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10여 년 전에 읽었던(너무 오래돼서 읽었다는 느낌만 있는) 책을 다시 읽었다.

두 달 전 교육청 정책연구소에서 제안한 독서모임에 가입했고 첫 번째 읽을 책이 이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6월이 첫 모임이라 기아 문제를 다룬 책을 읽어보자는 것일까 생각하며 내용을 정리하고 독서토론에 참여했다.

 

표지에 가 유독 크게 제시돼 있다. 정말 식량이 남아도는 데에도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을까? 아들이 질문하고 아빠가 답하는 대화를 읽다 보면, 아들의 반응 속에서 제목의 라는 의문이 점점 크게 울린다. 라는 반문이 커지는 만큼, 자본의 힘에 대한 두려움과 기아 문제를 어찌할 수 없겠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는 기아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할 뿐 해결책이랄 수 있는 것이 없거나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기아의 원인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외부의 도움은 응급조치일 수밖에 없고 결국 빈곤 국가 스스로 자급자족해야 하는데, 자본이나 강대국, 권력자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빈곤 국가들의 홀로서기를 막고 있다는 이야기만 반복하여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가 할 게 별로 없는..

 

그런데 토론을 하다 보니 저자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과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아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도 결국은 개인(또는 집단)의 욕망과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잡는 문제이며, 이는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의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적는다.

 

(51) 지구는 현재보다 2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 명 정도 되지. 하지만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 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해.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지.

(86) 카림, 너 혹시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거나 해서 영양 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거꾸로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굶어 죽고 있어.

(96) 학교에서는 기아문제를 가르치는 일이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건가요?
맞아. 일종의 터부로 여겨지지. 이런 현상은 오래도록 지속되어왔단다. 브라질의 조슈에 데 카스트로는 1952년 이미 자신의 유명한 저서 “기아의 지리학”에서 이 ‘금기시되는 기아’를 언급했지. 그의 설명은 무척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지.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저자는 늘 굶주리던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났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리고 해결방법을 찾는 게 맞지만, 굶지 않는 사람들의 지원을 얻어 내기 위해 기아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낭만적·정서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기아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양심의 가책을 줄이기 위해 인구 유지를 위한 자연스러운 상태(자연 도태)로 여기기도 하면서 문제의 본질로 다가가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재해나 전쟁으로 인해 긴급하게 발생하는 경제적 기아문제도 시급하지만, 장기간 식량 공급이 지체되는 구조적 기아는 원인이 복잡해 해결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경제적이든 구조적이든 기아의 대부분은 인간의 욕망에 따른 것이므로 인류애와 공동체 정신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상황에서 기아 문제는 아이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개인(또는 집단)의 욕망과 공공성 차원에서 세금복지의 관계로 접근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세금이 우리 가족을 지원하는 것은 괜찮은데 내가 잘 모르는 세대(이를테면 노인)를 지원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교사는 교육적으로 자기(욕망) 제한을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도록 개입해야 한다고 한다. 내 욕망이 바람직한 것인가, 또 내 욕망과 관계없이 흘러가는 세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사적 욕망이 공적 영역을 침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107) 아빠는 구호단체의 방침에 동의해.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 그러나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단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이 책에서 다른 나라만큼 부각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의 기아 문제도 수년 째 심각하다. 올해 우리나라의 인도적 식량 지원에 대해 북한에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흥정하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북한의 기아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기아 문제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

 

(168) 토지개량도, 사막화 대책도, 빈민가의 인프라 정비도, 농업 지원도, 우물 파기 프로젝트도 결국은 헛수고로 끝나버릴 응급조치에 부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기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때 쓰는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 먹고 사는 문제는 생명체로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한편 자연 상태에서 잉여물을 활용해 욕망을 채우는 것도 우리 인간만의 특성이다. 기본권과 욕망 사이에서 무엇이 먼저일까.

마침 이 책을 읽은 다음 날,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강을 건너 미국에 입국하려다 사망한 난민 부녀의 모습이 보도되었다. 참담하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국내도서
저자 : 장 지글러(Jean Ziegler) / 유영미역
출판 : 갈라파고스 200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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