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오랜만에 학교 샘들과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 읽기로 한 책이 이 책이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찾아오기로 했는데 두 샘의 추천 목록에서 이 책이 겹쳤다. 띠지에 ‘2022 최고의 화제작’이라고 써 있었다. 검색해 보니 블로그, 유튜브 할 것 없이 리뷰가 많았다. 그런데 첫 번째 살펴본 리뷰에서 반전이 많은 책이라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 먼저 읽어보고 리뷰를 보라고 했다. 읽어보니 그 말이 맞았다.

모임을 며칠 앞둔 금요일 저녁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책이었다. 과학 책이지만 소설이나 에세이 느낌이 강했다. 또 인간이란 존재는?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책으로 읽혔다. 철학책인가? 도서십진분류표를 보니 409번. 과학사 관련 책이었다. 그렇다. 세상에 명확하게 구분되는 일이 어디 있을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과연 과학적인 문제이기만 할까.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란 책을 읽으려고 생각했다면 나역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자고 말하고 싶다.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을 읽어야 이 책의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반전'이.

 

 

(조금 틈을 두고자..)

 

 

다 읽고 나니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이 상당히 상징적이다.
먼저 이 소설에서 ‘물고기’는 인간이 타락한 상태를 나타낸다. '루이 아가시'의 견해와 스승의 수제자 데이비드 조던의 시각에서 어류는 그렇다.

또한 ‘어류’는 생물의 본질적인 특성과 관계없이 인간의 직관에 따른 분류로 그 자체로 인간의 시각(=언어적 거세)이 반영된 단어이다. ‘어류’는 하나로 통칭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자연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명명’의 오류를 상징한다. 현재도 ‘어류’라는 단어가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인류의 현 주소를 나타낸다.
따라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프레임을 걷어내야 복잡하고 다양한 생명체(인간사회도 포함해)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의 우월성을 버리고 좀더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 지구에서 살 자격이 생긴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우리 인간은 언제든 지구에서 추방당할 수 있다.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 인간이 규정지으며 명명한 갖가지 '자'들을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인간 사회가 될 수 있다.

 

다음은 샘들과 이야기 나누기 위해 내용을 메모한 것이다. 7장은 좀 어려웠다.

 

저자 ‘룰루’는 자신의 바람으로 연인과 헤어져 삶이 혼란스러웠을 때, 자연재해로 인해 그동안의 연구가 수포로 돌아가는 절망을 극복한 ‘데이비드 스타 조단’의 이름을 떠올리고 어떻게 혼돈을 벗어났는지 찾고자 했다.
데이비드 조던은 어렸을 때부터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들여다보다 모든 별들의 이름을 익힌 뒤 자신에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이후 지상의 질서인 지도를 열심히 그렸고, 주위의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꽃들을 수집하고 분류한다. 그러다 당대 가장 유명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 속에 감춰진 ‘신의 계획’을 찾고자 ‘생명의 나무’를 만들어 지구에서 살았던 모든 생물 종의 진화 계통을 파악해 질서를 부여하려고 했다.  

한편 저자 ‘룰루’는 어렸을 때부터 신은 없으며 세상은 혼돈스럽고 허무한 곳이니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룰루의 청소년기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대학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자신의 바람으로 모든 게 깨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다 데이비드 조던을 떠올린다.

데이비드 조던은 어류 분류를 통해 종신교수가 되는 등 사회적지위와 명성을 얻는다. 비록 화재로 연구물이 불타고, 아내가 죽기도 하지만 ‘낙천성의 방패’를 갖춘 듯 위기에서 벗어난다. 데이비드 조던의 큰 업적은 당시 어류의 5분의 1을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명명을 통해 생태계는 실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난다. 소중한 가족과 친구, 수제자를 잃었고 자신도 대학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지만 재단이사장의 죽음으로 더 많은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자신의 ‘어류 박물의 표본’이 파괴된다. 그런 상황을 이겨내는 데이비드 조던의 ‘의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룰루’가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다.

룰루는 데이비드의 글에서 ‘비법’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학적 세계관’은 결국 허무와 연결됨을 고백하며 진화의 전기(신체적 에너지)로 ‘세계의 장엄함’을 느껴보자고 한다. 결국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라고.

사람의 의지와 관련하여 오랫동안 도덕적 권위자들은 '자기기만'을 경고했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자기기만’은 긍정적 착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조던 역시 ‘낙천성의 방패’를 가졌고, 그 강도가 지나친 데이비드는 스탠퍼드 설립자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과 직접 관련돼 있다.(고 룰루는 주장한다)

데이비드 조던의 가장 큰 문제(오류)는 이탈리아의 이오스타를 방문해서부터이다. 이곳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안식처였는데, 데이비드는 스승 '루이 아가시'의 영향으로 이 마을의 존재가 인간의 퇴화을 가져올 것이라며 몰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우생학의 시작이다. 데이비드는 적극적으로 미국의 우생학을 주도했다. 그 결과 여러 주에서 유색인종 이주민을 대상으로 그들이 ‘부적합’하다며 불임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죽는 날까지 우생학을 비롯해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자기 확신이 강한 나머지 악당이 돼 있었다. ‘낙천성의 방패’, ‘자연의 사다리’, ‘혼돈에 대한 거부’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우리가 중요하다는 낙천성의 방패와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는 상반되는 두 가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가. 저자 룰루는 ‘민들레 법칙’을 강조한다. 민들레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자고. 즉 세상의 만물은 모두 복잡하고 중요해 우열을 이야기할 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현대까지도 미국에서 데이비드 조던은 ‘대단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그가 인류에게 알려진 물고기의 1/5를 발견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대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업적에도 아이러니하게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어류’는 분류학상 존재하지 않고 데이비드 조던의 연구 역시 실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중요하다. 코페르니쿠스의 생각만큼. 직관에 따라 여전히 어류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류라는 말이 사라짐으로써 그 프레임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생물들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명명'은 여전히 중요하다. '명명'이 갖는 프레임, 즉 언어적 거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 ‘룰루’도 자신의 양성애성을 받아들인다. 세상의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남자, 여자란 생물학적인 개념도 인간이 만든 것은 아닐까.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자. 언어를 신중하게 다루자.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다루를 때에는 더욱더.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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