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1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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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죽음의 순간에서 시작. 유배지로 가기 전 정조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로 (상)편에 나온다. 현실세계에서 단련되는 정약용의 모습들이 엿보인다. 젊은 시절 인연을 맺은 이벽, 이가환과 셋째 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상) 26 그러한 처지일수록 책을 많이 읽고 저술을 하라고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권했다. 세상사를 둘러보면 저술할 수 있는 감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농사꾼이나 옹기장이나 뗏목 타고다니는 사공들이나 장사꾼들의 살아가는 모양새, 발 끝에 차이는 돌멩이, 무성한 길섶의 풀잎, 들과 산에 널려 있는 약초들, 천의무봉의 치장을 한 예쁜 꽃들과 기묘한 무늬의 나비와 벌과 새, 기는 벌레, 숲에 사는 짐승들이 다 저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눈을 바로 뜨고 보면 반드시 보이는 것이 있는 법이라고.
그렇지만 자식들은 그것을 아비만큼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은 볼 수 있는 것을 볼 뿐, 볼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보지 못한다. 아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자식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상) 32-33 여유당 편액이 회혼례의 잔치 마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릇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파고 들어와 뼈를 깎는 듯할 테니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건너려 하지 않을 것이며, 온 사방이 두려운 사람은 자기를 감시하는 눈길이 몸에 닿을 것이므로 참으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그 일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계의 말 ‘여유(與猶)’를 편액으로 걸어놓고 삼가고 또 삼가며 살아온 정약용의 회혼례 잔치 마당.
(상) 150 임금이 저를 금정 찰방으로 보낸 것은, 그 동안 제가 우리 유학 성인들의 말씀을 등한하게 실천하고 잠시 서학에 기울어졌던 행실을 반성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임금께서 중국에서 들어온 경박한 소설문체를 쓸어내고 원시 유학의 견고한 문체를 쓰게 하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한때 서학에 눈을 돌렸던 것을 진실로 참회합니다. 우리 조선 사회 전체는 성인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아온 것을 참회해야 합니다. 천주학이나 소설문체에 호기심을 가지려 하는 뜻있는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공맹의 정학과 성호 선생의 저술들을 부지런히 읽고 실천하게 해야 합니다. 이공과 제가 먼저 진심으로 읽고 실천을 해야 다른 우매한 사람들이 본받을 터입니다. 특히 성호 선생의 실사구시 정신을 고양시켜야 합니다.
(상) 167 사나운 뇌성벽력은 햇빛으로 이기고, 강한 햇빛은 음음한 꽃그늘로 이기고, 향기로운 꽃그늘은 물로써 이기고, 물은 달빛으로써 이기고, 달은 해로써 이기고, 해는 밤으로써 이기고, 기나긴 밤은 잠으로써 이긴다.
(상) 188 음악을 알고 그것을 즐겨 듣는 권력자는, 농부가 소를 끌고 자기네 보리밭 언덕을 지나갔다 하여 그 소를 빼앗지 않고, 오히려 그 농부에게 부드러운 풀 많은 벌판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준다. 음악을 즐겨 듣는 선비는 모름지기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사업, 말도 좋고 마부도 좋아하는 사업, 노론도 좋아하고 남인도 좋아하는 사업을 펼친다.
(상) 193 아름다운 이 강산의 풍광은 하늘이 만들었지만, 하늘 명령을 받은 깨달은 자의 눈이 새로이 빛나게 해석해야만 우리 강산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눈을 감을 때 자식들이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을 때)
(상) 206 윤휴는 ‘어찌하여 주자만 천하의 이치(진리)를 알고 나는 몰라야 한단 말인가? 이 세상 누구든지 천하의 이치에 대하여 논할 권리와 자유가 있는 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윤휴야말로 <시경>의 ‘어여쁜 아가씨와 노래 부르고 싶고, 말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충실하게 실천한 분입니다. 주자의 드높은 벽에 막혀 있는 송시열보다는 주자를 뛰어넘는 윤휴가 더 뛰어난 학자였으므로, 송시열은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를 겁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에 대단한 학문과 정치의 권력자인 송시열은 반대당인 윤휴라는 남인의 학자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처형하게 했습니다. ~~ 송시열은 윤휴를 죽이면서 주자학을 반대한 이유로 처형했지, 효종의 복제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었습니다.
전하, 성인이 진리라고 말한 것은, 인민의 삶을 더욱 잘살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진리가 권력과 영합한 절대 진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인민의 삶에 차꼬를 채우고 인문의 자유와 권리를 옥죄어 죽이는 칼이 아니겠습니까?
정조 임금은 허공을 쳐다보며 오랫동안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 219 “임금이 왜 반드시 가끔 활쏘기를 해야 하는 줄 아느냐?”정약용이 <백호통의>에 있는 것을 인용해서 말했다.
“제왕이 활을 쏘는 까닭은, 사나운 것을 제압하기 위해서이고, 교활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 떨쳐버리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지존의 외로움을 개운하게 씻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정조임금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고 나서 시위를 당겼다.
--> 영화 활을 봤을 때도, 이 대목을 볼 때도 활을 쏘는 자세는 고독 앞에 선 궁사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상) 236~237
“너 스스로가 초계문신으로서 혜택을 받고 있으면서도, 초계문신 제도가 임금의 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잘못된 제도라고 네가 그랬듯이…… 그것은 그렇다. 나는 외로웠고, 내 편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주위에 포진시키고 싶었느니라.”
말을 중단하고 임금은 얼굴을 찡그렸다. 몸 어디인가가 많이 아픈 듯했다.
“남인들은 침체된 이 땅에 새 문물, ……천문, 지리, 수리, 기하원리를 받아들여 활용하자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들을 좋아하고 중용하려 했다. 그런데 그 새 문물 속에 천주학이 끼어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노론은 천문, 지리, 수리, 기하원리 같은 것들은 젖혀두고 오직 천주학만을 공격한다. 천주학쟁이들이 조상의 제사 지내기를 거부함으로써 나라의 근본사상을 시들게 하고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공격을 억누르기 위해서 감각적인 소설문체를 도입해서 쓰는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예스러운 아름다운 문체를 외면하고, 경박한 소설 문장투의 문체를 쓰고 있는 것, 예문관에서 숙직하는 자들이 패관소설이나 읽고 있는 것……. 이 나라가 장차 더 얼마나 방탕해지려고 이러는 것이냐. 나는 남인이 천주학을 받아들인 것이나, 노론 계열 사람들이 소설 투의 문체를 받아들인 것이나 그게 그것이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상) 244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도세자의 석 달 동안의 잠적은 무엇이었을까. 채제공은 사도세자가 강원도 한 산골의 은밀한 곳에 훈련소를 마련하고, 그곳에 군부대를 양성하다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돌아 노론 계열 신하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군자금은 어디에서 마련했을까.
사도세자 사후에, 사도세자가 종로통의 상인들에게 이유를 밝힐 수 없는 빚을 많이 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렇지만 상인들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자 자기가 돈 꾸어준 일을 쉬쉬 덮어버렸다. 물론 사도세자가 양성해놓은 군사들 또한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 흔적도 없이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 무사 백동수?
(상) 289
“세상의 모든 진리는 죽어간 사람들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잘살 수 있도록 편하고 유용하게 쓰여야 진정으로 올바른 진리입니다. 조선 사회는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조상신을 모셔온 유학 사회입니다. 저도 한때는 천주학을 신앙했지만, 천주학이 조상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철폐한다고 했을 때 저는 천주학을 과감하게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셋째 형님께서는 조선 땅에서 조선 임금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셋째 형님의 처지를 생각하시고 고집을 꺾으셔야 합니다. 셋째 형님 한 사람의 고집이 우리 정씨 가문을 참담한 폐족으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상) 330
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하듯, 머릿속에 책이 5천 권 이상 들어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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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에서는 유배살이를 하며 지내는 다산을 집중 서술한다. 특히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큰 산을 이뤄가는 면모가 잘 다뤄져 있다. 강진에서 만나는 연두머리처네(주막집 딸-가상의 인물이겠지?)와의 인연, 다산을 만나 길을 잃은 혜장(아암)과 새로운 길을 터득한 초의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둘째 형을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표현한 부분에서는 슬프고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정약용과 천주학과의 관계.. 이 책에서는 단순히 학문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리고 완전히 참회한 것도 아닌, 신앙으로서의 천주교를 거론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힘들 때마다 하늘님을 찾는 것도 그렇고..
(하) 19
“구역질해서 다시 토해낼지라도 일단 우물우물해 가지고 꿀꺽꿀꺽 삼켜놔라. 좌우간에 먹는 놈이 살아나지 안 먹는 놈은 다 죽는다. 밥이 보약이다. 처음에 읽기 싫은 책이라도 읽다가 보면 맛이 들어 잘 읽혀지듯이 자기의 부실한 몸을 위해 먹어야 할 밥을 기어이 먹고, 자기 읽어야 할 책을 기어이 읽는 것만큼 크나큰 효도는 없다. 어서 먹어라. 구역질을 해서 토해낼 때 토해낼지라도 마음 단단히 먹고 일단 꿀꺽꿀꺽 삼켜놔라.”
-> 다산이 오래도록 옥에 갇히고 유배생활을 이겨낸 힘의 원천을 보는 듯 했다.
(옥에 갇혀 있을 때)
(하) 75
(아끼는 제자 황상과의 대화에서)
“이 고을에도 글 잘하는 훈장들이 많을 터인데 하필 귀양살이 하는 죄인한테서 글 도둑질을 해가려 하느냐?”
“소인의 아비 말이, 이 고을 훈장이 우리 동네 뒷동산이라면 영감은 백두산이나 곤륜산이라고 했구만이라우.”
“이 사람아, 뒷동산은 쉬 올라갈 수 있지만 백두산, 곤륜산은 올라갔다가 길을 잃고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동산에서는 꿩이나 메추리를 만날 수 있을 뿐이지만 백두산, 곤륜산에서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고 했구만이라우.”
정약용은 다시 하늘을 향해 “어허허허……”하고 웃었다.
(하) 103
적들의 저주를 받고 유배살이 하는 사람으로서, 오탁악세를 헤쳐나가는 뜻있는 선비로서 몸을 더욱 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거처하는 방을 ‘사의재(四宜齋)’라고 이름지어 부르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의 이름이 그 운명을 좌우한다. 사의재라는 이름이 이 방에 거처하는 나의 운명을 바꾸어 줄 것이다.
첫째로, ‘생각을 맑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맑아지지 않으면 더욱 맑게 하고, 둘째로, 용모를 단정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단정해지지 않으면 더욱 단정히 하고, 셋째로, 말을 반드시 필요한 것만 말하되, 말을 뱉은 다음 그것이 꼭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싶어지면 더욱 잔말을 줄이고, 넷째로, 행동을 무겁게 하되 저절로 무거워지지 않으면 더욱 무겁게 하려 애쓴다.’
(하) 162
혜장이 말했다.
“거래를 하되 상대의 몸과 마음을 흠집을 내지 않는 거래를 해야 하구만이라우. 새들이 하늘을 날지만 하늘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요. 꿀벌은 꽃한테서 꿀하고 꽃가루를 가져가지만 상처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정받이를 도와줍니다요.”
정약용은 생각했다. 목민관과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 175~176
정약용이 말했다.
“공부(工夫)라는 글자를 분석해보면 아주 재미있네. 工(공)자는, 하늘(一)과 땅(一) 사이를 丨(위 아래로 통할 곤)으로 이어놓는 글자이고, 夫(부)자는 사람(人)이 머리로써 하늘과 땅(二)을 뚫어버리는 글자이네. 그러므로 공부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과 땅의 원리를 통달하게(覺:깨닫게) 만드는 것이고, 그렇게 잘 만들어진 사람은 하늘의 명령에 따른 사업(일)을 참으로 행해야 하네. 하늘의 명령에 따라 땅에서 행(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일 수 없네. 텅 빈 마음, 즉 본연지성을 갖추려 하는 참선 그 자체가 절름발이 사업이므로, 참선을 일삼는 스님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네.”
혜장이 반발했다.
(유학자들의 부패상 지목해서 반발)
“아니야, 나는 실천을 말하는 것이네. 요즘 뜻있는 개혁 유학 선비들은 모두 사업을 실천 쪽에서 찾고 있네. 불교쪽 사람들도 이제는 위만 쳐다보며 깨달음만 구하지 말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못살고 박해받는 백성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쪽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네.”
(하) 279
(초의선사와의 대화에서, 글욕심을 부리느냐는 무언의 질문에)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이 천지간을 드나든 흔적을 남기자는 것이다. 내가 상처 받으면서 생각한 것, 죄짓고 후회한 것, 참회한 것, 실수하고 나서 문득 깨달은 것을 나 혼자 가슴에 품고 떠나가 버리면 나를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아무 것도 공헌할 수 없지 않느냐? 그래서 시시콜콜 글자로 기록해 남기려는 것이다.”
(하) 313
(정약용의 사후 천국에서 이벽, 둘째 형과 해후한 후 마지막 쪽에서, 상편 처음 시작도 이 시로 시작된다. 거문고는 정약용 자신이겠지?)
거문고는 왜 신의 악기[神琴]인가
수많은 누에고치들의 순절 때문이네.
그들의 몸을 비틀어 꼰 울음은
혼의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은 빛이 되고
찬란한 빛은 새가 되어
펄펄 하늘 한복판으로 날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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