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한강)
- 행복한 책읽기/문학
- 2025. 1. 27.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수상 당일 늦은 시각까지 국어교사 3,000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은 기쁨의 소리로 뜨거웠다. 우리 학교 샘들과 함께하는 독서토론 모임에서도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기로 했다가 “채식주의자”로 바꿔 읽기로 했다. “채식주의자”를 공통 도서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 중에 한 편을 선택해 책을 주문했다. 3주가 넘도록 책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나 보다.
“채식주의자”는 옴니버스 소설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이 차례대로 쓰여 2004년 여름부터 발표되었다. 1편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을 서술자로, 2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를 초점화해, 3부 ‘나무 불꽃’은 영혜 언니 ‘인혜’를 초점화해 서술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영혜의 변화를 보여준다.
‘채식주의자’까지는 재미있게(공감하며) 읽었다. 채식주의자가 되기까지 특별한 계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꿈에서 동물이나 인간으로 이해될 생명들이 피를 흘리며 죽는 장면이 반복되며 육식을 거부하는 장면에 공감은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에게 가족들은 육식을 강제한다. ‘채식주의자’는 그 이름만으로도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몽고반점’은 당황스러웠다. 영혜는 형부가 자신의 몸에 그려준 꽃 그림과 형부와의 결합을 나무가 돼 가는 과정(상징)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혜의 형부는 삶의 무력감을 성년이 되어서까지도 몽고반점을 간직하고 있는 처제와의 금기를 깨는 것을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논란이 되고 소설에서도 논쟁적인 장면이 나온다.
‘나무 불꽃’은 공감하며 읽었다. 영혜 언니 인혜를 통해 어린 시절 가정폭력이 심했고 영혜에게 집중되었으나 함께 대응하지 못했던 일. 괜찮은 남자를 만나 좀 희생하며 살면 될 줄 알았는데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며 무너져 가는. 그리고 이제 광합성하는 식물이 됐다고 생각하며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영혜를 끝까지 돌보는 인혜의 상황이 가족과 가정을 지키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다.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시대 가부장 문화와 그 속에서 길들여진 여성의 문화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여성성의 회복을, 억압에서 벗어난 인간의 모습을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학교 샘들과 나눈 이야기는 독자 중심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강 작가의 책(“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이 굉장히 힘들고 무거워 읽기가 힘들다는 것. 작품의 내용이 국가의 폭력이든 개인의 폭력이든 그것을 리얼하게 풀어내고 있어 작가가 오히려 걱정이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채식주의자” 속 가장 인상적인 중편에 대해서는 ‘몽고반점’이 읽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예술로 보려고 해도 형부와 처제의 관계(영혜의 정신이 온전치 않으므로 불륜이라 할 수도 없지만 용인할 수도 없는), 성적 묘사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 한편 영혜는 정신과 치료나 상담이 필요했는데 방치돼 더 악화되었다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결과적인 해석이지만 영혜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때 가족들이 육식을 강요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편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 영혜의 아버지, 남편, 형부까지 모두 이기적이며 주위 사람을 억압한다. 그래서 개인의 성품 문제라기보다는 ‘가부장적인’ 남성들로 길러진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이 2004년에 발표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남성 위주의 문화를 담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무 불꽃’을 보면 영혜는 제목처럼 ‘나무’가 되고 싶어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데 그럴수록 인혜는 영혜를 살리기 위해 더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영혜의 나무가 되고자 하는 열망과 피붙이로서, 어린 시절의 미안함으로 동생을 살리고 싶은 언니의 열망 중 어느 것을 존중해야 할까, 본인의 자유 의지와 가족으로서의 책임 중 무엇을 더 존중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도서관에 비치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누었다. 선생님마다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토론하고 나서 우리 학교 소장도서를 검색해 보니 이 책이 2권 있었다.
(50)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로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 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세상을 둥글게 살아가는데 세상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다.
(172) “고기만 안 먹으면 그 얼굴들이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그녀의 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의지와 무관하게 차츰 그의 눈은 감겼다.
‘“그러니까...... 이제 알겠어요. 그게 내 뱃속 얼굴이라는 걸.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는 걸.”
✍ 1부 채식주의자 꿈에서 보았던 육식하는 얼굴이 뱃속에 나온 것이라면 뱃속부터 풀이나 나무와 같은 풀과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타난다.
(216) 그제야 그녀는 영혜의 표정이 어린시절의 어느 순간과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꺼풀 눈이 가늘어지며 온통 까매지는 순간, 영혜의 입에서 까르륵, 무구한 웃음이 터져나오곤 했다.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 없어. 물이 필요한데.
✍ 몽고반점에서 바디페인팅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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