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황선미)


가난한 유년기의 성장소설은 참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홉 살 인생>. 

두 소설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초등 4학년 조연재와 아홉 살 백여민은 그리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다. 살아가는 시대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70년대 연재와 80년대 여민이랄까? 하지만 소년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옴망눈(무슨 뜻인지 사전을 찾아봐도 없다, 하지만 왠지 초롱초롱하고 총기가 있는 눈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녀의 그것은 다르다. 백여민은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며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면-마치 오빠 연후와 닮았다. 공부든 싸움이든 구슬치기든 치열하게 싸우고 그렇게 아이들과 어울린다. 물론 여민이는 오빠처럼 모범생은 아니지만-, 연재는 세상을 조용히 관찰하는 타입이고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신기종과 백여민이 싸우면서 쉽게 친구가 되지만, 사촌인 재숙이과 연재는 시종 ‘접어놓은 사포처럼’ 꺼끌거리며 어울리지 못한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 두고 끝나지만.

가난한 소년과 소녀의 성장기는 그렇게 닮아 있으면서 다르다. 여민이라는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가난한 집안의 생각 많은 장녀 연재도 참 끌린다. 삶의 무게를 일찌감치 알아가는 솔직하면서도 조용한 연재가 참 좋다. (어떤 부분은 나와 닮아 있기도 하다. 특히 소풍에 가지 못해 힘들어하는 장면들이.) 가난한 유년 시절의 아픔들(잦은 이사, 판잣집 생활, 어린 동생과 아픈 동생 돌보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는 고단한 부모님, 외로운 학교생활, 자존심에 얽힌 사연 등)이 차곡차곡 쌓여 가슴 시리지만 따뜻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참 가난하다. 연재보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마음이 참 가난하다. 힘들지만 가족의 사랑으로, 꿋꿋한 의지로 살아가는 연재를 바라봤으면 한다. 추위와 힘든 노동으로 입이 돌아간 아버지를 위해 ‘ㄱ자 모양의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지’를 찾아다니는 아이들을 읽으며,우리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의지를, 희망을 전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인상 깊은 구절>

(15) 우리끼리 손수레를 끌고 가야만 했다. 연미가 징징거리며 달라붙어서 주인집 아줌마가 간신히 붙잡아 놓았다. 남은 짐을 지키는 건 연경이가 제격이지만 연경이도 손수레를 미는데 힘을 보태야 할 판이다. 날마다 오가던 동네를 빠져나와서 큰길을 따라갔다. 신작로가 고르지 못해 손수레가 자주 비틀거렸고 그때마다 오빠의 허리가 바짝 굽어들었다. 온 힘을 다해 밀어도 선선히 나아가지 않는 손수레가 안 그래도 우울한 마음에 불안한 더했다. 애초에 애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절망적인 무게. 이제부터 살아가게 될 낯선 곳에 대한 예감처럼.

✎ 어른들에게 닥친 고난은 아이들에게도 감당키 어려운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부모님 없이 아이들끼리 옮겨야 하는 짐들은 인생의 무게처럼 무겁고 무섭게 느껴졌으리. 힘들었던 어릴 적 그 때가 떠오르는 구절이다.


(28) 엄마가 몰래 운다는 걸 나는 안다. 엄마도 애들처럼 울 수 있다는 걸 안 뒤부터 나는 걱정이 늘었다. 엄마가 저번 밤처럼 외삼촌에게 대들다 또 맞는 일이 생길까 봐. 시간이 지나면 그밤의 치욕스러움과 뼈가 아픈 슬픔이 없어질까. 애가 다섯이나 되는 어른도 애들처럼 울면서 따지고, 맞을 수 있다는 거. 하필이면 그게 내 엄마였다는 사실은 내가 당한 어떤 일보다 아프다. 아파서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돈을 얼마라도 갚아 내라고 따지는 엄마의 뺨을 갈겼던 외삼촌, 돈을 어디다 감춰 두고 안 주느냐며 되레 야단치던 외삼촌을 나는 이제 똑바로 보지 않는다. 엄마는 부엌으로 이어지는 컴컴하고 좁은 골목에 내가 있었다는 걸 모른다. 분노로 내 심장이 딱딱해지고 말았다는 것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돈을 가져가고 안 갚았으면서 미안해하기는커녕 엄마의 뺨까지 갈길 수 있는 외삼촌의 부당함도 충격이었고,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 낮추고 사정한 엄마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애는 어른에게 함부로 굴 수 없으므로 그날의 분노는 내 가슴을 딱딱하게 만들고 가라앉았다.

✎ 어른들의 나약한 모습을 우연치 않게 발견했을 때, 그 때의 충격은 믿었던 세상이 하나씩 무너져 내리는 것만큼 충격적이다. 언제나 강할 것 같았던 엄마의 눈물, 그리고 가족으로만 알았던 친척의 폭력. 이런 부조리한 세상을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리라. 점점 심장이 딱딱해지면서.


(81) 나는 방금 전에 벌어진 상황을 선생님께 다 말했다. 공부시간에 대답하던 것보다 훨씬 더 또박또박. 절대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선생님이 알아주었으면 했다. 절대로 꽃병 값을 물어내라고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 돈을 엄마가 줄 리 없으니까. 

“잘못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내일까지 꽃병을 가져다놔. 꽃까지 잘 꽂아서 말이다. 군수님이 좋아하시면 널 용서하지.”

✎ 교사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교사로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 정말 이 상황에서 전후사정과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말인가. 결국 어렵게 꽃병을 마련하지만, 군수님은 이 교실에 들러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난다. 


(114) 옥란이는 영길이 아저씨처럼 슬프고 안 된 애였다. 둘은 똑같이 외톨이였고 여기서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저 아프고 하찮은 사람이었다가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잊혀지고 말았을 뿐. 두 사람도 병직이 삼촌처럼 진작 여기를 떠났더라면 좋았을 걸. 죽어 버리지 않으려고 떠난 병직이 삼촌처럼.

✎ 옥란과 영길 아저씨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병직이 삼촌이 말하는 먹거나 먹히거나, 관찰하거나 중에서 세상에 먹힌 사람들. 불행하게 일찍 가버린 그들이 가슴 시리다. 


(116) “난 절대로 식구들한테 뭘 보내지 않을 거야. 연락도 안 할 거야. 엄마가 날 찾아와도 안 만나 줄 거고, 평생 후회하게 만들 거야!”

✎ 소풍을 가지 못 한다. 그것도 아기를 봐야 하는데. 오빠도 가는데, 왜 나만? 이런 부당한 처사에서 나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식구들에 대한 원망, 일종의 통쾌한 복수?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참 많았다. 연재는 그런 점에서 나를 참 많이 닮았다. 


(132)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생각한다. 무엇이 대체 그림을 그리게 하나. 머리일까. 가슴일까. 아니면 손끝의 기억일까. 얼굴에 표정을 담거나 움직임이 느껴지게 그려낼 때. 혹은 섬세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걸 표현할 때 문득문득 나도 모르게 색색의 은행들이 떠오르곤 했다. 가질 수 없었던 그것들을 내 손에 쥐는 기분. 꿈에서만 그토록 분명하던 걸 그려 내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 무엇이 그림을 그리게 할까? 이런 질문 참 좋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이든 어떤 이유든 좋다. 무엇인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작업이다. 앉은뱅이 여인의 은행과 토끼옷 등, 연재의 그림인형 등.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국내도서
저자 : 황선미
출판 : 사계절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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