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18.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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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고전 중의 고전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는데 정말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도 뒷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다는 것! 겨우 화요일 수업 틈틈이 읽어가며 마무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왜 뒷부분에서 허덕였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누구나 알고 있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캐서린 언쇼 죽음 뒤에 펼쳐지는 캐서린 언튼과 헤어튼, 린튼 그리고 히스클리프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읽으면서 너무 격정적이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특히 히스클리프가 마지막 복수를 위해 넬리와 캐서린 린튼을 워더링하이츠에 잡아두었을 때 절정이었던 것 같다.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답답함과 악마같은 집요한 복수심에 놀라울 뿐이었다.
책을 접하기 전 캐서린 린튼과 헤어튼 언쇼가 결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솔직히 줄거리만 알고 있을 때는 무슨 이런 개막장이 있나 싶었는데, 끝까지 읽고 보니 너무 당연한 결말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였던 것 같다. 결국 못다 이룬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 그리고 두 집안의 애증의 대서사가 작가의 의도대로 최선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언쇼, 그리고 에드거 린튼, 이사벨라 린튼, 힌들리 언쇼, 캐서린 린튼과 헤어튼 언쇼가 너무도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든 불행과 극복의 대서사를 흔들림 없이 지켜낸 넬리 딘과 조셉(정말 그 캐릭터 그대로), 그리고 이것을 기록으로 옮긴 록우드까지 버릴 것 없는 캐릭터의 대향연이었던 것 같다.
모두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이런 사랑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비극적이었지만 순도와 열정에서 100%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물들과 스토리가 현대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예를 들어 여주만을 죽을만큼 사랑하는 남주와 여주를 신사적으로 사랑하는 서브 남주의 이야기, 그리고 세대를 거쳐 사랑을 이뤄낸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모두 <폭풍의 언덕>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운이 크다. 내 안의 열정이 식었을 때 한 번 더 꺼내 읽고 싶을 것 같다.
(사족 : 헤어튼이 넬리에게서, 린튼 히스클리프가 린튼네 집에서 억지로 떨어지게 될 때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인상 깊은 구절>
43 “저 소리만은 멎게 해야겠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주먹으로 유리를 깨고 그 성가신 가지를 붙잡으려고 팔을 내밀었다. 그러나 내 손가락에 잡힌 것은 그 가지가 아니라 조그마하고 얼음처럼 싸늘한 손이었다. ~
“들어가게 해주세요. 들어가게 해줘요!”
“당신은 누구요?”하고 나는 물으면서도 그 손을 뿌리치려고 애썼다.
“캐서린 린튼이에요.” 그 소리는 떨면서 대답했다. (왜 린튼이라는 이름이 생각났을까? 린튼이라는 이름보다 언쇼라는 이름을 스무 배는 더 많이 봤을 텐데.) “제가 돌아왔어요. 저는 벌판에서 길을 잃었던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창을 들여다보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 <폭풍의 언덕> 하면 가장 잘 알려진 장면! 정말 캐서린의 유령이었을까? 아니면 록우드씨의 악몽으로 인한 가위눌림이었을까?
55 인간이란 얼마나 허황한 바람개비같이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세상과 모든 관계를 끊으려 결심하고 마침내 관계를 가지려야 가질 수도 없는 장소를 발견하여 내 운명에 감사한 나였건만, 약한 인간인 나머지 어두워질 때까지 우울과 고독과의 싸움을 계속하다가 결국은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에밀리 브론테가 29에 <폭풍의 언덕>을 썼던가?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인간 군상들이 모두 놀라울 정도로 개성적인 캐릭터로 창조해 내면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로운 통찰로 파악한 작가의 역량이 놀라운 대목이었다. (이제 시작일뿐인데)
133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려 했을 뿐이야.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려고 가슴이 터질 만큼 울었어. 그러자 천사들이 몹시 화를 내며 나를 워더링 하이츠의 꼭대기에 있는 벌판 한복판에 내던졌어. 거기서 나는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지. 이것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 줄 거야. 나는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에드거 린튼과 꼭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저 방에 있는 저 고약한 사람이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한 인간으로 만들지 않았던들 내가 에드거와 결혼하는 일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이 말이 끝나기 전에 저는 히스클리프가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약간 움직이는 기척이 나기에 그쪽을 돌아다보니 그가 긴 의자에서 일어나서 가만히 나가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는 캐서린 아가씨가 그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할 때까지 듣고 있다가 그 이상은 듣지 않고 나갔던 것이지요.
→ 이 대목은 가장 기다렸던 대목인데, 솔직히 김빠지는 느낌이었다. 미리 알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만약 캐서린의 말을 끝까지 들었더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그냥 둘이 도망가는 것으로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서 히스클리프가 혼자 도망가지 않았다면 과연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두 사람의 성격이 너무도 강할 뿐만 아니라 캐서린의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성품으로 인해 결국은 더욱 파국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히스클리프는 감내하려 했겠지만 불우한 환경 속에서 사랑을 지키기는 더욱 힘들었을 듯.
274 “어디로 갔지? 거기가 아니야, 천국이 아니라고. 없어진 것도 아냐. 그러면 어디로 간 거지? 아! 당신은 내 괴로움 같은 건 알 바 아니라고 했ㅈ! 난 한 가지만 기도하겠어. 내 혀가 굳어질 때까지 되풀이하겠어. 캐서린 언쇼!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편히 쉬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은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했지. 그러면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오란 말이야! 죽은 사람은 죽인 사람에게 귀신이 되어 찾아온다면서? 난 유령이 지상을 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어.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줘. 어떤 형체로든지,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같은 세상에 나를 버리지만 말아줘. 아! 견딜 수가 없어! 내 생명인 당신 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내 영혼인 당신 없이는 난 살 수 없단 말이야!”
→ 아, 이 격정!!! 이건 사랑일까? 광기일까? 무서울 정도로 소름끼치는 광적인 애정!!
301 저는 그 분과 힌들리 언쇼를 비교해 보았는데, 왜 그분들의 행동은 비슷한 환경인데도 그렇게 반대되는 것일까, 만족한 설명을 얻으려고 애써보았어요. 그분들은 다같이 좋은 남편들이었고, 똑같이 아이들을 사랑했지요. 그런데 어떻게 좋은 길이건 나쁜 길이건 간에 같은 길을 걷지 않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는 더 똑똑해 보이는 힌들리가 오히려 더 나쁘고 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 보인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들의 경우를 난파선에 비유한다면, 힌들리는 배가 암초에 부딪혔는데 선장이 자기 자리를 버리고 승무원들도 배를 건지려고 애쓰지 않고 소동과 혼란 속에 빠져 그들의 불행한 배에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요. 그와 반대로 린튼 서방님의 경우는 고지식하고 충실한 정신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용기를 보이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도 그를 위로한 것이지요. 한 사람은 희망을 가졌고, 또 한 사람은 희망을 버렸지요.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으니 마땅히 그것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지요.
→ 힌들리와 린튼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구나 힘든 일이 닥치지만, 그것을 이겨내거나 굴복하는 것은 인간이다. 엘렌의 말처럼 운명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538 “초라한 종말이군 그래.” ~
“나의 그 맹렬한 노력이 이렇게 끝장난단 말인가? 두 집을 부숴버리려고 지렛대며 곡괭이를 장만해 놓고 헤라클레스와 같이 괴력을 낼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훈련했건만, 막상 만반의 준비가 되고 내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자 어느 쪽 집에서도 기와 한 장 들어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으니! 나의 숙적들은 나를 넘어뜨리지는 못했어. 이제야 말로 바로 그들의 후손에게 복수를 할 때지. 내 힘으로 할 수 있지. 그리고 아무도 막지 못해. 하지만 그래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 난 파멸을 즐길만한 힘도 없어졌고 쓸데없이 남을 파멸시킬 생각도 없어졌단 말이야.”
→ 결국 자신의 복수를 종결짓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히스클리프의 모습이 너무도 비장했다. 무엇보다 그 화산 같던 증오가 이렇게 사르르 녹아 없어지다니! 복수는 이렇게 허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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