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만필(하)


설 연휴 직후 주말남해를 다녀왔다지독했던 겨울 추위가 사라진 연휴 일주일몸과 함께 마음도 풀렸나 보다봄이 찾아온 듯 들뜨기까지 했다.


남해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다어느 곳을 가도 보이는 바다는 질리지 않았고비릿한 내음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맑았다자연경관도 수려했지만 역사적으로 유배지였던 터라 우연찮게 남해읍에 있는 유배문학관에 들러보았다김만중 중심으로 꾸며진 문학관은 아니었지만김만중이 느꼈을 유배지의 아픔을 체험할 수 있도록 이색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남해도 섬이지만 남해에 딸린 조그마한 섬 노도에서 여생을 마감한 서포가 유배지에서 집필한 책이 <서포만필>이라니 여행 이후 책의 내용이 새롭게 다가왔다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내용은 여전히 오리무중일 뿐..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읽으며나름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하2. 도교, 불교, 유교의 연계 

대개 불법은 한나라 때 동쪽 중국으로 전래되어,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에 이르면서 그 조잡한 것은 도가가 되고 정밀한 것은 유가가 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 근래 서양의 예수교도 불교의 하승(불가의 형식적이고 보잘 것 없는 요소)을 표절하여 설을 만든 것이다. (평설) 서포는 도교와 불교, 그리고 유학의 흐름을 연속선상에서 파악했다. 그리고 세 사상이

서로 배척하는 것은 그 역사적 계기성에서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 세 사상의 근본이 불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친불교적인 서포의 생각이 느껴진다.

하3. 중국의 표의문자와 서역, 몽고, 조선의 표음문자

서역의 범어(산스크리트) 문자는 초성, 중성, 종성이 합해져서 글자를 이루므로 새로운 글자를 무궁하게 낳는다. 원나라 세조 때 서역의 승려 파사파가 그 문자를 변화시켜 몽고글자(파사파문자)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는 그 글자를 이용해 언문을 만들었다. 청나라에서도 이른바 청서(만주족 문자)라는 것이 있는데, 체제는 비록 다르지만 조자의 방법은 같다. 여기서 도양과 서양은 이치상 통하지 않음이 없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직 중국만이 어세(語勢)와 자체(字體)가 스스로 일가를 이루고 있어 이들과 매우 다르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만국 가운데서 홀로 높은 이유이다. 그러나 불법은 사바세계에 행해졌거늘, 주공, 공자의 책은 동쪽으로는 삼한을 넘지 못했고 남쪽으로는 교지(월남)를 넘지 못했다. 이것은 언어와 문자의 이치가 서로 통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평설) 서포는 표음문자의 보편성 및 실용성을 설파했다. 불교는 온 세상에 널리 전파될 수 있었던 반면, 유교는 기껏해야 조선과 월남까지만 전파될 수 있었는데, 그 까닭은 언어구조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 언어가 지식전달의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꿰뚫고 있다. 특히 표음문자의 우수성을 일찍 깨닫고 있었던 서포는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

하5. 훈민정음 29자의 제자 원리

<장자> 저 가장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타고난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발가락이 붙어 있어도 네 발가락이라 여기지 않고, 손가락이 더 있어도 육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길다고 그것을 여분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짧다고 그것을 부족하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연유로 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그것을 길게 이어주면 괴로워하고, 학은 비록 다리가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잘라주면 슬퍼한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을 잘라서는 안 되며 본래 짧은 것을 이어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 여기에 근심할 것은 없다. 생각건대 인의란 사람의 본성이 아니니, 저렇게 인의를 갖춘 자들은 그 많은 걱정을 어찌할 것인가.
✎ 훈민정음 제자원리는 거의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인용한 이 부분은 생각해 볼 점이 많은 구절이다. 가끔 아이들을 볼 때 굳이 저 아이들의 본성을 내가 고쳐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무위자연~

하7. 악부 <목란사>의 ‘극한’

악부 <목란사:중국 북조 무렵의 장편 서사시. 목란이라는 젊은 여성이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 차림으로 출정하고는, 멀리 새북 땅에서 전공을 세워 높은 작위를 얻지만, 이를 버리고 귀향한다는 소박한 민요조의 작품>는 어느 시대의 일인지 알 수 없으니, 그 작품 속의 ‘극한’이라는 말은 당나라 태종과 관련 있고, 또 ‘책훈십이전’도 당나라 제도이므로, 틀림없이 당나라 초기의 작품일 것이다. 다만 그 말이 질박하고 고아하여 한․위 시기의 것에 상당히 가깝다
✎ 서포는 여기서 이 작품의 시기와 ‘극한’에 관련된 내용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렇게 <목란사>에 대해 따로 언급할 정도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목란사>는 디즈니 만화영화 <뮬란>과도 연관이 있어서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하12. 도선 전설과 무학대사 전설 

도선의 요망하고 허탄함이 이와 같거늘 지금의 사대부들까지도 그를 주공과 공자보다 더 존경하고 믿다니, 슬프도다! ~ 지금의 승려들은 무학대사가 이성계의 꿈을 해몽했다는 말을 지어 내어, 비루한데다가 터무니없거늘, 속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가소롭다.
✎ 불교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서포의 자세가 엿보인다. 평설처럼 ‘서포는 불교가 민족문화와 문명에 기여한 점은 인정하지만 승려나 불교 신자의 미신행위에 대해서는 비판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하15. 역관 홍순언 

우리나라 역관 홍순언이 기관에 놀러갔다가 양가의 한 규수가 몰락하여 정절을 잃게 된 처지를 보고 이를 가엾게 여겨 백금을 주었는데, 훗날 그 규수가 재상의 아내가 되어 총애를 받게 되자 그녀의 주선에 크게 힘입었다. 여자가 덕을 끼침은 전쟁을 일으키게도 하고 우호를 맺게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역관 홍순언의 이야기는 <열하일기>에서도 나온다. 연행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문물이 모두 신기하지만 홍순언의 이야기만큼 드라마틱하고 놀라운 결말을 보이는 이야기는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읽어도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또한 ‘종계변무(종계의 억울한 누명-조선 왕조 이씨 종계의 중국 측 문헌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일, 나중에 홍순언의 덕으로 고쳐지게 됨)’라는 말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17. 임진왜란의 전말

당시 위에는 현명한 임금이 계시고, 조정에는 권력을 농단하는 신하가 없었다. 따라서 과거의 쇠망했던 나라에 비교해보면 사정이야 응당 달랐다. 하지만 나라가 태평하고 직무를 게을리 해서 전쟁을 기피했으며, 조정 의론은 분열되고 민심은 흩어져 교활한 왜놈들이 침을 흘린 지 이미 오래였거늘, 우리는 감감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사신으로 갔던 신하들이 어둡고 어리석으며 오만하고 괴팍하여 왜놈들의 충동을 도발하고 조정을 기만했으니, 어찌 난을 일으킬 만한 일이 없었다고 하겠는가?
✎ 외교에도 관심이 많았던 서포. 지나간 역사를 다시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지만, 당시 신하들의 외교와 국사에 대한 태만에 대한 서포의 질책은 매우 온당하게 보인다.

하18.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

문성공 이이의 선견은 정말로 밝았다. 계획한 바도 참으로 좋은 계책이었다. 문성공의 재주 또한 이 일을 처리하는 데 뛰어났다. 그러나 그 계획을 세운 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하늘이 문성공을 빼앗아갔다. 뒤에 그를 계승한 사람이 어찌 다 문성공만했겠는가? 당나라의 전성기 때 변방의 병력이 40여 만이라 백성의 힘이 피폐해져, 천보의 난을 초래했다. 송나라도 궁중의 금위병 때문에 스스로 병들었다. 작은 나라에서 10만을 양병했다면 재앙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음이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나라에 그동안 각박한 정치가 없어서 민심이 이씨에 대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뛰어난 선견지명으로 유명한 ‘십만양병설’에 대해 칭찬할 점은 칭찬하고 비판할 점은 비판했다. 평설에서처럼 임진왜란을 극복한 것은 민심이 이씨 왕조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은 무척 뛰어난 안목이라 보인다.

하22. 인조반정 직전의 점복

예로부터 제왕이 흥기할 때는 실로 천명이 있기에, 복서가 환히 감응하는 것은 이치상 괴이할 것이 없다. 그러나 만약 인사로 말한다면 계해년 3월은 당태종 현무문 거사 직전에 장공근이 거북을 내던졌을 때와 같은 경우였다. 만약 그때 점이 좋지 않았다면 그만두었겠는가?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거사에 임하여 두려워하는 자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점치는 자와 짜고 신도(영묘한 도리)를 빌려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켰을 뿐이다.
✎ 서포는 줄곧 일관되게 미신을 부정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보이고 있다. 인조반정 직전의 김우정과 관련한 점복 행위에 대해 심리적인 논리로 해석하고 있다.

하29. 성인 무오류 관념 비판

큰 성인과 큰 현자의 일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 서포는 또한 공자나 맹자, 주희 등 성현들에 대해 완벽함을 추종하는 것이 아닌 잘못에 대해서는 꾸준히 비판하고 있다. 이렇게 주위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논리가 분명하기 때문이리라. 

하32. <금등>편 재론 - <金縢>
✎ 다른 내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금등’이란 말이 눈에 들어온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금등지사’가 나오는데, 영조가 남긴 알려지지 않은 유서로 등장한다. ‘금등’이라는 말이 작가가 지어낸 것이 아닌 고전의 한 대목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금등 : <서경> ‘주서’의 작품명 - 무왕이 병들어 위독하자 그의 아우 주공이 무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무왕 대신 자기를 죽여달라고 조상들에게 비는 축문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궤짝에 넣고 쇠줄로 묶어 봉해 놓았다. 뒤에 무왕의 아들 성왕이 이것을 열어보았는데, 사관이 그때의 광경을 기록한 것이 이 작품이다.)

하33. 북송 철종의 비 맹후 

아! 훌륭하다. 철종이 맹후를 폐휘시킬 때는 어찌 유첩여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주살되고 맹후가 억조창생의 추대를 받을 줄 생각이나 했으랴? 속언에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는 하늘이 이를 반드시 따른다”했으니, 참으로 그렇다 하겠다.
✎ 서포는 <사씨남정기>를 통해서도 인현왕후의 폐위를 간접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그 외에도 중국 역사 속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예를 계속 찾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역사적인 예를 들어서 논거로 삼으려 하는 태도가 돋보인다.

하41. 부부 합장의 관습

대개 부인들의 본성은 한결같기 때문에, 부부가 같은 구덩이에 묻히는 것을 살아 있을 때 거실에서 함께 지내던 것과 다르게 여기지 않는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의 본성은 정말 다름이 없다. 살았을 때 거실을 달리 썼던 사람도 죽은 뒤 같은 구덩이에 묻히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없거늘 해로했던 사람이 어찌 죽어서 서로 다른 곳에 묻히기를 바라겠는가? 이것은 부인과 남편이 공통적으로 그러했으니, 운명할 때 이르러 유언을 해서 신신당부할 것도 아니었다.
✎ 부부가 한 무덤에 묻히는 것은 유언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서포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부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이유인지, 아니면 <예기>에 나오는 풍습에 따르고자 함인지는 모르지만, ‘해로동혈’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58-지형구체설
주자는 말했다. “지금 여기 앉아 있으면서 땅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하늘이 밖에서 운행하는데 땅이 이를 따라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어찌 알겠는가?” 위대한 지식과 통달한 견해라 해도 어찌 주자의 이런 견식만한 적이 있었던가?
✎ 김만중은 천문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역자 해설을 읽기 전까지 정말 관심이 많았고,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의상질의><지구고증>이라는 책까지 저술했다고 하니, 그가 공부한 세계가 무척이나 다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60-<춘추>의 미언대의
춘추시대 송나라 양공의 군사행동을 곡량씨는 문왕에 비교했고, 좌씨는 매우 폄하했다.
✎ 역자는 <춘추>에 대한 김만중의 해석하는 태도를 중점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송나라 양공의 군사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전쟁터에서 군자의 예법을 논하며 적과 정정당당(?)하게 싸우려는 양공의 행동이 과연 옳은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에 대해서 재미있는 토론이 될 것 같다.

67-왕안석의 <독맹상군전>
계명구폐의 인물이 맹상군의 문하에서 나왔기 때문에 참다운 선비가 모여들지 않았다.
계명구폐”, “계명구도반가운 말이 나왔다. <십팔사략>에서 제나라 맹상군의 사람을 그러모은 이야기는 다시 봐도 재미있는 것 같다. 서포는 계명구도와 같은 인물들 때문에 제대로 된 선비가 없었다는 점에서 왕안석과 입장을 같이하지만, 어느 시대이건 결정적인 위기에 계명구도처럼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이들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지금에 와서는 재능이라는 것은 지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71-인간의 불완전성
백이, 유하혜, 양자, 묵자는 모두 큰 현인들이다. 그러나 모두 중용의 도가 아니었으므로 편벽됨이 없을 수가 없었다. 편벽되면 폐단이 없을 수 없으나, 만일 폐단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때라면 그 편벽됨을 교훈으로 삼아 풍속을 바로잡을 수 있다. 마치 약성에 편벽됨이 있으므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폐단이 발생했다면 편벽됨은 도리를 망치고 윤리를 해칠 수 있다.
✎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어정쩡한 것보다는 오히려 편벽되어 자신의 결함이 드러나야 그 편벽함을 잘 고칠 수 있다는 말인 것 같은데. 편벽됨을 대개 본인은 모르고 다른 사람이 판단해 주는데, 과연 편벽됨을 가진 인간이 스스로를 편벽되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72-병자호란 당시의 주화론과 척화론
✎ 손권에 대한 제갈공명 황제 예우를 비유한 것을 보고 서포의 의중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척화이건 주화이건 직분을 다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75-<논어>비연성장의 재해석
 斐然成章찬란하게 문장을 이루었을 뿐, 그것을 마름질할 줄은 모르는구나. ‘이것은 그저 옷감을 짜서 화려한 무늬의 비단을 만들 수는 있지만 비단을 재단하여 옷을 만드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과 똑같아서, 결국 무용으로 돌아갈 뿐이다.’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서포는 ’, ‘등으로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비연성장의 뜻 자체가 좋다. 요즘 하고 있는 일들이 모두 비연성장같아서.

77-<관저>의 요조
만약 문자 의미의 존중의 수준을 노래 대상의 존귀함과 서로 합칭하게 했다면, 어째서 건곤이나 일월로 비유하지 않고 도리어 새들의 암수가 조화롭게 우는 것에서 취했겠는가?
✎ 동감이다. 옛글들을 보면, ‘요조숙녀’,‘군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후덕한 덕성을 지닌 여인이네, 깊고 그윽한 여인이네 하는 부연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뜻이 그렇게 대단했다면 왜 굳이 짐승의 한 종류인 새들의 암수에 비유했을까? 서포의 지적이 맞는 것 같다.

116 허난설헌의 시 / 117 기녀와 승려의 시 / 118 황진이와 송도 삼절 / 120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 어떤 면에서는 혹평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칭찬을 하는데, 객관적인 판단은 아닌 것 같지만 언급 자체만으로도 당시 사람들과는 생각이 다르다고 판단된다.

119 - 비평과 창작의 불일치
예로부터 시를 평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시를 잘 지을 수는 없고, 시를 잘 짓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시를 잘 평하는 것은 아니다.
✎ 동감

127- 시의 다작
한 움큼의 구슬은 배를 채우는 것으로 따진다면 정말로 창고에 널려 있는 곡식만 못하다. 하지만 만약 페르시아의 보물시장에 내놓는다면 한 움큼의 구슬은 말석이라도 차지할 수 있겠지만, 창고의 곡식은 어찌 명함을 감히 내밀 수 있겠는가?
✎ 다작보다 소수의 아름다운 작품을 중시하는 태도가 여기진다.

145 유근과 김류
장인의 문장은 사실 썩은 새우젓 같습니다. 제가 거짓으로 칭송한 것은 새 신을 얻고자 해서일 뿐입니다.”
✎ 재능은 뛰어나지만 4가지 없는 김류의 태도에 폭소하다.

150 이명한의 <남산>시 암송
백주 이명한이 어렸을 때, 월사 이정구는 한유의 <남산>을 천 번 읽도록 시켰다.
✎  만 읽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가 별명인 선비도 있다. 당시 선비들이 모두 간서치들은 아니었겠지만, 좋은 시의 품격을 익히기 위해 시 한 편을 천 번 정도 읽는 게 당시 선비들의 모습이었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를 배우기 위해서는 좋은 시 한 편을 천 번 정도 읽게 하는 것이 좋은 시 수업이 아닐까 고민해 본다.

152 제왕의 시 - 어떤 사람은 제왕의 시는 문사의 시와는 다르므로, 비록 공교롭지 않더라도 해가 없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또 시를 무엇에 쓰겠는가? 한나라 고제와 무제가 천하의 영웅인 것은 그들의 <대풍가><추풍사>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원나라 순제의 새는 단풍 나무 붉은빛 속에서 울고, 사람은 푸른 산의 비췻빛 남기 속에 있네라는 시구는 천하 사람들이 외우지만, 나라가 패망하는 것을 막는 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했다.
✎ 맞는 말이다. 군왕이 시를 잘 하는 것은 정치를 잘 하는 것과 별개이다. 정치도 잘 하고 시도 잘 지으면 좋겠지만, 정치라도 잘 해야지. 서포는 숙종을 빗대어 한 말이지만, 또 누가 생각나기도 한다.

156 <삼국지연의>의 통속적 재미
소식의 <동파지림>에 이런 말이 있다. “거리의 아이들은 천박하고 수준이 낮은데, 집안사람들이 그 아이들 때문에 아주 질리게 되면, 돈을 주어서 모아 앉혀두고 옛날 이야기를 듣게 했다. 이야기가 삼국의 일에 이르러 유현덕이 패하는 것을 듣게 되면 눈썹을 찡그리고 찌푸리다가 우는 놈마저 있다. 조조가 패하는 것을 들으면 즉시 즐거워해서 노래하며 기뻐했다.” 이것이 곧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생겨난 시원이 아니겠는가? 이제 만일 진수의 <삼국지>나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대본으로 삼아 사람들을 모아 놓아 이야기해준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통속 소설이 지어지는 이유이다.
✎ 당시 소설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이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사씨남정기><구운몽>과 같은 소설을 지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160 정철의 <관동별곡><사미인곡>
지금 우리나라의 시문은 자기 말을 버려두고 다른 나라의 말을 배워서 표현하므로, 설령 아주 비슷하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민간의 나무하는 아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소리 내어 서로 주고받는 노래가 비록 비루하다 할지라도, 그 참과 거짓을 논한다면, 정녕 학사 대부들의 이른바 시부와는 동격에 두고 논할 수 없다.

하물며 이 세편의 별곡은 천기가 스스로 발한 것을 담고 있되, 이속(오랑캐의 풍속)의 비리(다랍고 속됨)함은 없으니,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참 문장은 이 세 편뿐이다. 그런데 세 편을 가지고 다시 따져본다면, <후미인곡>의 수준이 가장 높다. <관동별곡><전미인곡>은 여전이 문자어(한자어)를 빌려서 윤색한 것이므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 드디어 나왔다. <서포만필>을 읽은 목적이라 할 수 있는 문장들. 비록 원문은 아니지만 <서포만필>을 통독해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말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서포의 높은 안목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161 시어의 참어와 귀어
판서 채유후 공이 언젠가 방 안에 누워 있는데, 그 아들 아무개가 밖에서 친구와 더불어 시를 논하며 말했다. “내가 근래에 단명구를 지었으니 아마도 오래 못 살 거야!”이어 그 시를 낭송했는데, 어구가 용렬하고 거칠어서 우스웠다. 채유후 공은 방에서 아들을 불러 말했다. “얘야, 얘야! 너무 염려 마라. 내가 여기서 너의 시를 들어보니, 네 수명은 필시 백 살도 넘겠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전하며 웃었다.
✎ 제 명을 누리지 못할 정도로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단명구의 시도 있지만, 채유후 공과 아들의 일화는 정말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그 아들의 재주를 매우 객관적으로 평가한 아버지가 참 대단하다.

164 욕망의 이론
선가에서 말하는 오욕이란 재물, , 음식, 명예, 수면의 다섯 가지에 대한 욕심이다. 만약 벼슬하지 않는 선비라면 수면을 버리고 벼슬에 대한 욕심을 넣어야 할 것이다. ~ 남녀의 정욕은 근에 속한느 것인지 근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색과 음이 두 근으로 나뉘어 속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이것의 실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이야기해보자면, 육근 이외에 마땅히 한 근의 기관을 보태어 그에 짝하는 것을 진으로 삼고 그에 합하는 것을 식으로 삼은 연후에야 정확하게 된다. 불경의 경전이 이 점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너무 외설스러우므로 말하려 하지 않은 것이리라.
<서포만필>이 끝으로 갈수록 마음’, ‘욕망’,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펼쳐진다. 이 책을 집필할 때가 남해에서 귀향살이를 했을 때라고 하는데, 많이 외로웠던 것은 아닌지??


서포만필 (하)
국내도서
저자 : 김만중 / 심경호역
출판 : 문학동네 2010.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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