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마음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1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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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한 책이다. <정선 목민심서>를 읽으며 그의 치밀함과 섬세함에 감탄했다면 치밀함과 섬세함을 가능하게 했던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안과 밖이 완벽하게 일치한, 아니 일치하려 끊임없이 노력한 인간적인 다산의 모습이 구절 하나하나에 드러나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특히 ‘파리를 조문하다’는 그의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드러난 명문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 외에도 모범생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려 하지만 스스로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글들과 유연한 삶의 태도, 자식들을 준엄하지만 따뜻하게 꾸짖는 아버지의 모습, 어려서 안타깝게 죽어간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 정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작은 것에서 큰 것을 깨닫고, 큰 것에서 작은 것들의 소소함을 깨닫는 마음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의 치열한 노력이, 적어도 나 같은 소심한 한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는 점에서, 그는 진정한 위대한 ‘사람’이다. 정말 존경하고 또 존경한다.
마지막으로 ‘돌베개’출판사의 번역이 아쉽기도 하고 때론 너무 감탄스러웠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매 구절마다 달아 놓아 아쉽기도 했지만, 하고 싶었지만 능력이 부족해 표현할 수 없었던 내용을 표현해 주어 고맙기도 하다. 특히 글이 지어졌던 때를 다산의 나이와 연결지어 보충해주었던 부분이 고맙다. 다산의 고민과 생각들이 그의 나이와 연결지어져 인간적으로 이해를 깊게 했다.
<인상 깊은 구절> - 고르고 또 골랐다.^^;;
26 [좌천의 즐거움과 괴로움]
‘찰방’이라는 직책은 괴로움을 살피고 병폐를 찾는 것이다. 말이 병들어 상태가 좋지 않으면 찰방의 죄이고, 역부의 노역이 공평하지 않아 원망이 있으면 찰방의 죄이고, 임금의 명을 받아 서울에서 잠시 파견되어 온 관리가 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하여 말과 사람들을 고달프게 할 때 법에 의거해 그런 짓을 그만두게 하지 못하면 찰방의 죄이다. 이는 찰방직의 괴로움이니 마냥 기뻐할 것은 못 된다.
-> 모두들 찰방이란 직책이 이득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나 다산은 그에 따른 책임을 먼저 생각한다. 그게 엄살이 아니라는 것이 <정선 목민심서>와 겹치면서, 다산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몇 개월 되지 않는 찰방이라는 직책에서도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던 다산의 모습이 그려진다.
31 [퇴계 선생을 우러르며]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남을 깔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재주와 능력을 뽐내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영예를 탐내고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남에게 베푼 것을 잊지 못하고 원한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생각이 같은 사람과는 한 패거리가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공격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잡스런 책 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고, 함부로 남다른 견해만 내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한 가지 허물이니, 가지가지 온갖 병통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여기에 딱 맞는 처방이 하나 있으니 ‘고칠 개(改)’자가 그것이다.
-> 세상 사람은 모두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한다. 설령 자신의 허물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고치거나 반성하지 않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다산은 스스로를 완벽하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단련하고 반성했다. 이른 바 반성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실천했던 것이다. 나 또한 나의 허물을 끊임없이 새기고 ‘고칠 개’를 마음에 새겨놓고 싶다.
[유배생활 12년 - 둘째 형님께]
48-49 하늘이 이곳 다산을 나의 별장으로 삼아 주었고, 보암산 작은 밭에서 나오는 소출로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평생토록 세상을 마칠 때까지 아이 울음소리, 부인네 탄식 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복이 이처럼 후하고 지위가 이처럼 높은데, 이런 신선 세계를 버리고 아비지옥으로 몸을 던지려 한다면 천하에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 다산이 유배생활의 이점을 둘째 형님께 보낸 편지내용이다. 실제로 다산이 가족과 현실적인 생계문제를 떠나 있었기에 역사적인 집필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자족적인 모습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은 다산의 마음이 행간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정약전도 나와 같을까?
[음악은 왜 필요한가?]
79 음악이 없으면 백성을 끝내 교화할 수도 없고, 풍속을 끝내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온 세상에 화평한 기운을 생겨나게 할 수 없다.
-> 다산은 책상머리만 지킨 모범생이 아니었다.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남미의 ‘엘 시스테마’의 기적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겠지?
[파리를 조문한다]
89 아아, 이 파리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 변해서 이 파리들이 되었다. 아아, 이들은 기구하게 살아난 생명들이다.~~~~~
-> 다산의 통찰력, 그리고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빛나는 명문이다. 괴변 같은 파리 떼를 보고 어찌 전년도의 기근으로 인한 백성들의 무고한 죽음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인간적이면서 과학적인 그의 통찰력과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이 이 글에 오롯이 담겼다. 이 글을 보고 나는 다산의 팬이 되었다.
[임금님의 깊은 마음]
115 <사기>를 교정하는 것은 신(臣)들을 위한 일이었다.
-> 규장각에서 정조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일하는 다산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아무리 혹독한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나를 이해하고, 나를 알아주고,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주군과 함께라면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 게다가 저녁까지 챙겨주는 관리자를 만난다면? 아..... 그들의 아름다운 관계가 너무 부럽고, 또 부럽다.
[효자 정관일]
165 “네가 한 번 죽어서 나는 셋을 잃었다. 아들을 잃고, 친구를 잃고, 스승을 잃었다.”
-> 다산은 <목민심서>를 통해서도 이야기한다. 효행이 가짜로 만들어지고 있는 세태를. 허벅지를 자르고 얼음 속에서도 고기를 찾아내는 기적이 사실은 업적을 만들어내기 위한 위험한 거짓임을. 그래서 강진의 효자 정관일의 일화는 다산에게 새롭고 귀한 일화였던 것이다. 평소에 진심을 다한 마음은 부모로부터 ‘스승, 친구’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울림이 큰 이야기이다.
[밥 파는 노파]
174~175 제가 생각해 보니, 풀과 나무에 비유하자면 아버지는 씨앗이요, 어머니는 땅입니다. 씨앗을 땅에 뿌리는 일은 지극히 미미한 일이지만, 땅이 씨앗을 길러 내는 공덕은 매우 큰 것입니다. 밤톨은 밤나무가 되고 볍씨는 벼가 되니, 온전한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 땅의 기운입니다. 그렇지만 유가 나누어지는 것은 모두 씨앗에 따라 나누어지는 것이니, 성인이 교화를 펴고 예를 제정한 것은 생각건대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 소설 <다산>에서도, <지식경영법>에도 나오는 말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다산이 여성에 대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고미숙선생님이 박지원을 읽으려 하면 당시 시대를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 하셨지만, 다산은 이미 시대를 떠나 더 멀리 날아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오직 독서뿐]
186 너희들은 끝내 배우지 않고 자포자기해 버리면 내가 저술하고 편찬한 것을 장차 누가 수습하고 정리하며, 바로잡고 편집하겠는가? 너희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 글은 끝내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내 글이 전해지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나를 탄핵한 글과 재판 기록만 보고 나를 판단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너희들은 아무쪼록 이런 점을 생각하고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기 바란다. 나의 이 한 가닥 학문의 맥이 너희들에게 이르러 더욱 커지고 더욱 발전한다면 그 맑음과 귀함은 대대로 벼슬한 집안과도 바꿀 수 없게 될 것이다. 어찌하여 글 읽기를 그만두고 하려 하지 않느냐?
-> 다산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글. 이 편지를 받고 아들들이 떠올렸을 표정을 생각하니 웃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이런 재촉과 엄격함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토록 소중한 글을 공부할 수 있었다. 진정 다산의 방대한 집필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었을 터이다. 절박한 심정에서 자식을 꾸짖은 다산의 마음과, 힘든 상황에서 아버지의 명을 받고 실천했을 아들의 마음이 모두 느껴지는 대목이다.
[가을 하늘을 솟아오르는 한 마리 매처럼]
196 너는 나와 네 어머니에게서 나왔으니 어찌 큰 숲처럼 넉넉한 도량이야 있겠냐마는 그래도 너는 너무 심하다. 자식이 부모보다 더한 것은 이치로 보면 그럴 수박에 없겠지만, 끝내 이처럼 좁아서야 티끌도 용납하지 못할 터이니 하물며 만경창파처럼 드넓게 모든 대상을 감싸 안을 수 있겠느냐?
-> 자식을 나무라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전교 1, 2등을 다투던 부모 밑에서 중하위를 맴도는 자식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탁 위의 허무맹랑한 전설이 되었다. 자식을 꾸짖고, 일으켜 세우려는 마음을 다산에게서 배우자. 스스로를 도량이 좁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식의 성품도 이해할 수 있는 큰 도량을 지닌 부모의 마음을 배우자. 그래야 진정으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야단을 칠 수 있을 것이다.
[재물을 오래 간직하는 법]
205 저물녘에 숲 근처를 거닐다가 우연히 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다급하게 소리쳐 울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마치 누군가가 무수한 송곳으로 배를 찌르고 절굿공이로 마구 가슴을 때리는 듯했다. 너무나 참담하고 절박하여 잠깐 사이에 거의 죽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나무 밑에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다고 했다. 아아, 천하에 이 어린아이처럼 울지 않는 자가 몇 사람이가 되겠는가? 관직을 잃고 세력이 꺾인 사람, 손해를 보고 재물을 잃은 사람, 자식을 잃고 너무 슬퍼 거의 실성한 사람, 이 모두가 달관한 경지에서 본다면 밤 한 톨에 울고 있는 것일 따름이다.
-> 내 모습을 돌아 보게 한다. 이 모두가 밤 한 톨 뺏기고 죽을 듯이 울어대는 아이와 같은 것인데.. 왜 나는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고 아파하는가?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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