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만필(상)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10. 11. 24.
1. 만필?
1) 국어사전 : [명사]<문학>일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끼거나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는 일. 또는 그 글. 대체로 글 속에 사물에 대한 필자의 풍자나 비판이 들어 있다. 비슷한 말 : 만록2(漫錄)ㆍ만문1(漫文)ㆍ산록3(散錄).
2) 용어사전 : 어떤 주의나 체계가 없이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는 일. ꃞ만문(漫文).
(용례)
사간원에서 논핵하기를, “과장의 문자는 노자•장자와 이단 등의 말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하게 금령인데, 금번 2소에서 입격한 거자의 시권 가운데는 불경의 말이 많이 있었으니, 심지어는 극락세계•8백 나한 따위의 말까지 있었으며, 1소의 거자 시권 가운데에는 서포패설로써 두서를 삼았다고 합니다. 서포는 곧 근래 재신의 호이고, 패설이란 곧 만필한 소설의 종류이니, 이러한 격식 외에 효잡한 글을 엄중하게 금단을 가하지 않는다면, 과장을 엄중히 하여 뒷날의 폐단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 諫院論 科場文字 不使用老莊異端等說 明有禁令 而今番二所入格擧子試券中 多有佛語 至有極樂世界八百羅漢等語而一所入格擧子試券中 有以西浦稗說 爲頭說云 西浦 卽近來宰臣之號 而稗說 卽漫筆小說之類也 如許格外淆雜之文 若不痛加禁斷 則無以嚴科場而杜後弊 … [숙종실록 권제48, 25장 뒤쪽, 숙종 36년 5월 21일(을유)]
2. 몽테스키외?
보르도 출생. 계몽사상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다. 보르도에서 법률을 공부한 후, 파리로 나가서 많은 학자들과 사귀었다. 1714년 보르도 고등법원의 평정관(評定官)을 지내다가 뒤에 원장이 되었다(1716∼1726). 1721년 당시의 프랑스를 풍자적으로 비판한 작품 서간체(書簡體)의 소설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익명으로 출판하였다. 재치 있는 기지(機智)와 기교에 넘친 이 작품은 그를 파리 사교계에서 유명하게 하였다. 그는 곧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되어 1728년부터 유럽 각국을 여행하였고 영국에 3년간 체재하였다. 그 동안 각국의 정치 ·경제에 관해 관찰하고, 기록하여 이를 바탕으로 하여 《로마인의 성쇠원인론(盛衰原因論)》(1734) 등을 저술하였고, 또 10여 년이 걸린 대저(大著) 《법의 정신》(1748)을 완성하였다. 이것은 곧 금서목록(禁書目錄)에 올랐으나 2년 동안에 22판(版)을 냈다.
법을 연구하자면 선험적인 이론으로서는 안 되며,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구체적 현실의 상황에서 출발하여야 한다고 믿은 그는, ‘자유의 거울’인 영국 헌법의 원리를 상세히 분석하였다. 어떤 영국인은 그에게 ‘당신은 우리들 자신보다도 우리들을 더 잘 이해하고 있다’라고 말하였을 정도이다. 개인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사법 ·입법 ·행정의 3권으로 나뉘어 서로 규제 ·견제함으로써 비로소 확보된다고 하는 그의 3권분립의 이론은, 왕정복고(王政復古), 미국의 독립 등에 영향을 주었고, 19세기의 자유주의가 옹호하게 되는 기본적 자유의 규정에 공헌하였다. 흑인에 대한 극도의 편견, 아시아 정치체제에 대한 유럽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면 등이 있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 사회의 분석은 E.뒤르켐의 말처럼 근대의 사회학에 방법과 연구의 영역(領域)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만년에는 시력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저작에 착수하였으나, 대부분이 그의 생전에는 간행되지 않았고 《여행 노트》 《서간(書簡)》 등은 1941년에 겨우 출판되었다.
3. 서포만필이 비판한 <자치통감>은 어떤 책?
ⓒ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발췌
중국 북송(北宋)의 사마 광(司馬光:1019~1086)이 1065년~1084년에 편찬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 294권. 《통감(通鑑)》이라고도 한다.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晉)나라 3경(卿:韓 ·魏 ·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것이다. 주기(周紀) 5권, 진기(秦紀) 3권, 한기(漢紀) 60권, 위기(魏紀) 10권, 진기(晉紀) 40권, 송기(宋紀) 16권, 제기(齊紀) 10권, 양기(梁紀) 22권, 진기(陳紀) 10권, 수기(隋紀) 8권, 당기(唐紀) 81권, 후량기(後梁紀) 6권, 후당기(後唐紀) 8권, 후진기(後晉紀) 6권, 후한기(後漢紀) 4권, 후주기(後周紀) 5권 등 모두 16기(紀) 24권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사마 광이 《통지(通志)》 8권을 찬진(撰進)하자 영종(英宗)이 편찬국(編纂局)을 개설하고 사마 광의 주재하에 유반(劉攽)이 전 ·후한(前後漢)을, 유서(劉恕)가 삼국(三國)으로부터 남북조(南北朝)까지를, 범조우(范祖禹)가 당(唐)나라 및 5대를 각각 분담하여 기술하였다. 정사(正史)는 물론 실록(實錄) ·야사(野史) ·소설(小說) ·묘지류(墓誌類) 등 322종의 각종 자료를 참고로 하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서법(書法)에 따라 완성하여 신종(神宗)이 《자치통감》이라 이름을 붙이고 자서(自序)를 지었다.
자치통감이라 함은 치도(治道)에 자료가 되고 역대를 통하여 거울이 된다는 뜻으로, 곧 역대 사실(史實)을 밝혀 정치의 규범으로 삼으며, 또한 왕조 흥망의 원인과 대의명분을 밝히려 한 데 그 뜻이 있었다. 따라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고 독특한 사관(史觀)에 의하여 기사를 선택하고, 정치나 인물의 득실(得失)을 평론하여 감계(鑑戒)가 될 만한 사적을 많이 습록(拾錄)하였다. 편년에 있어서도 3국의 경우에는 위(魏)나라의 연호를, 남북조의 경우에는 남조의 연호를 각각 써서 그것이 정통(正統)임을 명시하였다.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사에는 ‘신광왈(臣光曰)’이라고 하여 사마 광 자신의 평론을 가하고 있어 그의 사관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사실의 진부에 대해서는 사마 광이 따로 《통감고이(通鑑考異)》 30권을 지어 사실의 고증에 참고가 되게 하였으며, 《통감목록(通鑑目錄)》 30권과 《통감석례(通鑑釋例)》 1권에서는 각각 목록 및 범례를 나타내고 있다. 또 사마 광은 《계고록(稽古錄)》 20권을 지어 이 책 내용의 부족을 보충하였다.
<인상적인 대목>
•북위 효문제와 중국동화정책 - 중화주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무리하게 선진문화를 수입하려한 효문제를 비판한 것이 인상적
•당나라 태종의 재평가 -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태종(이세민)에 대해 혈통부터 이민족(돌궐)의 피를 타고 났기 때문에 성군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 놀라웠음
•한유에 대한 평가 (당나라 헌종에 대한 배도, 한유의 지나친 칭송/평회서비의 불공정한 서술) - 한유, 유종원은 당나라의 문장가로 유명한데, 문장이 아닌 태도에 대한 비판도 새로웠음
•망국의 군주 당나라 소종의 행적 -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음
•자치통감의 대풍가 누락 - 대체적으로 자치통감의 태도를 비판하는데, 시를 고르는 안목을 비판한 것도 재미있었음
•자치통감의 우미인 기록 누락 - 항우에 대한 인간적인 면모를 생각하는 서포의 태도가 좋았음
•조광윤의 하동평정 지연 - 주희의 정세를 보는 안목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이 좋았음. 명분이 아닌 지리적, 군사적 접근법이 좋았음
•주자의 인물논평에 나타난 편파성 - 친분이 있는 장준을 두둔한 주희를 비판한 대목 아주 좋았음
서포만필 (상)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전반부에 느꼈던 답답함과 무지로 인한 슬픔, 꼭 읽어야 한다는 절박함은 계속되었다. 사실 글을 읽고 있지만 글자를 읽는 것이지 의미를 해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평설’에 의지해 겨우겨우 읽어나갔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서포가 사유했던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유가와 도가와 불가를 오가며, 중국의 역사를 마치 우리나라 역사인 양 세세하게 기억하고 논평하는 태도는 얼마 전에 끝난 <성균관 스캔들>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이 대목 “지혜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준 세상은 사라지고 없다. 스승이란 이렇게 쓰잘 데 없는 존재들이다. 허나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된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는 것! 비록 <서포만필>(상)을 어렵게 읽긴 했지만 세상이 정해 놓은 일반적인 통념들에 대해 꾸준히 질문하고, 사유하며, 스스로 답을 찾는 태도를 배우고 싶다. 더불어 17, 18세기가 정말 매력적인 시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작품은 그럼 정다산의 책으로??
참고 : <성균관 스캔들> 4회 중 논어재 시간..
<인상 깊은 대목>
•상57 - <맹자> ‘우산지목장’ 제나라 우산의 수목에 빗댄 사람의 성정론. 우산의 황폐해진 모습을 보고 원래부터 초목이 없다고 단정짓는 것처럼 단지 사람한테서만 어떻게 인의의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상59 - 맹자가 제나라의 연나라 정벌을 승인했다는 설 -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다는 맹자의 언행에 대해 지식인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원칙으로 해야 하는가 반성하게 함
•상60-순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장가들었다는 설 - 서적의 기록에는 과장된 표현이 적지 않아서, 그것을 읽을 때에는 문면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함. 당시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경학의 설에 대해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
•상61-고수의 살인사건과 사법관 고요의 조처 - 고수에 대한 이야기, 정말 많이 나온다. “고수가 살인했다면 고요는 법집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나름 재미있었음.
•상65-인심도심설-불교의 “마음으로 마음을 살핀다”와 성리학의 “인심이 도심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는 설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의견
•상69 - 왕안석의 재평가-왕안석이 낚시밥을 먹고 공자가 복숭아가 아닌 복숭아를 닦는 기장을 먼저 먹는 것을 예로 들어 신하가 간언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 인상적
•상70 - 북송 명인들의 편견과 당파성 - 소순, 왕안석, 소식, 정이의 예에서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편견과 결점을 지니고 있고, 그 때문에 같은 시대의 위대한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경우기 종종 있다는 것을 인식함
•상75 - 주나라 성황을 보필한 주공의 공적 - <서경>“팔다리가 있어야 사람이 되고, 어진 신하가 있어야 성군이 난다”
•상76 - 역사후퇴설 비판 - 춘추시대와 후세를 비교해서 역사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줌 - 십팔사략을 읽으면서 조금은 수긍
•상77 - 하은주 삼대의 이상화 비판 - 제목부터 마음에 듦, 유학의 경전은 이상적인 정치를 한 성인과 성군들을 상정해놓고 그들의 업적을 과장해서 칭송한다는 점 비판. 하, 은, 주 시대가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의 도를 결코 실천하지 못했다고 지적
•상81 - 맹자와 주자의 유연한 학문태도 - 번역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평설’의 맹자를 맹자잡게, 주희를 주희답게 만든 것은 그들이 앞시대의 학문을 그대로 추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정진하고 탐구해서 학문 대상을 확대하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데 있다고 봄
•상95 - 제갈공명의 학문과 실천 - 가장 이해하기 쉬운 대목, 제갈량을 유교 사상을 체현한 인물로 존중함
•상101 - 불교의 귀신설 - 불교의 심학(心學)에 대해서는 그것이 유교의 심학과 다르지 않다고 보지만, 불교의 기복 관념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
•상102 - 유교와 불교, 그리고 풍수설에 나타난 죽음의 관념 - 당시 사람들의 풍수설에 골몰하는 모습 크게 비판
•상103 - 주자의 불교 게송 분석 비판 - 주희의 중국(화)의 언어에 운각이 있고, 오랑캐(이)의 언어는 운각이 없다고 생각한 것을 반박, 운의 유무를 가지고 중국의 시와 외국의 시를 구별할 수 없다고 지적, 화이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문화주체사상과 맥락에 따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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