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기행(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송병선 역)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책이다.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출신이고, 스탈린 사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동유럽 국가들을 방문하며 쓴 기행문 형식의 글이다. 남미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과거 동유럽의 모습이라니!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유럽을 보며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울 하나를 얻은 느낌이었다.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이념에 의해 단일하게 교육 받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놀라우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가득하다. 특히 내년 여행하게 될 폴란드와 체코에 대해 작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긍정적으로 서술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상 깊은 구절>

9 '철의 장막'은 장막도 아니고 철로 돼 있지도 않다. 그것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칠한 나무 방책인데, 꼭 이발소 간판 같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끓어오르는 폴란드 바라보기-

106 상점은 동독과 마찬가지로 형편없다. 그러나 서점은 예외다. 그곳은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화려하며 깨끗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바르샤바는 책으로 가득하고,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싸다.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잭 런던이다. 아침 8시부터 열려서 사용되는 독서실이 있지만, 폴란드 사람들은 거기에 있는 걸로 만족하지 않으며, 독서를 통해 삶의 모든 공백을 메운다. 그들은 전차를 기다리거나--전차를 타려면 온종일이 걸린다--필수 생활품을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책이나 잡지, 공식 선전 책자 등을 마치 수도사처럼 다소 멍하니 읽는다.

 

109 그들은 덕지덕지 기워졌지만, 찢어지거나 망가지지는 않았다. 설명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가난하지만, 반항 정신으로 가난과 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건 적어도 동독에서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낡은 옷과 닳은 신발 속에서 폴란드 사람들은 존경할 수밖에 없는 기품과 품위를 간직하고 있다.

 

122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는 서방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고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다.

 

123 파리의 어느 신문은 얼마 전에 이런 머리기사를 발행했다. "프랑스 좌익이 생각하는 바를 알려면 바르샤바의 신문과 잡지를 읽어야 한다." 사르트르가 쓴 최근의 몇몇 글은 프랑스어보다 폴란드어로 먼저 출간되었다. 바르샤바 언론에서는 가장 훌륭한 프랑스 작가들과 폴란드 작가들이 격한 논쟁을 벌였는데, 파리는 이런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소비에트 연방 : 2240만 제곱킬로미터 안에 코카콜라 광고판이 하나도 없는 곳-

156 스페인 문화에 대한 특별 강의를 들었으며, 그렇게 애국적 열정을 품게 되었고, 그래서 모두가 그런 열정을 뜨겁게 드러낸다. 스페인어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외국어인데, 그런 현상 중 일부는 그들의 영향이 크다.

 

159 극장 문 앞에 모인 인파 속에서 어느 여자는 대표단 단원의 셔츠 주머니 속에 25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넣어 주고서 다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그런 과도한 관대함이 대표단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는 정부의 지시를 따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붉은 광장의 영묘에서 스탈린은 양심의 가책 없이 잠을 잔다-

199 아마도 스탈린의 더 큰 잘못은 모든 것에 개입하려는 소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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