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아이들(정수윤)
- 상황별 청소년 소설 추천/친구,학교,사회 문제로 갈등할 때
- 2026. 5. 22.

중1 둘째 아들이 엄마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섰다. 정수윤 작가의 “파도의 아이들”로 탈북 청소년들의 아프고도 당찬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마침 학교에서 중3 학생들과 1차 정기고사 이후 남북한 언어 차이와 극복 방안에 대해 공부할 예정이라 책에 등장하는 북한말과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내 눈앞의 중3 아이들과 소설 속 똑같은 열여섯 아이들이 마주한 현실을 비교해 보게 되었다. 살아가는 풍경은 달라도, 저마다의 삶을 고민하며 세상에 온몸을 던지는 청소년들의 당찬 모습은 남과 북을 떠나 참 닮아 있었다.
이야기는 꿈과 자유를 찾아 국경을 건너 중국으로 밀입국한 세 청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강을 건너는 본래의 탈북 과정보다, 그 이후의 삶이 훨씬 더 가혹한 재난이었다. 신분을 숨긴 채 중국 대륙을 거쳐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운'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태로운 길이다. 물론 그 운조차도 스스로 상황을 극복하려 온몸을 던지는 자에게만 겨우 찾아오는 기회일 뿐이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 쿤밍에서 만난 세 아이는 서로를 의지하며 태국의 한국 대사관(으로 추정되는 공간)에 들어선다. 그러나 꿈꾸던 구원의 공간이어야 할 대사관은 난민 인정과 추방 절차를 핑계로 아이들을 수개월간 가두어두는 일종의 합법적인 수용소에 가까웠다. 무료하고 답답한 대사관 생활을 견디던 아이들은 우연히 담장 너머의 바다를 발견하고, 마침내 그 담벼락을 넘는다.
처음 이 결말을 읽었을 때는 솔직히 허무함이 밀려왔다. 목숨을 걸고 겨우 대사관까지 가놓고선, 그 몇 달의 기다림을 참지 못해 뛰쳐나와 밤바다를 보며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너무 열린 결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상황을 곱씹어보니, 이보다 그들의 처지를 완벽하게 대변하는 마무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도, 남한도, 제3국도 그들의 존재를 온전히 품어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밀려오고 쓸려가며 세상이 그어놓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리는 ‘파도’야말로 아이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짜 영토였기 때문이다. 즉 지나치게 열린 결말이 아니라, 탈북 청소년들의 상황을 가장 호소력 있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올해 중3은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을 마지막으로 적용받는 학생이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중학교 문법 성취 기준에는 ‘통일 시대의 국어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지닌다’가 있다. 남북한 언어의 차이를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담았는데 언어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북한, 통일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올해부터 적용되는 2022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 중학교 문법에는 이 성취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 새 교육과정에서 매체 영역이 신설되면서 학습량 조절을 이유로 고등학교 공통국어의 다변화된 언어 실천(다문화 및 통일 시대 대비)으로 통합 이동한 모양이다. 어느 정도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명시적인 성취기준에서 빠지고, 중학교 과정에서도 제외된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인상적인 구절
(59) 살면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사람만이 가진 특권이면서 사람만이 가진 고통 같다. 어릴 땐 세상에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턱없이 적어 답답했는데, 막상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뭘 선택해도 망할 거 같다.
✍ 설이는 압록강 근처에 사는 청소년으로 보인다. 아빠는 교원이었지만 형제들이 월남하면서 직장을 잃고 집은 가난해진다.. 여러 번 국경을 넘었으나 결국 다시 잡혀 강제 노역을 당한다. 그러나 자유를 찾아 또 국경을 넘는다. 형부가 애써 브로커를 연결해 주었지만 인신매매를 당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96) 우리에게 나중이 있을까?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둘 중 하나는 강을 건너야 할 텐데. 그때도 지금처럼 강을 건너는 게 무서운 죄가 되는 세상이라면... 하지만 옥별이도 분명 나처럼 강 건너 세상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때가 올 테지. 그때 옥별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처럼 천방지축으로 강을 건널까? 아니면 언니처럼 인내심 많은 어른으로 자라 아이를 낳고 살까. 옥별이가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자유로운 세상이면 좋겠다. 강이든 산이든 건너고 싶을 때 건널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 여름이는 쌍둥이로 몸이 약하다. 대신 공부를 잘하지만 자신의 신분으로 북한에서 뜻을 펼칠 수 없다. 국경 지역 술집 ‘로즈’에서 접대원으로 일하며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
(132) 우선은 돈이다. 돈을 벌어야 당당하게 두 발로 설 수 있다. 독립. 그래, 독립하자.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나라로부터. 부모든 나라든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내 인생을 조종하는 한, 나는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은 낯선 용 문신 형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어쨌든 이제는 까치발로나마 내 힘으로 서는 중이다.
✍ 손흥민을 좋아하고 손흥민과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어머니의 일로 갑작스럽게 중국으로 도망하고 중국에서 홀로 남게 된다. 중국에서 쫓기듯 살면서도 손흥민과 ‘7’은 큰 힘이 된다.
(158) 이 끔찍한 세상, 모든 걸 불태우고 흩어져라!
그제야 문이 벌컥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 들어와 나를 끌어냈다. 너나없이 물동이를 들고 뛰어다녔다. 그 너머로 아까 나를 목욕탕으로 데려간 아이가 울고 있다. 흥, 울어라. 펑펑 울어라. 너는 나의 괴로움을 반도 모른다. 어디선가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났다. 내려다보니 불이 붙은 장작이 아직도 내 손에 있었다. 그걸 내던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꺄아악키요오옷파아아햐!” (글자 크기가 점점 커짐)
✍ 압록강 근처에 살던 ‘설이’가 중국 브로커에 속아 몽골 가정의 아내로 강제로 인신매매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끔찍한 폭력 앞에서 설이는 이성적인 방법 대신 불붙은 장작을 휘두르며 자신을 던져 저항한다. 어찌보면 자신을 놓아버림으로써 설이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자신을 지키고 자기의 힘을 깨닫는다. 그러한 강한 충격을 텍스트의 크기로 파격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런 위험이 탈북민들에게 수없이 생기지 않았을까.
(212)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세상 따위 원하지 않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
내가 외쳤다.
“와!”
“멋진데?”
우리 셋은 진심을 담아,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밤바다를 향해 다 함께 외쳤다.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
철썩,
철썩,
철썩.
✍ 주제 의식이 드러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제목을 “파도의 아이들”이라고 지은 이유를 잘 그러낸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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