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문답(홍대용)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8.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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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이러한 과학적 식견을 가진 사람은 유일무이했겠지만, 그보다 인간과 자연, 역사를 아우르는 홍대용의 세계관이 놀랍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인상 깊은 구절>
41 공자가 죽은 후에 오히려 그 제자들이 공자의 뜻을 어지럽혔고, 주자의 문하에서는 여러 유학자들이 공자의 뜻을 혼란시켰다. 즉, 공자의 업적을 높이면서도 그의 진리는 잊어버렸고, 공자의 말을 익히면서도 그 본의는 잃어버렸다.
따라서 올바른 학문을 붙잡으려는 것도 실상은 그 이유가 자랑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사악한 학설을 물리치려는 것도 실상은 이기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어진 것으로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도 실상은 권력을 유지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총명하여 올바르게 일처리를 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하려는 것도 실상은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대선 정국의 정치인들과(어진 것으로 세상을 구제하려는 것), 대학교수나 학자들(올바른 학문을 붙잡으려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일처리를 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보전하려는 것)을 돌아보았다. 특히 학급이나 학년에서 일이 터지면 어떤 식으로든 조용히 무마해 보려는 몸부림이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정곡을 찔리니 새삼 부끄러워졌다.
141 허자가 질문했다.
“묏자리의 좋고 나쁨이 자손에게 재앙을 주기도 하고 복을 주기도 한다고 생각하여, 이것이 하나의 기운으로 통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실옹이 대답했다.
“중형을 당한 죄수가 감옥에 있을 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하여 죄수 아들의 몸에 병이 생겼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하물며 죽은 자의 혼백으로 그 자손에게 재앙이나 복을 줄 수 있겠느냐? 그렇지만 술법이란 허망하여 본래는 그럴 만한 이치가 없지만 그렇게 된다고 전해지고 믿어온 지 오래되었다.”
→ 기복신앙, 장례 문화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자세가 인상적인 부분.
151 이렇게 되자 만물은 각각 제 몸만을 위하기에 이르렀고, 백성들은 싸움을 시작하였다. 풀잎을 먹고 물을 마심이 너무 부족하다 하여 함부로 사냥하고 고기를 잡으니, 새‧짐승‧물고기‧자라 등이 제대로 살 수 없게 되었다. 둥우리와 움집이 누추하다 하여 좋은 저택을 지으니, 풀‧나무‧쇠‧돌 등이 형체를 보전할 수 없게 되었다.
기름진 고기와 맛있는 음식으로 그 입맛을 맞추니 내장기관이 약해졌고, 베와 비단으로 그 몸을 따뜻하게 하니 사지와 뼈마디가 해이해지게 되었다. 동산을 만들고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는 일이 생기자 땅의 힘이 줄어들고, 성내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더러운 기운이 올라오니 하늘의 재앙이 나타나게 되었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율이 느껴지는 듯 했다. 솔직히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실학은 인간 중심이고, 인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연을 개발하고 파괴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홍대용은 달랐다. 그 동안의 인류 역사를 환경파괴로 규정하고, 인류가 재앙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위의 문장을 요즘의 풍경에 빗대어 보아도 너무도 적확한 묘사이지 않은가? 요즘에도 하기 힘든 생각을 18세기에 해내다니! 놀랍고 존경스러울 뿐이다.
158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무와 돌의 재앙은 굽은 나무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인간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한 유소에서 비롯되었고, 짐승의 재앙은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 복희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흉년의 걱정은 나무를 비벼 불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고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찾아낸 수인에서 유래되었고, 교묘한 지혜와 화려한 풍습은 새와 짐승의 발자국 등을 본떠 한자의 초기 형태를 만든 창힐에게서 근본하였다고 한다.
선비가 입는 도포인 봉액의 위용이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의 옷인 좌임의 편리함만 못하고, 손을 맞잡고 읍하는 허례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공손함만 못하다고 하였다. 문장의 빈말이 말 타고 활 쏘는 실용만 못하고, 따뜻하게 입고 더운밥 먹으면서 몸 약한 것이 저 추운 장막에서 우유를 먹고 몸 강건한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는 혹 지나친 주장일지는 모르지만 중국이 떨치고 일어나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서 싹튼 것이다.
→ 이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짚어낸 것에서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아닌 자연과 환경 중심의 사고와 자기 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는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이 부분은 수업자료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161 “하늘은 낳고 땅은 길러주니, 무릇 혈기가 있는 것은 다 같은 사람이다. 여럿 중에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는 자는 모두 임금이며, 문을 여러 겹 만들고 성 바깥에 못을 깊이 파서 강토를 조심하여 지키는 것은 다 같은 국가이다. 은나라의 머리에 쓰는 관인 장보나, 주나라의 갓인 위모나, 오랑캐가 몸에 그림을 그리는 문신이나, 남만에서 이마에 그림을 그리는 조제는 모두 다 같은 자기들의 풍속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다면 어찌 안과 밖의 구별이 있겠느냐? 그러니 각각 자기 나라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고, 자기 임금을 높이며, 자기 나라를 지키고, 자기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나 마찬가지다.”
→ 역시 명쾌한 문장! 현대에 끌어와서 써도 손색이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면 17, 8세기의 문제제기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슬프다.
[해설 부분]
47 오직 국가만 믿었던 백성들은 왜란과 호란을 맞아 전쟁터로 내몰렸고, 부모와 형제, 처자식과 남편을 잃어야만 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을 다시 농토로 만드는 일도 떠안아야 했다.
→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으로 황폐화된 대한민국에는 적폐 청산, 사드 재검토, 위안부 재협상, 일자리 문제, 사대강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왜란이나 호란 후의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52 이처럼 홍대용은 유학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주자의 사상과 해석에만 매여 있는 성리학이었다. 즉, 성리학으로 무장한 채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당시 기득권층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성리학이 변화를 요구하는 조선사회에 이념적인 토대를 마련해준다기보다는 당시 정치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념의 토대로 전용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홍대용은 주자의 해석만을 따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본래 공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자신의 입장에서 이를 해석하여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 해설을 통해 홍대용에 대한 생각이 명쾌하게 정리된 부분 중 하나.
64. 변화와 개혁이란 상대적인 관점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의문을 가질 때 시작된다.
→ 메모해 둘 만한 명문장!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문장 중 하나!
**201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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