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과학 공부(배대웅)
- 행복한 책읽기/자연기술
- 2024. 9. 23.
방학을 하고 책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담양공공도서관 신간 코너를 둘러보다 이 책을 발견했다. “볼 것 많은 요즘 어른을 위해 핵심 요약한 과학 이야기, 최소한의 과학 공부”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방학 동안 세상의 변화를 조금은 따라잡을 수 있으려나. 차례를 보니 의학, 정치, 경제, 철학 4개 분야에서 과학이 이끈 세상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읽다 보니 과학책인 것 같기도 하고 인문 책 같기도 했다. 그만큼 과학의 변화가 인류에게 중요하다는 방증이겠다. 제목은 '최소한의 과학 공부'였지만 제대로 읽느라 공부 좀 했다. 읽으면서 메모했던 부분을 통해 이 책을 소개한다.
1. 의학: 과학은 어떻게 인류의 무기가 되었나.
마취제, X선, 항생제, 백신 개발 등의 과학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통해, 과학이 인류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책의 주제처럼 과학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기본적인 지식이라는 것. 이 장에서는 과학의 발달 과정에서 ‘우연’적 발견이 적지 않은데 X선이나 페니실린 발견이 그렇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연을 축적된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상태, 노력하는 자에게 찾아온다고.
(85) 우선 세포 속의 DNA가 어떤 단백질을 만들지에 대한 정보를 RNA에 전달한다. 이것이 전사다. 이때 전사된 RNA가 mRNA다. mRNA가 세포핵 밖으로 나가면 리보솜이 부착된다. 그러면 가져온 유전정보에 부합하는 아미노산만 차례로 붙어 사슬(폴리펩티드)을 이룬다. 이를 번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폴리펩티드는 여러 형태로 가공되어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비유하자면 RNA는 우리 몸의 설계도(DNA)를 암호화해서 생산 공장(리보솜)으로 가져가, 몸의 기본 재료(단백질)를 만들어내도록 복호화한다.
(87) mRNA 기반 백신은 항원 대신 항원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를 넣어줌으로써 패러다임을 바꿨다. mRNA가 수행하는 이 설계도 전략의 장점은 신속성과 유연성이다.
✍ ‘백신과 코로나19 극복’ 장이다. 보통 백신은 병원성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킨 병원체 또는 그 일부를 인체에 투여해 항원 특이적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이 든다. 코로나19는 위기적 상황이기에 국가와 제약회사,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백신을 개발한 사례이다.
2. 정치: 권력과 상부상조하며 탄생한 과학
과학이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탐구, 추론의 영역이었다가(이때는 순수과학, 아마추어로), 부국강병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근대 과학혁명을 거쳐 기술과 결합하였으며 그러면서 학회, 아카데미, 대학, 연구소 등이 생기고 직업으로서 과학자, 제도로서의 과학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온실효과와 기후변화의 과학, 맨해튼 계획과 원자력의 상용화, 가속기와 입자물리학 실험, 아폴로 계획과 우주 개발, 인터넷 정보혁명의 확산, 과학의 전문화와 국가의 지원 등 현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힌다.
(131) 다른 선진국들의 가속기 경쟁도 만만치 않다. 일본은 그중 가장 극적인 경우다. 원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을 농업 국가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화학연구소를 폐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1950년 바로 옆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이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일본을 공산주의에 맞서는 자본주의 진영의 최전선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중략) 갖은 우여곡절 끝에 이화학연구소는 다시 문을 열었고, 1966년 기존보다 훨씬 더 큰 가속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2016년, 가속기 실험으로 113번 원소를 발견해 일본의 국호를 따서 ‘니호늄’이라고 명명했다.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원소다. 현재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형 가속기를 보유한 나라다.
✍ 일본의 역사는 우리 역사와 톱니바퀴 같은 관계이다. 일본의 식민지였으면서도 식민지 본국 대신에 분단된 나라,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국력을 회복하고 그것을 빌미로 다시 우리를 억압하려는 나라. 그래서 맨해튼 계획에서 드러난 과학 성과의 극단적인 양면성, 냉전 체제가 아니었다면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성공할 수 없었던 아폴로 계획보다 더 눈에 띄었다.
3. 경제: 인류를 풍요롭게 만든 위대한 과학의 순간들
근대부터 현대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기 시작한 1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정치적, 물리적 자유를 이끌었고 자유사상과 공명하며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전기가 주도하는 2차 산업혁명은 과학의 난제 해결이 산업적 파급력으로 이어졌다. 과학이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루나 소사이어티와 산업혁명의 기원, 서양의 과학기술과 경제성장, 전기기학과 전기에너지의 등장, 2차 산업혁명과 대중의 시대, 리튬이온전지와 충전 가능한 세계, 청색 LED와 빛의 혁명 3부작, 제목만으로도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던 과학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189) 하지만 교통의 혁신으로 인류가 받은 가장 큰 혜택은 무엇보다 ‘시간’이었다. 나라 간 이동 시간이 몇 주와 몇 달에서 몇 시간과 며칠로 줄었다. 인류는 그렇게 번 시간을 다른 생산과 지식 활동에 투여함으로써 더 많은 문명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와트를 두고 ‘시간의 발명자’라고 칭송한 이유이기도 하다.
(215)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인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전자기학의 완성으로 전기라는 새로운 동력을 대량으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기의 상용화는 이미 진행 중이던 산업혁명을 크게 자극했다. 그래서 증기기관이 주도한 18세기의 1차 산업혁명과 구분하여, 전기가 주도하는 19~20세기를 2차 산업혁명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 증기기관의 시대 못지않은 발명품들이 쏟아졌다.(전신기, 전구, 전축, 전화기, 전기냉장고 등)
(248) 리튬이 가진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치명적 문제 때문에 상용화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 올여름 전기자동차의 화재는 리튬이온전지의 특성(?) 때문이다. 폭발할 수 있다는 것. 이 장에서는 1차 전지를 대체하기 위해 니켈카드뮴, 니켈수소를 활용하다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나타나 있다.
4장. 철학: 과학적 사유의 시작과 끝을 보다
철학과 과학은 문과, 이과의 개념에서 보면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대 이후의 철학과 과학은 한몸이었다. 철학과 과학은 세상을 탐구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었다. 1~3장에서 이야기되었던 내용들이 4장에서도 다시 등장하며 이 책의 ‘과학’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포함한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다시 확인시켜 준다. 앞에서 이야기되었던 내용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철학 관련 내용이라 익숙한 내용도 많지만 역시 과학 관련 내용들은 자료를 찾아가며 읽게 된다. 읽어보니 과학이 철학이다!
지동설과 세계관의 전환, 기계론과 인간-자연 관계의 변화, 뉴턴역학과 결정론의 확립, 계몽주의와 뉴턴의 후예들, 진화론과 경계를 넘는 과학, 진보사관과 역사의 과학화, 상대성이론과 아인슈타인의 20세기, 양자역학과 미시세계의 탐구 등 과학의 역사가 곧 철학의 역사이므로 분량도 가장 많다.
(280) 자연은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인류는 자연을 이해와 조작이 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했다. 근대의 정신적 기초를 이룬 과학적 사유가 그렇게 시작되었다.(기계론과 인간-자연 관계의 변화)
✍ 중세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이 주류를 이룸.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을 주장함. 자연이 뚜렷한 목적에 따라 운동하는 유기체라면 이를 조정하는 '신'이 필요했음. 그러나 17세기, 종교전쟁 등으로 가톨릭의 권위가 무너지고 근대국가들이 부상하며, 부르주아지가 권력을 잡게 되면서, 사상과 학문에도 큰 변화가 일어남. 근대인들은 자연은 물질들의 조합일 뿐이라고 해석. 즉 그렇게 프로그래밍 돼 있으므로 관찰과 분석을 통해 법칙을 발견하면 자연을 통제하고 인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 이것을 기계론적 철학이라고 함. 이 입장은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로 나뉨.
(313) (로크, 볼테르, 벤담, 제퍼슨 등의 뉴턴역학의 후예들이 “프린키피아”에 대한 이해는 피상적이었지만) 자연보다는 인간, 과학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시했다. 계몽주의자들이 과학에 열광한 이유는 어떠한 권위나 독단 없이 합리적으로 진리에 이르는 그 ‘방법’에 있었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 과학적 사유는 그들이 설계했던 사회에 곡 필요한 핵심 원리였다.
✍ “프린키피아”는 어떤 결과가 존재하려면 합당한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뉴턱역학을 믿는 사람들은 신의 권위나 왕권신수설을 반대하고 이성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를 꿈꿈. 계몽주의자들.
-볼테르: 프랑스인이지만 영국으로 망명. 영국사회의 자유, 관용, 정의의 정신이 뉴턴역학에 있다고 보고 프랑스에 적극적으로 알림.
-로크: 국가 권력의 원천은 이성적인 개인들이 맺은 계약임. 즉 이성에 기초한 사회계약ㅇ르 통해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인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벤담: 철학에서 보편적인 법칙은 고통과 쾌락. 따라서 개인 행복의 총합을 극대화하도록 국가를 운영해야 함.. 신분과 관계없이 행복 지수가 높아지도록 해야 함.. 이것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공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의미가 아닌 민주주의 개념임.
-제퍼슨: 프린키피아의 세 가지 법칙을 공리로 제시해 독립선언서 작성.
(339) 과학은 자연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를 개조하는 수단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를 통해 인류는 역사의 진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라는 진보사관을 따른 이들은 각자의 방법대로 역사 발전을 이루려 했다. 제국주의, 혁명, 세계대전, 냉전 등 20세기 세계사의 격동은 그 필연적 결과였다.
(348) 고전물리학을 떠받치는 세계관은 결정론이다. 원인을 알면 결과도 예측할 수 있다. 과학의 강력한 지적 권위는 결정론에서 기인했다. 결정론 덕분에 주술과 미신의 영역이었던 미래 예측이 이성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근대 과학혁명은 곧 결정론적 세계관이 인류의 사고체계를 지배해 가는 과정이었다. 아인슈타인도 결정론자라는 점에서 이전 세대와 다르지 않았다. 사실 특수상대성이론도 맥스웰의 물리법칙을 정교화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연구는 역설적으로 결정론적 세계관에 타격을 입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부정한 것이 뇌관을 건드렸다. 이렇게 핵심 전제가 무너지자 고전물리학의 권위는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 아인슈타인은 예술에도 영향 끼쳤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 에셔의 '상대성' 등은 주체의 위치와 관점에 따라 사물의 실제를 다르게 볼 수 있음을, 피카소의 큐비즘, '아비뇽의 처녀들'은 한 시점 아닌 여러 시점에서 봐야 본질이 보인다는 점에서.
(364) 양자역학 없는 현대 과학기술문명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인류는 양자역학을 통해 비로소 원자 내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전자와 원자핵을 제어하게 되면서 전자기술과 원자력 에너지도 급격히 발전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양자역학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기술 수준에 이를 수 없었다. 물리학뿐만이 아니다.~
✍ 양자역학은 낮은 수준에서라도 이해했다가도 곧 알 수 없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양자역학을 통해 과학과 인식의 영역이 미시세계까지 확대되었고, 지식의 양이나 축적의 속도도 엄청 넓어졌다. 무리하게 인간적으로 해석하면 거대 인간 사회에서 개인의 내면까지 관찰과 이해의 지평이 넓어졌다. 그런 인식의 태도도 갖추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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