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과학공부
- 행복한 책읽기 / 자연기술
- 2019. 8. 19.

읽는 책의 종류가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할 즈음, 이 책을 발견했다.
게다가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김상욱의 과학공부”
실은 오해로 맺은 인연이었다.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로 유명한 국어과 ‘김상욱’ 교수님이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과학 공부를 하고 쓴 책으로 잘못 읽었던 것이다. 책날개를 보고 내가 아는 그 분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프롤로그 ‘과학과 인문학은 교양 앞에 평등한가’를 읽으며, 나의 무지함을 되새기며 책장을 넘겼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부제가 왜 ‘시를 품은 물리학’인지 알겠다.
1장 과학으로 낯설게 하기
2장 대한민국 방정식
3장 나는 과학자다
4장 물리의 인문학
책의 흐름은 우리가 삶과 세상을 읽을 때처럼 다른 시각으로 익숙한 것들과 거리두기를 시작하다 특히 과학자로서 통·융합적으로 생각할 거리와 깨달음을 준다. 과학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과학을 통해 인문학을 읽는 게 새롭고 재미있었다. 물론 ‘뉴턴의 운동법칙’, ‘카오스 이론’, ‘양자역학’은 인터넷의 도움을 받는다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특히 ‘양자역학’은 더더욱, 그래서 마지막 ‘자유의지의 물리학’은 궁금한 부분이었는데 여러 번 읽어보아도 어렵다.
저자가 소개하는 물리 지식들 외에, 예술 작품들을 검색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만 모르고 살았지, 물리학의 중요한 변화는 예술 작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또 소주제 마지막 상자 안의 인용글이나 물리학자의 특성을 나타내는 유머러스한 글도 나름 재미있었다.
여하튼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을 과학과 별 볼 일 없이 살아오다 이 책 덕분에 한 쪽씩 공부하게 되었으니 내 주위에 유독 많을 문과 출신들에게 추천한다.
책 전체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할 능력은 못 되고, 인상적인 구절 중심으로 메모한다.
(27) 언어와 통신에서의 잉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DNA는 완벽을 위해 스스로 엄청난 잉여를 창출한다. 자연에서 잉여는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복지사회란 잉여를 누리는 사회이다. 사실 우리의 삶을 살 만하게 만들어주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운동, 오락 등은 모두 잉여가 아니었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잉여의 가치를 잊어버린 것 같다.
-‘우리에게 잉여를 허하라’ 중에서
✎ 저자는 우리 DNA의 90% 가량이 정크 DNA로 의미 없는 쓰레기 정보이지만 진화 속에서 이들이 다시 재활용되고 있다며, 잉여 역시 낭비가 아니라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잉여’라는 말처럼 근대 주관이 개입된 무서운 말도 없다. 우주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진화론적인 시각으로 현재의 생물을 바라볼 때, 상대성 이론으로 시간을 돌아볼 때, 모두가 상대적이고 모두가 소중하다. ‘잉여’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고 본질적이라는 것에 큰 위로를 받는다. ‘잉여’는 자연스럽다.
(69)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가 다를 수 있다. 내가 온종일 물리를 공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동의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만약 당신이 아이의 해복을 위해 교육한다면 이미 뭔가 잘못된 거다. 왜냐하면 그 행복이란 당신이 정의한 행복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아이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 동물들이 그러하듯, 결국 인간에게도 교육의 목적은 아이의 독립이다. 행복한 삶을 정의하고 그것을 찾는 것은 부모, 교사, 사회의 몫이 아니라 바로 아이 자신의 몫이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다’ 중에서
✎ 생명의 목적은 생명체 자신을 영원히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현대과학에서는 이때 ‘자신’을 유전자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전자에 살아갈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므로 학습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따라서 동물의 교육 목적은 자립이며, 인간도 자립이 목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 사회에서도 아이가 공동체 속에서 홀로 설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안전망을 만드는 데 힘써야할 것 같다. 학교와 입시만 떠나면 효용성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경쟁교육에 내몰기 보다는.
(117) 원전은 위험하지만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으므로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원전의 위험은 열차 사고, 경제 위기, 전쟁의 위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쿠시마의 예에서 보듯이, 자칫 이 땅이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불모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이 아무리 적더라도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이란 말이다. 안전장치 10개가 달렸다고 해도 실탄이 장전된 총을 유치원 다니는 자기 아이에게 줄 부모는 없다. 원전의 사고 위험이 정말 무시할 만한 것이라면 왜 원전을 서울 근교에 건설하지 못하는가? 송전에 필요한 엄청난 설비를 절약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실탄이 장전된 총’ 중에서
✎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더 이상 저장할 수 없다는 핑계로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바다에 방출할 위험이 크다고 한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우리나라는 물론 태평양에 닿아 있는 모든 나라가 위험하다. 원전은 청정하고 안전하다, 원전의 발전단가가 가장 낮다고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 절대적인 안전도 장담할 수 없고, 그래서 사고의 위험 부담까지 고려한다면 가장 비싼 에너지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대도시 주변에 원전을 설치하는 게 상식이다.
(146) 2015년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다.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나치도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책을 불태웠고 제국주의 일본도 올바른 동아시아 건설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말했다. 역사에서 ‘올바른’ 것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과학에서 올바른 답은 많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으로부터 얻어진다. 여기에는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아인슈타인의 미친 생각까지도 포함된다. 만약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정부가 결정하는 거라면, 우리는 지금도 천동설을 믿고 있을지 모른다. 노벨상은 이렇게 우리에게서 더 멀어져간다.-‘과학은 국정화를 싫어해’ 중에서
✎ 2015년 정부가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하는 것을 보고 저자가 쓴 글이다. 이에 더해 5개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평가가 초중등 교육은 물론, 학벌이라는 이름으로 미래 인생마저 영향을 미치는 전국적인 테스트로 이젠 끝내야 한다.
(162) 갈릴레오는 73세의 나이에 달의 칭동현상을 발견하고 시력을 상실했으며, 아인슈타인은 죽을 때까지 통일장이론에 몰두했고, 네 자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막스 플랑크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물리 연구로 도피했다. 과학자에게 과학은 그의 전부였던 것이다. 당신이 과학자라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진짜 과학자인가”-‘나는 과학자다’ 중에서
✎ 교사뿐만 아니라 과학자도 연구에만 몰입하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라는 말은 항상 되새겨야할 구절이다. 어느덧 교사로서 살아온 시간이 교사로서 살아갈 시간보다 길어졌다. 주위에 ‘나는 교사다’라는 목소리에 힘이 빠져 다른 길을 생각하는 동료들도 여럿 있다. 내가 계속 교사를 할 것인지 검증할 방법에 대해 조언을 얻은 것 같다.
(171) 시버스의 결론을 보자. 혼자서 외로이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주저하지 말고 합류하는 두 번째 사람이 되어라.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첫 번째 사람을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 사람은 바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함께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운동이 된다.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 중에서
✎ 저자는 TED에서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을 보고 물리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뉴턴의 운동 법칙과 카오스 이론을 거론하며, ‘물리’의 운동과 ‘사회’ 운동이 서로 비슷하다고 한다. 규칙보다 복잡함이 과학적이다. 첫 번째 사람은 못되더라도 두 번째 사람이라도 돼야할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센터 일에 좀더 집중해야겠다.
(229)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않다. 더구나 인간은 존재하지도 않는 상상을 믿는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다. 인공지능이 존재하는 세상의 모습을 바꿀 수 있을지라도 존재하지 않는 상상을 바꿀 수는 없다.
인간이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그 자체로 상상이기에 우리의 상상으로 지켜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비과학적 대상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이 없다면 인간은 불행해질 거다. 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상상력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중에서
✎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우리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인공지능 덕분에 더 풍요로운 현실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많이 고민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 인간만의 특성으로 ‘상상력’을 꼽을 수 있다. 인문학적 상상력, 과학적 상상력, 예술적 상상력 등. 이런 것들이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열쇠임이 분명하다.
(284) 마음에 떠오른 느낌을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왜 압축해야 했을까? 압축은 상실의 과정이다. 상실되어도 좋은 것을 고르는 행위야말로 창조적이며 문학적인 과정일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상실되어도 좋은 것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압축된 것을 풀어 원래로 되돌리는 행위 역시 창조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압축을 푸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이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의 상실된 부분은 오히려 창조의 보금자리가 된다.
운율은 왜 필요할까? 운율은 음악이다. 음악은 조화이며 아름다움이다. 시를 통해 아름다움을, 아니 기쁨을 느끼려 한다면 운율이 필요하다.-‘우주의 시’ 중에서
✎ 시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인상적인 구절이다. 저자는 시의 압축과 함축, 간결함과 같이 물리법칙과 수학, 특히 미분도 아름다운 우주의 시라고 표현한다. 시를 통해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듯, 물리법칙과 수학을 통해 우중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인데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앞으로도 압축과 함축보다는 서사나 서술로 우주를 이해하게 될 것 같다.
(329)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은 분명 다르다. 과학적 상상력은 기존의 지식으로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렇게 얻은 답은 기존 지식이 어마나 편협했는지를 보여줄 뿐, 상상력의 승리가 아니다. 새롭게 얻은 답은 재빨리 기존이 지식 속으로 편입된다. 예술적 상상력은 무엇을 해결하거나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목적 없는 항해와 같다.
예술이 과학적 상상력을 차용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 과학적 상상이 상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억지로 섞으면 오히려 탈이 난다. 친하다고 꼭 동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과학과 예술은 서로 상상력을 주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다.-‘상상력을 상상하며’ 중에서
✎ STEAM이나 STEM 자체가 목적이 아닌,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인류의 지식을 확장하면서도, 인간과 자연, 우주의 본질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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