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최정원)

독서토론반 '다독다독'의 올해 첫 토론을 위해 고르고 고른 책이 바로 조금은 긴 제목의 <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다. SF소설로 정했고,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국 현실의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니 학생 눈높이에 맞으면서도 의미를 담고 있고, 첫 책이니 만큼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서점을 뒤져내 이 책을 찾아냈다.

 

이 책을 고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틴 스토리 킹' 수상작이라는 점이다. 이런 대회가 벌써 3회나 되었다니! 100명의 학생들이 심사자가 되어 뽑는 책이니 의미는 물론 재미는 이미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니, 토론반 학생들 중 책 읽기가 더딘 학생까지도 다 읽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다음 주에 함께 토론할 예정인데, 시험기간임에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면 함께 나눌 이야기가 참 많을 것 같다.

이 책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지구에 정착해 살던 외계인 종족 '무지개'가 지구를 떠나게 되는데, 미아가 된 무지개 종족의 아이 '보보'를, 우연히 엮이게 된 모범생 나래와 개성 강한 원호가 무지개 종족에게 돌려보내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는 방과 후부터 그날 밤 9시까지 이야기!

그런데 작가는 이 짧은 시간 안에 정말 많은 것을 꾹꾹 눌러 담았다. 조금이라도 다른 것에 대한 차별과 혐오, 가학적인 유튜버의 행태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나래와 원호의 폭발적인 성장까지! 스릴 있고, 감동이 있는 작품이다.

물론 어디서간 많이 본 듯한, 그러면서도 우연과 우연이 겹치는 플롯은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게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청소년 소설이라 칭찬할 만하다.

다음 주 토론반과 함께 할 때 나오는 질문들이 자못 기대가 된다.

(64) 다들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해 보면 좋을 텐데. 가까이서 지내 보면 알게 된다나. 외계인이나 지구인이나 결국 다 똑같고 사는 모습도 다 비슷하다는 걸 말이지. 하지만 다들 자기랑 조금만 달라도 거부감부터 가지니까...
-무지개 아파트 할아버지 경비원 말씀

(90) 약속은 깨졌고 이제 비밀은 의미가 없으니, 위협이 가까워 오는군요. 저희 종족은 언제나 행복을 위해 도망쳐야 한답니다. 저희는 그래서, '무지개'죠.
-무지개 아파트에 남겨진 홀로그램에서

(114) "젠장, 이게 다 찡가 같은 놈들 때문이야."
굳이 상대를 뒤지고 파헤쳐서 까발리는 부류들. 나와, 우리와 '다른' 점들을 필사적으로 찾는 녀석들. 그것을 가지고 크게 떠들고, 재미있다고 웃고, 함께 웃자고 강요하는 놈들. 그리고 기꺼이 함께 웃고 즐긴 후에 가볍게 다음 목표를 지정하는 그런 인간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누군가의 평화를 깨야만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

(193) 나래는 당황했다. 다른 친구들이 그린 그림들은 나래가 그린 것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모두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 위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 눈동자 속엔 별과 보석들이 있었고, 예쁜 속눈썹이 그 위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다.

(215) 어쩌면 엄마 말대로, 나는 정말 바보인 게 아닐까? 되지도 않을 일을 붙잡고 혼자 좋다고 날뛰는 얼간이인 게 아닐까? 재능?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누군가가 알아봐 줬겠지. 모두 이런 내가 웃겨서 가만히 두고 보고 즐기는 건지도 몰라.

(226) 느리더라도, 늦더라도 결국 우리는 늘 해내긴 했다.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리고 기다렸던 것보다도 더, 아주 오랜 시간을 먼길로 돌아서 오더라도 결국 우리는 목적지에서 서로 만나지 않았던가. 엄마와 나의 마음은.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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