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표류기(M. H. 헐롱)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아빠는 아내를, 아이들은 엄마를 잃는다. 그 충격으로 가족은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표류하고 만다. 아빠는 자신만의 상처만 생각하며 일방적으로 바다 여행을 추진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엄마와 있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실종으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고, 벤은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무모한 항해를 한다.

운 좋게 도움을 받게 되고, 다시 만난 가족.
그러나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아빠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큰아들 벤. 하지만 그런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에서 공통점을 찾아 아빠를 이해한다. 엄마를 닮아,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둘째 아들 딜런과 다섯 살 제리까지,
4명이 있어야 가능했던 항해를 통해 가족은 방향을 찾고 인생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다.

(151) 그래서 이튿날 우리는 버뮤다로 출항했다.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며, 그때 비가 내리지만 않았다면, 다른 배가 우리 배에 부딪치지만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 화를 내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빠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순간이 큰 결과를 낳는다. 결과론적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216) 머릿속에서 은빛 스위치를 만지작거렸다. 울음을 터뜨리고, 어두운 바다 속으로 첨벙거리고 들어가, 깊은 공간 속으로 사라진다. 가슴이 떨렸다. 나는 일어서서 바다 쪽으로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손가락으로 두 눈을 꽉 눌렀다. 별을 향해 높이 팔을 뻗었다. 손가락을 하늘에 쫙 펼쳤다. “분노.” 내가 바람에 대고 말했다. 목이 메었다. “저물에 가는 빛에 맞서 분노하라.”

(304) 나는 딜런이 누워 있던 천막을 향해 달려갔다. 바다포도 잎이 흔들렸다. 도마뱀이 떨어진 야자나무 잎 사이로 사사삭 지나갔다. 그때 동생들이 보였다. 거기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딜런은 똑바로, 제리는 엎드려 있었다. 담요가 동생들 다리 위에 덮여 있고 제리의 팔은 딜런의 가슴 위에 있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죽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의 은빛 스위치가 켜졌다. 차례를 보며 동생들이 죽지 않았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 마리 어린 짐승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목숨을 건 선택, 모 아니면 도가 될 상황이 돌아보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빈번한가.


(325) 마침내 별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딜런의 말이 이해가 갔다. 별이 아니라 사람이 바뀐다. 우리는 기울어져서 빙빙 돌며 해 주위를 도는 지구에서 별을 보는 것이다. 해를 등졌을 때에만 별을 볼 수 있다. 그것도 광대한 우주에서 어느 순간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별들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상황에서 별을 바라본다. 그래서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332) “옛날 옛날에, 두려움이 많던 남자가 있었다. 서재 안에 있으면 안전했지만, 외로웠지. 가까이 있는 섬에 아름다운 여인이 살았어. 상어 떼가 밤낮없이 섬 주위를 매돌았지. 남자는 선택할 수가 있었다. 문을 닫고, 여인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외롭게 사는 거야. 아니면 밖으로 나와 물로 뛰어들거나. 남자는 뛰어들었다.”

“너희들을 낳을 때마다 늘 그랬어. 상어가 있다는 걸 알면서 뛰어 내린 거지. 오늘 밤도 그렇고 앞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엄마와 나는 아파할 거다. 그렇지만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을 거야.”

가족표류기
국내도서
저자 : M. H. 헐롱(M. H. Herlong) / 홍한별역
출판 : 양철북 2011.01.10
상세보기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