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카렐 차페크, 김희숙 역)

 

우리가 그동안 이 작가를 왜 몰랐을까?

이토록 냉철하면서 따뜻하고, 유머와 냉소를 적절히 섞어서 표현하되 인간과 생명에 대한 애정이 깊은 작가를 말이다!

로봇(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짧은 희곡이지만, 행간에서 펼쳐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통찰과 고민, 노동의 가치 혹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가져올 미래(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면 과연 인간이 자아실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공상, 인간을 닮은 존재에 대한 인식과 태도, 무조건적인 진보에 대한 비판 등 독자를 쉼 없이 상상하고 고민하게 하는 진짜 두툼한 책이다.

1900년대 초 격동의 시대를 동유럽의 작은 나라에서 이토록 깊고 넓은 통찰력과 상상력으로 독자를 매료시킨 작가가 있었다니!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두툼한 <도롱뇽과의 전쟁>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매료되었다!

 

 

(33) 도민 : 그때 젊은 로숨은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인간이란 건, 행복을 느끼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산책을 하고 싶어 하는, 대개는 별로 쓸모없는 것들을 많이 필요로 하는 그런 존재야.’

헬레나 : 오 저런!

<중략>

헬레나 : 가장 훌륭한 노동자요? 그야 뭐, ... 가장 정직하고, 가장 성실한 사람이겠죠.

도민 : 아니죠. 가장 값싼 노동자입니다. 욕구가 가장 적은 노동자 말입니다.

<중략>

친애하는 글로리오바 양, 로봇은 사람이 아니죠. 기계적으로는 그들이 우리보다 완벽합니다. 또 깜짝 놀랄 만한 지적 능력도 갖고 있죠. 하지만 그들에겐 영혼이 없습니다. , 글로리오바양, 엔지니어의 생산물은 자연의 창조물보다 기술적으로 더 정교합니다.

 

(51) 파브리 : ~ 기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유년기란 완전히 난센스입니다. 그저 시간 낭비일 뿐이죠. 도무지 옹호할 수 없는 시간 낭비입니다.

 

(55) 부스만 : ~글로리오바 양, 옷감 한 필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헬레나 : 잘 모르겠어요. 정확하게...얼마인지 잊어버렸어요.

부스만 : 하느님 맙소사, 이런 사람이 인권연맹 활동을 하고 있군요!

~~

부스만 : ~ 공장이란 공장들이 모두 다 도토리 부서지듯 도산하지 않으려면,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서둘러서 로봇을 사야 하는 겁니다.

헬레나 : 그렇겠죠. 그리고 인간 노동자들은 점점 밖으로 내몰리고요.

 

(57) 도민 : ~ 모든 일은 살아 있는 기계들이 할 테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즐기고 싶은 일만 하면 됩니다. 인류는 자아실현을 위해서만 살게 되는 거죠.

~~

노동자도, 사무원도 모두 다 사라지게 될 겁니다. 누구도 광산에서 석탄을 캐거나, 다른 사람의 기계로 노예처럼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는 짓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알퀴스트 : 도민, 도민!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군. 무슨 파라다이스를 이야기하는 것 같잖소. 도민, 옛날에는 그래도 봉사하는 일에 미덕이 있었고, 공손함에도 뭔가 위대한 것이 있었지. 아아, 해리, 노동과 피로감에는 어떤...모종의 미덕이 있었단 말일세.

 

(83) 알퀴스트 : 난 아주 보수적이지요, 헬레나 여사, 난 이런 진보, 눈곱만큼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헬레나 : 나나처럼요.

알퀴스트 : 그래요, 나나처럼, 나나에게 기도 책이 있을까요?

헬레나 : 크도 두툼한 게 한 권 있어요..

알퀴스트 : 그럼 거기에 인생의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한 기도문도 있나요? 폭풍에 대한 것도? 질병에 관한 것도?

헬레나 : 유혹에 관한 기도, 홍수에 관한 기도...

알퀴스트 : 하지만 진보에 대한 기도는 없을걸요...그렇지 않나요?

헬레나 : 없다고 봐요.

알퀴스트 : 부끄러운 일이에요.

 

(89) 라디우스 : 나는 어떤 주인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스스로 압니다.

헬레나 : 그래서 내가 당신을 도서관에 두었던 거잖아! 덕분에 당신은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잖아요. , 라디우스, 난 당신이 로봇도 우리와 동등하다는 것을 온 세상에 입증해 주길 바랐던 건데...

~~

라디우스 : 나는 다른 이들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122) 도민 : 난 모든 인류를 귀족계급으로 개조하고 싶었어요.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운, 최상의 사람. 아니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그 무엇으로 말이죠.

알퀴스트 : 그건, 말하자면 초인이군 그래.

 

(153) 라디우스 : (바리케이드에 올라선다) 만국의 로봇들이여! 많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공장을 접수한 우리는 만물의 지배자가 되었다. 인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 로봇들이 지배하는!

 

(182) 알퀴스트 : ~~ 생명은 불멸할 것이오! 멸망한 건 우리 사람들일 뿐. 우리의 집과 기계는 못 쓰게 되고, 우리가 이루어놓았던 체계는 붕괴되며, 위대했던 위인들의 이름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떨어지겠지.. 그러나 오직, 너만은, 사랑이여, 너만은 이 폐허 속에서 꽃을 피워 생명의 작은 씨앗을 바람에 맡기리라. 주님, 이 종을 평화로이 거두어주소서. 이제 이 두 눈으로 보았으니...당신께서 사랑을 통해 구원하심을 목도하였으니, 생명은 불멸할 것입니다! (일어선다) 불멸하리라! (두 손을 앞으로 펼친다.) 불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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