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가 끝난 후 (레프 똘스또이 외, 박현섭, 박종소 엮고 옮김 / 창비) 러시아 문학기행에서 너무도 멀리 와버린 시점에서 창비 세계 단편집 읽기 마무리를 러시아 단편으로 매듭짓게 되었다. 수미상관, 원점회귀도 아니고 이 무슨 운명의 장난? 2019년, 2020년까지 2년간 러시아 장편 위주로 읽었기에 고골의 ‘외투’ 외에는 작가는 들어봤지만 작품은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결투’하면 빼놓을 수 없는 뿌슈낀! 그의 소설 ‘한 발’에서는 오랜 세월 기다린 진정한 복수와 명예 회복의 의미를, 인간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의 거장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그녀의 멋지고 품위있는 아버지의 야만스러운 모습(도망친 따따르 죄수를 행군하며 잔인하게 구타함)에 구토를 느끼며 허상과 다른..
포의교집, 초옥 이야기 (정공보 지음, 박희병, 정길수 교감‧역주 / 돌베개) 2019년 3월 8일 초판 1쇄 발행 은 정말 특이한 한국고전소설이다. 1866년, 19세기 중후반 무렵 나온 소설이고 여성이 주인공인데, 한문소설이다. 젊고 아름다우며 보통 남자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의지 또한 강한 여성이 벼슬 없이 초라한 지방의 40대 선비를 지극히 사랑하는 이야기다. 이 여성의 가장 큰 약점은 유부녀인 데다, 신분이 미천하다(원래 신분은 종이었음, 지금은 서민의 아내)는 것. 두 사람의 사랑은 온갖 풍파를 겪다가 결국은 아름다운(?) 이별로 매듭지어진다. 작가는 정공보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 어디에도 기록이 없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도무지 초옥(애칭은 양파)의 심리를 이해하기..
타이탄의 도구들: 정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61가지 성공 비밀 방송인 팀 패리스가 각종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성공비결들을 자신의 일상에 직접 적용해 얻은 성과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3월 배움의공동체 연구수업의 수업자였던 장은정선생님의 소개를 읽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발문하고 응답하는 방법을 이 책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읽어보니 책 자체가 아니라 이 책에서 수업 아이디어를 낸 장은정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는 정리하지 않았는데 문득 2학기 수업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가지고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다 타이핑을 해보았다. 이곳에 옮긴 내용은 퀴즈식으로 만들어낸 인상깊은 구절들이다. 학생들에게 맞히게 하면서 방학 동안 게임으로 굳어 ..
10년 전에 나온 수필(글모음들은 작가님이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 대부분이고, 80년대, 90년대 쓰신 글도 다수임)이고, 작가는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2018년 작고하심)인데, 아직도 울림이 큰 책이다. 아, 황현산 작가님께서 더 살아계셨다면, 혼란한 이 시대에 큰어른으로 호통을 치셨을텐데. 이제서야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것이 안타깝다. 무엇보다 나와 동향이라는 점, 1945년에 태어나셨고(친아버지도 해방둥이시다), 돌아가신 날이 8월8일(둘째 생일)이라는 것 등 뭔가 묘하게 작가님과 통하는 것이 많았는데... 좋은 책 읽으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구절들을 여기에 옮겨본다. 타이핑을 하다 보니 어쩌면 오늘날에 필요한 말씀들인지!! 슬프고 안타깝다. *소금과 죽음 (19) 내 고향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
방학을 며칠 앞두고 2시간 교무실과 복도가 시끌시끌했다. 선생님들의 신발이나 교과서를 빌려 달라는 아이, 학교운영위원실에서 제기차기나 팔씨름, 공기놀이를 하자고 초대하는 아이들로. 이른바 1학년부에서 주관한 '독서맨'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름에서 살짝 느껴지듯 SBS '런닝맨'의 학교 버전이었다. 1학년부장 선생님의 강력한 독서교육 의지로 진행된 행사인데, 시교육청에서 중학생들에게 추천한 도서 4권(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기후위기인간, 불편한 미술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 2권을 읽고 학년부장 선생님이 출제한 퀴즈에 통과하면 모둠 단위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션을 해결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격려하며 경쟁적으로 책을 읽고 활동에도 재미 있게 참여했다. 1학기를 돌아보는 글쓰기에서 ..
하고 많은 유럽 나라들 중에서 ‘폴란드’라니! 축산업이 발달해서 우리가 먹는 돼지고기 중 수입산의 대부분이 폴란드인 것 정도만 알고 있는 정도의 나라인데... 어쨌든 폴란드가 과연 러시아, 프랑스, 영국처럼 우리가 읽어볼 만한 작품들이 많은 나라인가? 혹은 스페인어처럼 언어와 문화가 방대한 영향을 끼치는 나라도 아닌데, ‘폴란드’라니! 심지어 400쪽이 넘는 분량이라니! 그런데 첫 작품 를 읽고 단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느껴서라기 보다는(솔직히 그걸 가늠할 수 있는 안목도 없지만), 폴란드라는 나라가 한국과 비슷한 공감대와 정서를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알퐁스 도데의 을 읽고 느꼈던 그 간질간질한 감동과 비슷한? 스카빈스키에 반영된 폴란드 사람들의..
오랜만에 학교 샘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 읽기로 한 책이 이 책이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찾아오기로 했는데 두 샘의 추천 목록에서 이 책이 겹쳤다. 띠지에 ‘2022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써 있었다. 검색해 보니 블로그, 유튜브 할 것 없이 리뷰가 많았다. 그런데 첫 번째 살펴본 리뷰에서 반전이 많은 책이라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 먼저 읽어보고 리뷰를 보라고 했다. 읽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모임을 며칠 앞둔 금요일 저녁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과학 책이지만 소설이나 에세이 느낌이 강했다. 또 인간이란 존재는?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책으로 읽혔다. 철학책인가? 도서십진분류표를 보니 409번. 과학사 관련 책이었다. 그렇다. 세상에 명확하게 구..
단 몇 작품으로 일본 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창비 단편선에 실린 소설들은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들과 극강의 가난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았다. 극과 극을 오가는 인물들의 대비, 그리고 가난에 대한 묘사가 충격적이어서 한 작품 씩 읽어나갈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만큼 아찔했다. 에 등장하는 가난한 정원사 부부(부부가 내외로 석탄을 훔침)와 하녀를 비롯한 북적이는 대가족 집안의 대비, 의 철없는 도련님 오오쯔와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주인들의 변덕으로 삶의 운명이 흔들리는 하녀 찌요, 그리고 정말 가난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 이 단편에서는 ‘젠바까’라고 불리는 광인가 소작농 진스께 집안의 형제들, 그리고 가난으로 인해 얻은 병으로 고통받다 어머니의 사랑 한 줌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자살한..
작년부터 읽어보려 책장에 꽂아두었는데, 드디어 손에 잡고 읽게 되었다. 표지부터 '나 정말 재미없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제목도 작은 글씨로 상단 왼쪽에 '읽어도 도대체', 하단 오른쪽에 '무슨 소린지'라고 아주 작게 적혀 있다. 자세히 보니 초록색 표지는 요철처럼 미로를 새기듯이 올록볼록한 벽돌 같은 문양이 있는데, 글을 읽으면서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글자나 단어를 인식할 때 생기는 불편함을 마치 암호를 새기듯 표현한 것 같다. 어떤 선생님이 말씀하기를, 문해력 관련 책 중에서 그래도 가장 쉽게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만했다. 특히 교사로서 생각해 보고, 수업에 가져올만한 좋은 정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학교에서 쌓은 경험들을 아주 솔직하면서도 자세하게 기록하고 수업방법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