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체(박지리)

외모와 관련된 말들이 부쩍 많이 생겼다.

'꽃미남, 조각남'이라는 말이 있고, '짐승남, 꿀벅지, 초콜릿복근' 같은 말은 외모를 먹을 것에 빗대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루저'라는 키가 크지 않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외모에 대한 편견이 결합된 말이다. 

 

이런 말이 생기고 유행하는 이유는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외모를 중요한 장점으로 받아들이는 자각에 의한 것도 있고, 외모를 상업적 이익과 연관지으려는 사회적인 분위기에 의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이니, 앞으로도 외모와 관련되었거나 외모와 성이 결합된 말들이 더 많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외모가 신분 상승, 또는 사회 생활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록, 외모의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 역시 더 많아질 것이다. 

 

이 책 <합★체>는 제목과 표지에서, 또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불렀다."로 시작되는 <난쏘공>의 첫 구절에서 '작은 키로 인한 컴플렉스'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쟁이였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옳게 보고 있었다. 난쟁이라는 것 외에, 사람들이 아버지에 대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처럼, 외모가 많은 것을 결정하는 사회적 시각까지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작은 키에 대한 컴플렉스는 '합'보다는 '체'에게 더 걸리는 문제였다. 똑똑하고 공부 잘 하며 외모에 대한 큰 고민이 없어보이는 '합' 보다는, 학교 생활에서 자신을 드러낼 게 별로 없고, 좋아하는 농구로 드러내고 싶으로 그럴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하며 더구나 잘 보이고 싶은 여학생이 있는 '체'에겐 큰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체'에게 계룡산 바위굴에서 33일을 도를 닦으면 달라질 것이라는 노인의 조언은 일생의 기회일 수밖에 없다.

물론 '키'는 계룡산 바위굴에서 33일을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도를 닦는다해도 한 번에 클 수 없다. 신화적 세계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지만, 현실의 세계에서 그것은 상징일 수밖에 없다.

 

계룡산 바위굴에서 '합'과 '체는 

자신을 생각할 시간을 가졌고, 자신의 내면의 변화가 외부의 변화를 이끌어간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합체' 아버지의 말대로, 쏘아올린 공이 떨어진 만큼 다시 솟아 오를 수 있는 말랑말랑한 '탄력도'가 결국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제목 '합체'는 공의 탄력성과 공을 튕기게하는 바닥의 합체를 의미할까.

 

(46) "혁명이니 데모니 그런 건 빨갱이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했어요." (중략)

"내가 명호를 오해하게 한 것 같네요. 혁명을 꼭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역사에 남는 혁명은 주로 정치와 관련된 것이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환경을 위해 분리 수거에 앞장서는 것도 혁명이고,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혁명이고, 친구와 싸운 후  먼저 사과를 하는 것도 혁명입니다. 저는 꿈을 가진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은 빨간 머리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붉은 피가 만들어지는 바로 여기, 여기에 있습니다." (중략)
"빨갱이 새끼."

(65) "그래, 그래서 쇠공이나 유리공 같은 건 아무리 강하고 예뻐도 절대 좋은 공이 될 수 없는 거지. 걔네들은 쏘기도 어렵지만 일단 쏴도 다시 튀어 오르지 않고 땅에 박히거나 깨져 버리니까. 벽에 부딪혀도 거기서 더 힘을 얻어 다시 힘차게 튀어 오를 수 있는 힘인 탄력도, 이게 좋은 공이 가져야 할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거란다. 합, 체, 아버지 말이 이해가 가느냐?"

(88) "도사님, 작은 건요.... 불쌍한 거예요. 초라하고요, 무시당하고요, 밟히고, 깨져서 결국 죽는 거예요.
(중략)
"이것 보세요. 개미는 이렇게 작으니까, 제가 당장이라도 발바닥으로 비벼서 죽일 수도 있잖아요. 진짜 불쌍한 인생 아니에요?"
체는 개미 옆을 발바닥으로 세게 비볐다. 개미는 갑자기 움직이는 물체에 어쩔 줄 모르며 신발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노인이 말했다.
"비록 니가 그 개미 한 마리를 당장 죽일 수는 있다고 하나, 개미 세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지 않느냐. 오히려 이 개미의 죽음이 전해지고 전해지면 개미들은 더 강한 방어  체계를 만들 것이고 더 힘을 기를 것이다. 멀리 보면 그렇게 해서 개미들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172) 체는 오래전부터 가슴속에 만들어 두었던 리스트를 활짝 펼쳤다. 키 크면 할 일드. 조회 시간에 맨 뒷줄에 서 보기, 교실 맨 뒷자리에 앉기, 바지 사서 맽단 안 줄이기, 밖에서 초등학생으로 오해받지 않기, 농구 선수가 돼 볼까, 배구 선수가 돼 볼까. 아니면 슈퍼 모델? 하고 싶은 게 하도 많아서 하나만 고르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병진 밟아 주기였다. 키가 커져서 나가면 다시는 난쟁이니, 난쏘공이니 하는 헛소리를 못하게 구병지을 마구 밟아 줄 생각이었다. 키 좀 크다고 세상에서 제일 잘난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목을 닭 모가지 꺾듯 확 비틀어 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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