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프란츠 카프카)

 

솔직히 카프카의 장편 한 편을 읽어냈다는 것이 유일하게 뿌듯한 책읽기였다.

무엇 때문에 소송을 당했는지 모르면서(심지어 소송이 아닌 체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더 헷갈리고 정신없었던 것 같다), 300쪽이 넘는 분량의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요제프 K의 대응, 문제 해결을 위한 지난한 노력에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누군가 도움이 될만한 주변 인물들을 만나겠지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어가는데, 마지막 챕터 종말에서의 허무한 죽음(살해?)은 도대체 뭐지? 이 허무함, 배신감!! 게다가 미완성이라니!!!

 

주제를 알 수 없는 전개임에도 매 챕터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은 꽤 인상적이지만 주인공에게 대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들이다. 첫 장부터 충격에 빠트린 감시원들, 법원의 정리, 그리고 걱정 많은 삼촌, 삼촌이 소개해준 병약한 변호사 블로크, 은행에서 만난 제조업자가 소개해준 화가 티토렐리, 변호사 집에 기숙하는 상인, 친구라고 생각하는 검사, 부지점장 등, 이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도 대부분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체포당하는 장면을 불온한 호기심으로 지켜보는 건너편 집 노파부터 하숙집 주인 그루바흐 부인, 밑도 끝도 없는 성적인 탐욕으로 가득한 법원 정리의 아내와 변호사의 하녀 레니, 화가 집의 염탐하는 버릇없는 여자 아이들!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지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참 복잡하고 힘들다.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색다르게 접근하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신부와 뷔르스트너 양이다. 신부는 <문지기와 시골사람> 우화를 들려주며 에 대해 이야기하고, 뷔르스트너 양은 주인공의 해명에 시달림을 당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 후로 주인공은 뷔르스트너 양을 만나고자 하지만 의도적으로 거부당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이 멀어가는 어머니의 존재!

주인공의 끝을 알 수 없는 고독은 주위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어쨌든 마치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법에 의해 체포 혹은 소송당하며,, 결국의 아득한 고독 속에 죽어간(살해된) 주인공은 <변신>의 주인공과 참 많이 닮은 것도 같다. 해설 부분에 어떤 대비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해석에 공감한다.

 

그리고 해설의 마지막 부분,

349이러다 보니 소송에 대한 해석은 계속해서 많은 가능성만을 만들어낼 뿐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다. 따라서 실존적 해석, 신학적 해석 등등 많은 해석의 열쇠들이 나타나 문지기 전설의 시골 사람처럼 법의 문을 열어 보고자 나름 노력할 뿐이다.”

이 부분을 보며 마음을 놓았다.

결국 번역가도, 카프카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해석의 가능성만 만들 뿐이지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 같은데, 읽는 내내 미로를 헤매며 에너지를 소진했던 나에게 아주 작은, 매우 소소하게 위로가 되는 구절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26) 「체포당한 몸인데 은행엘 어떻게 가죠?」 「아, 그렇군요」 감독관이 말했다.
감독관은 어느새 문가에 가 있었다. 내 말뜻을 잘못 알아들었소. 당신은 체포되었소, 분명히.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상적인 직업 활동을 못 하는 건 아니오. 평소 하던 생활 방식에 방해를 받는 것도 아니요.」 「그러면 체포되는 것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군요.K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갔다. 체포되는 게 나쁘다고 한 적은 없소.」 「그렇다면 체포 통고를 꼭 할 필요도 없었던 거군요.K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다른 사내들도 다가왔다. 이제 모두들 문가의 좁은 공간에 모여 있었다. 그건 내가 수행해야 할 의무였소.감독관이 말했다. 별 멍청한 의무도 다 있네요.

 

 이건 뭐 부조리극을 예고하는 선전포고인가? 체포되었는데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고, 자유롭게 생활이 가능한 피고인에게 집에까지 여러 명이 와서 체포되었음을 통고하는 것은 얼마나 해괴한 장면인가? 이때부터 이 작품에 멘붕이 오기 시작한 것 같다.

 

(52) 또 시간을 너무 정확하게 지켜 심리 위원회 앞에서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고 싶은 생각도 일체 없었다. 물론 정해진 시간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가능한 9시에 대가려고 서둘러 가는 중이다.

 

✍  주인공이 사소한 것 하나에도 자존심을 세우지만, 자존심보다는 소심한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일절이 아닌 일체라니!!

 

(145) 첫 번째 청원서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변호에 있어 첫인상이 소송의 전체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K에게 알려 줘야 할 말이 있는데, 이렇게 작성된 첫 번째 청원서들을 법원 쪽에서 전혀 읽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  두 번째 멘붕!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절차란 말인가? 삼촌의 간곡한 요청으로 변호사를 만나긴 했는데, 병약한 데다 수발드는 하녀도 이상하다. 그런데 첫 청원서가 중요한데, 법원에서는 안 읽을 가능성이 크다고? K가 어렵게 찾아간 법원의 풍경도 그렇고, 변호사도 그렇고, 과정과 절차가 말도 안 되게 부조리한 장면들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힌다.

 

(153) 제발 괜히 이목을 끌지 말자! 늘 침착해야 한다. 아무리 신경에 거슬려도!

 

✍  항상 매사에 조심하고 이목을 끌지 않으려 노력하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 소송 중임을 너무도 뻔히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조심스러운 생각들이 참 안타깝다.

 

(235) 그 여자의 특이한 성격은 바로 대부분의 피고가 잘생겼다고 생각한다는 거요. 그 여자는 그래서 아무한테나 매달리고 모든 피고를 사랑해요.

 

✍  세 번째 멘붕! 그렇게 치근덕대던 레니의 심리를 그녀의 주인인 변호사가 분석해 주는 장면인데...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239) 소송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버리기 위해 변호사에게 변호 일을 맡겼으니 당연히 그래야 하죠. 하지만 상황은 그 반대였죠. 당신한테 변호를 맡기고부터는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소송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동안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며 가슴 답답한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이다 대사를 날리는 주인공! 문제는 이 대화가 일어나는 문제의 장 마지막에 주인공 K가 변호사와 갈라서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 답답!

 

(242) 내가 보기에 당신은 법률 고문으로서의 내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군요. 그리고 또 당신은 피고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대우를 잘 받는 바람에, 아니 정확히 말해서, 너무 엄격하지 않게, 아니 너무 엄격하지 않은 듯한 대우를 받는 바람에 지금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 같소. 이렇게 엄격하지 않게 대우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건 쇠사슬을 차고 있는 게 자유로운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오.

 

✍  와, 이건 무슨 개소리인가? 블로크가 왜 5년 내내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살았는지 알 것도 같은 대목.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말로 소송당한 사람들을 옭아매는 가증스러운 변호사.

 

(255) 이런 정도의 지시는 마음만 먹으면 별로 거치적거릴 것 없이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엄두도 못 냈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이유가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지시를 거부하는 것은 그 두려움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이런 지시들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이틀에 걸쳐 고된 출장을 다녀와야 할 때도 감기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  주인공의 심리는 점점 피폐해져만 가고,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가는 상황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317) K는 이런 자신의 약점의 원인을 잘 알았다. 이런 면에서 아직 그의 마음 속에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는 것 아닐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아버지의 보살핌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채 곧 집을 떠나왔고, 여전히 늘 그 모양 그대로인 교외의 어느 소읍에서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로 살고 있는 어머니 — 어머니를 마지막 본 지가 20년도 넘었다 —의 사랑을 받기보다 오히려 늘 거부했다.

 

✍  삼촌 외에는 비밀에 싸여 있던 주인공의 가족관계가 거의 막바지, 미완성 챕터에서 드러나고 있다. 안타깝기도 하고, 이야기 내내 자신의 편 한 명 없이 외로울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운명이 수긍이 되었다.

 

<해설>

(339) 그레고르 잠자나 K나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그대로 당하는데, 잠자리에 들었던 인간의 편안함과 대조되는 일상의 시작은 이렇게 끔찍하다. 어떤 대비도 없이 속수무책을 당하는 것이 카프카의 주인공들이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K의 방식은 전혀 탐정의 그것이 못된다. 그래서 모든 게 수수께끼다.

 

✍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든 게 수수께끼 같은이런 대목들에 격하게 공감한다!

 

(349) 요제프 K의 <소송>은 자기 자신의 죄에 대한 해석 과정이다. 법이나 법원이나 그 정체를 한마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 죄는 그가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K의 유죄여부는 순전히 자신에 대한 인식 여부에 의존한다. 이런 관점이 카프카의 『소송』을 해석하는 전제가 된다. 이러다 보니 『소송』에 대한 해석은 계속해서 많은 가능성만을 만들어낼 뿐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다. 따라서 실존적 해석, 신학적 해석 등등 많은 해석의 열쇠들이 나타나 문지기 전설의 시골 사람처럼 법의 문을 열어 보고자 나름 노력할 뿐이다.

 

✍  결국 번역가도, 카프카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해석의 가능성만 만들 뿐이지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 같은데... 읽는 내내 미로를 헤매며 에너지를 소진했던 나에게 아주 작은, 매우 소소하게 위로가 되는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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