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차오원쉬엔)


사춘기.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칠 내 모습에 끊임없이 촉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행동과 사고의 기준이 또래 친구나 부모였다면, 처음으로 의식한 이성 친구에게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나에 대한,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에 대한, 그리고 내 의지로 통제되지 않는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으로 혼란을 겪는 시기. 이런 시기가 사춘기 아닐까. 

모임에서 만들고 있는 책 <소나기>와 엮어 읽을 소설로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와 <사춘기>를 떠올렸다. 모두 성장 소설이며, '첫사랑'을 통한 성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기>,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
특별히 <소나기>와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는 인물의 성격과 변화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녀가 전하는 '관심'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는 소년과 줄리가 전하는 선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브라이스의 모습이 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적극적인 성격의 소녀와 줄리, 소극적인 성격의 소년과 브라이스도 비슷하며, 사건 전개 과정에서 인물 간의 성격이 바뀌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소나기>의 소년이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과 소녀와의 만남 속에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다면, 브라이스는 줄리와의 만남이 오랜시간 반복되면서 자신에게 없는 줄리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며 적극적으로 바뀐다는 차이가 있다. 즉, 갑작스러운 만남과 헤어짐이 단편 소설인 <소나기>의 특징이라면, 줄리와 브라이스의 교차 시점에 오랜 만남 속에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장편 소설인 <플라타너스 나무 위의 줄리>의 특징이자 차이점이다.

<소나기>, <사춘기>
1960년대, 중국 농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춘기>는 배경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인물의 만남과 헤어짐,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소나기>와 견주어 읽어보면 재미있게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사춘기>는 중국의 문화대혁명기, 다오샹두라는 시골 마을에 도시 지식 청년(이하 지청)이 하방(농촌 봉사)을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골 사람들에게 외모부터 눈에 띄게 구별되는 도시 지식 청년의 방문을 특별한 사건이다. 시골 소년 '시미'의 집에도 우여곡절 끝에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예쁜 지청 누나 '메이원'이 머물게 된다.

아버지가 조각가였던 '메이원'은 아무데나 조각하고 낙서하길 좋아해 학교 교장인 아버지에게 혼나는 일이 많았던 '시미'의 작품들을 보며 예술적인 재능을 발견한다. 시미는 메이원을 통해 '조각'이라는 좀더 다듬어진 세상과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의 배려로 지청이면서도 담임 교사가 된 메이원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보다 메이원을 배려하고, 메이원과 가깝게 지내는 또래 친구들에게 질투도 하며, 메이원 앞에서 자신이 능력을 보이려 한다.

그래서 시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은 메이원을 위해 추운 겨울 호수에서 황금물고기를 잡아 위로하려하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성적이 떨어져 학교에서 해직하게 될지도 모르는 메이원을 위해 반평균을 높이려고 문제지를 훔치기도 한다.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시미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고, 메이원은 어려운 시기 자신을 챙겨주었던 친구가 있으며 삶터이기도 한 쑤저우로 돌아간다. 메이원과의 이별을 예감한 시미는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만, 메이원과 엇갈린다. 

책의 곳곳에 아름답게 묘사된 다오샹두 마을의 아름다운 배경, '시미'와 '메이원'의 만남은 <소나기>의 소년과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시골 소년에게 비록 죽음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새로운 세상을 알려주었던 소녀와 예술과 흐트러짐 없는 순결을 가르쳐 준 메이원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소녀를 위해 자신도 모르게 생채기를 빨기도 했고, 송아지 등위에 올라타기도 했으며, 들킬까봐 걱정하면서도 '호두'를 따는 소년과 한겨울 황금잉어를 잡기도 하고, 거친 소 등위에 올라 타거나,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지도하는 메이원을 위해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시미의 모습도 겹쳐 보인다. 

다오샹두 마을에 갑작스럽게 배정되었다가, 삶터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지청' 메이원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겪으며 성장하는 '시미'의 모습 속에 <소나기>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47) 시미는 할 수 없이 값을 회전판 틈에 숨겨 놓고, 챠오챠오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밀어젖히자마자, 그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문가에 우뚝 서 버렸다. 마당 한쪽에 자리잡은 높다란 치자나무 아래에 붉은 손수건의 소녀가 서 있었다! 부드러운 석양이 얕은 담을 넘어 마당으로 낮게 퍼졌다. 치자나무에는 하얀꽃이 만발해 있었고, 진한 초록과 눈부신 흰색 사이로 무수한 꽃봉오리가 촛불처럼 생기 있게 머리를 들고 있었다.

메이원의 얼굴을 치자 꽃처럼 뽀얗고 화사했다. 그녀는 발뒤꿈치를 살짝 든 채 봉오리가 반쯤 터진 치자 꽃 향기를 맡고 있었다. 옆에는 시미가 강에 빠뜨렸던 그 가방이 놓여 있었다.


(103) 수업 시간이면 늘 딴 생각에 빠져 이리저리 몸을 뒤틀던 시미가 웬일로 두 눈을 동그렇게 뜬 채 메이원의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에 깊이 빠져 들었다. 메이원은 조각뿐만 아니라 시미의 모든 면에 신경을 썼다. 시미의 부모님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그녀는 아주 사소한 부분도 시미의 의견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196) 시미의 행동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엄마의 거울을 보며 자기 모습을 뜯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에는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도 없었고, 자기 얼굴을 굳이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미는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았다. 거울에 비친 사람이 새로 사귄 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시미는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고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우아, 얘가 시미라고? 왠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351) 책상 위에는 조각칼 상자도 놓여 있었다. 메이원의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메이원은 그것을 시미에게 남기고 간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 멀리 떠난 것 같지 않았다. 지금도 울타리 너머 그 방에 있는 듯했다. 시미는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방은 한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시선을 돌릴 때, 하얀 울타리가 시미의 눈에 들어왔다. 시미는 메이원이 떠나기 전에 그 울타리를 다시 한 번 하얗게 칠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고 선명해 보였으니까. 눈물이 솟아오를 때, 시미의 눈은 온통 순결한 흰색이었다.


사춘기
국내도서
저자 : 차오원쉬엔 / 김택규역
출판 : 푸른숲주니어 200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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