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콘서트(황광우)


중학생때 공부하기 가장 어려웠던 과목 중에 '농업'이 있었다. 시골에 살았고 매일 보는 것이 보리며 벼, 소와 돼지였지만 우리집은 장사를 했기 때문에 농업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생소했고 외워할 내용들이라 어려웠다.
고등학생때에도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이 많았지만 그 중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윤리'였다.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현실파악과 고민이 내삶과 연결되기 보다는 하나하나 외워야할 지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농업이야 그 시기에 외웠다 잊혀져도 그만인 지식이었지만, 인문학을 공부하고 그 언저리를 가르치는 걸 업으로 삼게된 지금도 철학은 여전히 이야기 꺼내기 어려운 지식이다. 하지만 여러 상황에 조금씩 더 익숙해지고 반성할 생활이 중첩되면서 서서히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들이 내가 생각하는 삶과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철학콘서트는 큰 부담없이 여러 성인들이 당대를 살아가며 고민했던 것과 해결책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어 좋다. 읽다보면 사상가들의 목소리와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 어려운 삶의 문제가 내 삶으로 연결돼 철학을 좀더 가깝게 느끼게하는 어떤 느낌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특별히 관심가는 사상가는 '토마스 모어'와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다. 이들 사상가의 철학적 사색이나 주장이 서로 맞물려 있고,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우리 사회에 비춰 생각해볼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세계사 시간에 한 줄 지식으로 넘겨버렸던 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 

전인적인 성장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통합으로 이룰 수 있고, 그래서 노동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자유시간을 늘려 정신적인 배움과 여가를 보내야한다는 주장. 그런데 분업을 통한 생산성의 증대에도 노동시간의 단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의 생산을 누가 축적하고 있는지 당시 영국사회나 지금 사회 공통적으로 품어봐야할 의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들은 정신노동에 비해 육체노동의 빈약으로 전인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며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교육과정 개편과 관련하여 음.미.체. 기가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계획에 대해 공부해야할 양이 너무 많다는 학부모단체의 주장을 따져봐야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당시 상공업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이론적 근거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 귀를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했으나, 당시 신흥 상업세력이었던 신교도에게 성실한 부의 축적을 인정하는 논리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이 이기심(=자신의 환경을 바꾸려는, 그래서 열심히 장사하려는)이 궁극적으로 이타심을 낳는다. 경제는 통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위의 논리대로라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다.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과 남이 가진 것을 교환해야하는 것이 좋고, 그런 까닭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분업을 해야한다. 그래서 최대 효용을 얻는 것이 인간 행동의 목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부의 극과극과는 상관없이 양적 총합이 가장 많으면 가장 행복하다는 논리를 이끌어냈다. 통계적 수치가 인간사회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질적인 삶에 대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분업은 인간의 노동을 컨베이어벨트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노동에서, 인간적인 삶에서 소외시키는 문제를 낳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자본론'에 썼다. 콘서트 사회자의 말도 다소 어려운데 원문은 더 어렵다고한다.
일단, 상품의 가치는 투입한 노동의 양이다. 물론 이때 상품은 분업에 따른 다른 물건과 교환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고 그 대가인 임금을 화폐 형태로 지불받는 관계 속에서 노동자의 수탈 관계는 은폐된다. 즉 '임금'이란 노동자가 목숨을 유지하는데 최소한의 생존 비용 정도이며, 그 나머지는 사업주가 갖는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 하면 동물 농장에서 닭이 알을 낳고 모이를 먹을 때, 그것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임금일뿐이며 그 이상의 대가를 받아야한다.  결국 자신이 받아야할 임금을 양계장 주인이 갖는다는 것인데, 그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화폐가 대신하므로 그런 관계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인간의 삶으로 치환하면 노동자는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만들기만하면 된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시간을 사업자의 이익을 위해 더 일해주고 있는 셈(잉여노동)이며 그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혹사당하고 분업이므로 노동 자체에서 소외되고, 인간관계에서 소외되고, 자연에서 소외된다.
결국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노동해방이며 인간해방이다.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의식이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구조의 모순이 심해지면 어느 순간에 기존의 생산관계를 바꿀 새로운 생산관계가 형성된다. 즉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바꾸는 상황이 된다.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신에게 제기한다.

"인류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자신에게 제기한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에서 나오는 구절인데 인간이 아니라 인류,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현대 사회를 정보화 사회라 이르는만큼 정보의 속도에 비례하여 사회 구조의 모순도 빨리 드러나고, 결국 노동과 삶에서 소외되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제기'할 문제가 되지 않을까.

공자와 노자의 태도, 특히 속편한 노자보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며 배우는 기쁨을 한시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공자의 모습이 논어나 맹자 등에 가려 보지 못한 소중한 장면이다. '이'와 '기' 무엇이 본질이고 중요한가의 문제를 통해 철학적 해석이 현실 삶의 구조에 얼마나 깊숙히 연결되어 있는가를 알게된 것도 성과다.
소크라테스, 예수, 토마스모어에 대한 이야기는 한 5년 전에 발간된 박원순 변호사의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와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책에서 추천하는 고전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면 콘서트를 감동 깊게 들었다고 해야하나.


철학 콘서트 1
국내도서
저자 : 황광우
출판 : 생각정원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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