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관람과 덕수궁 야행(9.4)

오랜만에 담임 샘, 비담임 샘들과 함께 수업여행 인솔을 했다. 2학년 수업을 전담하고 남교사가 나 외에는 없어 일찌감치 마음을 먹고 있었다. 수학여행 준비 및 진행은 학년부에서, 수행평가는 역사과와 도덕과에서 준비해, '호밀밭의 파수꾼' 정도를 내 역할로 생각하고 수학여행에 참여했다.

 

일정은 첫째날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극 관람, 덕수궁 야행, 둘째 날은 롯데월드와 서울스카이 관람, 셋째 날은 서대문형소무를 방문했다. 이 중 국립중앙박물관과 덕수궁, 서대문형무소 중심으로 여행을 추억을 남긴다.

 

1. 국립중앙박물관

큰애가 서울에서 살기 전까지 서울에 갈 일이 많지 않아 마지막으로 중앙박물관을 찾았던 때가 '이집트 특별전' 때였던 것 같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 옆 한글박문관은 그보다 더 가까운 시기에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2시간 정도의 관람 시간이 주어졌는데 수행평가하느라 시종일관 바쁘게 돌아다녔다. 집결 시간이 되었을 때, 역사수행평가 인터넷 설문지가 초기화돼 눈물짓는 학생도 있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집중하면서 관람했는지 짐작이 간다. 아이들이 모두 입장하는 것을 보고 리플릿의 '추천 동선'을 따라 맨 안쪽에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부터 살펴보았다.

경천사 10층 석탑은 고려 때 건축된 건축물로 황해도 개풍의 경천사에 있던 것을 1907년 일본의 다나카가 일본으로 무단반출했으나 영국과 미국의 언론인 베델과 헐버트, 우리 국민의 요구로 1918년 환수되었다고 한다. 이 탑에도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었다니, 참.

 

경천사 10층 석탑. 그 앞에서 열심히 수행평가를 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관을 관람했다. 신라의 금관과 금허리띠 앞에 관람객이 많았다. 기술이 대단했다. 다양한 토기 역시 눈에 띄였다.

 

신라관의 금관과 금허리띠, 토기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사유의 방'을 가장 먼저 만났다. 입구부터 고요함이 눈에 띄었다. 마참 관람객도 많지 않아 천천히 어둠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반가 사유상'은 부처가 성도(成道)하기 이전 태자 시절에 인생의 무상(無常)을 느끼고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형(太子思惟形)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위키백과). 반가사유상 주위를 말없이 한 바퀴 돌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아름다움을 우리 아이들도 여기서 느끼지 않았을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전시돼 있는 사유의 방

 

'사유의 방'을 나와서 바로 옆 방의 '기증관'을 관람했다. 손기정 기증 '청동 투구'가 전시되고 있었다. 이 투구에는 상당한 사연이 있는데, 당초 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생은 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이 투구를 받아야 했는데, 아마추어에게는 메달 외에 다른 부상을 줄 수 없다는 당시 IOC 기준을 근거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5년 손기정 선생이 사진을 정리하다 자신이 받아야 할 부상으로 그리스 투구(청동 투구)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수소문 끝에 투구가 베를린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랜 노력 끝에 1986년 손기정 선생께 전달되었는데, 이 투구가 외국의 2600년 전의 유물이지만 일제 강점기 마라톤 우승자의 부상품이라는 점에서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손기정 선생은 이 투구가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왼쪽) 손기정 기증 청동 투구 (오른쪽) 백자 달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의 북쪽 2층과 3층에는 회화와 자기가 전시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때 제작된 달 항아리는 앉아서 차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벤치가 마련돼 있다. 빛이나 모양이 보름달을 떠올리게 한다. 음식을 담겨나 장식을 위해 제작되었겠지만 그 자체로도 완성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 모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1층 중, 근세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한제국관부터 통일신라관으로 걸었다. 대한제국관에서 '옥새'가 눈에 띄었다. 일제가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었다며 위안부나 강제 징용 문제들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근거가 결국 '도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규장각 의궤'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기록의 민족임을 잘 드러내 주는 국보다. 프랑스가 전란 중에 가져간 유물이다.(병인양요). 

 

외규장각 의궤

 

'대동여지도'는 그 크기에 다시 한번 놀라고, 세세한 정보에 또 한 번 놀란다. 내 고향 '병영'이 눈에 띄어 사진으로 남겼다. 다시 보니 강폭이나 산의 높이가 반영되어 있다. 대단했다. 곧 한글날이라 한글 활자도 눈에 띄었다.

 

대동여지도
한글 활자와 활자본

 

9월 초인데도 날이 더웠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체를 보고 싶어 '열린마당'에서도 연못이 보이는 곳까지 와 보았다. 햇빛이 따가웠다. 야외 정원도 잘 정비돼 있어 11월 늦가을에 서울에 올 때 다시 한번 둘러봐야겠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전면에서 바라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면을 바라본

 

2. 덕수궁

이후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저녁을 먹은 뒤 덕수궁으로 이동했다. 수학여행 기간 내내 서울의 교통은 심각하게 혼잡했다. 8시 무렵이 되자 어둠이 짙게 내렸다. 대한문까지는 여러 번 왔는데, 덕수궁은 낮에 한 번 돌아다닌 적이 있었을 뿐이다. 밤은 사뭇 다르리라.

덕수궁은 조선 24대 왕 선조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다 돌아온 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 거처로 삼으면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광해군은 창덕궁을 거쳐로 사용했고, 덕수궁은 경운궁으로 불렸다가 26대 왕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잠시 머물다가 이곳으로 거쳐를 옮겼다. 여기서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위상에 걸맞게 여러 전각을 세우고 궁궐의 영역을 확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1907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황제의 자리에 물러나게 되고 '덕수궁'으로 불렸다고 한다. 덕수궁에는 구한말의 숨 가쁜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출처: 협동조합 무의(https://www.wearemuui.com/kr/palacemap2/deoksugung)

 

4개 반 아이들이 입장하고 뒤따라 대한문을 통과했다. 아이들을 따라 이동 경로를 복기해 보니 다음과 같다.

 

대한문 → 광명문 → 함녕전 →덕홍전 → 중화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석조전 → 돈덕전 → (오솔길) 

 정관헌 → 석어당 → 중화문 → 대한문 → 덕수궁 돌담 → 덕수궁 운교  터 → 대한문

 

대한문. 저녁 8시 20분 경.

 

대한문을 통과하니 넓은 숲길이 나타난다. 조금 더 들어가야 '광명문'이 보이며 덕수궁의 모습의 드러난다. 광명문을 통과해 행랑을 거쳐 '함녕전'을 만난다.

 

광명문. 덕수궁에서 입으려고 한복을 챙겨 온 학생도 있었다.
함녕전.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함녕전 왼쪽 덕홍전에는 '시간을 잇는 손길'이라는 주제로 전통공예가 전시돼 있었다.

덕홍전 앞 쪽으로는 단을 세우고 건물을 앉힌 큰 건물이 나타난다. 정전으로 사용된 '중화전'이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 같이 건물 안에는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용상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궁궐임을 알려준다. 중화전을 지나처 서쪽 정원으로 들어서면 서양식 대리석 건물들이 눈에 띈다. 석조전이다. 석조전은 대한제국 선포(1897) 후 건립된 건물로 1층의 접견실, 2층은 황제의 거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석조전 앞 정원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과 석조전을 바라본 풍경
석조전 앞에서 중화문 쪽을 바라본 풍경. 빌딩 숲에 둘러싸인 궁궐이 새롭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모습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석조전 뒤편에는 '돈덕전'이란 서양식 건물이 있다. 외교를 위한 국제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건물을 본 순간 정명섭 작가님의 "미스 손탁" 표지 그림이 떠올랐다. 지난 5월 5.18광주민주화운동 연계 행사로 "저수지의 아이들" 작가 정명섭 님을 모신 적이 있다. 그때 작가님의 작품을 몇 권 더 읽었는데 그중에 한 편이 "미스 손탁"이다. 이 작품은 구한말 덕수궁(경운궁) 및 정동 주변을 배경으로 헤이그 특사를 보내기 위한 비밀스러운 작전에 관한 소설인데 덕수궁과 덕수궁 돌담을 걷다 보니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돈덕전. 붉은색과 청색 조명이 어울려 특별한 곳임을 나타낸다.
(왼쪽) 돈덕전에더 '덕홍전'과 같이 '시간을 잇는 손길'이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덕홍전' 내부 모습. (오른쪽) 돈덕전에서 정관헌으로 가는 오솔길. 서울에 이렇게 호젓한 산책길이 있다니..
석어당.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을 때부터 사용한 건물이라고 한다. 중층의 한옥으로 중화전에서 바라 본 풍경.
석어당과 덕홍전의 담벼락
중화전과 덕홍전 사이의 담벼락 가로등. 하수도 덮개의 '배꽃'이 눈에 띄었다.
중화전의 문인 '중화문'

 

중화문에서는 아이들이 모이지 않았다. 주변의 화장실과 중화전 쪽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이기로 한 시간이 15분 정도 남아 있어 대한문으로 나와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덕수궁 돌달길'은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비록 다소 땀이 나는 늦여름 밤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덕수궁 돌담길'은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에서 나오는 노랫말인데, 이야기의 내용이나 위치로 보면 '대한문 연가'가 더 맞을 듯하다. 그런데 '대한문 연가'하면 비장해질 것 같기도 하다^^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운교(구름다리) 터. 안내문에는 고종이 경운궁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궐외객사와 경운궁을 연결하는 다리를 여기에 놓았다고 한다.

 

아참 아이들은 '덕수궁'에서도 수행평가 미션이 있어, 서로 어울려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감성적인 포즈로 사진 찍기, 선생님과 사진 찍기가 있어 어둠을 배경 삼아 사진을 같이 찍었다. 아이들의 기행문을 보면 덕수궁 풍경이 좋았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옥과 숲, 빌딩이 잘 어우러져 있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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