘었는데, 그 가파름이 부족하여 그렇게 되었겠는가?
-> 국방과 교통의 차이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부분. 특히 다산의 이런 논리적인 어법이 참 마음에 든다. 마지막에 ‘그 가파름이 부족하여 그렇게 되었는가?’라며 다시 한 번 꼬집어주는 확실함이 정말 존경스럽다.

<해관 6조>
327 속담에 “벼슬살이는 머슴살이”라고 했으니, 아침에 승진했다가 저녁에 쫓겨날 수도 있을 만큼 믿을 수 없음을 이른 말이다.
-> ‘교사생활은 머슴살이’라고 하면.. 나의 지금 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336 정당은 공당이다. 만약에 불행히 정당에서 죽는다면 후임자가 싫어할 것이며 요사스런 말이 분분하게 일어날 것이다. 수령은 병이 들어 눕게 되거든 스스로 병의 정상을 헤아려 깊이 우려되는 바 있으면 마땅히 곧 책방으로 거처할 일이요, 병을 참고 누워 버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 단순히 수령의 임기말의 처신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임기중 죽음에 대한 대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정말 이 부분에서 다산에게 무릎을 꿇었다. 어디서 죽어야 하는지 까지 헤아리는 당신은 정말, 정말 위대한 분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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