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최재천,장하준,최재붕,홍기빈,김누리,김경일,정관용)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20. 12. 4.
결국 2020년은 코로나와 함께 마무리하게 되었다.
‘코로나’. 낯선 전염병은 아니었다. 겨울 즈음, 특히 이번 코로나는 중국 우한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1월 말이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확진자가 발생하고 2월이 되자 대구를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
계획한 사업들-혁신학교 관련 전입교사 연수, 혁신학교 리더과정 연수 등-이 취소되고 급기야 학교의 개학도 여러 번 미뤄졌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 코로나가 진정돼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경고가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코로나19, 신인류시대’라는 코너에서 김경일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운전하면서 듣느라 집중하지만 못했지만 어떤 면에서 코로나는, 좀 갑작스럽지만 예견된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코너에서 나눈 이야기가 책으로 출판되었다. 읽고 싶었으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 역시 코로나의 여파로 계획한 일들이 미뤄지고 다시 계획해야하는 번거로운 상황이 꾸준히 생겼기 때문이다.
9월이 돼서야 모임 샘들과 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었다. 당시 샘들은 길지 않은 라디오 인터뷰 내용이라 책이 너무 가볍다는 평가를 했다. 공감했다. 이 책을 읽은 9월은, 온라인 수업은 물론 온라인 쌍방 수업 같은 새로운 학교 시스템이 익숙해질 정도로 코로나에 익숙해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 또한 문제였다. 힘들지만 우리가 코로나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홍기빈 교수의 말처럼 ‘그 전에 하던 대로(business as usual)’ 넘기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코로나로 인한 사회 전반의 충격이 본질적인 사회의 변화에 대한 담론으로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오히려 디지털 기기 중심으로 좁게 바라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접어만 두었던 책장을 정리해 보았다.
1. 생태와 인간(최재천)
(33)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바로 행동 백신의 일종입니다. 옮겨가지 못하게만 하면 바이러스는 아무 힘이 없거든요. 그리고 숲속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게 생태백신입니다. 우리가 행동만 확실하게 하면 옮아가지 않습니다. 그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죠.
✎ 최재천 교수님은 코로나로 인해 주기적으로 사람과 경제가 어려워질 것임을 경고했다. 바이러스의 창궐 이유가 인간의 자연 파괴 및 자연 침범이므로 결국 자연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생태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그동안 인류의 삶이 쓸데없는 접촉과 거품 경제, 즉 유흥과 여행과 같은 소비 위주의 삶의 구조, 즉 경제 때문일 수 있으므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삶을 줄이고 정상적인 삶을 더 풍요로게 하자는 조언을 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진정 좋아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한다는 것으로 바뀔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한다. 이 부분은 김경일 교수의 조언과도 일치한다.
2. 경제의 재편(장하준)
(64)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건강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성장이라는 건 수단이잖아요.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게 결국 목표인데 말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그런 가치관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습니다.
✎ 장하준 교수님은 코로나로 세계 경제를 리셋해야하는데, 이때 ‘무엇이 중요한가’를 기준으로 성장중심주의 경제 질서에서 생명, 공공, 복지가 중심이 되는 경제 질서로 재편해야한다고 한다.
특히 세계는 서로 연결돼 있으므로, 돌봄경제(의료, 복지, 안전, 기본서비스-가사노동, 배달) 등 서로 돕고 안전을 지켜주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으므로 이런 연대가 가능한 쪽으로 사회가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 안전한 사회, 다 같이 잘사는 사회, 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단순히 정부가 돈을 좀 더 풀고 의약산업이나 비대면 서비스산업 개발에 더 투자하는 차원이 아닌 근본적인 차원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3. 문명의 전환(최재붕)
(77)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우리는 보통 기술적으로 ‘인공지능 로봇’을 꼽는데요. 그것보다 저는 인류의 생활 공간이 스마트폰을 쥐고 어디든 접속할 수 있으니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디지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것에 방점이 있다고 봅니다. 물건도 사고 영화도 보고 금융, 은행 등 온갖 것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죠. 이것이 결국은 언택트(비대면)라는 감염을 줄이는 방법과 일치하고요. 인간의 DNA가 생존율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죠.
(80) 이 모든 것이 바로 표준이 달라지면 생기는 변화입니다. 그래서 정부 역시 ‘어차피 디지털 문명은 정해진 미래다’ 이렇게 생각하고 정책의 표준을 바꾸자는 겁니다. 소상공인을 보호한다고 자꾸 규제를 만들고, 기존 방식의 지원 사업에 너무 돈을 쓰지 말고요. 이들이 ‘디지털 스토어’를 차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사업을 시작하자는 겁니다. 물론 어렵지요. 어렵겠지만 서로 도와서 가야 합니다. 바이러스가 다시 온다는데 언택트 서비스를 하지 말라고 규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96) 이번에 코로나19를 겪어보니 어느 쪽이 더 건강하고 안전하게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지 답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나서서 바꿔야지요. 더구나 40억 이상의 인류가 동참하는 새로운 문명이라면 고집을 버리고 이제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른들이 마음의 표준만 바꿔준다면 저는 금세 바뀔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내 마음의 표준을 바꾸는 일이 우리나라의 미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 6편의 인터뷰 중, 최재붕 교수님만 생각의 결이 다른 것 같아 여러 군데 발췌했다. 이 분은 코로나19를 통해 이미 디지털의 시대가 표준(심지어 정해진 미래)이 되었으니 생각을 바꾸자고 한다. 우리나라 정부나 기성세대들도 충분히 그럴 수 있고, 또 늦을수록 더 많은 기회를 잃으니까 사회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얻는 부분도 있으니. 공감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로 대표되는 삶의 태도 덕분에 지금 이 상황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 포노 사피엔스가 되고 디지털을 표준으로 삼아 적응하면 충분할까. 보편적인 삶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합의할 것은 없을까. 좀 결이 다르지만 여전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4. 새로운 체제(홍기빈)
(114) 과학자들이나 관련 전문가들이 이 사태가 가라앉으려면 1년에서 3년 정도 걸릴 거라고 말하죠.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인류의 60퍼센트가 걸려야 한다고요. 그리고 그 이전 세계는 잊어버리는 게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고요. (중략) 말씀드린 대로 도시화도 옛날 같은 도시화는 불가능하고요. 옛날 같은 지구와 가치사슬은 다 바뀌고 있어요. 그리고 금융이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도 바뀌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러니까 지도에 없는 영역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 홍기빈 교수님은 코로나로 지구 자본주의를 떠받들던 4개의 기둥이 모두 무너졌다고 한다.
산업의 지구화(생산의 산업 과정이 전세계적으로 연결),
생활의 도시화(거대 도시 중심의 생활, 이들 사이의 네트워크화),
가치의 금융화(만물의 가치를 금융시장에 맡겨 의료·복지 취약),
환경의 시장화(생태 위기와 기후 이변)가 4개의 기둥인데,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는 생태적 환경을 파괴해야 가능한 것들로 결국 이들이 코로나와 같은 전대미문의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미래를 어차피 오지만,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야 할 미래를 그리자고 한다.
(125)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의 질서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욕구와 능력의 한계와 질서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유한한 인생인데 수십 년을 한없이 먹고 한없이 입다가 끝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바이러스는 미물이지만 우리에게 인간과 이웃과 자연이 함께 지복을 누리는 ‘좋은 삶’, 그걸 생각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 세계관의 전복(김누리)
(146) 한국사회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이것은 프레임 자체, 즉 사고 틀 자체가 잘못돼서 그런 것인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미국화와 자본주의 문제입니다. (중략)
첫 번째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두 번째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겁니다.
여기서 인간화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첫째, 자본주의라는 게 인간을 소외시키거든요. 소외시킨다는 말은 사실은 인간 삶을 전도시키는 거죠. 자본주의에서는 사물이 인간을 지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외시킨다는 거고요. 둘째, 자본주의는 사회를 파괴합니다. 사회적 공동체를 파괴하고 일종의 정글로 만듭니다. 셋째, 말씀드린 대로 자본주의는 무한히 자연을 침탈하고 파괴합니다.
✎ 김누리 교수님은 코로나로 인한 변화로 인식의 변화를 꼽는다. 특히 우리 인식이 유럽에 비해 50년 정도 뒤처져 있고 그 이유가 6·8혁명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특히 복지제도가 미비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미국화에 과잉적으로 집중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 우리를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충족시켜주지만 그로 인해 야수자본주의(인간 존엄성 파괴, 특히 매리토크라시), 생태 파괴를 낳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위해, 수월성보다 존업성(의사 파업 사태가 딱 이 문제다) K방역의 힘을 사회개혁과 한반도평화 문제에 적극 적용해야한다고 조언한다.
6. 행복의 척도(김경일)
(193)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적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문명과 국가, 개인만이 다른 문명 또는 다른 문화와 공존할 수 있겠죠. 공존력을 갖춰야 가장 안전한 개체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욕망을 끝없이 추구하는 국가나 문화는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크게 당하고, 역으로 침략받을 가능성이 커지기도 하고요. 그러니 우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최대한의 경쟁력이자 무기가 공존력이고 적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앞의 이야기가 비교적 거시적 담론에 해당한다면 김경일 교수님의 이야기는 개인 차원에서 고민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개인과 사회가 불가분의 관계라 어느 것이 우선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코로나로 더 분명해졌지만 행복의 기준을 먼저 사회적 기준(want) 또는 남의 감탄을 받기 위한 인정투쟁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 나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는 것(like)에서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인상적이다. 감탄은 미학적 경험 또는 다른 사람과의 공존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여를 통한 보람을 통해서 느낄 수 있으므로, 행복의 기준은 나~와 타인과의 공존에 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라이크와 감탄에 민감해지고 예민해 지면 그 대상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전문가가 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파괴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 강의에서 고병헌 교수님이 ‘삶에 대한 질문’은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넘어지고 좌절할 때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을 잘 생각해 봐야한다고 했다. 코로나 19, 지금이 그런 세상이지 않을까.
![]() |
|
'행복한 책읽기 > 인문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하는 인간(문요한) (0) | 2021.05.02 |
---|---|
두 번째 지구는 없다(타일러 라쉬) (0) | 2021.04.06 |
에이트(이지성) (0) | 2020.10.04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0) | 2019.07.02 |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진천규) (1) | 201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