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트(이지성)
- 행복한 책읽기/인문사회
- 2020. 10. 4.
지난 4월 청소년 소설을 읽는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했다. 우리 청소년들의 고민 1위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니, 미래 사회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제안 때문이었다.
바로 책을 구입했고 책을 읽으며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어 놀랍고 불안해졌다. 그런데 마침 집에 “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이라는 책이 있어 이어 읽었고, 또 다른 모임에서 “공부의 미래”를 읽기로 해, 한동안 인공지능과 학교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나를 만드는 법’
이 책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기 위해 가장 인간다운 것을 발견하고 이를 키워야한다는 이야기를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 전까지 어떤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이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1부 '인간이 기계에게 대체될 수밖에 없는 이유'와 2부 '인공지능에게 지시 내리는 사람 vs 지시 받는 사람'을 읽으면서, 당장 또는 가까운 시일 내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지능이 나타날 것 같지는 않으므로(몇 천 큐비드의 양자컴퓨터가 사용화되기 전까지) 결국 문제는 인공지능에게 대체되기 보다는, '인간에 의한 대체'를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인공지능을 지배할 0.003%의 인간(계급)들이 99.997%의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노동계급이라는 뜻의 신조어)’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도록 할 것인가와, 다양한 이유로 인공지능보다 인간을 불신하며 자발적으로 인공지능에 대체할 환경을 만들 프레카리아트의 선택에 문제를 제기할 것인가가 더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약간의 억측일 수 있지만, 저자가 제시하는 1부와 2부에서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례들은, 인공지능 너머를 본 저자가 99.997%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심정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0.003%의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며 노력하고 있는지 결국 그들이 우리와 '확실히 다름'을 강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법으로, 가장 인간다운 능력, 즉 공감 능력과 창조적 사고력을 키워야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개인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키우기도 쉽지 않고, 설사 키운들 이미 0.003%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유효할뿐이라는 결국, 인공지능 사회가 가져다 줄 공고한 계급 사회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인공지능 시대 우리 인류 공동체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꺼내 놓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떤 것을 고민해야 하는가(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나, 인공지능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으나 현재 인공지능이 어떤 부분에서 한계가 있으며 이러한 특성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재해석(대학에 가는 AI vs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해 보거나, 개인이 실천 가능한 방법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안(공부의 미래)한 책들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읽고 나니 책 제목과 결론의 결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공지능의 역량과 인간 고유의 능력, 이를 키우기 위해 8가지 방법 중에는 밑줄 긋고 생각해 볼 것도 많아 정리해 본다.
(96)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해서 인간을 대체하는 거라면 사회적 합의 등을 통해 이를 제한하거나 금지시킬 수 있겠지만, 인간이 인간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면 이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사회적 합의 등을 이끌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 인간 의사, 약사, 판검사, 변호사, 교사 등이 더 공정하거나 더 친절하지 않다는 경험을 근거로 인간을 불신하는 상황이 인공지능 시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인간이기에 불안정할 수 있는 모습들에 대한 대책이 인공지능이 되면 모든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그걸 인간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139) 인공지능은 타인에 생각과 감정을 타인의 입장에서 느끼거나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공감 능력이 없다. 그리고 공감을 통해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거나 기존에 있던 것에 혁신을 일으키는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 ‘공감’을 정적인 영역을 중심으로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은 소통을 포함해 ‘사회’를 이루고 유지하는 근본적인 능력으로 확대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은 공감에서 비롯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154) 찾아보면 당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 사회 내에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임이 적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주말이면 스마트폰을 서랍 속에 넣어두고 미술관·음악관·박물관 등으로 가라. 때론 자연 속으로 가라. 당신만의 아날로그 문화를 하나둘씩 만들어나가라. 그렇게 내면의 인간을 발견하고 경험하고 나누는 기쁨에 흠뻑 취하라. 당신이 진정으로 인간다워질 때 당신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란 존재할 수 없다.(‘디지털을 차단하라’ 중에서)
✎ TV보다도 더 바보를 만드는 디지털 사회에서 디지털에 중독되지 않기 위한 자기통제력을 기르기 위해, 또 공감하고 소통하는 인간다운 능력을 기르기 위해 디지털을 차단하라는 것이 첫 번째 저자의 조언이다. 처음부터 어려운 주문이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교육이 일상화되고 이를 더 강화하는 상황이 만들어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기기가 아닌 더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소통하고 교류하며 인간다움을 찾아야할 때인데.
(160) 학교가 정해준 주제가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정한 주제를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신나게 집중하고 즐겁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집중과 몰입은 성취로 이어진다. 아이는 성취를 통해 두 가지를 얻게 된다. 첫째,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는 기쁨, 둘째, 친구들과 어른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는 기쁨. 이는 새로운 공부 주제를 정하고 여기에 더 깊이 집중하고 몰입하고픈 욕구로 연결된다. 그렇게 아이는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고 더 깊은 집중력과 몰입력을 갖게 된다. (‘나만의 평생유치원을 설립하라’ 중에서)
✎ ‘자유, 몰입, 성취’ 이들을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존 듀이의 “민주주의와 교육”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들었다. 혁신학교에서도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자유, 몰입, 성취의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다. 그럴려면 학생의 삶을 바탕으로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데 적어도 중학교 이상부터는 불필요한 과정으로 항의받을 때가 적지 않다. 학부모·학생 무엇보다 교사로부터도.
(181) 하버드 의대 교육개혁의 핵심인 플립러닝은 교과서와 강의가 사라진 수업을 의미한다. 그럼 교수와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할까? 토론을 한다. 학생들은 집에서 미리 공부해온 내용을 중심으로 열띤 토론을 하고, 교수도 학생들 사이에 앉아서 함께 토론한다. 물론 이 토론은 1~3차 산업혁명 시대에 하버드가 즐겨했던 논쟁 위주의 토론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공감 능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 위주의 토론이다. (‘노잉을 버려라. 비잉 하고 두잉하라’ 중에서)
✎ 플립러닝의 핵심이 소통과 협력을 통한 배움이라고 한다. 특히 플립러닝에서 토론이 경쟁보다 협력을 의미한다는 데 인상적이다.
(194) 스탠퍼드대 D스쿨의 핵심은 디자인 씽킹, 즉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기존 사고를 인간 중심의 사고로 새롭게 디자인해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것에 혁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생각의 전환, 디자인 씽킹’하라 중에서)
✎ 현 상황을 더욱 낫게 변화시키기 위해 하는 모든 인간의 모든 사고를 디자인 씽킹이라고 한다. 1단계 공감, 2단계 문제를 새롭게 정의, 3단계 문제해결의 위한 아이디어내기, 4단계 시제품 만들기, 5단계 시험·검증하기. 요새 혁신학교에서 학교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워크숍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2단계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 학교 구성원들과 해결하고 싶은 과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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