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훔치다(이시백)

 

 

우리 학교의 우울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20여 년 전 학교에 대한 이야기다 싶은 내용들이 지금 여기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우울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했던 사람들이 좌절하거나 힘을 잘못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때,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우울하다. 양비론에 가까운 문제제기만 돼 있어 희망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책은 잘 읽힌다. 공립학교 교사로서 잘 모랐던 사립학교 구성원들의 이야기가 거의 날것으로 드러나며 교사들의 목소리가 잘 표현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이사장과 대리인으로 군림하려는 교장, 교감의 비교육적 행태가 어떤 태생적 한계를 가졌는가 지적하는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속에서 전교조 교사들의 삶의 모습, 일반 교사들의 모습, 교사에 비해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 교감은 전교조 조합원이면서도, 전교조 활동이 매번 대안 없는 반대에만 매몰되었다고 생각하며, 관리자가 돼 학교를 바꾸고자하지만,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이사장과 CEO 출신 교장과의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교감에서 물러나 평교사로 돌아온다. 


이 소설의 주인공 격인 박 선생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재단과 관리자에게 문제점을 제기하는 교사이지만, 결국 이사장과 교장과의 차이에서 학생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자신의 한계를 통감하고 학교를 떠난다.
현재 분회장인 백 선생은 재단과 관리자에 맞서 교사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 서지 못하며 투쟁에만 관심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 모든 사람들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입장의 변 선생은, 박 선생과 백 선생처럼 잘잘못을 따져 학교 구성원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두루뭉술하게 처세하며, 분필 가루 마시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승진을 원하는 모습 역시 공감받기 어렵다. 그외 교사들이 보충수업을 하고, 체벌을 손쉽게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드러난다.

한편 종합고를 인문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동문들은 정보의 부족으로 수동적으로 접근하거나 자신의 입장에서 이기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본다.

정리하면, 사학 재단이 학교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교육하고자 하는 교사나 교육 받고자 하는 학생, 학교에 아이를 맡긴 학부모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학생부 단골로 폭력조직 '부대찌개파'까지 만들었던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했던, 연기자가 꿈인 정미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대학의 학교장 추천서를 자신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끝까지 써주지 않는다. 정미는 이사장이 교육을 상징하는 '종'을 없앤 자리에 대신 자신의 생명을 대신 하여 저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모든 문제를 다 드러낸 상황에서 희망을 그려가자고 한다.

책을 덮으며 작가가 지적한 교육 문제를 떠올려 본다.
사립학교 재단이 진정한 교육자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재평가 제도가 있어야 할까.
사립학교를 공립학교에 준하는 공공재로 보아, 공립학교에 준하는 운영을 하여야할까.
교장과 교감은 학교 운영의 꼭 필요한 존재인가.
전교조 교사가 재단과 교사 정책, 교육 정책으로 교과부나 교육청과 싸우지 않고 교육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교사 노동자에게 처우 개선 외에 정책에 대한 합의를 할 생각은 없는가.
학생과 학부모를 학교의 주체로 인정하기 위해 지금의 제도는 충분할까.
집안 형편이 어렵거나, 생업에 바쁜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학교장 추천이 꼭 필요한 입시제도에는 문제가 없을까.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학교는 행복하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52) 투표 방식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었다. 쪽지에 무기명으로 적는 비밀투표를 하자는 안이 나왔다. 워낙 압도적으로 찬성이 많았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묵은 달력을 찢어 무기명 투표를 다시 하게 되었다.

결과는  찬성 19, 반대 22로 나왔다. 조금 전 거수로 투표한 찬성 39, 반대 2와는 너무나 판이한 결과였다. 나중에야 박 선생은 시간당 팔천 원씩 받던 보충수업 수당이 가볍게 털어 낼만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문제집에서 복사한 프린트 한 장 나눠 주고, 삼십 분 동안 풀라고 한 뒤 이십 분 답 풀이를 해주면 시간당 꼬박꼬박 주머니에 들어오는 수당 팔천 원이 자동차 할부금이 되고, 기름 값이 되어 주었다. 방학 중에 하는 백이십 시간 보충수업 수당을 모아 대학원을 다닌다는 이도 있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결국 교사들의 불만은 돈 안 주는 야간 자율 학습 감독에만 머무를 뿐이었다. 

 

(134) "학교는 사유물이 아니잖아.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이거든. 이사장이든 교장이든 아이들 편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잖아."

변은 그런 박 선생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돈은 남의 것이든, 내 것이든 누구에게나 아까운 법이다. 남이 귀한 돈을 들여 지은 학교를 거저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변이 곁에서 보기에도 분회는 학교 일에 나설 여력이 없었다. 네이스 거부 투쟁이나 단체협약 쟁취를 앞에 두고 연가 투쟁이나 교육 선전 활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본부나 지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공문들 처리만으로도 다른 일을 돌아볼 짬이 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사안들인 데다, 딱하기는 피차 마찬가지인 연대 조직들에 대해서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165) "애덜? 그깟 것들이 뭬이라는 거야? 쥐꼬리만 한 월사금 몇 푼 디밀고 지 학교나 되는 듯이 건들거리는 애들이고 부형이건 마음에 안 들면 딴 학교루 가라구 해. 교장, 알갔어?"

"이 학교가 어떻게 세워진 학굔지 알어? 손 매디마다 피가 나고 뼛속에서 진땀 흘려 가메 맨들어 놓은 학교야. 대통령이구 뭐구 간에 학교는 내가 알아서 하는 게라구. 내 학교 내가 맘대루 하갔다는데 뭔 말이 있갔어? 허튼 수작 부리면 문 닫아 걸 거이야. 내 학교 내가 문 걸어 잠그고 그만두겠다는데 나라가 뭬라고 하갔어? 빨갱이 인민공화국두 아니구 자유 대한민국 천지에서 말야. 알아듣갔어?"

변은 박 선생이 헛웃음을 짓는 걸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일 년에 백만 원도 안 되는 돈을 재단 전입금이라고 내놓으면서 학교를 제 주머니의 지갑처럼 여기는 것이 사립학교의 현실이라고 개탄하던 박 선생이었다.

 

(224) 막이 오르고 아이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변은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학생부에 끌려와 무릎 꿇고 매를 맞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우뚝 선 아이들을 보며 변은 가슴이 터질 듯 울렁거렸다.

조용하던 공연장에서 수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부대찌깨다."

이런 소리와 함께 밖에 있떤 대회 진행자들도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관심 깊게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뜻밖이었지만 변은 곁에 있는 박 선생의 손을 움켜쥔 채 아이들이 내놓는 대사 한 마디,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종을 훔치다
국내도서
저자 : 이시백
출판 : 검둥소 2010.03.29
상세보기

 

'행복한 책읽기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개입니까?(창신강)  (0) 2010.10.02
약탈이 시작됐다(최인석)  (0) 2010.10.02
직녀의 일기장(전아리)  (0) 2010.08.19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0) 2010.04.14
황금의 땅을 찾아서(스콧 오델)  (0) 2010.02.23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