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용궐산 하늘길 산책

 

휴업일이라 하루 자유시간이 생겼다. 가을을 준비할 겸 집안을 정리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빛이 너무 좋아 배낭에 물과 간식을 챙겨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용궐산 하늘길'로 출발했다. '용궐산 치유의 숲'을 내비에 입력하고 옥과와 순창읍을 지나 장구목 근처로 접어들었다. 9시 무렵인데도 아침 기온이 13도다. 하지만 햇볕이 좋아 안개가 걷히고 있고 들판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자료를 검색하며서 보니 '용궐산 치유의 숲'은 꽤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주차장이 많이 비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동선을 따라 '용궐산 하늘길 매표소' 이정표를 발견하고 곧 따라 걸었다. 마지막 화장실이란 말에 휴양림 안 화장실을 들렀다. 돌을 다듬어 만든 계단을 따라 임도를 조금 걷자 '매표소'가 나왔다. 입장료 4,000원을 냈고, 영수증과 함께 2,000원 지역 상품권을 받았다. 농협을 제외한 순창 전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다니 점심 먹을 때 사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집에 사천 지역 상품권이 꽤 있다. 작년 문학기행 답사와 실제 문학기행을 다녀오면서 지역 화폐를 받았는데 쓸 곳이 없어 지금도 두툼하게 가지고 있다)

 

입구를 알려주는 사각형 조형물을 지나 잘 닦인 계단식 돌길을 20여 분 오르니, 하늘길로 짐작되는 철 계단이 나타났다. 첫 번째 계단을 오르자 큰 암벽(이 큰 암벽을 하나의 바위로 보고 '용여암'이라고 부른다)에 지그재그로 설치된 '잔도'가 눈앞에 나타났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하늘길은 전체 길이가 1,096m인데 지그재그 길이 4개이니 약 200m 정도 되는 긴 잔도였다. 

 

용궐산 치유의 숲 주차장 입구에서 바라본 하늘길 풍경
주차장에서 매표소 쪽으로 좀더 이동해서 바라본 하늘길 모습
하늘길 입구. 이제 더이상 화장실은 없다.
매표소 앞. 입장표 4000원 중 2000원은 순창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용궐산'이 용이 사는 대궐이므로 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잔도를 따라 오를수록 주변의 경치가 한층 더 많이 열렸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멀리까지 풍경이 열렸다. 작년 여름 자전거로 섬진강 종주를 하면서 용궐산 하늘길 건너편에 있는 '장구목 인증센터'에 멈춰 쉬면서 이곳 풍경을 보면서도 하늘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올해 설 때 가족 여행을 계획하다 전국의 '잔도'를 살펴보다 용궐산 하늘길에 관한 정보를 보고 느낌이 왔다. 그때부터 꼭 오고 싶었는데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하늘길 어느 방향으로 봐도 섬진강과 잘 어울려 '하늘길'이란 이름이 잘 어울렸다. 걸을수록 정말 '하늘길'이라고 할만큼 아름다운 길이 계속되었다. 보는 곳곳이 소름 돋는 풍경이었다. 동서남북, 위아래 어디를 보듯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풍경을 눈에 담고 사진으로 담으면서 이 경치를 나누고 싶었지만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사진을 보낼 수 없어, 이곳을 추천했던 누나에게 사진을 보냈다. 누나의 첫 반응은, 우리나라에 이런 풍경이 있냐며 어느 나라 풍경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용궐산 하늘길 시작점
하늘길과 강물이 함께 열렸다. 용의 순우리말은 '미르'인데 곧 '물'을 상징한다. 두 개의 용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지그재그 하늘길에 새겨진 글자 '계산무진' 계곡과 산이 끝이 없다는 뜻으로 용궐산에서 바라본 섬진강 풍경(추사체)
두 번째 하늘길에서 올려다 본 잔도의 풍경
지그재그로 된 하늘길과 하늘길 사이에는 계단길이 있음
장구목에서 순창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하늘길. 아름답다
세 번째 하늘길에서 바라본 '벌동산'과 '섬진강마실캠핑장'. 건너편이 섬진강 자전것길
네 번째 하늘길에서 바라본 나머지 하늘길
비룡정 바로 아래 하늘길. 바위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정한 구조물. 하늘길엔 이런 구조물이 많다. 입장료 4000원이 과하지 않다.

짐벌이 없어 걸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영상^^;

 

매표소에서 1시간 정도 걸으니 하늘길의 끝 '비룡정'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정상까지 1200m 거리라고 한다. 아침에 출발할 때에는 여기까지 왔다 순창읍에서 점심을 먹고 '채계산 출렁다리'까지 보고 가려고 했는데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비룡정'의 위치나 풍경이 여기서 마침표가 안 찍힌다는 데 있다. 경치가 조금만 오르면 정상이 보일 것 같았다.(여기서부터 능선의 시작이라 그렇게 보였다. 능선을 타면 경험하듯 눈앞에 보이는 곳이 정상인가 싶어 힘내서 오르면 다시 더 높은 길이 나타나는 그런 형국이다)

 

비룡정의 모습. 쉼표의 느낌이다. 계속 갈 수밖에 없다
(왼쪽) 비룡정에서 느진목 가는 길. 용의 등줄기다 (오늘쪽) 된목에서 정상 가는 길. 역시 용의 등줄기다
된목에서 정상 가는 길. 역시 용의 등줄기다.

 

비룡정에서 '느진목'까지는 300m 정도 되는데, 바위로 된 능선을 걷다 보면 이 길이 용의 등 또는 척추에 해당하겠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그렇게 보면 하늘길(용여암)은 용의 날개 부분에 해당된다. 왜 이름이 '느진목'일까 궁금해하며 걷다 보니 '느진목'에 도착했다. 시간이 제법 일러 산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기서 '된목'까지는 대체로 오르막길이 많았다. 힘들어 중간에  10분 정도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했다. 된목까지는 600m 정도 되는데 길이 힘들어 '된목' 즉 힘든 길 입구라고 이름 붙여졌나 싶었다. 그런데 된목에서 정상까지가 정말 '된 길'이었다. 바로 계단 길이 시작되더니 정상 근처에서는 가파른 쇠계단에 이어 난간을 잡아야만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하듯 정상을 만났다. 오를 때는 몰랐는데 등산객들이 그늘 곳곳에서 쉬고 있었다. 정상 부분은 제법 넓어 둘러볼 공간이 있었다. 돌담이 쌓인 곳이 있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한국전쟁 때 빨치산이 이용한 참호라고 한다. 이곳 오지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갈 수는 없었나 보다. 그리고 '용궐산'이란 표지석도 보였다. 2009년 주민의 마음을 담아 '용골산'에서 '용궐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여기가 제대로 된 표지석이겠다 싶어 셀카로 흔적을 남겼다^^. 매표소에서 여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왼쪽) 정상 바로 앞 쇠계단 (오른쪽) 쇠 계단을 지나 쇠 난간길. 돌아본 풍경
용궐산 정상. 처음에는 '용여산', 그다음에는 '영골산', 지금은 '영궐산'으로 불린다는데 왜 '용여산'인지가 궁금했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여성을 상징했는데 여성의 기운이 강한 곳이라는 걸까. 나는 '같을 如'를 떠올려 이곳이 용과 같은 곳이다라고 생각했다.
전망대 지나고 빨치산 참호 지나서 만나는 표지석
옛 표지석에서 바라본 장구목 쪽 풍경. 사진의 강길은 자전거길 풍경이기도 하다
빨치산 참호, 복원해 놓은 것 같다. 뭔가 스토리가 있을 법도 한데.

 

다시 '된목'까지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심했다. 얼마 전 통풍이 재발했다 가라앉은 상태라 스틱에 최대한 힘을 분산하려고 노력했다. '된목'까지 내려오니 '용굴'까지 300m, 그리고 요강바위까지 대략 2.5km 정도 된다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정상을 다녀온 자신감에 바로 '용굴'로 내려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됐다. 이러면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마저 요강바위까지 걸은 뒤 '치유의 숲'으로 걸어갈까 싶었지만 오늘 목표는 '하늘길'이라 '용굴'만 보고 오자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 100여 미터 올라오는 길은 중력의 존재를 확실히 체감해다. 결국 오를 때 쉬었던 편편한 바위에서 간식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했다. 

'느진목'에서 '비룡정'까지 내려오는 길에 제법 많은 등산객을 만났다. 이제야 이곳이 유명한 곳임이 체감되었다. 보통 등산할 때 소로 힘내라며 인사를 나누기 마련인데 사람이 많아 그러기 어려웠다. 곧 비룡정에 도착했고 하늘길을 따라 내려왔다. 걷는 속도가 비슷해 올라올 때 또는 정상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하늘길에서도 다시 만났다. 지그재그로 산길을 내려가다 보니 마치 어떤 순례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놀람은 조금 줄었지만 오늘의 이 풍경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눈을 돌렸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있었고 출구까지 내려오니 약 3시간 40분 정도 되었다.  저녁 약속이 있어 점심 먹기 참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매점에 들러 붕어아이스크림을 사며 매표소에서 받은 상품권을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된다고 한다. 오호^^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힘을 내 작년에 자전거로 장구목 현수교를 지나면서 '요강바위'가 보이지 않아 확인하러 가 보았다. 이정표가 잘 돼 있어 요강바위를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현수교에서는 구별하기 어려웠겠다. 2000년인가 2001년에 광주국어교사모임에서 김용택 시인을 찾아 이곳으로 문학기행을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시인의 생가에서 여기까지 시인과 함께 걸었는데 당시에는 참 구석진 곳이다 싶었는데 지금도 오지인 것은 맞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된 곳이라 오지의 느낌은 덜하다. 이곳은 자동차길보다 자전거길이 잘 닦인 곳인데 이를 잘 활용할 수는 없을까 싶다.

 

 

요강바위 근처에서 바라본 용궐산 하늘길
요강바위
요강바위에서 바라본 장구목 현수교. 섬진강 자전거길은 강의 좌안에서 이 다리를 건너 우완을 달린다.
요강바위 주변의 돌탑. 용궐산 하늘길 주변에도 돌탑이 많았다. '중구삭금'이란 말이 떠오른다. 민중의 간절함이 세상을 바꾸길!
장구목 현수교에서 바라본 요강바위와 용궐산. 이래서 작년에 요강바위를 찾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채계산 출렁다리'도 가 봤다. 본 순간 오늘 오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발도 무겁고 아내랑 같이 걷고 싶기도 하고, 다음 일정으로 시간도 없고.

올해 '단양강 잔도'에 이어 두 번째 잔도를 걸었다.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

 

채계산 출렁다리. 옛 주차장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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