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스타니스와프 렘)
- 행복한 책읽기 / 문학
- 2024. 10. 24.

400쪽이 넘는 SF 대작.
1961년 천재 폴란드 작가가 쓰고, 작가 생전에 영화도 3번이나 만들어졌다는 전설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이토록 엄청난 작품임에도, 물음표만 가득 남기고, 줄거리를 요약하면 100쪽이 살짝 넘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다 더 적은 양이 되는 <솔라리스>! 이번 10월 고행 읽을 책인데, 함께 이야기 나무면서 궁금한 점들을 풀어가고 싶다.
1. 왜 행성 이름이 솔라리스? 태양이 두 개인 것과 연관?
(*‘솔라리’는 태양, *‘스’는 복수의 의미)
2. 하나의 생명체, 유기체인 두뇌로 이루어졌다는 설정이 상징하는 것?
(성장하는 불완전한 모습의 미지의 존재, 신적인 상징일 수도 있고, 단순히 우리 주변의 타인 혹은 이웃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3. 지구에서 온 우주인들(스나우트, 사르토리우스, 주인공)의 역할?
(각자 인물의 개성이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의 내면 밑바닥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각자의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보임)
4. 행성 탐사에서 희생된 우주인들은 정말 죽었을까? 어딘가에 살아있지는 않을까? 솔라리스 뇌의 일부분이 된 것일까?
(어딘가에 살아있거나 솔라리스의 일부분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5. ‘하레이’는 솔라리스가 보낸 선물인가, 아니면 행성에서 떠나도록 방해하는 방해물인가?
(하레이는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아픔, 절망, 두려움, 아킬레스건일 수 있지만 하레이와 같은 손님과 직면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함)
6. 솔라리스와 소통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인가? 작가는 그것을 바랐을까?
(하레이와 모든 손님들이 사라진 것은 솔라리스가 인간들의 마음을 읽어낸 것은 아닌지? 주인공은 솔라리스 혹은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 위해 솔라리스 바다에 남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그러나 잔혹한 기적의 시대가 아직은 끝나지 않았음을 나는 굳건하게 믿고 있다’가 해답이 될 수 있음)
7. 주인공이 도착하기 직전 죽은 기바리안은 주인공을 이 행성으로 초대하고, 소설 마지막에 이론가로서 등장하는데 어떤 역할? 어떤 사람? 그리고 기바리안의 시신과 같이 있던 흑인 여자는 기바리안에게 찾아온 손님인지?
(기바리안의 손님인 흑인 여성은 매우 궁금하지만, 기바리안이 자신의 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하는 대응을 보인다는 점이 중요. 그리고 과학자도 아닌 ‘심리학자’인 주인공을 초대했다는 점에서 솔라리스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보임)
8. 기바리안이 영향을 받았다는 유라시아의 과학자들. 한국 ‘조은민’이라는 이름도 등장하는데 작가의 의도? 아닌 우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음)
9. 폴란드에서 SF 소설을 쓴다는 것은?
(지구에서 외계 행성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구 중심의 정복자적인 관점인 경우가 대다수, 당시 폴란드는 소련의 위성국가로 정복당해 왔던 아픈 역사를 비유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10. 내가 솔라리스에 간다면 나는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정말 끔찍하고 무섭다.)
역시 책은 함께 읽어야 훨씬 깊어지고 넓어진다. <솔라리스>는 서사도 유머도 없고 SF의 외현을 가진 심리 혹은 철학서라고 봐도 무방한 책이다. 그만큼 재미없고 불편한 책이다. 달에 인간이 발 디디기도 전, 아직 소련의 지배력이 동유럽에 강하게 드리우고 있는 시절 스타니스와프 렘의 이 소설은 오로지 지구적인 관점(인간 중심적인, 태양이 하나뿐인)에서 모든 사물, 상황, 타인, 다른 세계, 다른 우주와 행성 등을 배타적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대한 인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촉구하는 모습을 400쪽이 넘는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문희숙 선생님께서 짚어주신 377쪽의 구절을 한 번 더 읽어보자.
p377~8 그러므로 이 바다는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살아 있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생명체다. ‘솔라리스’의 문제를 부조리 차원으로 치부하거나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의 상대는 명백한 실체고,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패배 또한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된 것이다. 좋든 싫든 인류는 솔라리스라는 이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내면, 특히 가장 밑바닥에 있는 본성 혹은 본질에 천착하는 작가의 모습도 경이롭다. 박소영 선생님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솔라리스의 바다에 도착해 바다와 소통(교감)을 시도하는 모습은 사라진 하레이와의 재회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해석하셨다. ‘하레이를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도 자신의 과거, 자신의 가장 밑바닥, 본성 혹은 본질과 마주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라고 덧붙이셨다. 이 부분에서 소영 선생님의 생각에 크게 공감했다.
폴란드에 이런 걸출한 작가가 많이 나오는 것과 올해 한강의 노벨 문학상 작품 수상이 아픈 역사를 가진 민족의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는 말씀들도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왜 우리가 폴란드 문학에 끌리는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다.
<인상 깊은 구절>
47 내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그때까지 축적된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솔라리스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 그것도 단 하나의 생명체로 이루어진 행성으로 알려졌다.
51 이 같은 사실을 기초로 해서 과학자들은 지금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솔라리스의 바다가 '사고력을 지닌 괴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행성의 거의 전부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원형질 형태의 이 바다가 그 자체로 하나의 두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인간이 만든 각종 계기들은 이 거대한 두뇌의 깊숙한 곳에서 끊임없이 송출되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독백 중에서 지극히 사소한 일부만을 포착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게다가 그 독백은 인간이 지닌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52 내가 우주연구소에서 한창 학업에 몰두하던 시절, 연구소장이던 베우베케가 어느 날 농담 삼아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솔라리스의 바다와 소통할 수 있겠어?" 그의 농담에는 뼈아픈 진실이 담겨있었다.
54-55 하지만 여전히 많은 학자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은 이 사안을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솔라리스의 문명에 대한 연구의 성패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자신, 즉 인간 인식의 한계를 실험하는 계기가 될 테니까."
125-126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분홍빛 발꿈치 한쪽을 잡고는 손가락으로 발바닥을 쓰다듬어 보았다. 피부가 갓 태어난 아기처럼 부드러웠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녀가 하레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158 어떤 인간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런 물건에 집착하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곤 하지. 열정의 강도로 보면, 줄리엣에 대한 로미오의 감정이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걸세. 이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머릿속에만 넣어 두고, 감시 실행에 옮기거나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어떤 성황이나 대상을 품고 있게 마련이네... 그런 심리를 가리켜 광기나 일탈, 도취, 현혹,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느 순간 피와 살을 가진 실체가 되어 현실로 나타나는 거야. 그게 다일세.
160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하지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지구에서 포화 상태에 이르러 질식할 지경인데도 지구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우주에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상화된 이미지, 지구본과 같은 모양에 지구의 문명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문명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가 미개했던 원시적인 이미지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그런데 우주에는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도 있는 법이지. 우리가 지구에서 갖고 온 것이 미덕의 결정체나 인류의 영웅적인 자질만은 아니지 않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으로 이곳에 도착한 걸세. 그런데 상대가 우리에게 진실의 단면, 즉 우리가 침묵 속에 영원히 묻어 두고 싶어 했던 어떤 일부분을 드러내 보인다면, 우리는 절대 동의하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게 되지!
196 어느 틈엔가 나는 스나우트와 사르토리우스를 찾아온 '손님'의 정체에 대해 거의 관심을 잃게 되었다. 머지않아 우리는 서로에게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숨기는 행위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손님'을 제거할 수 없다면, 우리는 결국 그들의 존재에 익숙해지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리라.
225-226 우선 F-형성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짚어 봅시다. 이것은 인간이 아닐뿐더러, 실존 인물을 그대로 복제한 존재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우리의 뇌가 특정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관념의 물질적 투영에 지나지 않습니다.
243 지나친 상상력이나 섣부른 가설이 이곳에서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는 또 없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솔라리스 행성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316 "그래, 도구요. 당신의 반응을 연구하기 위한, 혹은 그와 비슷한 목적을 위한 도구. 당신들은 저마다 나 같은 도구를 갖고 있어요. 그 도구는 당신들의 추억이나 상상 속에서 억눌려 있던 기억들로 만들어지죠. 아마 당신이나 나보다 훨씬 잘 알 거예요..."
323 "물론이지, 나는 당신을 사랑해. 만약 당신이 본래의 그녀였다면,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몰라."
"왜요?"
"내가 끔찍한 짓을 저질렀거든."
383 기바리안은 조은민, 응얄라, 그리고 가와카제 등이 명성을 떨친 유라시아 학파의 고전적인 생체 전자 연구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연구를 통해 인간의 뇌에서 관찰되는 전기적 활동과 솔라리스 바다의 창조물(초기 단계의 다형체나 쌍생체 등)이 나타나기 전에 원형질의 깊은 곳에서 발생하는 특정한 방전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419 ".. 바다는 우리를 대상으로 연속적인... 실험을 했어. 심리적인 생체 해부 말일세. 우리의 머리에서 훔친 지식을 바탕으로 실험을 하면서도, 우리의 목적이나 의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네."
"켈빈, 그것은 사실도 추론도 아니야. 그저 가정에 불과해. 어떤 의미에서 바다는 우리의 정신에서 봉인되고, 은밀히 감춰진 부분이 욕망하는 것들에 주목했을지도 모르네. 어쩌면 그것은 선물이었을지도..."
430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불완전함 자체가 자신의 가장 본질적이고 내재적인 특성인 그런 신을 말하는 거야. 자신의 전지전능에 한계를 가진 신, 스스로의 행위가 불러올 결과를 예견하다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지신이 촉발한 일련의 사건들에 겁먹기도 하는 그런 신 말일세.
-해설-
459 저자는 처음부터 '솔라리스의 바다'를 불가해한 대상으로 설정해 놓고, 명쾌한 답변 대신 다양한 유형의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인물의 동선이나 행적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일종의 사고 실험을 통해 과학 철학이나 미래학적인 주제들을 탐구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472 결국 미래와 우주라는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솔라리스>에서 렘이 집요하게 파고든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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