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양록(~84) 인상 깊은 구절

간양록조선선비왜국포로가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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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강항 (보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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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세월-내가 겪은 정유재란]

14 내가 아끼던 사내종 만춘은 물을 길어오겠다는 핑계로 배에서 내려 달아나 버렸다.
→ 아끼던 종의 배신! 가슴 아픈 대목이기도 하지만, 웃음이 나오기도.

14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님의 신주를 둘째 형이 등에 업고 물속에 뛰어들었다가 적이 건져 낼 때 그만 건사치 못하였다. 살아 계시던 아버지를 잃고, 돌아가신 분들의 신주마저 잃어 사람의 도리조차 한 번에 잃고 말았구나!
→ 신주단지 아낀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대목

17 노비 중에 나를 버리고 달아난 자는 모두 살았건만 주인을 못 잊어 차마 가지 못한 자는 적에게 모조리 살해되다니, 어어, 불쌍하여라!
→ 도망간 노비는 살고, 주인을 지킨 노비는 죽고. 이래서 임진왜란이 조선전기와 후기를 가르며 신분제도의 붕괴를 가져온 분기점이라는 것도 수긍이 되었다.

17 포로가 되어 여기 이르기까지 무릇 아흐레 동안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하였건만 그래도 죽지 않으니 과연 사람의 목숨이 이처럼 질긴 것인가.
→ 구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니.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나도 견딜 수 있을 것인가?

17 이날에야 왜녀가 밥 한 그릇씩 나누어 주는데 뉘투성이 쌀에 모래가 절반으로 비린내가 코를 찔러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갈이 심하여 그것을 먹었다.
* 뉘 : 쓿은(껍질을 벗긴)쌀 속에 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
→ 모래가 절반인 밥~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나?

19 둘째 형의 아들 가련은 겨우 여덟 살인데 목이 몹시 타사 짠물을 마신 까닭으로 구토 설사를 하다가 병이 나서 누워 있었는데 왜놈이 별안간 달려들어 바다에 내던졌다.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오래오래 끊이지 않았다. 아아, 기막혀라! “아이야, 아이야, 아비도 바랄 수가 없느니라!”한 것이 과연 이를 두고 말한 것인가!
→ 가장 슬프고 먹먹했던 장면! 여덟 살 짜리 우리 아들이 생각이 나 그랬던 것 같다. 나 같으면 함께 뛰어들어 죽었을 듯.

20 바다와 산들은 붓으로 그린 듯, 밀감나무 숲들은 곳곳이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게 모두 아귀의 소굴인 것이 참으로 슬프다.
→ 당시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포로로 끌려갔어도 이런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왔을 듯.

21 어떤 왜인 하나가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서 부축하더니, “심하여라, 대합이여! 이 사람들을 잡아다가 무엇에 쓰려는고. 어찌 하늘이 무심하랴!”탄식하고는 급히 자기 집으로 달려가서 서속밥과 차를 가져와 우리를 먹이니, 비로소 귀가 들리고 눈이 보였다. 왜인도 이런 어진 품성을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은가.
→ 왜인들 중에서도 동정심이 있고 인간다운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고, 강항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기록했겠지?

26 왜인들은 원래 귀신을 숭상하므로 음식 먹을 때에도 반드시 해와 달에 제사하며 자나 깨나 항상 염불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풍습을 따라 하늘의 명, 부처의 말을 빌려서 그들에게 경고를 주어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자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의 괴수 풍신수길이 6월 초부터 병들어 가을에 가서 죽었으니 이 말이 또한 효험이 없다고 하지 못하게 되었다.
→ 일본의 미신을 이용하여 탈출하는 도중에 낙서하며 일본을 저주하는 강항의 마음이 참으로 대단하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풍신수길이 죽었다니 강항의 진심이 하늘에 닿은 것인지?

30 강사준, 정창세와 하대인에게 시를 지어 주었다. 그들은 진주의 세 성씨로 당파를 떠나 매우 반갑기 때문이다.
→ 당시에도 당파가 있었고, 또 전란 중에는 당파를 떠나 우정을 주고 받았다는 것이 특이했다. 근데, 왜 이후에는 더욱 더 분열되었는지?
* 순수좌 (후지와라 세이카) 강하에게 유학을 배워 일본 주자학의 시조가 된다.

33 나는 중 순수좌를 사귀어 글씨 품을 팔아 돈을 마련해서, 몰래 임진년 포로인 신계리, 임대흥 등과 의논하여 탈출하기로 약속하였다.
→ 순수좌에 대해 잘 알고 싶다. 강항은 계속해서 낮게 이야기 하지만 조선이 포로에게 몸을 낮춰 학문을 하고자 하는 순수좌의 순수한 마음이 이끌린다. 그리고 입이 싼 신계리도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적국에서 올린 상소]

<삼가 주상 전하께>
41 패한 장수는 용맹을 논할 수 없다 하거늘 하물며 신이 포로가 되어 적의 소굴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지탱하고 있는 처지로 감히 붓을 놀려 조정 정책의 득실을 논할 수 있사오리까. 이는 분수에 지나쳐 죄를 벗어날 길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죽음으로 간한 자도 있고 죽음에 닥쳐서도 나라를 위해 계책 올리기를 잊지 않은 이들이 있었사오니 진실로 나라에 조금이라도 이로울 만한 것이 있다면 죄인이라 하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분명 포로이며, 당시로서는 죄인이라는 수치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강항이 정말 대단하다.

<왜국 지리와 군제>
1. 풍신수길의 득세 -일본의 역사와 풍신수길
2. 왜국이 조선보다 큰 듯 - 일본의 가나문자(흥법대사)와 일본의 지리, 사람들의 성정(미신숭배)
3. 임진년 우리나라에 쳐들어온 왜장들-명단
4. 정유년의 왜장들- 명단
5. 군대는 왜장의 사병들로  - 왜의 군제와 싸움의 전공에 따른 상벌제도

<방비을 위해 드리는 충언>
1. 관원을 임명할 때 가문을 묻지 마시고
(61) 조정에서 관원 하나를 바꾸는 것은 큰일이 아닌 것 같지만, 그 때문에 아래로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백성들 목숨이 온통 흉포한 적의 칼날 아래 빠지게 되니 큰일이 아닐 수 없으며 나라의 안위가백척 간두에 서 있으니 더욱이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장수 하나를 내실 때에도 신중히 생각하시고 변장 한 사람을 바꿀 때에도 신중히 생각하셔서 문관이든 무관이든 어느 쪽에 국한하지 마시고, 품계와 격식으로 예를 삼지도 마시고, 고루한 신의와 사소한 덕행도 묻지 마시고, 이름난 가문을 택하지도 마소서. 오직 유능한 인재로서 기개와 지략이 있어서 일찍이 왜적과 용감하게 싸워 뚜렷한 공을 세운 자를 택하시어 호남과 영남의 장수로 삼으소서.
→ 지금 이명박 정부도 이 구절을 되새겨야 할 듯.. 어찌 천거하는 사람마다 그 모양인지.

2. 장수들이 백성을 침탈하지 말도록 하옵시고

3. 대마도주와 소서행장이 일으킨 참화
→대마도주는 실제를 알게 되어 충격적. 이건 일본과 조선에 모두 적인 셈?

4. 지리와 성읍 제도를 살펴 고치시길
→담양 금성과 나주 금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됨, 그렇게 완벽한 성이었다니.

<왜국의 정세 변화와 동향>
1. 살벌한 왜인들
2. 소서행장과 가등청정
→ 두 사람을 이간질 하지 못한 점을 분통해 함
3. 농민 약탈
4. 도깨비 같은 왜적
→ 화려하게 치장한 왜적이 다소 황당해 보이나, 이유가 있음을 지적함
5. 항복한 왜군에 대하여

(74) 항복한 왜군을 죽이는 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 항복한 왜군을 잘 이용하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역설함. 신선하고 타당하다 생각.

<풍신수길의 죽음>
1. 풍신수길의 죄악
→ 조선인의 코를 무자비하게 베어서 소금에 절였던 풍신수길이 죽은 뒤 소금절임을 당한 것을 통쾌하게 서술함
2. 풍신수길이 죽은 뒤의 정세
3. 이엽의 비장한 죽음
→ 이엽이 두 번 등장함. 이엽이 혹시 풍신수길에게 농락당한 것은 아닌지? (수염을 만지거나 등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보아)
4. 사지에서 살아나
5. 무기를 날카롭게 갖추시옵고
→ 한 편을 써서 고국에 부치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세 편이나 써서 각각 다른 이에게 부쳤던 점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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