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8.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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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1. 너무도 복잡한 러시아 이름과 애칭, 별칭으로 인해 처음 부분이 혼란스럽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요 등장인물에 인덱스지를 붙이고 읽을 때마다 넘겨보았다. 미챠나 바냐, 알료사는 이름과 연결지어져 쉽게 자연스러워졌지만, 심지어 아버지 표도르는 이솝에다가, 주요인물이 아니지만 초반부 표도르와 가장 강하게 부딪히는 미우소프(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맞겠죠?)는 내용도 재미없었지만 이름구분하면서 에너지를 다 쏟은 것 같다. 가장 힘들게 넘은 산이 이름인 것 같다.
2. 카라마조프가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상처가 많은 사람들인데다가 여성에게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가장 큰 공통점은 너무 말이 많다.(1부에서는 알렉세이 제외. 나중에는 어떻게 되려나?) 세상에 한 사람의 대사가 1-2쪽을 쉽게 훌쩍 넘기다니! 심지어는 스메르쟈코프까지도 수다쟁이였다. 물론 이 가족 외에도 수다쟁이가 이 소설에는 넘쳐 나는 것 같다.
3. 내가 읽은 소설 중 가장 센 캐릭터를 만났다. 아버지 표도르 파브로비치 카라마조프. 수다쟁이, 주정뱅이, 자린고비, 욕쟁이, 호색한(모든 여자에게서 매력을 발견하는, 첫 번째 부인 빼고)에 이기주의, 무신론주의자. 수도원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절정을 보여준 것 같다. 게다가 아들의 정부를 빼앗으려는 이 막장 드라마같은 이야기는 뭐란 말인가?
어디선가 살짝 읽은 해설에서 왕권의 몰락, 가부장제의 몰락, 구시대의 몰락을 상징한다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캐릭터같다.
4. 알료사라는 캐릭터도 의문투성이다. 이렇게 상처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그토록 순수하고 인간적으로 모든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청년, 정말 변하지 않을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모두들 사랑하지만 타락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그루센카에게 흔들리지 않을지 걱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째인 드미트리도 약혼자 카체리나와 얽힌 이야기나 그루센카와의 관계 등등을 볼 때 생각보다 멋진 인물이면서 가슴에 한이 많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둘째 이반은 뭔가 욕심을 숨긴 야심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중에 이반이 매우 중요한 캐릭터가 된다고 하니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5. 읽으면서 이 책도 고전이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설과 그림을 눈여겨 보았다. 아 그 시대에도 이렇게 고전들을 이야기하며 살았구나 하는 놀랍고도 기쁜 발견. 스메르쟈코프를 묘사하기 위해 크람스코이의 <관조자>를 검색하고 느꼈던 놀라움. 그 시대의 모습이 훅하고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리고 실러의 <군도>나(표도르가 이 작품을 인용할 때 의외였음) 괴테의 <파우스트>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6. 그리고 또 하나! 도대체 작가는 왜 이런 끔찍한 가족 이야기를 써내려 간 것일까? 1권 중반부를 넘어서니 어서 빨리 결말까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일었다.
7. 조시마 장로를 만날 당시 러시아 민중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삶을 어떻게 위로받는지를 생생하게 전달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장로가 건네는 이야기들이 개인적으로도 깊이 와닿고 위로가 되었다. 특히 아이를 잃은 나스타슈쉬카의 이야기는 너무도 슬프면서 위로가 되었다.
(65) 오, 그는 노동과 괴로음, 무엇보다도 항구적인 불의와 항구적인 죄, 그것도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죄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러시아 평민의 겸허한 영혼에게 있어 성물이나 성자를 찾아서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보다 더 강렬한 욕구와 위안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8. 클리쿠샤란 무엇일까?
그들은 미사에 데려오면 온 교회가 떠나갈세라 째질 듯 소리를 지르거나 개처럼 짖어 댔지만, 영성체가 시작되어 그들을 그쪽으로 데려가면 당장 ‘귀신 들림’이 멎었으며 병든 이들은 항상 얼마간은 얌전했다.
→가정폭력으로 희생당한 여성들, 남편이나 아이 문제로 가슴에 한을 품고 사는 여인들일까?
*2017.4.25.
<2권>
2권은 조시마 장로로 시작해 알료샤를 거쳐 드미트리로 완성된 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드미트리의 말과 행동에 흠뻑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88-89) 인간이여, 동물들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지어다. 그들은 죄 없는 존재이지만, 인간인 그대는 위대하게 이 땅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땅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자신의 썩은 고름을 죽은 뒤에도 남겨 놓곤 하니 — 오호, 우리 모두가 거의 다 그러하도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할지니, 이는 그들도 또한 천사처럼 죄 없는 존재로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있어 어떤 지표처럼 살고 있는 까닭이다.
→ 우리에게 있어 어떤 지표처럼 살고 있다니! 놀랍다. 지금도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가 선진국의 기준처럼 여겨지는데, 조시마 장로의 입을 빌은 작가의 관점이 놀랍기만 하다!!
(88-89) 특히 사람들의 죄를 보면 ‘힘으로 취할 것인가, 아니면 겸허한 사랑으로 취할 것인가?’하고 자문하게 된다. 그때는 언제나 ‘겸손한 사랑으로 취한다.’라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일단 그렇게 결심하고 나면 전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겸허한 사랑은 강력한 힘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힘이며 그에 맞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매일, 매 시각, 매 순간 자기 주위를 돌면서 그대의 형상이 장엄한지를 살피도록 하라. 가령 그대가 어린아이의 곁을 지나갈 때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고 추한 말을 하고 격노한 영혼을 지녔다고 치자. 설사 그대는 아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는 그대를 보았으며 그대의 꼴사납고 불결한 형상은 무방비 상태인 아이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대는 이것을 몰랐겠지만, 이로써 이미 아이에게 고약한 씨앗을 뿌린 셈이며 그것이 자라날 것이니, 이 모든 것이 그대가 아이 앞에서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 조심스럽고 활동적인 사랑을 자기 내부에서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사랑이란 스승과 다름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아야 되는 것이니, 이는 그 사랑을 획득하기란 지극히 어렵고 오랜 시간의 일과 오랜 기간을 통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되기 때문이며, 그저 한 우연한 순간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랑해야 한다.
→ 엄마로서, 교사로서 부끄럽기만 한 대목이다. 쉽게 엄마와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95 ‘지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고통’이라고 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뭔가 여운이 깊게 남는 정말 멋진 말이다!
(추가로 96 무릇, 정신적인 고통이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제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각건대,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은 더더욱 괴롭고 불행해질 것입니다.)
111 고 장로는 기적보다는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었으며 자기 주위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로 채워진 세계 하나를 세운 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더더욱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더 나아가 수도원의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속세 사람들 사이에서도 드러내 놓고 욕을 하든 몰래 쑥덕대든 여하튼 혹독한 적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 “도대체 왜 그 사람을 그렇게 성인으로 떠받드는 거요?”라는 식이었다. 이런 질문 하나가 점차 반복되다 보면 결국에는 그야말로 포만을 모르는 악의로 똘똘 뭉친 심연을 낳는 것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 생각으론, 많은 이들이 그토록 빨리 – 즉 그가 죽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건만 그의 시신에서 썩는 냄새가 났다는 소리를 듣고서 기뻐 날뛴 것이었으리라.
→ 조시마 장로가 죽은 후 기적이 아닌 오히려 더 빨리 더 심하게 악취가 진동하는 대목을 읽고 소름이 끼쳤다. 솔직히 1권과 2권을 통해 본 조시마 장로는 성인에 가까운 말과 행동으로 독자와 소설 속 인물들을 감동시켰기에 그의 죽음 이후에도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 기적이 일어나야 마땅했고 많은 이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 그런데 작가는 장로의 사후 상황을 아이러니하지만 매우 현실적인 상황으로 만들었고, 기대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 군중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점이 정말 작가의 놀라운 역량이 아닌가 싶다. 기대심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깊게 혼란스러워 하는지 인간들의 심리세계를 이렇게 꿰뚫어 보고 있을 줄이야. 정말 놀라울 뿐이다!!!
126 어떤 경우에는 사실 비록 비이성적인 것일지라도 어쨌거나 크나큰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열광에 몰두하는 것이 아예 그러지 않는 것보다 더 높이 살 만한 것이다. 청년 시절에는 특히 더 그러한데, 왜냐면 일관되게 논리적인 청년은 희망이 별로 없으며 그건 값싼 것이기 때문이다.
→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
357 지금 내가 묘사해 준, 젊은 관리(표트르 일리치)와 아직 전혀 늙지 않은 과부(호흘라코바 부인)의 이 기묘한 만남으로 인해 훗날 이 주도면밀하고 꼼꼼한 젊은이의 인생의 출세 가도에 토대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니, 지금까지도 우리 도시 사람들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경탄을 내지르곤 하며, 어쩌면 우리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긴 이야기를 끝맺음할 때쯤 이 일에 따로 한두 마디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서술자가 간혹 가다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에 일종의 단서를 조금씩 흘리는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부분도 많이 있지만 이 부분을 옮겨 본다. 호기심을 유발시켜 긴 이야기에 지치지 않게 몰입하려고 하는 고도의 전략은 아닌지?
377 제가 제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온 도시가 다 알고 있어요.
→ 드미트리는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쩜 이렇게 명쾌하게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지. 드미트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도 솔직히 이 부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 숨기지 않고 드러냈던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단서가 아닐지? 미친 듯이 행동하지만 자기 나름의 양심이 있고,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는 직선적이라는 것! 솔직히 부담스럽지만 나름 멋진 캐릭터가 아닐까?
443 이 1500을 가슴속에 꿰매 넣고 다니면서 날마다, 시시각각 ‘너는 도둑놈이야, 이 도둑놈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바로 이 때문에 요 한 달 내내 흉포하게 굴었고 또 바로 이 때문에 술집에서 주먹질을 했고 또 바로 이 때문에 아버지를 주어 팼으니, 이게 다 스스로를 도둑놈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니까요!
→ 1500만큼의 양심과 책임감, 죄책감! 솔직히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드미트리의 마음이 격하게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474 내 아버지의 피에 대해선 무죄입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은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죽이고 싶었으며 어쩌면 정말로 죽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여러분과 투쟁할 생각이며 이것을 여러분에게 알리는 바입니다.
→ 정말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도 양심도, 매우 정직한 사람!!
**201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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