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 1, 2(헨릭 시엔키에비츠)

 

올해 첫 독서는 김탁환의 <사랑과 혁명> 1권이었다. 역사 소설가로서 필력이 입증된 작가이시기도 하고 담양 바로 옆 곡성에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1827년 정해박해)을 다루고 있다니 꼭 읽어야 할 것 같아, 600쪽이 넘는 분량을 1월 내내 읽어 나갔다. 주인공 들녘이 옹기 굽는 마을 처녀 아가다를 만나 옹기를 굽고 천주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나는 과정이 천천히 굽이치는 섬진강처럼 펼쳐졌다.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 아름답고 순한 들녘과 아가다가 맞이할 운명이 너무 가혹할 것 같아 올해 안에는 꼭 읽어야지 하며 2~3권은 그냥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쿠오바디스>를 만나게 되었다.

 

폴란드 작가 작품을 찾으며 언젠가는 꼭 읽을 운명이었던 시엔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 어릴 적 벤허’, ‘십계와 같은 계열의 영화로 기억되는 그 책! 방학 동안 이 책과 함께 김은희샘이 추천한 유시민의 <그의 운명에 관한 개인적인 생각>과 함께 읽었다. 그렇지 않아도 뜨겁고 더워 힘든데, 네로도 네로지만 네로와 닮은 한 사람(부부)이 떠올라 분노가 솟구쳤다. 그들에게 나라와 국민은 없고 오로지 쾌락과 일신(가족)의 안위만이 있을 뿐! 로마를 불태운 네로처럼 대한민국 곳곳에 방화를 저지르고 있는 그들! 네로의 비참한 말로처럼 그들도 그에 맞는 심판을 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겠다. 이 책의 큰 줄기는 비니키우스라는 젊은 호민관의 인간적인 성장과 종교의 입문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고 굴곡이 많다. 첫눈에 반한 순진한 사랑 혹은 욕망이 불처럼 타올랐다가 의심과 번뇌, 분노, 다시 절망과 실낱같은 희망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는 것처럼, 혹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비니키우스의 심정의 변화가 잘 표현돼 있다. 거대한 격랑의 역사 속 한 인간이 번민하는 모습을 큰 줄기로 그려낸 것은 작가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타락하고 퇴폐적인 로마의 중심에서 순결한 사랑의 꽃을 피워낸 두 연인의 모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을 마주쳤을 때 그만 읽을까 하다가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마법을 발휘한다. 이기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차별과 우대에 익숙한 젊은 귀족이 2권에서는 리디아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리디아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죄악은 아닐까 생각하는 장면에서 1권의 비니키우스는 어디로 갔지 하는 생각을 했다. 금쪽이 비니키우스가 사랑과 종교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참으로 흥미 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특히 비니키우스가 솔직하게 자신의 번민을 털어놓으며 위대한 사도들과 나누는 대화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베드로, 바오로 사도의 교조적이지 않고 편하고 쉬우면서 짧고 강렬한 답변이 솔직히 너무 감동적이었다. 개인적으로 1권의 명장면을 꼽자면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비니키우스에게 진정한 사랑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1권) 514 “언젠가 나는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는 지혜와 미를, 로마는 힘을 창조했다. 그러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세상에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정말 여러분이 가져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문 저편에 밝은 빛이 있다면, 제발 그 문을 열어주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랑을 가져옵니다.” 베드로가 대답했다.
타르수스의 바오로가 덧붙였다.
우리 모두가 인간의 무수한 언어로 말을 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한낱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늙은 사도는 조롱에 갇힌 새처럼 넓은 창공과 태양을 갈망하며 괴로워하는 젊은 영혼을 보고 가슴속 깊이 감동했다. 그는 비니키우스에게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주님의 은총이 그대 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온 세상의 구세주이신 그분의 이름으로 그대의 육신과 그대의 영혼과, 그대의 사랑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2권의 명장면은 킬로의 배신으로 불타 죽어가는 글라우쿠스가 킬로를 용서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뜨거운 여름날이었지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었다.

 

(2권) 370 “글라우쿠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용서해 주시오!”
순간 침묵이 주위를 뒤엎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불기둥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윽고 순교자의 머리가 가볍게 끄덕이더니,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을..... 용서하겠소....!”
킬로는 땅에 엎드려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두 손으로 흙을 움켜쥐고 자기 머리 위에 마구 뿌려댔다.

 

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종교 입문 소설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는 것은 비니키우스와 리디아의 사랑이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만, 페트로니우스라는 인물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예술과 아름다움, 시와 노래, 역사, 다양한 신들을 사랑하며 적어도 당시에는 합리적인 생각을 했던 페트로니우스! 그의 눈으로 바라본 몰락을 향해 가는 로마, 그리고 신생 기독교, 비니키우스의 사랑, 그의 마지막 죽음 등. 작가는 페트로니우스(해설자는 작가의 페르소나라고도 했다)를 중심에 올려놓음으로써 지나치게 종교적인 색채로 채워지는 것을 막고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균형을 맞춘 것 같다. 특히 네로에 대한 결정적인 복수는 페트로니우스가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네로에게 던지는 페트로니우스의 마지막 말은 빈약한 재능에도 예술로써 인정욕구를 채우려 했던 네로를 뭉개고,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으리라 생각한다.

 

478 폐하, 앞으로 만수무강하시더라도 제발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마십시오. 양민을 학살하시더라도, 아무튼 시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사람들을 독살하시더라도, 부디 춤은 추지 마십시오. 또다시 불을 지르시더라도, 부탁이니 그 서투른 키타라 연주는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폐하의 벗이자 '고상한 판관'인 페트로니우스가 폐하께 드리는 마지막 충고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가의 위대함은 로마 궁전부터 빈민굴까지 마치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그리스신들, 당시 세계의 수도였던 로마에 모였던 수많은 인종들, 의상, 건축, 그릇과 도자기, 장신구, 콜로세움의 격투기, 기독교인에 대한 잔인한 박해 등 그 모든 장면들을 완벽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단순히 상상력만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고증까지 완벽히 해냈다니 그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할 대작업을 해낸 것이다.

 

(2권 작품해설) 497 1889년 역사소설 3부작의 성공 이후 시엔키에비츠는 바르샤바에서 ’역사소설에 관하여‘ 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이 강연에서 시엔키에비츠는 역사소설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역사가는 문헌과 기록의 ’틈새‘를 추리에 의해 메우지만, 소설과는 그것을 직관에 의해 메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설가도 역사가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세계를 재현할 수 있다.

 

부족한 안목으로 제대로 읽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왜 고전이라 불리는지 읽는 내내 온몸으로 느꼈다. 덥고 힘들었던 여름, 참 격정적인 읽기였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독서는 <사랑과 혁명> 2, 3권 완독이다!

 

*사족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젊은 사제 시절 이 책을 보고 로마 여행을 했다고 하니, 내년 동유럽 기행 말미에 개인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로마만 3일 정도 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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