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의 일기장(전아리)


제2회 세계청소년문학상 당선작인 이 책, "직녀의 일기장"은 열여덟 살, 직녀의 좌충우돌 고교 생활기를 담았다. 학생 주임 눈에 잘못 들어 학생부실을 들락거리는 것을 제외하고, 직녀는 딱히 다른 선생님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직녀에게 학교는 놀이터일 뿐 미래를 꿈꾸고 미래를 준비하는 곳은 아니었다. 가정에서 소외받고 사는 직녀로서 학교는 오히려 유일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학교가 바라는 바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곳은 아니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 폭력의 문제를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것도 잘못을 일으키는 가해자의 입장이 아니라 보통의 여고생의 입장에서 쬐끔 다른 생각을 갖고 살다보니 잘못을 하기도 하는 한 학생의 입장에서 풀어내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직녀는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하여 이해를 구하지 않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때가 되면 철이 들게 마련이다. 뭐, 자기 생계가 달린 일인데, 언제까지도 속 못 차리고 일만 살 수는 없는 게 세상살이 아닌가? 교사로서 나는 ‘누구에게나 같은 때를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 낭비, 인생 낭비를 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아이들을 가끔 다그치기도 하는 것 같다. 어버이들은 더 할 테지.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 삶이 자기 삶이 아닌 것 같아 더욱 더 통통 튀려하는 것일 거고. 


'제멋대로'라는 말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직녀처럼 제 멋대로 살고도 제 갈 길을 나름대로 찾는 아이들이 많기도 한 것 같다. 대학과 취직만 두고 본다고 한다면 그러한 삶이 나쁘지 않으므로 아이들을 닦달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가 누구 인생에 끼어들어 닦달 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것이 가치 있고 올바른 삶인지는 말해 줘야 할 것 같다.


(13)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내며 매를 휘두르거나, 치열한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는 부모님을 들먹이거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로 협박을 해도 결코 동요해서는 안 된다.


(61) 바깥일의 고됨을 모르고 집안에서 주는 모이만 콕콕 쪼아 먹는 오빠가 마냥 어린애 같다. 한심한 어린양과 다투기에는 내가 부쩍 어른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들어, 무시해 버린다.

 

(111) 왜,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 튀어나와서 미친 말처럼 나를 끌고 다닐 때가 있거든. 얼핏 보기에는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하니까, 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근데 뒤에 보면 그게 아니야. 정신 차리고 보면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 있기 일쑤란 말이지 그래서 난 감정이 날뛰려고 할 때면 일단, 유체이탈을 시작해.


(116) 내 꿈은 전국 방방곡곡에 수백 대의 음료수 자판기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차례로 도시를 순회하며, 자판기에 쌓인 돈을 회수하러 다니고 싶다. 물론 차비가 비싸기 때문에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닐 생각이다. 목이 마르면 내 자판기에 들어 있는 사이다를 뽑아 마셔도 좋을 것이다.

 

(240)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내계 쩔쩔매거나 나를 두려워할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나보다 약한 사람들 속에서 큰소리를 치며 생활하고 싶다. 간호사가 된다면 환자들 속에서 큰소리를 치며 군림하는 동시에 가끔씩 과일 바구니나 스타킹 세트 같은 선물까지 받을 수 있을 터이니 일석이조다. 이처럼 완벽한 직업이 떠 어디에 있단 말인가.


(243) 사람에겐 두 손이 있잖아. 한 손으로는 현실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꿈을 잡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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